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도덕한 자기고백을 시작합니다.

글을 쓴다는 것,

by 와초 Wacho


"타인은 지옥이다."


사르트르의 이 유명한 한 마디는 나에겐 이렇게 들린다.

‘나는 지옥이다.’

내가 곧 나의 타인이므로.


글을 쓰고 싶어서 글을 쓰다가

글을 쓰고 싶어도 글을 쓰지 못하다가

글을 쓰기 싫어졌다가

글을 써야만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고

이런 짓을 매일 반복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내가 써내려가는 글이 과연 내 생각일까. 이것이 진짜 나의 언어일까. 머리 속에 떠오르는 무차별한 인상들을 언어로 번역해낸다는 것에 대한 불만족스러움, 그리고 불쾌감. 내가 가진 소량의 낱말들로 세상의 무한함을 한계짓고 재단하고 있다는 죄책감과 부끄러움. 그러므로 글 쓰는 자아에서 분리되어 나온 또다른 자아는 거리를 유지하며 쉴 새 없이 검열을 진행한다.


- 이건 잘못된 생각이야.

- 이건 너무 편협하잖아.

- 이건 너무 거만해보여. 너가 이렇게 거만할 자격이 있나.


자기검열 과정은 이런 식으로 나를 고통의 밧줄로 휘감는다. 글을 쓰면 쓸수록 자신을 좁은 틀 속에 과격하게 가둬버린다. 그 고통의 끝에서 형체없는 생각을 유형의 글자로 풀어내지만, 자기검열은 끝없이 나를 가르친다. 나는 지금 뭘 잘못하고 있고, 그러므로 앞으로는 이렇게 해보자는 식이다. 그렇게 생산된 글은 교훈이라는 최종 목적지에 생생하게 다다르며 끝을 맺는다. 마치 윤리적 올바름이 그 목적이었다는 듯 나를 비웃고 있다. 그러한 결론의 허탈함이란... 결국 글을 쓴다는 행위는 내게 무의식적으로 전제된 선악과 시비를 정확하게 직시하게 만드는 일이고, 이는 스스로에게 사회적으로 구성된 도덕적 책무를 한층 더 덧입히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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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없는 글을 써보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글쓰기는 나의 올바름을 점검하는 검열과정이 아니라, 나를 느끼고 통과하는 과정이므로. 스스로 정한 옳고그름의 정의에 대항하여 내면의 부도덕함을 온전히 드러내는 일이리라.




* 내가 무심코 내뱉는 모든 단어들이 항상 마음에 걸린다.

‘마음을 먹었다’, ‘마음에 걸린다’ 등등. 이 표현들은 대체 어디에서 어떻게 생겨난 말들일까? 누군가에겐 상처를 주는 말이면 어쩌지. 내가 인식하지 못하는 차별을 내포하고 있으면 어쩌지. 지금 나는 ‘마음’을 하나의 실체로 인식하면서 자연스럽게 쓰고있는데, 이건 과연 옳은 일일까? ‘나’라는 주체가 있다고 제멋대로 상정하고, ‘마음’을 제멋대로 대상화해버린 것은 아닐지. 그렇다면 나는 끔찍한 인식의 오류를 저지르고 있는 것일테다. 하지만 ‘마음’은 실체가 없는데 나는 무엇에게 사과해야할까?

자명하게 등장하는 낱말들과 그들의 조합 앞에서 온갖 오류들로 얼룩진 나의 허술한 의식을 꾸짖게 된다. 나는 너무 무지하여 잘못된 담론을 비판없이 수용하고 있을 위험이 온 곳에 도사리고 있다. 이에 대한 불안함은 자꾸만 나를 어두운 구석으로 몰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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