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차별철폐 시위를 만났을 때

반짝이는 하루와 절박함 사이에서

by 와초 Wacho


오늘은 아이와 경복궁을 둘러보았다. 연휴라 그런지 궁궐 안은 외국인 여행자와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수문장 교대식, 세종대왕자태실 태 봉안행차 등 조선시대 전통의식을 재현한 행사들도 열려 궁궐의 정취와 흥겨움을 더했다.

연휴의 경복궁, 고운 한복과 의식 행사로 북적였던 하루

오늘도 에너제틱한 아이와 궁 안을 누비는 사이, 어느새 두 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낮잠시간을 한참 놓친 아이는 경복궁을 나서는 순간 울음을 터뜨렸고, 기절하듯 내 품에 안겨 잠들었다. 연이은 강행군. 남편과 나는 걸을 때마다 발바닥이 욱신거렸고, 앉기만 하면 금방이라도 눈이 감길 것 같은 지친 상태였다.


“이제 얼른 집에 가자.“


집으로 가는 길, 율곡터널을 지나 원남동 사거리에서 좌회전해 서울대병원 쪽으로 가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경찰들이 길을 막고 있었다.


‘무슨 행사하나? 연휴라 서울시내 곳곳에서 행사를 하나봐.‘


하는 수 없이 우회했지만, 종로5가에서 혜화로 가는 길도 막혀 있었다.


“아이 참! 무슨 일이래?”

“전장연 시위 있대.”

남편이 휴대폰을 보며 말했다.


불편했다.


지치고 피곤했고, 아이는 좁은 카시트에 구겨진 채 잠들어 있었다. 결국 돌고 돌아 집에 도착하기까지 두시간 반이 걸렸다. 원래는 30분이면 충분한 거리였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고작 두 시간 반의 불편함이, 누군가에겐 매일 반복되는 일상일지도 모른다.‘


경복궁에서 우리는 웃고 즐기며 하루를 보냈다. 어떤 이들은 고운 한복을 입고 자신의 반짝거리는 순간을 찍었다.


그 시간, 도시의 다른 곳에선 누군가는 생존을 걸고 싸우고 있었다. 타인의 눈총과 불편을 감내하면서까지.


궁금해졌다. 왜 그들은 경복궁에 없었을까?

왜 우리 일상 속엔 장애인이 보이지 않을까?


그들이 나에게 야기한 불편함을 통해, 새삼 깨달았다. 장애인들도 우리와 같은 공간, 같은 시간을 살아가고 있음을.


요즘 ‘노키즈존‘, ‘노반려동물존‘, 나아가 ’노시니어존’까지 생겨나며 일부 집단을 불편하다는 이유로 배제하고 밀어내는 현상이 이슈가 되고 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노장애인존’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왜일까.


장애인은 금지되기 이전에, 애초에 공간에 ’없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엘리베이터 없는 지하철역, 턱이 있는 카페, 경사로 없는 식당.

학교와 도서관, 놀이터와 미술관.

우리가 아이와, 반려동물과, 부모님들과 함께 쉽게 오가는 장소엔 휠체어가 들어설 틈조차 없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을 ‘보지 못하고’, 보지 못한 채로 점점 더 잊는다.

‘보이지 않음’은 무관심을 낳고, 무관심은 구조적 배제를 당연한 것으로 만든다.


그리고 그 결과, 많은 장애인들이 여전히 시설 안에 갇혀 있다. 어린 시절부터 가족의 품을 떠나 보호시설에서 살아간다. 탈시설 정책은 바로 이 현실을 바꾸자는 외침이다. 장애인도 집에서, 동네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는.


누구는 경복궁에서 웃고,

누구는 지하철 입구 앞에서 멈춘다.


누군가의 반짝이는 하루와

누군가의 절박한 하루가

같은 도시의 시간 안에 겹쳐 존재한다.


문제는 우리가 그 사실을 너무 자주 잊는다는 것이다.


나는 오늘 겨우 2시간 반을 돌아갔다. 그 불편함 덕분에, 그들의 존재를 아주 조금이나마 다시 떠올릴 수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작은 손 안의 폴라로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