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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하는이니 Jan 01. 2023

2022년 연말결산

일, 인간관계, 운동, 독서에 관하여

12월 31일, 2022년의 마지막 날이다. 


제야의 종도 없고, 연말대상은 시시하고, 어제 있었던 작은 말다툼으로 멀리 떨어진 가족은 심리적 거리감이 물리적 거리감보다도 더 멀게 느껴진다.  


하루종일 뭔가를 먹었다가 누웠다가 잠들었다가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오후 9시. '밥 먹고 바로 눕지 말 걸!' 하는 고민은 늘 속이 쓰리고 나서야 하게 된다. 분명 혼자 시간을 보내는 주말을 사랑했는데, 오늘따라 유난히 매 순간이 쓸쓸하게 느껴지는 건 '올해의 마지막 날'이라는 수식어가 붙기 때문일 거다.


이런 찜찜하고 심심한 마음으로 새해를 맞을 수는 없다. 나름대로의 결산자료로 글 하나 정도는 남기면 좋을 것 같아 급히 노트북을 켰다. 당장 떠오르는 키워드들로만 간단하게 나만의 연말결산을 해보고자 한다. 이름하여 '올해 나는 뭘 해 먹고살았나! - 2022년 버전'. 





올해 가장 큰 변화를 꼽아보자면 아무래도 퇴사와 입사가 아닐까. 2년을 꽉꽉 채워 근무했던 비영리기업에서의 커리어를 마무리하고 늘 그렇듯 진로고민을 하던 와중에 대학 선배 A의 전화를 받았다. 내가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매번 새로운 것들로 누적 경력을 0으로 만드는 그 시간 동안, 선배는 한 곳의 직장에서 무려 10년을 일했다고 했다. 그것도 알고 보니 내가 좋아해 왔던 브랜드에서 말이다. A는 함께 일해보자는 제안을 했고 나 역시 길지 않은 고민 끝에 (통장 잔고가 0이 되기 전에) 승낙했다. 



직무 자체는 완전히 새로웠다. 무슨 패기였는지, 원래 하던 일을 할지 새로운 포지션에서 일해볼지 두 가지 제안을 받았을 때 '새로운 걸 해보고 싶습니다!'하고 외치고 말았다. 솔직히 말해서 입사 첫날부터 그 외침을 후회했다. 원래 회사 내에서 그 포지션이 없기도 했었거니와, 연이어 생겨나는 특수한 변화 때문에 업무에 익숙해짐과 동시에 계속해서 새로운 프로세스를 만들어야 했다. 매번 지식백과와 네이버 블로그, 그 외 다양한 서적, 그리고 수많은 타 팀 동료들을 오가며 모르는 분야의 구멍을 메꾸려 고군분투했다. 좋은 점이라면 시간이 정말 말도 안 되는 속도로 흘렀다는 것. 업무 특성상 늘 다음 시즌 혹은 다음 달에 출시될 제품을 준비해야 했고 그러다 보니 어느새 연말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3개월 차가 되었을 즈음, 일이 조금씩 익숙해지자 또 새로운 고민이 찾아왔다. '그래서 내가 여기서 하는 일이 뭘까.' 하는 생각. 한 우물만 판 지인들은 어느새 꽤나 멋진 전문가가 되고 있는 것 같은데 나는 어느 것 하나에 집중하지 못하고 매년 새로운 일에 뛰어든 탓에 매번 신입이 되는 것 같았다. 다행히 연말에 선배이자 이제는 상사인 A와 나눈 대화 덕에 약간의 용기를 얻었다. A는 내 연차일 때 같은 고민을 했다며 경험에서 나오는 조언들을 해줬고 일 년 정도는 더 그 조언을 믿어보자 싶었다. 결론적으로 고군분투하던 업무들에서도 다행히 좋은 평가를 받아 승진과 연봉인상이라는 좋은 아웃풋도 거머쥐었다. 


* 총점 : 별 4.5개 - 새로운 분야에 도전했고 잘 버텼다는 점에서 칭찬해주고 싶다. 



탁구

'지역 운동 활성화를 위한 기부 모임(없는 모임이다)'에서 늘 상위 3% 내에 랭크되었을 내가 올해 들어 가장 오래 하고 있는 운동은 바로 '탁구'다. 올해 등록한 운동만 해도 헬스장(2개월) -> 수영장(2개월) -> 탁구장(3개월 차) 벌써 세 번째 운동이지만 탁구만큼은 주 3회 꾸준히 나가며 생활 체육인으로서의 면모를 갈고닦는 중이다.


탁구장에 가면 가장 좋은 점은 진심으로 이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운동할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서울 내에서도 서울 같지 않은 우리 동네의 작은 골목에 위치한 '동네 탁구장'만의 매력이기도 하겠지만. 어떤 일을 하는지, 앞으로의 계획은 무언지 묻는 대신에 공이 제대로 뻗어 나가려면 가장 높은 지점에 떠올랐을 때를 기다렸다 쳐야 한다, 혹은 탁구채를 열고 쳐야 한다! 는 등의 이야기로만 시간을 보내다 보면 어느새 낮시간의 무거운 걱정들은 가벼운 고민이 되고는 만다. 


