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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희박 Jan 13. 2019

고양이 첫 목욕시키기

열한 번째 이야기

준비물 : 대야, 샴푸, 수건, 마음의 준비


길에서 생활한 바니를 입양 후 처음 병원에 데리고 갔을 때 목욕을 시켰었다. 길에서 생활하며 온갖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을 텐데 그대로 집에서 바로 키우기는 무리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첫 목욕을 시킨 후 바니는 집에서 잘 적응하며 매일 그루밍도 하고 고양이 세수도 하며 여느 고양이처럼 자신의 몸을 열심히 단장했다. 


사실 고양이는 매일 자신의 침으로 그루밍을 해서 목욕을 시킬 필요가 없는 동물이다. 그런데 집에서 바니를 키우다 보니 맨날 먼지투성이인 구석진 곳을 탐방하고, 귀 진드기 약이 흘러 목 부위에 묻고, 때문에 털이 뭉쳐져 있는 걸 보니 목욕을 다시 한번 시켜야겠다 생각했다.


바니도 뭉친 털을 아무리 그루밍해도 매끄럽게 되지 않자 그 부분만 반복해서 핥는 걸 보고 쟤도 스트레스받는구나 싶어 목욕 준비를 시작했다.     


우선 목욕시키기 전 먼저 빗질을 해줬다. 최근 구매한 제품 중에 퍼미네이터라는 빗이 있는데 털을 슥슥 빗으면 쑥쑥 하고 죽은 털들이 빠져나와서 속이 다 시원한 제품이다. 그 빗으로 열심히 구석구석 털을 빗고 결 정리를 해주었다. 


목욕 준비를 하며 내심 궁금하기도 했다. 혹시 바니가 물을 좋아하는 고양이는 아닐까? 하는 마음이 조금은 있었기에 약간의 기대감도 있었다. 


저자극 샴푸와 극세사 수건 준비

화장실 세면대에 물을 콸콸 받은 후 전용 샴푸와 작은 극세사 수건, 일반 수건 두 장을 준비하고 난방을 25도 정도로 높여두었다. 바니는 나를 졸졸 따라다니며 내가 부산스럽게 무언가를 준비하자 옆에 와서 궁금한 듯 쳐다보고 있었다. 곧 자신에게 닥칠 시련은 모른 채......     


이윽고 세면대에 물이 다 받아지자 난 바니를 조심스럽게 안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평소 금냥의 공간이었던 화장실에 데리고 들어가자 고양이는 동공이 커지며 주변을 탐색하기에 바빴다. 난 조용히 바니를 부르면서 최대한 불안감을 못 느끼게 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발부터 물속에 담갔다.


물이 찬 세면대에 고양이를 앉히자 놀랍게도 바니는 가만히 있었다! 난 속으로 올레!! 를 외쳤다. 


나 _ '우와!! 말로만 듣던 물을 거부하지 않는 고양이가 바로 바니인 건가?'


조심스럽게 물을 끼얹기 시작한 그 순간! 

바니는 돌변했다. 드디어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자각한 모양이었다. 

세면대에서 나가려고 발버둥 치며 울기 시작했다. 


뱃살 통통 바니
문 열어 달라 울기 시작하는 바니

난 혹시 높은 곳에서 떨어질까 봐 바니를 안고 바닥에 내려놓았다. 화장실 문이 닫혀 있어 밖으로 나갈 수도 없는 바니는 모서리에 얼굴을 박고 너무나도 애처롭게 울기 시작했다.     


아마 극강의 공포를 느꼈나 보다. 난 빠르게 목욕을 마쳐야겠다고 생각하고 손바닥에 거품을 내고 몸에 칠했다. 최대한 바니를 안정시켜야겠다고 생각해 “괜찮아 바니야 괜찮아 바니야” 하고 계속 말을 걸었다. 


샴푸질을 한 바니를 다시 안고 세면대에 넣기는 무리라고 생각해서 샤워부스로 데리고 들어갔다. 아무래도 샤워기로 몸을 헹궈내야 빠르게 씻길 수 있을 거 같아서였다. 샤워부스에서 서둘러 물로 거품을 씻어냈다. 바니는 계속 울고 있고 난 정신이 빠진 채로 바니를 달래며 일단 최대한 물로 씻었다.


어느 정도 된 듯싶어 손으로 대충 물기를 짜내고 수건으로 몸을 감싸 안았다. 바니가 몸을 바들바들 떨자 난 추운가 싶어 빠르게 건조하려고 수건으로 계속 닦아냈다. 그러나 장모 종인 바니는 털이 길어 쉽사리 마르지 않았다.     


평소 드라이기 소리가 익숙해지도록 자주 드라이기를 켰었는데, 드라이기 바람이 자신에게 직접적으로 닿으며 소리가 “위이이잉” 하고 나자 바니는 경기 일으킨 듯이 뒷걸음질로 도망갔다.   

        

난 너무 미안해서 얼른 드라이기를 끄고 다시 수건으로 물기를 최대한 닦아냈다. 그리고 심신의 안정을 취하라는 의미로 간식을 대령했다.      

헤드뱅잉 하며 그루밍하는 바니

어느 정도 털이 마르자 바니는 몸을 웅크리고 폭풍 그루밍을 다시 시작하기 시작했다. 몸 전체에 물기가 있어서 그것을 다 핥기엔 무리라 생각했지만 여하튼 그루밍을 시작한 바니는 무아지경으로 온몸 구석구석을 핥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며 난 "큰일 했다 바니야. 고생했다 바니야. 수고했다 바니야" 하며 엉덩이를 토닥여 주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다 순간 흠칫하고 손길을 멈추었다.     

목 부분에 털 뭉친 게 그대로인 게 아닌가! 내가 뭣 때문에 힘들게 목욕을 시켰는데! 뭣 때문에 둘이서 이 고생을 했는데!! 원래 하고자 목적했던 목 부분을 깨끗하게 씻기지 못했던 것이다. 


생각해보니 난 혹시 고양이 귀에 물이 들어갈까 얼굴 주변으로는 거의 물을 대지 않았고, 이후에는 바니가 너무 울어 정신없이 목욕을 마무리해 그 부분을 깜빡한 것이었다. 


바니야.. 진짜 미안하다. 한 여름에.. 한번 더해야겠어. 당분간은 나도 힘들고, 너도 힘들어서 무리다.     

구르밍 끝내고 세상 개운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바니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바니는 코코넛 향 폴폴 풍기는 몸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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