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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금이 있던 자리 Jul 16. 2024

[Review] 서로 충분했던 처음으로

뮤지컬 카르밀라 후기




혜화 링크아트센터에서 개막한, ‘뮤지컬 카르밀라’ 문화초대에 다녀왔다. 이번 문화초대는 아트인사이트 동료들과 함께 가게 되었다. 문화초대는 늘 혼자 가곤 했는데, 아무래도 조금은 심심하기도 하고 공연을 두고 더불어 이야기할 사람도 없었기 때문에 내심 기뻤다. 그날은 ‘공연 주제 오프라인 모임’이 결성되고 처음으로 만나게 된 날이었는데, 우리는 풋풋한 자기소개와 잠깐의 아이스브레이킹을 마치곤 공연장으로 들어섰고 둘씩 짝지어 나눠 앉았다. 어두운 객석은 언제나처럼 편안했다. 


7월 10일 수요일 20시, 2회차 공연이다. ‘머글’인 본인 처지에서 일자에 따른 배역의 캐스팅이 크게 와 닿지 않는다는 점은 언제나 아쉬운 일이다. 소위 ‘뮤덕’들은 공연의 서사와 넘버 뿐 아니라 캐스팅 배우의 음색이라든지 싱크로율, 그러니까 캐릭터와 배우 사이의 어울림까지도 두루 음미한다는 걸 들은 기억이 있어서이다. 공연장 입장 전, 이미 다회차 관극인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각자만의 기대와 예상을 안고서 배우에 대해 논하는 것을 엿듣는다. 새삼 뮤지컬이란 이런 숨겨진 재미가 있는 장르라는 것을 생각한다. 


오늘 톺아볼 카르밀라는 동명의 소설을 모티프로 하는 창작 뮤지컬로,  뱀파이어와 인간의 사랑을 다루고 있다. 이하는 시놉시스 인용 


[시놉시스]

오스트리아 슐로스. 외딴집에서 혼자 외롭게 살아온 로라는 일주일 후 그라츠로 떠나 새로운 삶을 시작할 꿈에 부풀어 있다. 한편 폭풍우 치는 밤, 마차 사고를 당한 자매 카르밀라와 닉이 로라의 집으로 찾아온다.

낯선 손님들을 경계하지만, 그들의 선량한 모습에 마음을 열게 되는 로라. 그렇게 자매는 로라의 집에 머물게 되고, 카르밀라와 로라는 함께 지내며 점점 가까워지는데.

하필 그때 동네에서는 흡혈귀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슈필스도르프 부제가 그 뒤를 쫓기 시작한다. 마침내 드러나는 이들을 둘러싼 숨겨진 진실. 과연 이 길의 끝엔 뭐가 있을까?


카르밀라는 뱀파이어로 매우 아름다운 여인이다. 폭풍우 속 마차 사고를 위장하여 닉과 카르밀라는 로라의 집에 잠입하게 되는데, 함께 지낸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로라와 카르밀라는 서로에게 깊게 빠지게 된다. 두 여인의 감정이 우정인지 사랑인지, 등장인물이 직접 밝히지 않아 조금 모호하지만 몇 가지 핵심 장면으로 미뤄보건대 사랑이었다고 생각한다. ‘셰리던 르파뉴’의 원작 ‘카르밀라’에서도 둘 사이의 감정선은 사랑으로 설정되어 있다. 





한편 원작과 본 뮤지컬의 내용은 많이 다르다고 알려져 있는데, 각 작품에서 설정한 카르밀라의 설정 차이 때문이다. 원작에서 카르밀라는 로라에게 집착하고 매일 밤마다 몰래 그녀를 흡혈하는 반면, 뮤지컬 본에서의 카르밀라는 로라에 대해 치미는 흡혈욕구를 철저히 억제한다. 둘 사이의 관계는 플라토닉한 방식으로서만 다루어진다. 


