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렁이의 영어단어는 river snail입니다.
‘강에 사는 달팽이’란 의미인데, 우리나라 우렁이는 논에 삽니다.
유럽에는 우리나라 논 같은 서식지가 없겠죠?
하긴 우렁 된장찌개도, 우렁 쌈밥도 없네요.
우리말 유래로 ‘우롱이’와 한자어 ‘田螺(밭 전, 소라 라: 밭소라. 논에 산다며!!!)’가 있습니다.
숨 쉬거나 움직이는 모양이 ‘울렁’여서 우롱이, 우렁이가 됐다고 추측해 봅니다만, 문헌 근거가 없으니 믿지 마십시오.^^;;
이제 snail의 뿌리로 여행을 떠납니다.
게르만어 schenecke, 고대영어 snaca 등에서 왔군요.
‘살금살금’ 혹은 ‘배를 대고 스르륵’ 기어가는 짐승을 뜻하네요.
뱜(snake)과 출발이 비슷합니다.
어쨌든 달팽이는 집이 있습니다.
패닉의 ‘달팽이’는 고단한 삶에 지친 위로의 대상에서, 선망의 자가보유자로 올라섰습니다.
달팽이가 팔자를 고쳤습니다!!!
10년 전쯤 우렁된장찌개 먹고 끄적댔던 글 소개합니다.^^*
[우렁 레이디]
"아저씨, 말 빼세요."
"죄송합니다, 잠시 담배 좀 사왔습니다."
"여기 주차금지 구역이니까 얼른 빼세요."
교통경찰이 지나가자 유노는 서둘러 고삐를 잡았다.
"가자, 천사."
그의 애마는 3살배기 흰색 마반테다.
성능/연비/유지비를 꼼꼼히 따져서 데려온 아이다.
최근 들어 때를 많이 타 세마비가 부쩍 늘면서, 적토마색으로 염색할까 고민 중이다.
나들이철이라 그런지 도로는 마소로 북적인다.
좌회전 신호가 떴는데 앞말이 가지 않고 있다.
말은 마렌저인데 라이더는 김여사다.
운전 못하는 아줌마들이 꼭 말은 큰 거 탄다.
무시 안 당하기 위해서다.
교통수단으로 차 대신 말과 소가 떠으른 건, 느닷없는 석유고갈 때문이다.
석유가 사라지면서 자동차를 탈 수 없게 됐고, 그나마 태양광이나 풍력으로 만드는 전기는 양이 극히 적어 차량에는 쓸 수 없도록 규제되고 있다.
오늘은 2:2 미팅날이다.
한껏 멋을 부리고 나왔건만 그녀들의 관심은 유노의 친구 월수에게 몰려있다.
말 얘기가 나온 다음부터다.
"월수씨는 어떤 말 타세요?"
"마르세데스 벤츠요."
"와, 수입말 타시네요. 아버님도 좋은 말 타시겠어요?"
"아버지는 홀스로이스 좋아하십니다."
게임오버다.
수입말이라면 껌뻑 죽는 된장꾸러기 여자를 만나느니, 차라리 수류탄을 안고 자는 게 낫다는 게 유노의 신념이다.
파트너가 나뉘고 끼리끼리 갈라졌다.
월수는 소주를 마시러 간다고 한다.
수입말을 타니 소주를 마시는 것마저 운치 있어 보이나 보다.
유노와 함께 와인을 마시러 가기로 했던 파트너는 마반테를 보자 갑자기 안색이 변한다.
"저, 죄송한데요. 집에서 갑자기 들어오라는데요. 할머니께서 많이 편찮으시다구요."
"아, 예... 어쩔 수 없죠."
유노의 최근 별명은 '할머니 킬러'다.
그와 미팅이나 소개팅에서 만난 여성들은 차를 마시고 다른 곳에 가자고 말을 꺼내면, 항상 할머니가 위독하시다며 자리를 뜬다.
공교롭게도 모두 마반테를 본 이후였다.
'빌어먹을 자본주의! 이번에 성과급 나오면 마나타나 소말파이브로라도 바꿔야지...'
타박타박 마반테 '천사'가 힘빠진 걸음을 내딛는다.
동네 앞에 못 보던 수족관 트럭이 보인다.
불현듯 전래동화가 생각난 유노는 말을 세웠다.
"저, 여기 우렁이도 있나요?"
"예, 몇 마리나 드릴까요?"
"저 우선 한 마리만... 제일 마음씨 착한 아이로..."
점원 아가씨가 싱긋 웃으며, 우렁이가 든 비닐봉지를 건넨다.
"우렁 각시 믿으시나봐요?"
"하하... 집에 어항이 있어요. 금붕어만 있어서 좀 휑해서요."
집에 도착해 우렁이를 어항에 넣는다.
이대로 가다간 독거노인이 되고 말 거란 위기감이 밀려온다.
깡소주를 들이킨다.
빈 속에 들어간 술이 확 달아오르며, 미팅에서 당한 모욕감이 되살아난다.
"못돼 퍼먹은 된장꾸러기들아, 나도 언젠간 마르쉐랑 말보르기니, 마라리도 탈 거야! 사람 우습게 보고 있어~"
착잡한 마음은 맥주로 이어진다.
얼큰히 젖은 유노가, 나지막이 읊조린다.
"각시가 되어줘, 이왕이면 글래머로..."
그렇게 흐느끼며 잠이 들었다.
잠든 유노의 가슴에 낯선 손길이 느껴진다.
"누... 누구야!"
"가만히 있어요. 당신이 나를 원했잖아요."
"혹시, 우렁이?"
"크리스티나라고 불러요."
유노는 이 상황이 믿기지 않는다.
"크리스티나? 수입산 우렁인가요?"
"그런 건 묻지 말아요. 지금은 그냥 내가 드리는 위로를 느껴요."
그녀의 입술이 그의 입술을 담는다.
새벽처럼 서늘하고 부드러운 느낌이다.
"꿈이겠죠? 깨고 싶지 않네요. 그런데 여기서 더 진도를 나가면... 쪽팔린 상황이 펼쳐진다구요!”
"꿈이지만, 꿈이 아니에요. 당신이 나를 어떻게 돌보는지에 따라 나는 당신의 현실이 될 수도 있어요."
"그게 무슨 뜻이죠?"
"그건..."
"탁!탁!탁!탁!탁!"
주방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몇 시간이나 잠들었는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빼꼼히 고개를 내밀어봤다.
'그러면 그렇지.'
어머니가 도마 위에 애호박을 놓고 썰고 계신다.
"오셨어요?"
"얼른 앉아라. 그나저나 밥 좀 해먹고 다녀. 냉장고랑 찬장이랑 텅텅 비었더라."
"사먹는 게 편해요. 그나저나 엄마, 이 찌개 유난히 맛있네."
"아, 우렁이 있길래 그거 넣었다."
화들짝 놀란 유노가 어항으로 달려갔다.
맙소사, 우렁이가 없다.
"안돼, 크리스티나아아아아!"
그렇게 절규했다.
"푸르륵~!"
때 마침 마굿간에서 마반테 '천사'가 출근을 재촉한다.
그저 환상이었을까?
그렇게 유노의 똑같은 하루가 열리고 있었다.
-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