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모해지고 싶다고요

본격 사막에서 버티기 작전

by 와초 Wacho


“무모했던 나를 다시 찾기 위해 나왔습니다.”


오디션 프로그램 ≪싱어게인2≫에 참가한 4호 가수의 단호한 애절함이 귀를 울렸다. 그녀의 이름은 신현희. 인디씬에서 발표된 곡임에도 많은 이들이 흥얼거렸던 노래 <오빠야>를 부른 가수였다. 가파르게 인지도를 쌓아나가는 그녀에게 어떤 편치 않은 감정이 오갔던 걸까. 그녀는 자기를 자기답게 만드는 힘은 무모함이라 했다. 그런데 노래에 대한 간절함으로 무모하게 움직였던 열정이 점점 사라지는 것 같더란다. 씩씩하고 밝게 인터뷰하는 그 모습에 왜인지 감정이 복받쳤다.


불안을 탐하는 그녀의 진심에서 내 모습이 겹쳐 보였던 까닭일까. 나는 언제든 숨겨진 불안을 발견해서 끄집어내는 사람이었다. 삶에 순풍이 불어올 때조차도 불안했다. 우울과 불안을 되씹던 20대가 지나고, 결혼 초 남편과의 지긋지긋한 다툼이 잦아들고, 번아웃에서 벗어나며 여유롭게 일을 대하게 되었을 즈음이었다. 그렇게 내 삶도 안락함의 벽을 짓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불안이 사라질 것 같다는 불안함이 스몄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우연한 만남과 순간으로만 채워진 이 세계에서 불안은 내 삶의 가장 큰 동력이었으므로. 불안이란 감정에 늘 나를 의탁해왔던 것이다.


불안은 때때로 그 얼굴을 바꿔가며 등장했다. 어느 날엔 위기감을 몰고 왔다. 이대로 주저하고 있다면 곧 무너져 내릴 것이라 경고했다. 모멸감과 자괴감 같은 괴로운 감정을 증폭시키기도 했다. 남보다 못한 부분들을 콕콕 찔러 나를 아프게 했고, 안 그래도 커다란 타인의 목소리를 확성기로 외치는 존재였다. 지금 위치에서 전진해야 할 때가 아니냐고 윽박질렀다. 이때의 불안은 두려움 그 자체였다. 다른 한편으로 불안은 내가 자유로워질 수 있는 힘이기도 했다. 서열의 세계에서 빠져나오길 바라는 것 또한 불안의 역할이었다. 순탄한 삶의 길을 스스로 박탈할 기회도 만들어주었다. 하루하루의 일상이 견고해지면 삶의 무게는 점점 무거워져 간다. 지켜야 할 것이 많아진다. 그럴 때 내게 가벼워지라고, 안정감 따위 하찮게 여겨버리라고, 용기의 말을 걸어준 것도 불안이었다. 불안이 사라질 것 같다는 불안함은 이 때문이었다. 안전한 길에 붙들리기 싫다고 삐쭉한 마음이 고개를 들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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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서촌에서 자주 머문다. 직장인에서 방구석인이 된 지 넉 달째, 방황하는 시간이 길어진다. 그러다 동생이 꾸리는 서촌의 디자인 스튜디오에 합류했다. 언젠가부터 디자이너가 된 동생은 굉장히 개성 있고 아름다운 작품들을 만들고 있다. 그것들을 제품으로 기획하고 판매하는 일이 혼자서는 버거워져 내가 맡아보기로 했다. 느리게 사는 것만이 허용된 듯한 동네, 이곳 서촌과 동생의 협공으로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삶의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그 바람 덕에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카메라를 통해 나의 세계를 응시하고 ‘찰칵’하는 순간의 사유를 발견한다. 이런 작업은 글을 쓰는 것만큼 흥미롭다. 자발적으로 디자인 프로그램을 배우고 있다. 타이포그래피를 정식으로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끝내주게 멋진 손글씨도 써보고 싶다. 가끔 위스키 집 사장님이 되는 꿈도 꾼다.