원작의 카르밀라가 갖는 흡혈귀로서의 어두운 면모는 ‘닉 피터슨’이라는 캐릭터에게 전가된다. 이는 원작에 없는 캐릭터로, 그녀를 등장시켜 선악구도를 이원화시킴으로써 로라와 카르밀라의 사랑은 순수하게만 전개될 수 있었다. 뱀파이어 장르는 그 소재가 ‘괴물로서의 흡혈귀’이냐 ‘인간으로서의 흡혈귀’이냐에 따라 장르적 분위기가 크게 나뉘고, 이는 흡혈 욕구에 수반되는 죄책감을 다루는 것에서 드러난다. 주로 인간 흡혈에 대한 죄책감이 없으면 전자, 죄책감을 통해 발생하는 딜레마를 다루고 있다면 후자가 된다. 


카르밀라는 ‘인간으로서의 흡혈귀’로 그려진다. 흡혈 충동과 그에 수반되는 살인 행위를 억제하고 끝없이 번뇌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극이 다루고 있는 시간 바깥에서 그녀가 인간을 흡혈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극의 시간 안에서는 선보이지 않는다. 순수한 인간 소녀인 로라와 마찬가지 순수한 흡혈귀로 묘사되는 카르밀라. 두 사람이 가까워져 이내 사랑에 빠지는 장면은 감각적으로 아름답게 그려지고, 이것이 본 극의 핵심이 된다. 말하자면 ‘이종동성 異種同姓 간의 아름답고도 순수한 사랑’을 그려내는 작품이라는 것이다. 


장르적 특성 상 언급되어야 하는 흡혈귀의 잔혹한 본능은 ‘닉 피터슨’에게서만 부각되고 있고, 나아가 그 캐릭터를 악마화함으로써 선악 구도는 아주 선명하게 분리되어 버린다. 닉은 500년을 산 강력한 흡혈귀로, 아름다운 여인 카르밀라를 보곤 사랑에 빠져버렸고 깊은 밤 몰래 자신의 정혈을 마시게 함으로써 그녀를 흡혈귀로 만들어버린다. 원치 않게 영생자가 된 채 인간으로부터 멀어져, 무미건조한 삶을 살게 된 카르밀라로서는 당연히 그녀를 애정할 수 없지만, 닉은 그녀를 집착하고 구속한다. 그러니까 이 극은 흡혈귀 여인 둘과 인간 여인 하나의 삼각관계 이야기이면서, 악독한 흡혈귀의 구속에 대항하고 마침내 순수가 승리하는 동화 같은 사랑 이야기이다. 




카르밀라는 닉을 경멸하고 도망치고 싶어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를 강제로 머무르게 하는 핍진한 이유까지는 상세히 드러나지 않았다. 권속인 흡혈귀가 그 주인의 명령을 거역할 수 없다든지 하는 설정이 대두되지 않은 것은 아쉬운 부분. 극에서는 다만 그녀가 오래 살아서 매우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만 설명하고 있다. 도망치면 자꾸 따라와서 잡는다는 설정일까. 


그래서 카르밀라는 죽음을 원하기도 했다. 하지만 쉽게 죽을 수도 없는 몸, 그녀가 인간 앞에 자신을 내던져 감히 죽음을 시도할 때마다 닉은 그녀의 실패를 조소하며 위협한다. ‘자꾸 그렇게 굴면, 로라를 살려주겠다는 약속은 지켜줄 수 없다’고. 카르밀라가 구차하게나마 살기를 원하는 까닭은 로라에 있었고, 닉이 로라를 죽일 수 없는 것은 카르밀라에 있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사랑 때문이다. 사랑은 어디서 어떻게 오는지 모르면서도 너무나 맹렬한 감정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 서사적 근거가 되곤 한다. 하지만 닉은 그 이후에 굳이 카르밀라를 로라에게 접근시켰다. 그래야 무미건조하게 말라가는 카르밀라에게 생기가 돌 것이라는 요량이었나 본데, 하지만 그 둘은 예견된 사랑에 빠져버렸고 그건 닉이 자초한 일이다. 이제 닉은 질투가 치밀어올라 로라를 죽여버리려고 한다. 


