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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하는이니 Dec 16. 2019

83일째 여행 중입니다

공항에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세어보니 벌써 83일째다.


어떻게 시간이 이렇게 빨리 갔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지만, 대부분은 시간 감각을 잃은 채로 많은 나날을 이국에서 보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부지런하게 했던 출근이 더 이상 없고, 언제 끝날지 모르던 야근이 없는 이곳에서는 요일 감각, 날짜 감각은 저 멀리 날아간 지 오래다.


지금은 체류일을 조금 더 미루기 위해 런던에 갈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번 여행이 유독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일정이긴 했지만, 런던이라니. 전혀 갈 생각이 없던 도시였다. 4년 전 혼자 떠난 영국은 무지막지하게 비싸고 추운 도시로만 남아있었고 당연히, 정말 당연히 선택지에 없던 곳이었다.


세 시간이나 일찍 공항에 도착한 덕에 책도 읽고, 커피도 한 잔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면세점을 지나 게이트로 들어가는 통로에 위치한 마드리드 공항의 스타벅스에서는 보려고 하지 않아도 한눈에 많은 사람들이 보인다. 양손에 가득 '듀티프리'백을 들고 있는 사람들부터 탑승시간을 기다리며 앉아있거나 휴대폰을 보는 사람들까지. 누가 봐도 비즈니스맨 인 사람들은 양복을 갖춰 입고 어디론가 바쁘게 통화를 한다. 이곳은 이미 짐 검사를 마치고 들어오는 곳이라, 다들 어디론가 떠나는 사람들만 있지만 통과 전에는 더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떠나는 사람과 남는 사람들이 애틋하게 포옹을 하고 입맞춤을 나누는 것도 쉽게 볼 수 있는 장면이다. 문득, 이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다들 어떤 마음과 어떤 이유로 떠나는지, 이렇게 스쳐 지나간 사람 중 어떤 이는 인생의 다른 어떤 날에 어디선가 만나게 될 수도 있겠구나. 그럼 그야말로 영화 같은 일이 아닌가 하고.

공항은 여러모로 성가시다. 특히 물욕이 많아 한 도시에서 다른 도시로 넘어갈 때마다 짐이 늘어나는 나로서는, 저가항공의 빡빡한 수화물 제한이 여간 성가신 게 아니다. 고작 2kg 때문에 다시 캐리어를 펼쳐서 들고 간 작은 가방에 넣는 일을 반복하는 일은 정말로 피곤하다. (진심으로 데스크 가기 전에 자동으로 짐 무게를 검사할 수 있게 해 준다면 좋겠다)

무사히 체크인을 하고 나서도 고비는 여럿 남아있다. 길게 늘어선 줄에서 한참을 기다린 후 코트며 가방이며, 특히 그 속의 전자 기계들을 다 꺼내서 늘어놓는 일. 어쩌다가 보안검색대에서 삐-소리라도 나는 날엔 잘못한 것도 없는데 괜스레 가슴이 쿵쿵 뛴다.


이런 이유로 나는 공항을 좋아하지 않는다. 비싸고 성가신 데다가, 다시 공항에서 시내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하니까.


그럼에도 계속해서 공항을 찾게 된다. 때로는 몇 개월을 기다려서, 수속을 밟고 기계에 내 짐을 모두 들어내는 그 과정을 기다리게 된다. 심장이 툭 하고 떨어지는 유쾌하지 않은 느낌의 이륙과 착륙을 반복하는 그 일을. 여행과 공항은 뗄레야 뗄 수 없고, 나는 여행을 사랑하기로 했으니 공항도 미워하지 않기로 했다.


되도록 자주 볼 수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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