공통점 하나 찾을 수 없는 욕망들의 세계가 확장되어 간다. 하나하나의 욕망이 사방으로 튀어나가 점점 더 규정으로부터 먼 곳으로 나를 이끈다. 어쩌다 보니 줄 바깥에 서 있다. 안전을 보장하던 외부세계와의 끈은 끊어졌다. 나를 뭐라고 부르면 될까. 몇 달째 적절한 단어를 찾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줄 밖의 삶이 나쁘지 않다. 외려 안전을 포기한 대신 자유를 보장받은 듯 설렌다. 에리히 프롬이 말한 적극적 자유를 마주하는 느낌이랄까. 도망자라는 신분에서 벗어난 기분은 이토록 상큼한 것인가.


에리히 프롬은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우리의 삶을 조각들에 비유한다. 전통적 권위로부터 해방되며 얻은 '자유'로 인해 삶은 조각조각 분리되었고 전체 모양을 알 수 없게 되었다. 개인은 홀로 조각들을 떠안았고 이들을 맞춰가야 할 '자유'라는 의무를 부여받았다. 이처럼 자유는 이중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미 주어진 '무엇으로부터의 자유'와 ‘무엇을 위한 자유’를 뜻하는 적극적 자유가 있다. 삶의 조각 맞추기를 위해선 적극적 자유가 필요한데 우리는 이 자유로부터 자꾸 도망가고 싶어 진다. 자기가 원하는 것이 뭔지 알아야 맞춰갈 텐데 자기 자신을 들여다볼 시간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실패할지도 모르는 위험과 책임이 따르므로 독창적인 나만의 방식을 택하고 싶지만 두렵다. 결국 자유의 기회를 희생하고 상식과 여론이라는 익명의 권위에 순응하며 살게 된다. 에리히 프롬은 자신과 타인으로부터 소외되지 않고 독립된 자아를 실현하고 싶다면, 그 해답은 적극적인 자유를 대응하는 자세에 있다고 말한다. 자유로부터 도망가지 말란 얘기다.


내가 원하는 방식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도망가지 않으면 언젠간 답을 얻을 수 있는 건가.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 거냐고. 왠지 못마땅하다. 기다리느니 나의 내면을 투명하게 보여줄 방법을 찾겠다며 하잘것없는 결심도 해본다. 어쩌면 그 첫 단추가 ‘불안’ 일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나에겐 불안 또한 이중의 의미로 다가왔었다. ‘자유로부터의 불안’과 ‘자유를 위한 불안’. 이때까지 늘 둘 사이에서 적당한 줄타기를 했다. 한쪽으로 완전히 몰입되지 못하고 갈팡질팡이었다. 자유를 편리하게 누릴 정도로만 불안으로부터 도피하다가, 안전함에 지겨워질 무렵엔 다시 자유를 찾아 불안으로 도피했다. 지금은 불안으로 도피한 상태일 게다. 게다가 이제껏 살면서 불안의 가장 깊은 골짜기를 보고 있다. 여기서 더 깊은 곳으로 가고 싶다. 더 이상 불안으로부터 도피하고 싶지 않다. 불안은 내 속에 깊숙이 은둔하고 있는 욕망과도 같다. 그 욕망이 현존하는 한, 삶의 고정성은 무너지고 그 무너뜨린 힘은 다른 나를 꿈꾸게 한다.


≪싱어게인2≫의 4호 가수처럼 나에게도 무모함이 필요하다. 무모함은 불안함의 파동 속에 자리한다. 파동이 물결치며 슬슬 도망칠 궁리를 하는 자유를 붙잡는다.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 설 때마다, 좀 더 불안해질 수 있는 선택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어본다. 불안정한 상태를 견디어 보는 것, 그 어리석은 일도 적응되면 해볼 만하지 않겠는가라고 중얼거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