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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희박 Jan 12. 2019

남극보다 춥다는데 버틸 수 있겠니?

다섯 번째 이야기

  아파트 할머니를 피해 고양이들에게 밥 주기가 시작되었다. 할머니를 만났던 시간이 대략 7시 반에서 8시 정도였던 거 같아 그 이전에 가던지, 그 이후에 나갔다. 


그런데 오후 9시가 되면 경비아저씨가 순찰을 돌아 고양이 밥 주는 시간 맞추기가 어려워 밥 주는 시간이 들쑥날쑥 해지자 길고양이들도 나를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러다 보니 너무 늦게 가면 길고양이들을 못 만나고 오는 날도 있었다. 그럴 때면 밥과 물만 놔둔 채 혹시나 할머니를 마주칠까 주변을 경계하며 서둘러 집으로 올라오는 날이 이어졌다. 


어느 날은 길고양이들에게 밥을 주는 벤치 아래 식초 냄새가 진동을 할 때도 있었다. 고양이들이 시큼한 냄새를 싫어하는 걸 알고 누군가 식초를 뿌려놓았던 것이다. 정말 너무 한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저 길고양이들이 이번 겨울만 잘 버텨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2017년 12월에 중반에 들어서자 날씨가 무척 추워졌고 뉴스에서는 기록적인 한파가 시작되었다고 했다. 나는 길고양이들을 만나는 날도 있었지만 못 만나는 날들도 점점 늘어났다. 그리고 길고양이를 만나더라도 사람들 눈에 띌까 5분도 안돼서 자리를 뜨는 날들이 늘어났다.     


  금방 밥만 주고 일어나자 사교성 있고 사람 잘 따르는 갈색이 와 반반이는 나를 따라 현관 입구까지 따라오곤 했다. 그럼 난 고양이들을 데리고 다시 벤치로 돌아갔고 갔고, 벤치에서 집으로 돌아올 때는 뒤도 안 돌아보고 뛰어와야 아이들이 따라오지 않았다. 


  여건만 되면 집에 입양해서 기르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어려서부터 몇 번 동물을 기르다 파양 한 경험이 있어서 이번에 또다시 그런 일이 반복될까 봐 결심이 서지 않았다. 단순히 불쌍하고 예뻐서 기르면 안 된다는 걸 몇 번의 경험을 통해 너무나 뼈저리게 깨달았던 것이다. 


그래서 주변에 길고양이를 입양해 키우는 지인에게  상담도 받고, 키우면 힘든 점만 얘기해달라며 부탁을 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친오빠와 얘기를 하던 중 태어난 지 1년이 채 되지 않은 새끼 길고양이들은 겨울에 못 버티고 죽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개중에 잘 먹고 욕심 많은 녀석들은 겨울에도 버티고 살아남지만 영역 싸움에서 밀리고 밥도 잘 못 얻어먹는 길고양이들은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풀숲에 죽어있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날부터 나의 걱정은 뭉게뭉게 커졌다. 끝까지 책임도 못 질 길고양이 밥 주기를 왜 시작했을까 자책을 하다가 아니다 그동안 녀석들을 보며 얻은 마음의 안정이 얼마나 큰데 하며 반성하는 날들이 늘었다.     


러시아보다 추웠던 2017년 겨울

 

  그러는 동안 날씨는 더욱 추워졌다. 뉴스에서 날씨가 남극보다 춥다는 보도가 나왔다. 그리고 나는 고양이들을 못 보는 날들이 늘어났다. 밥 주던 길고양이가 총 5마리였는데 어느 날은 3마리만 모여있고, 어떤날은 2마리만 있었다. 나는 매일매일 길고양이 걱정에 신경쇠약에 걸릴 지경이 되었다. 특히나 내가 가는 곳은 졸졸 따라다니던 반반이와 갈색이 가 안보이기 시작하자 Lee에게 어쩌면 좋으냐며 하소연을 하기 시작했다.


나_ 애들이 안 보여! 남극보다 춥다는데 어디서 죽은 거 아냐? 반반이 죽어있으면 어떡해? 나 진짜 그럼 미칠 거 같은데      


Lee _ 시간 안 맞아서 못 본걸 거야. 설마 그렇게 쉽게 죽을 리가... 살아있을 거야   

  

나 _ 다음에 애들 보이면 나 집에 데려올 거야. 도저히 신경 쓰여서 안 되겠어. 걔들 죽으면 진짜 죄책감에 못 견딜 거 같아.     


Lee _ 너 책임지고 기를 수 있겠어? 길고양이라 야생 습성도 있을 텐데 감당이 되겠어?     


나 _......


나는 아무런 답을 할 수가 없었다. 이번엔 정말 책임지고 기를 수 있을까.. 불쌍하고 귀엽다고 그냥 집에 들이는 게 과연 옳은 일인가. 아 진짜 말만 통한다면 우리 집에 갈래?라고 한번 물어보고 싶었다. 


연일  뉴스에 한파 소식이 이어지고, 길고양이들을 며칠째 못 보자 걱정이 늘어 Lee앞에서 하소연하던 어느 날 그가 카톡을 보내왔다.



Lee _ 반반이 있다!    


그날 난 결심했다. 길고양이를 가족으로 들이기로. 그리고 입양 준비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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