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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금이 있던 자리 Jul 23. 2024

[Opinion] 캬바레의 추억

연남장 캬바레 관람 후기




지인 초대로 ‘연남장 캬바레’에 다녀왔다. 친구는 뮤지컬 기획업에 몸담고 있는데, 지인이 직접 제작에 참여한 문화콘텐츠로 초대되는 것이, 여러모로 많은 생각을 들게 한다. 7월 17일 수요일 저녁, 이런 저런 생각을 안고선 연희104고지를 향하는 버스 위에 올랐다. 


오늘 공연이 있을 ‘연남장’은 연희동에 위치한 오래된 건물이다. 모름지기 이름에 ‘마당 장 場’ 자가 들어간 건물은 대게 구식 건물이다. 아무래도 굵직한 사연이 얽혀 있을 것만 같은 건물인데, ‘어반플레이’의 손에서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된 연남장은 낮에는 브런치 카페를 운영하고 밤에는 무대로 활용되고 있다. “옛날 유리공장을 리모델링해 로컬 크리에이터들의 콘텐츠 생산 및 쇼케이스 공간으로 탈바꿈하였다”고 전한다.


여름날의 19시는 아직 햇발이 남아있는 시간. 도착하니 어슴푸레 땅거미가 깔려 있었다. 그 즈음 연남장은 진득한 무대로 탈바꿈해두었고, 오늘의 캬바레를 열 준비를 마친다. 캬바레라… 연남장 캬바레, 나는 그 단어에 이끌려 이번 초대에 응했더랬다. 어쩐지 쟈니리의 ‘뜨거운 안녕’ 같이 느끼한 성인 블루스라든지, 이박사의 ‘뽕짝 대백과’ 같은 지루박 디스코 음악의 향연으로 가득차 있을 듯한 선입견이 떠오른다. 그건 모종의 거리감과 아주 낯선 것에 대한 흥미로움이 뒤섞인 무언가. 





하지만 콜라텍이나 성인 나이트클럽(여러분도 ‘호박 중년 나이트크럽’의 전단지를 기억하는가)에 맞닿아 있던 기존의 인상과는 달리, 의외로 캬바레라는 단어의 정의는 ‘공연 시설을 지닌 단란주점’으로 꽤나 친숙하다. 쇼걸과 쇼맨이 펼치는 공연을 보면서 술과 식사를 즐길 수 있는 유흥업소 캬바레, 유명한 것으로는 우리도 익히 들어본 프랑스의 물랑루즈를 들 수 있겠다. 일전 초대된 ‘툴루즈 로트렉 展’이 떠올랐다. 왜소증을 앓던 툴루즈 로트렉은 물랑루즈를 자주 출입했다고 하는데, 캬바레의 사람들과 편견없이 교류하며 그 안의 군상들을 그림을 남겼고, 오래도록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자리매김 한다. 지금도 물랑루즈와 툴루즈 로트렉은 불가분의 관계로 남아 있다. 


‘연남장 캬바레’의 기획도 이 정의에 들어맞는다. 말하자면 술집에서 벌이는 쇼, 캬바레의 구성으로 문화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다. 연남장 캬바레에서는 총 5개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고 내가 초대받은 공연은 그 중 ‘아이위시’라는 뮤지컬 작품이었는데, 다른 건 다 제쳐두고 밥과 술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 나는 너무나 기뻤다. 직장인에게 19시 공연이 고역인 까닭은, 밥을 못 먹고 달려가도 시간을 겨우 맞출 수 있기 때문. 그래서 술과 함께하는 뮤지컬은 반갑다. 자리를 잡자마자 치즈 감자튀김에 맥주 한 잔을 시켰다. 음식은 훌륭했다. 한편 적당히 배만 채울 심산이었는데 배우들이 중간중간 음식과 술을 시키라고, 마치 연기의 일환인 양 춤과 노래로 종용하는 유쾌한 판국에, 흥에 겨워 맥주를 3잔이나 더 시켜버린다. 나는 다음날 여름 휴가 차, 서울역 발 새벽 6시 기차를 타야했는데 말이지? 





