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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하는이니 Nov 07. 2019

난 흑진주, 오빠는 호랑이였어

당신의 꿈을 묻는 사람

꿈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그 이중적인 이미지를 좋아한다. 찬란하다가도 누구보다 잔인할 수 있고, 손에 잡히기를 바라지만 막상 손에 쥐어지면 어찌할 바 모를 것 같은. 어쩐지 괘씸하면서도 도저히 버릴 수가 없는 그런 느낌이 든다. 이런 꿈 이야기를 하다가 가까워진 사람이 있다. 처음엔 장래희망이나 미래의 거창한 소망의 그 꿈은 아니고, 뭐 이런 것이었다.


- 그러니까, 모든 엄마가 그런 꿈을 꾼다고?

- 엄마일 수도 있고 아빠일 수도 있고 친척이거나 친구일 때도 있어.

- 그게 그냥 꿈인지 아닌지는 어떻게 알아?

- 내가 아직 안 꿔봐서 모르겠는데 확실히 다르다고 하던데. 성별까지 짐작할 수도 있대.

-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 글쎄. 어떻게 안 그럴 수가 있지?


매주 목요일 수업이 끝나고 나면 우리는 중국식 뷔페에 가거나 그날 마음에 드는 식당으로 갔다. 나중에는 바오밥이라는 펍이 주요 모임 장소가 되었다. 모임 이름도 정해서 다녔던 것 같은데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여기서 우리는 체코에서 온 테레사, 독일에서 온 아눅(아기 곰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나와 같은 과 선배 언니였다. 테레사는 웃는 모습이 정말 예쁜 친구였는데 먹성까지 좋아 단숨에 우리의 '픽'을 당했다. 친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어쩌다가 같이 간 중국식 뷔페에서 음식을 몇 접시나 그득하게 먹고도 후식 아이스크림을 대접에 산처럼 쌓아오는 그녀의 모습에서 뭔가 아주 진한 동지애 같은 것을 느꼈던 것 같다.


같이 밥을 먹으면 식구라고 하던가, 매주 하는 식사시간은 건너뛰면 아쉬운 일종의 주간 행사 같은 게 되었고 당연히 각자의 문화나 고민거리, 연애사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사이가 됐다. 그중에서도 아눅의 연애사가 가장 재미있었다. 마르티나가 싸우다가 정이 든 케이스라면, 테레사는 그야말로 먹다가 정이 들어버린 거다.


어느 날은 태몽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한쪽은 태몽을 꾼다는 사실에, 한쪽은 태몽을 꾸지 않는다는 사실에 서로 완전히 놀라버렸다. 정말 외국 사람들은 태몽을 안 꾸는 것인지, 혹은 꾸는데 인식을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 반대로 문화가 만들어낸 범국가적인 착각인 것인지 궁금했다.


후자라면 어떻게 그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그런 비슷한 경험을 해낼 수가 있는 건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전자는 또 어떤가. 그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그런 경험을 하지 않는다고? 아니, 모른다고?


- 그럼 너는 어떤 꿈이었어?

- 나는 흑진주였고, 오빠는 호랑이였어. 물론 다른 꿈들도 있었고.

- 그럼 한국 사람들은 다 자기의 태몽을 아는 거야?

- 내 주위 사람들은 거의 알던데. 안 꾸는 경우도 있지만.

  내 친구 중 한 명은 우주의 별들이 한 번에 다 쏟아져서 엄마 뱃속으로 들어가는 꿈이었대.


이날 우리는 한참 동안이나 태몽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 <먹는 목요일 그룹>에서 우리는 다른 이야기도 많이 나눴는데 특히 나는 테레사에게 글을 쓰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그래서 언젠가는 내 책을 내고 싶다고. 흘러가듯 한 이야기라 나도 미처 기억을 못 하고 있었는데, 6개월 간의 교환학생을 끝내고 테레사와 헤어지는 날 그녀는 <꿈 sueño >이라고 적힌 노트를 선물해주며 말했다. 한국 사람들은 꿈에 대해 더욱더 좋은 감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으니 네가 꾸는 꿈에 대해 먼저 써보라고, 네 글의 시작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며 말이다. 그녀가 건네준 노트는 책장 어느 곳에 빼꼼히 고개를 내밀고 '아직도 안 쓰니?' , '언제 쓸 거야'라고 몇 번이고 물었다.  


