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회 안데르센 세계명작 창작공모전 2차
모든 것이 평화롭게 유영하고 있는 푸른 바닷속. 실수로도 들어가지 않을 듯한 깊은 동굴 안쪽으로 한 그림자가 스르륵 사라졌다.
‘이쯤인데...’
물결에 따라 금빛으로 요동치는 머릿결과 반듯한 얼굴에 깊은 눈빛을 장착한 그는 바다왕 동생 패트릭이다. 근위병 없이 홀로 나온 패트릭은 마녀를 찾아 불러내어 말했다.
“네가 날 도와준다면 너에게 바다왕국 궁정 마법사 자리를 주겠다. 그럼 더 이상 아무도 찾지 않는 동굴 속에서 비참하게 살지 않아도 될 것이야.”
“......?”
마녀는 자신을 찾아온 풍채 좋은 인어를 향해 비쩍 마른 얼굴을 들어 올려다봤다.
“힘들 진 않았나? 이렇게 어두운 곳에서 혼자. 그동안 이 넓은 바다에서 너에게 누구하나 관심 가진 자가 있던가?”
패트릭은 측은한 눈빛으로 마녀를 바라보며 이어 말했다.
“평생 누구도 찾지 않는 동굴 속에서 영원히 혼자 지내고 싶은 게 아니라면 내 제안을 받아들이는 게 어때?”
조용하고 음울한 마녀는 늘 혼자였다. 가족도 친구도 없이 외로이 동굴 속에서 생활했다. 바다생물들은 모두 그녀를 무서워하거나 혐오했다. 그러나 절박한 상황이 있으면 어쩔 수 없이 찾아와 제물을 주고 마녀의 마법을 이용했다. 행여 마녀를 찾아갔다는 소문이 남을까 일을 해결한 후에는 그녀를 외면하고 누구보다 더 심하게 마녀를 험담하고 다녔다. 마녀는 외로웠고 늘 상처받았다. 어느날은 용기를 내어 바다왕국 광장쪽으로 나가봤지만 마녀의 기괴한 외모를 본 바다생물 모두가 두려워하여 바위 뒤로 숨거나 수초 뒤로 사라졌다. 자신의 입지를 확인한 마녀는 동굴로 돌아와 얼굴을 가렸다.
그런 그녀에게 패트릭은 측은한 눈빛과 따뜻한 목소리로 궁정 마법사 자리를 제안하고 있었다.
“할게요. 뭘 어떻게 하면 되죠?”
그녀의 대답에 패트릭은 옅은 미소를 띄운 체 말했다.
“아주 간단해. 내일 밤 달이 뜨면 바다폭풍을 일으키기만 하면 돼. 너에겐 아주 간단한 일이지 그렇지? 나머진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넌 폭풍을 일으킨 후 내가 데리러오길 여기서 기다리면 돼. 그럼 내 너에게 궁정 마법사 자리와 왕국에서 제일 좋은 집을 약속하지”
“...내일은 바다왕 생일 축하파티가 있다고 알고 있는데...?”
패트릭은 숨죽이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마녀에게 자신의 형 바다왕을 제거하는데 힘을 보태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것까지 네가 신경쓸 일은 아니야. 넌 그저 회오리 바람만 일으키면 되니까. 그리고 그동안 바다왕이 네게 신경이나 썼던가? 이렇게 오래도록 동굴속에서 혼자 지내고 있는 가엾은 너를 말야...”
패트릭은 아련한 눈빛으로 마녀를 바라보았다.
‘그래. 현 국왕이 내게 해준 게 뭐가 있어? 나 같은 건 영원히 동굴 속에서 이렇게 숨어 살아야 되는 거야? 나도 밖으로 나가서 당당히 살고 싶어’
마녀는 패트릭을 향해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약속을 꼭 지켜야 할거에요.”
“내 가장 소중한 것을 걸고 약속하지”
말을 마친 패트릭은 바다 동굴 밖으로 빠르게 빠져나갔다.