달에 한 번 꼴로는 문화예술 초대에 응하는 편인데, 여타 문화 콘텐츠와 ‘연남장 캬바레’가 유다른 점은 역시 자유로움에 있었다. 연극이건, 공연이건, 뮤지컬이건, 객석에 앉은 관객에게는 불문율의 의무가 있는 법. 기침 소리를 내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소극장 연극일 경우 옆 사람에게 닿지 않기 위해 120분 내내 어깨를 반으로 접어두다간 쥐가 나기도 일쑤. 화장실은 미리미리 가두어야 하고, 집중력이 소진되어 먼 산 바라보고 있을 때 핸드폰을 꺼내어볼 수도 없다. 내 취향과 맞지 않은 공연의 객석 한 가운데에 앉아 있는 것은 가끔… 참 고역일 때가 있어. 이미 내 쥐톨 만한, 좁쌀 만한, 조막 만한 집중력은 회사에서 다 쓰고 왔거든. 에티켓은 관객 모두의 편의를 위해 필수적이라지만, 가끔 어렵게 느껴지는 것도 다 자연한 일일 테다. 


관객이 음식과 술을 시킨다는 것은, 미리 생각했던 것보다도 부산스런 일이었다. 자리에 부착된 QR코드를 스캔 해 주문한 음식들을 웨이터들이 나르며, 바쁘게 눈 앞을 오고가는 동안에도 배우들의 집중은 흐트러지지 않았다. 대비를 많이 한 것 같았다. 그 외 약간의 담소가 들려오거나 관객들이 화장실을 들낙거릴 때에도, 드문드문 반딧불이처럼 핸드폰 액정이 반짝이는 와중에도 준비한 무대엔 흐트러짐이 없었다. 맥주를 4잔이나 퍼마신 탓에 나도 화장실을 다녀왔다. 





감자튀김으로 배도 채웠겠다, 옆 자리도 넉넉하겠다, 깎지 낀 두 손을 뒷머리에다 댄 채 느긋하게 벽쪽에 기대었다. 90여 분의 공연을 여유로이 관람한다, 시켜둔 IPA 향기를 음미하듯이. 캬바레가 있다면 이런 느낌이었을까? 술 한 잔 하면서 편하게 공연을 관람하다가 화장실도 한번 다녀오고, 내친김에 담배도 마음대로 피고 오고, 그럼에도 무대는 계속되고, 다시 내 자리를 찾아 가만히 음악과 쇼에 몸을 맡길 수 있는 곳. 배우들이 무대에서 내려와 객석을 누비며 능청스럽게 농을 건네기도 하고, 관객의 안주를 뺏어먹고, 그들과 대화하고, 호응을 유도하고, 객석으로부터는 얼마든지 화답의 웃음소리가 터져나오는 곳. 


그 와중에 웨이터들은 정신없이 술과 안주를 서빙하고, 사람들은 만면에 웃음꽃을 피운 채 서로 속닥거리고, 또 누군가는 잠시 핸드폰 위로 바쁜 손가락을 놀리고, 급하게 전화를 받으러 공연장 밖으로 나가려는 사람과 다시 들어오는 사람과 사람들. 그래, 사람들이 보인다. 무대와 객석의 구분이 엄격한 곳에서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 객석의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 모든 광경을 가만 지켜보고 있자니 피로가 풀리며 슬며시 안식을 느꼈다. 일전 전전했던 여러 객석에서의 기억이 얽어들며 나는 이내 유쾌해진다. 캬바레는 참 좋은 것이구나? 나는 이 공간에서의 체험을 여러분께도 나눠보고 싶어졌다. 이만하면 전달이 잘 되었을까.


오늘 리뷰는 여기까지. 뮤지컬 ‘아이위시’에 대한 내용도 좀 언급할까 생각했지만 그랬다간 리뷰가 겉잡을 수 없이 길어질 것 같아 이만 줄인다. 개인적으론 연남장 캬바레의 공간 경험만으로도 체험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리뷰가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공연은 8월 말까지 계속되니 한번 다녀오시길. 가벼운 발걸음으로, 그보다도 편안한 마음 안고서. 꽤 자신있게 권한다. 이만, 오늘의 공연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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