몇 년이 흘렀다. 다시 찾은 유럽에서 그러니까 약 3주 전에 만났던 테레사는 변함이 없었다. 피자가 나오기 전 본식만큼이나 많이 나온 애피타이저를 깔끔하게 비우는 그녀의 모습에 <먹는 목요일 그룹>이 생각나 웃음이 나왔다. 테레사에게는 아주 오래된 남자친구가 있었는데, 4년 전 만난 그녀에게 그에 대해 물었을 때 그녀는 그가 'Great'하다고 말했다. 그때의 나는 개츠비 이후로 직접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를 '대단하다'라고 표현하는 걸 처음 듣는 터라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테레사를 다시 만나면 그 그레잇한 남자친구에 대해서도 물어봐야겠다, 그들은 아주 '그레잇'한 관계를 지속하고 있을 것이 틀림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시 만난 테레사는 그 그레잇했던 남자친구가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고, 무례하고 비겁했던 이별을 겪어내는 데 힘이 들었다고 했다. 대단했던 남자친구는 더 이상 없었지만 그 사이에 더 대단하진 그녀가 있었다. 여전히 반짝이는 눈동자와 그 미소와,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자신이 그 이전보다 더 마음에 든다고 멋지게 말하는 그녀가 있었다. 그 무례했던 이별 덕분에 테레사는 남자친구가 있는 독일로 가는 대신 자신의 일에 더욱 집중할 수 있었고, 운 좋게도 선배들이 퇴사하면서 큰 프로젝트의 PM까지 맡게 되었다고 한다. 최근에는 체코 철도청에서 의뢰한 홍보 동영상 기획 및 촬영 프로젝트의 메인 디렉터로 한참 바빴다고 하는 그녀가, 새삼 자랑스러웠다.


피자 한 판을 두고 세 시간을 이야기했다. 그래도 이야기할 것들이 넘쳐났다. 즐거운 시절을 함께 보낸 이들은 대부분 시간이 지나고 나서 그 이야기를 안주 삼아 이야기하지만, 그 이야기를 빼면 할 이야기가 없는 경우가 더러 있다. 나는 단순히 과거의 일들만이 아니라 현재와 또 앞으로의 일들을 골고루 이야기할 수 있는 관계를 사랑한다. 우리는 함께 했던 시간들과 그렇지 못했으나 각자 바쁘게 살아낸 시간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즐거웠다.


테레사는 내가 묻지 않기 바랐던 질문을 했다. 글을 쓰기 시작했냐고, 책을 내고 싶다던 말을 아직도 기억한다고 말이다. 부끄럽게도 아직도 나는 망설이고만 있었다. 멋진 글을 쓰고 싶지만 멋진 소재가 없고 그럴듯한 글을 쓰자니 나를 속이는 기분이 든다고, 솔직하게 말하니 어딘지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만나면 여전히 내 꿈을 물어보는 친구이자, 자신의 자리에서 제 꿈을 열심히 쌓는 아주 그레잇하고 그레잇한 테레사를 만나고 돌아온 날. 나는 브런치를 켰다. 쓸 이야기들은 내가 망설이는 동안 꽤나 많이 쌓여 있었다. 이틀을 꼬박 세 가지 이야기를 쓰고 읽고 다듬으며 보냈다. 작가 신청이라는 버튼을 누르고 3일 뒤, 메일이 한 통 왔다.


브런치 작가가 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 드립니다.


쓰고 싶었던 이야기들은 많았지만 시작이 될 이야기가 필요했다. 테레사는 나에게 그 시작이 되었다. 나의 꿈을 물어주는 사람, 그 꿈이 가까워졌을 때 진심으로 축하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한 발짝 더 내디뎌 보는 것도 그리 어렵지만은 않은 것 같다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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