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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풀 Jan 10. 2024

[우리가 몰랐던 슬램덩크]

주인공 이름을 알면, 두 배 더 재밌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 시인의 ‘꽃’ 중 한 구절입니다.

‘이름(name)’이란 단어는 ‘~라고 말하다’란 뜻의 동사 ‘이르다’에서 왔습니다.

영화나 만화 같은 창작물에서, 이름은 등장인물의 캐릭터와 스토리의 진행방향을 암시하곤 합니다.

그래서 이름의 뜻을 알면, 이야기가 보입니다.


K연속극 3대 마에스트라로 꼽히는 문영남 작가는, 등장인물 이름을 참 맛있고 독하게 붙입니다.

꼭 지옥 불닭 같습니다.


대표작 ‘소문난 칠공주’의 칠은 7이 아니라 자매의 돌림자입니다.

어진 주부 첫째 ‘덕칠’은 남편 친구와 썸타다가 나락으로 떨어집니다.

말 잘하는 여군 지휘관 ‘설칠’은 실속없이 엄청 설칩니다.

심지어 썸타는 어린 부하병사의 이름은 ‘연하남’입니다.

아름다운 간호사 ‘미칠’은 막무가내 개억지로 사람 미치게 만듭니다.

극 중 상대방을 넘어 시청자까지 돌아버립니다.

막내인 재수생 ‘종칠’은 식구제작프로젝트의 최종작입니다.

과외선생이던 마마보이 황태자와의 불장난에 생명을 잉태해 , 철부지 남편과 시어머니의 모진 시집살이로 인생을 종칩니다.

반찬가게 주인인 시엄마 이름은 ‘반찬순’입니다.


아우, K연속극의 참맛에 정신이 혼미해집니다.

등장인물의 이름이 스토리와 캐릭터를 담고 있다는 참 좋은 사례이긴 합니다.^^;;


작가는 작품 속 세계의 신입니다.

피조물들에게 적합한 이름을 지어주고 싶습니다.

슬램덩크 등장인물들도 이름 속에 각자의 특성을 품고 있는 듯 보입니다.

강백호, 서태웅 같은 한국식 이름으로는 알 수 없던 재미를, 오리지널 이름풀이를 통해 함께 느껴보시죠.^^;;


저는 일본문화를 잘 알거나 일본어 수준이 높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실과 다른 추측이 분명히 있을 거라 예상합니다.

말뜻 풀이가 일상생활인 어원연구가의 엉뚱한 상상이니,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잘못 이해했거나 틀린 점들이 있다면 댓글로 알려주시면 좋겠습니다.


먼저 주인공들의 학교부터 알아보겠습니다.

학교의 정확한 이름은 '쇼호쿠 고등학교'로, 한자로는 '상북(湘北: 강이름 상, 북녘 북)'이라고 씁니다.

강의 북쪽에 위치했다는 뜻입니다.

'강이름 상(湘)'자는 형성문자입니다.

형성문자(形聲文字: 모양 형, 소리 성, 글 문, 글자 자)란, 뜻을 나타내는 모양글자와 음을 나타내는 소리글자를 혼합하여, 새로운 의미를 담은 한자입니다.

물을 의미하는 '삼수 변(氵)'과 공동체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서로 상(相)'자가 혼합된 한자로, '서로 힘을 모아 물처럼 어우러졌다'고 해석할 수는 있습니다.

이노우에 다케히코 작가님이 의도하고 사용한 이름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만화 단행본에는 상북이 북쪽의 산 북산(北山: 북녘 북, 뫼 산)이라고 나옵니다.

우리나라에 이름이 같은 학교가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추정하는 글들이 보입니다.

슬램덩크가 우리나라에 소개됐던 1990년대 초반,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 산전리에 실제로 상북고등학교가 있었습니다.

이 학교의 한자명은 上北으로 湘北과는 달랐습니다.