다음날 마녀는 약속한 시간에 정확히 바다돌풍을 일으켰고 바다는 어수선해졌다. 잠시 후 동굴 위로 떠내려 오는 온갖 부유물들을 보며 마녀는 터질 것 같은 심장을 부여잡고 동굴 속에서 패트릭을 기다렸다. 그리고 다음날 마녀는 동굴 밖이 소란스러운 걸 느끼며 밖으로 조심스럽게 나갔다.
“당장 동굴 주변을 봉쇄하라! 마녀가 주술을 사용해 돌풍을 일으켜 국왕이 서거했다.
마녀는 손을 들어 앞으로 나오라!”
근위병을 내세운 패트릭이 왕관을 쓴 채 무섭게 마녀에게 소리쳤다.
마녀는 당황한 기색과 억울한 표정이 동시에 얼굴에 드리워졌다.
“당신 어떻게 ...”
마녀가 이를 으드득 갈며 말을 끝내기 전에 새롭게 즉위한 국왕이 말했다.
“살인을 저지른 마녀는 들으라. 돌풍을 일으켜 전 국왕을 살해 한 죄를 엄히 다스려 당장 참형에 처함이 마땅하나 바다왕국에 꼭 필요한 물결을 잠재우는 마법을 부릴 수 있는 자가 마녀밖에 없는 점이 통탄하다. 이에 마녀를 평생 동굴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올 수 없는 형에 처하고 당장 마법에 필요한 모든 재료를 압수한다. 마녀는 앞으로 왕국이 필요시에만 마법을 행할 수 있을 것이다!”
마녀는 패트릭에게 뭐라고 이야기 하려 했지만 서슬퍼런 근위병들이 마녀를 붙잡고 바닥으로 무릎을 꿇어 앉혔다.
“목숨을 부지하게 된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해.”
패트릭이 매서운 말투로 이어말했다.
“근위병들은 지금 이 순간부터 이 동굴 밖으로 마녀가 한 발자국도 나오지 못하게 감시하라”
말을 마친 패트릭은 기세등등한 표정을 지으며 떠났다.
그날부터 마녀는 동굴 안에 갇혀서 패트릭이 필요로 할 때만 마법을 사용하며 가택연금을 당했다. 그녀는 억울함에 피부를 쥐어뜯어 온통 색이 붉다못해 보랏빛이 되었다. 매일밤 소리를 질러 목에서는 쇳소리가 났다. 하루하루 눈물이 마르지 않아 눈 뿐만 아니라 온 몸이 퉁퉁 부었다. 마녀가 아무리 억울함을 이야기해도 병사들은 들은척도 하지 않았다. 마녀는 철저히 고립되어있었다.
‘패트릭... 패트릭! 내 너를 살아있어도 죽은 것 같은 고통을 안겨주마’
마녀는 억울하고 울분에 차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 사이 패트릭은 여러 자녀들을 낳았다. 그 중 막내를 가장 예뻐했는데 막내는 자신을 꼭 닮은 황금빛 머리에 빼어난 외모와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바다왕은 자녀들의 나이가 열다섯 살 생일이 되면 바다위 인간의 세상을 구경할 수 있도록 허락했다. 그리고 올 해는 막내 인어공주가 열다섯 살이 되는 해였다.
마녀는 오래도록 복수를 꿈꾸고 있었다. 그녀는 더 이상 소심한 마녀가 아니었다. 하지만 동굴속에 갇힌 채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국왕은 바다 돌풍을 일으키거나 잠재울 때 그들이 원하는 조건을 들어주지 않으면 마녀를 굶겼다. 마녀는 홀로 악에 바치고 또 한없이 깊은 슬픔에 빠져 생활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병사가 교대하는 시간 잠시 한눈 판 사이에 누군가 마녀를 찾아왔다.
“저기 실례합니다. 잠시 얘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 저는 바다왕국 막내딸 메라인데요”
바다왕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목소리가 들리자 마녀는 그녀가 패트릭이 가장 아끼는 막내딸이라 직감했다. ‘드디어 복수할 기회가 왔구나’ 마녀의 눈빛이 어둠속에서 반짝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