카르밀라가 닉으로부터 도망치지도 죽지도 죽이지도 못했다는, 그들 사이 오래된 구속의 서사와 이 기묘한 삼각관계의 구도는 인과가 조금 모호했다지만, 어쨌든 두 여인은 단숨에 사랑에 빠져버렸고 닉으로서는 아주 분해 마지않을 노릇이다. 당연하게도 극의 핵심 제재가 순수한 두 여인의 사랑이기 때문에, 극은 둘의 감정선에 초점을 둔 채 아주 세밀하고 아름답게 묘사되고, 관객들은 극의 인도에 따라 자연스레 그 두 사람에 몰입하게 된다. 하지만 마치 동화책처럼 펼쳐지는 두 사람의 깨끗하기만 한 플라토닉 사랑보다, 나는 아둔함으로 가득 찬 닉의 집착과 광기에 더 흥미를 느낀다. 마치 세계가 아름다운 사람 이들만을 위해 펼쳐지는 듯한, 그런 느낌은 아무래도 참을 수가 없거든. 나는 자주 빌런에게 매료되곤 하는 편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cGhHVy37H8k



그녀의 집착은 사랑받을 수도 인정받을 수도 없지만, 충분히 이해될 수 있다. 사랑이란 어디서 어떻게 오는지 모르면서도 턱없이 강렬한 것이라 그 자체로 이유이자 목적, 즉 근거가 된다고 했지. 두 사람이 안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로라가 보라색 히아신스 꽃 앞에 카르밀라에 대한 영원한 약속을 맹세하는 것이라든지, 죽어가는 카르밀라 앞에서 붉은 피에 맹세하며 그녀의 피를 수혈받고서 영원을 받아들이는 것이라든지, 그런 것은 설득력을 갖기 어려운 사건이지만 강렬한 사랑으로 충분히 설명된다. 그 사랑이 아주 강렬하다면, 뒤따른 어떤 행위도 충분한 설득력을 지닌다는 것을 우리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사랑은 불규칙하고 비정형적이면서도 맹렬한 힘, 카오스. 사랑은 합리적인 것이 아니기에 닉의 사랑과 광기 또한 우리는 이해할 수 있다, 여전히 받아들이지 못할지언정. 그건 이성으로 선택할 수도, 지혜로 덜어낼 수도 없는 것. 다만 개인적으로는 내겐 로라와 카르밀라의 사랑보다, 닉의 사랑이 몸소 느낄 수 있는 사랑에 가까웠다. 


위에 인용한 넘버, ‘너를 되찾을 시간’에 깊이 꽂혀, 리뷰를 쓰며 두고두고 돌려본다. 본격적으로 둘 사이를 갈라놓고 카르밀라를 되찾으리라 선언하는 이 넘버는 극의 절정부를 연다. 송영미 배우가 연기한 ‘닉 피터슨’은 극이 진행되는 내내 성공적으로 긴장을 유발해오다가, 이 넘버에 이르러 마음껏 감정을 발산하며 카리스마를 획득한다. 2분 남짓한 짧은 시간 안에 닉의 광기와 환희, 표독과 우수에 이르는 변화무쌍한 감정선을 온전히 전달하고 있음은 놀랍다. 