1999년 새 이름 '울산경의고등학교'로 출발하며, 상북고란 이름은 역사 속에 남게 되었습니다.  

슬램덩크가 이후에 국내에 소개됐다면, 북산이란 이름은 생겨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자, 그려면 상북팀 친구들의 이름들을 알아보겠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강백호, 서태웅(1974년생), 송태섭(1973년생), 채치수, 권준호(1972년생) 모두 저보다 형들이라 친구라고 부르기엔 살짝 머쓱합니다.

등장인물들 이름(姓名)에서 성(姓)도 해석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스토리 개연성이 짙은 경우로 제한했습니다.


1. 강백호(사쿠라기 하나미치 - 桜木 花道: 벚나무 앵, 나무 목, 꽃 화, 길 도)


- 벚나무 꽃길


싸움꾼 문제아가 어여쁜 여학생을 사귀고 싶어 농구부에 들어갔다가, 알지 못했던 재능과 치열한 노력으로 진짜 꿈을 향해 달려갑니다.


화려하게 피어 오르는 벚꽃처럼 눈부시게 성장하다가, 전국 최강인 산왕공고전에서 심각한 부상을 입습니다.

마지막 화에서, 어느 바닷가 인근 병원에서 재활 중인 모습이 나옵니다.

왠지 “벚꽃은 다시 피어오른다!”고 외치는 것 같습니다.

치료를 마치고 돌아오면, 꽃길을 걸을 거란 기대감에 설렜습니다.


2. 서태웅(루카와 카에데 - 流川 楓: 흐를 류, 냇물 천, 단풍나무 풍)


- 흐르는 냇가 단풍나무


일본의 단풍은 세계적으로 아름답기로 유명합니다.

봄의 벚꽃놀이만큼이나 가을 단풍구경도 인기가 있다네요.


붉은 단풍처럼 화려한 실력으로 눈길을 빨아들이는 천재 바스켓맨.

처음엔 대립했던 봄날의 벚꽃나무 강백호와 가을날의 단풍나무 서태웅이 화합해, 막강 산왕을 꺾습니다.


루카와 카에데는 작가가 '카와(川)'가 들어가는 이름을 멋지다고 생각해 지은 이름이라고 합니다.

심지어 잘생겼습니다.

원래 작가가 애정했던 주인공은 이 친구였다죠.

그런데 실력과 외모에 주먹까지 너무 완벽하니 정이 안 가서, 강백호에게 기회가 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린 모두 갖춰진 사람보다 조금씩 아쉽고 부족한 이들에게 마음을 보내는 것 같습니다.


3. 채치수(아카기 타케노리 - 赤木 剛憲: 붉을 적, 나무 목, 굳셀 강, 모범 헌)


- (붉은 나무) 굳센 모범


성실하고 바르게 노력하는 강직한 귀감의 리더(주장)입니다.

무뚝뚝하고 냉정해 보이지만, 배려심과 우정이 깊습니다.


팀을 위해 항상 자신을 희생하고 모범을 보입니다.

학과성적도 좋은 모범생입니다.^^*


4. 송태섭(미야기 료타 - 宮城 リョータ: 궁궐 궁, 성 성, 료타는 한자 불명)


- (궁궐 성) 빛내는 큰 사람


미야기(宮城)는 일본 오키나와에서 아주 보편적인 성씨라고 합니다.

송태섭은 오키나와 출신이죠.

도내 넘버 원 포인트 가드를 꿈꾸며 성장해, 약체인 팀을 전국대회로 이끄는 '빛내는 큰 인물'입니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the First Slam Dunk)’의 주인공은 송태섭입니다.


농구팀은 각 포지션에 1번부터 5번까지 숫자번호를 붙이는데, 1번이 송태섭의 역할인 포인트 가드입니다.