하루는 한 코치님이 20분짜리 레슨을 무려 한 시간이나 할애해 온갖 기본기를 전수해 주셨다. 그날 저녁 긴 장문의 톡을 하나 받았는데, 자신이 좋아하는 운동의 매력을 진심으로 전해주고 싶어 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 벌써 탁구의 매력에 빠지셨나요? 탁구는 치면 칠수록 공의 울림이 손등을 타고 피곤하고 복잡한 머리를 시원하게 비워주죠. 다만, 멀리 시선을 두시고 함께 여행을 간다는 생각으로 우선 나의 몸과 마음을 미리 스트레칭하는 습관을 키우신다면 훨씬 재미가 있을 거예요. 좋은 취미만큼 삶을 윤택케 하는 것도 드물지요." 


* 총점 : 별 4개 - 순전히 꾸준히 했다는 것에 주는 점수. 내년엔 랠리다운 랠리와 함께 '멀리 시선을 두는 법'을 익히자. 



인간관계

유난히 인간관계에서 실수가 많았던 한 해다. 시간이 지나면 점점 사람들과의 관계가 정리되고 불명확한 것들이 뚜렷해진다고들 하지만, 올해는 유독 멍청한 실수, 얕은 생각으로 인해 오랜 인연들과 멀어질 뻔했다. 선을 지키면서도 필요할 때 진심으로 곁을 내어주는 게 여전히 쉽지 않다. 


얼마 전 자주 찾아보는 웹드라마에서 이런 대사가 나온 적 있다.(정확하진 않다) '네가 편하다면, 그만큼 누군가가 배려하고 있다는 뜻이다'라는 의미의 대사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맞다. 편해지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 어떤 불편함도 없이 말 그대로 편하다면 상대는 나에게 불편함을 감수한 배려를 해주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이 점을 잊지 않아야지. 


* 총점 : 별 2.5개 - 조금 더 노력하자! 내년엔 보다 성숙해지기를. 



건강

탁구를 시작한 것 외에는 건강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던 한 해다. 다행히 크게 아프진 않았지만, 최근 들어 찾아온 감기와 올 초에 걸렸던 코로나는 나의 회복 능력이 20대 초반의 그것과 전혀 다르다는 걸 상기시켜 줬다. 뜨끈한 국물요리를 먹고 푹 쉬어주면 한결 괜찮아지던 건 회복력이 좋아서가 아니라 그냥 젊어서였다니!



한 시간 30분의 통근시간을 견디며, 치솟는 물가 속 식자재 구입의 어려움을 견디며 건강한 음식을 먹기란 얼마나 힘든 일인가. 물을 마시는 건 또 어떤지. 맹물을 계속 들이키는 건 의식하는 순간부터 더 힘들어지는 일이라 쓰디쓴 아메리카노로만 액체 할당량을 채운 하루들도 숱하게 많다.(커피 한 잔을 마시면 물은 2배로 마셔야 한다고 한다.) 속이 쓰릴 땐 커피 대신 물/차를, 평일 저녁은 배달 음식 대신 집 근처 엄마 손맛 나는 김밥 집에서 김밥 한 줄을. 그 정도가 내가 지켰던 최소한의 건강습관이 아닐까 싶다. 내년엔 좀 더 몸에 미안해지지 않는 하루들을 살길 바라본다. 


* 총점 : 별 2개 - 뭐라 할 말이 없다. 



독서

시작이 별로였어도 결말이 괜찮은 작품들이 있다. 대개는 마지막을 망쳐놓는 작품보다 좋은 인상을 남기곤 한다. 올해 시작은 딱히 기억에 남는 순간이 없지만, 적어도 2022년 막바지에 내가 시작한 뿌듯한 업적이라고 한다면 출퇴근길 독서를 시작한 일 정도겠다. 


이 습관을 들이는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건 유튜브 <민음사 TV>였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콘텐츠들을 보다 보면, 그 순수한 애정이 너무 크게 와닿아서 책을 사고 싶게 만들었고, 또 읽고 싶어지게 했다. 올해 막바지에 읽은 책들은 나름대로 분야적으로도 다양했는데, <자기만의 방>, <돈독한 트레이닝>, <단순한 열정>, <어쩌다 메모>, <피프티 피플>, <모든 것이 되는 법> 정도가 되겠다. 그 외에 책장을 펼쳤다가 중간 혹은 1/3 지점에 책갈피가 꽂힌 채 책상에 놓여있는 수많은 책들이 있다. 



독서 분야를 넓힌 것 외에도 긴 글을 읽고 무엇보다 '끝까지' 읽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나로서는 굉장히 뿌듯한 업적이다. 그동안 기피했던 재테크에 대한 책도 읽기 시작했고 순수문학들도 손대기 시작했고, 또 그냥 민음사 과장님이 추천하는 책이면 몽땅 다 장바구니에 넣었으니까 말이다. 내년에도 많이 사고, 그보단 아니더라도 조금씩 읽어나가련다. 


* 총점 : 별 5개 - 읽는 속도가 사는 속도를 따라잡을 수 있을까? 






아무것도 안 한 마지막 날이 왠지 아쉬워 쓰기 시작한 글인데, 써놓고 보니 나름대로 좋다. 내년에는 어떤 평을 하게 될까. 브런치에 글도 좀 쓰고, 새로 배워가는 것들을 나눌 수 있게 되기를 바라본다. 


글을 읽는 모두가 새해 복 많이 많이 받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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