모든걸 다시 제자리로 돌려버리겠다는 광기의 포효 직후, 20초가량의 얼굴 연기는 주목할 만하다. 배우는 우수가 눈물로 뒤바뀌기 직전의 미세한 얼굴 경련을 연기하곤, 곧 터져 나올 것만 같던 슬픔을 이내 향수로 덮어버린다. “서로 충분했던 처음으로.” 그건 아마 왜곡된 향수일 것이다. 카르밀라가 닉을 썩 좋아하는 눈치도 아니었고, 그 둘의 시작은 닉의 일방적 폭력이었기 때문에. 그래서인지 닉은  곧바로 길 잃은 아이와 같은 불안한 눈빛을 띤다, 마치 이 모든 게 틀렸다는 것을 다 알고 있는 것처럼. 그러나 이내 그 침잠하는 감정을 떨쳐버리며, 돌연 미소하는 모습은 그녀가 현실을 거부하며 자신이 만든 오독의 환상으로 돌아가리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때 능글맞은 비릿한 웃음에서 아이 같이 해맑은 웃음으로 매끄럽게 이어내는 연기는 아주 깊은 인상을 남긴다. 왜 소위 ‘뮤덕’들이 다회차 관람을 하는지 이해했다. 나는 송영미 배우와 닉 피터슨에게 완전히 매료됐다. 





그렇기에 이 매력적인 빌런의 최후가 허무했다는 것은 큰 아쉬움을 남긴다. 사실상 닉 피터슨이라는 캐릭터만으로 극의 갈등을 형성하고 사건을 전개시켜왔기 때문에, 그녀의 최후가 허무했던 것은 허전한 뒷맛을 남긴다. 카르밀라는 로라를 지키기 위해 슈필스드로프에게 흡혈귀의 약점을 알려주었는데, 바로 은으로 된 무기로 심장을 꿰뚫는 것. 매우 강력한 흡혈귀인 닉은 견습 구마사제의 은제 검 하나에 허무하게 죽어버린다. 일찍이 카르밀라가 죽음을 원했던 그 자신이나 자신을 구속하던 닉에게 이 방법을 시도하지 않은 것을 보면, 그 시대에 은이란 모르긴 몰라도 아주 귀했나 보다. 


내가 해피엔딩을 좋아하지 않는 성격은 아닌데, 이렇게 서운한 걸 보면 어지간히도 닉에게 몰입했던가 싶기도 하다. 그리하여 빌런은 죽었고, 로라는 흡혈귀의 피를 마심으로써 흡혈귀가 되었다. 남은 두 사람은 손을 잡은 채 무대 바깥, 빛이 쏟아지는 곳을 향해 걸어나간다. 순수한 사랑과 영원한 맹세, 그것을 위해 기꺼이 삶을 포기하려던 카르밀라와 자신의 인간성을 포기한 로라. 두 사람의 결연함은 감각적으로 아름답긴 했지만 개인적으로 크게 와닿지는 않는다. 옳고 그름, 미추와 무관하게 그것에 공감할 수 없었기 때문이고 극도 딱히 관객을 설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뮤지컬은 서사를 음악적 기예로 풀어나가는 장르인 까닭에, 이렇듯 서사의 개연성과 핍진성만을 두고서 집요하게 파헤치는 것은 일견 무의미하게 느껴지기도 할 것이다. 음악적 쾌감이 매우 주요한 장르이기 때문이다. 하여 카르밀라와 로라의 팬들에게 이 리뷰란 좋지 않은 기분으로 가닿을 테고, 그것도 다 사랑 때문이겠지. 하지만 반대로 거기 닉의 팬들이 있다면 큰 공감을 사게 될 것이며, 이것도 사랑 때문이겠다. 


나는 송 배우의 스틸컷과 넘버 영상을 디깅하다가는 어쩌다 팬카페에까지 흘러들어 가게 되었다. 살면서 디깅할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아 덕질은 이렇게 시작하게 되는 것인가 하는 오묘하고 신선한 기분에 휩싸인다. 왜인지 뮤덕을 위시한 덕후들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된 기분이었다. 어쩌면 이러다가 나도 뮤덕이 될지도 모르지. 결말은 취향상 아쉬웠지만, 훌륭한 연기를 알게 되어 흡족한 시간이었다. 사랑해요 송영미. 오늘 공연일기는,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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