2번은 정대만의 슈팅가드, 3번은 서태웅의 스몰 포워드, 4번은 강백호의 파워 포워드, 5번은 채치수의 센터.^^;;


*가타카나로만 쓰여진 ‘료타(リョータ)’를, 보편적 한자명인 亮太(밝힐 량, 클 태)로 추측했습니다.(송양태? 잉!)


5. 정대만(미츠이 히사시 - 三井 寿: 석 삼, 우물 정, 목숨 수)


- (세 우물) 목숨/장수


농구를 목숨처럼 사랑하고, 오래 오래 하고 싶어합니다.

우리에겐 ‘불꽃남자’로 기억나는 슈터입니다.


중학 MVP로 선정될 만큼 뛰어난 선수였지만, 부상으로 농구를 중단하며 불량한 방황기를 겪습니다.

과거를 뉘우치고 팀으로 돌아온 후, 고질적 체력 부족에 시달립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자신을 더 채찍질하며, 탈진상태에서도 초인적 실력을 발휘합니다.


전국대회가 끝난 후 같은 3학년인 채치수와 권준호는 은퇴를 예고하지만, 정대만은 이후로도 농구를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밝힙니다.

‘목숨 수(寿), 히사시’가 한 번 더 떠오르는군요.

알아요, 저도 억지스럽다고 생각해요. (ㅠ.,ㅠ)


사실 '미츠이'는 작가가 아주 좋아하는 술(사케)의 양조장 회사 '미이노코토부키(三井の寿)'에서 나온 이름이라죠.^^*

아침부터 술 생각이~


6. 권준호(코구레 키미노부 - 木暮 公延: 나무 목, 저물녘 모, 귀한 인물/함께할 공, 늘일 연)


- (나무 저물녁) 함께 늘여나가는 귀한 사람


권준호보다 '안경 선배'로 더 잘 알려져 있죠.

모범적이고, 성실하며, 배려심 깊고, 용기있습니다.


선수로서 마지막 해인 3학년에, 재능과 잠재력이 특별한 새 멤버들이 합류합니다.

티격태격 어수선한 상황에서, 특유의 부드럽고 선한 마음으로 헌신합니다.

덕분에 동료들이 화합하고 팀의 실력도 뻗어갑니다.

참 소중하고 귀한 사람입니다.


7. 안한수(안자이 미츠요시 - 安西 光義)


- 평안한 서쪽 빛나는 뜻


감독 안 선생님.

KFC 마스코트 커넬 샌더스 대령과 모습이 닮았습니다.


원래 국가대표 출신의 불같은 성격을 지닌 맹장이었습니다.

대학교 감독 시절 아꼈던 제자가, 자신의 지도 방식을 견디지 못하고 방황하다가 비극을 맞는 사건에 충격을 받습니다.

지금은 온화한 모습으로 팀을 지도하며, 농구를 통해 빛나는 뜻을 이뤄나갑니다.


[보너스]

정우성(사와키타 에이지 - 沢北 栄治: 못 택, 북녘 북, 영광 영, 다스릴 치)


- (연못 북쪽) 영광의 통치


영예롭게 코트를 지배하는 자.

세계관 절대최강자입니다.

코트 위에선 뭐든지 다 잘 하지만, 가끔 어리숙하고 엉뚱해 친근하게 느껴집니다.

주인공들의 적군 팀 에이스지만, 미워할 수 없습니다.


자, 이렇게 등장인물들의 이름을 일본어 뜻풀이로 알아봤는데요.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셨다면, 푸르렀던 소년 시절이 강백호와 송태섭으로 설렜던 분일 것만 같습니다... 저처럼요.^^;;

오늘 함께 나눈 이야기로, 우리가 사랑했던 슬램덩크를 더 재밌게 즐기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름의 뜻을 알면, 우리 일상의 모든 영역에서 쉬운 이해와 더 다양한 맛을 즐기실 수 있습니다.

무슨 뜻인지 찾아보기 전에 왜 이런 이름을 붙였는지 짐작해 보세요.

이름풀이가 더 재밌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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