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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갈릭 Oct 29. 2020

아이들이 뛰놀아도 괜찮은 세상

(c) Bambi Corro


첫째는 날다람쥐마냥 재빠르다. 돌 지난 뒤로는 항상 놀이터에서 거침없이 오르고, 달리고, 뛰어내렸다. 반면 둘째는 신중하다. 조금이라도 낯설거나 두려운 기구를 만나면 눈동자가 흔들린다. 9월 초 동네(라기엔 좀 많이 떨어져있지만) 공원 놀이터 외나무다리를 건널 때도 마찬가지였다. 저보다 어릴 적, 또 같은 날, 제 언니가 성큼성큼 움직인 것도 모자라 짚라인을 타며 깔깔대던 모습과 천지차이였다.


그래도 한참 어르고 달랬더니 마침내 횡단에 성공했는데, 한 달만에 다시 같은 자리에 또 서성였다. 다시 한참을 어르고 달랬더니 아이는 몸을 움직였다. 몸의 기억이 떠올랐는지, 그다음부터는 재밌다고 십여 번을 외나무다리만 왔다 갔다 했다.


이 공원은 천변을 끼고 캠핑장까지 있는 곳이라 동네 공원과 규모가 많이 차이나는 곳인데, 가장 눈에 띄는 구석은 놀이터다. 바닥에는 톱밥과 고운 흙, 낙엽이 깔려있고 아이들이 몸의 균형을 잘 잡아야 사다리 모양 계단을 타고 올라간 뒤 외나무다리를 건너 미끄럼틀을 탈 수 있다(물론 그냥 계단도 있다). 짚라인에 몸을 싣고 유쾌하게 비명을 지를 수도 있다. 아파트 단지나 동네 근린공원의 찍어낸 듯한 구성과 좀 다르다.  요즘 동네 놀이터에선 흙바닥을 보기가 힘들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우레탄 바닥은 안 쓴다고들 하던데, 아직 우리 동네까진 그 소식이 안 전해졌는지 죄다 우레탄 바닥재다. 정글짐, 뺑뺑이 같은 놀이기구는 오래된 곳에 화석처럼 존재할 뿐이다. 사실 아이들이야 삽 하나 들고 모래사장에 가도, 풀밭에서 꺅꺅대며 술래잡기만 해도 즐거워 어쩔 줄 모른다. 그래도 이왕이면 더 다양하게 몸을 쓰고, 그러면서 몸을 쓰는 법을 체득해나가면 좋을 텐데, 때론 놀이터에서 터져 나오는 웃음조차 천덕꾸러기를 받는다고 하니 이런 마음은 사치 같다. 노키즈존까지 말할 필요도 없다.


약자들이 환대받는, 아니 공동체의 일원으로 존중받는 경험이 축적되지 않는 사회는 어떤 모습이 될까. 쿨하지도 않고, 예민한 편도 아니지만, 아이 옆에 선 사람이 되고 나선 종종 그런 의문을 품는다. 하지만 솔직히 잊고 지내는 날이 일상인데, 그 질문을 다시 한번 떠올려준 기사를 만났다. 권력집단 간 힘 대결이나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민주주의, 삶 자체가 흔들리는 사람들과 욕망과 욕망이 부딪치는 돈의 흐름 같은 사안에 비하면 작고 하찮아 보일 수도 있지만, 아이들에겐 거대하고 중요하며 가장 역동적인 세계다. 놀이터는 그런 곳이다.


(c) Mick Haupt




아이들의 놀이 공간 자체가 부족하기도 하지만, 아이들이 좋아하는 놀이기구가 하나 둘 자취를 감추면서 ‘놀이의 질’ 자체가 떨어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 소장은 “어느 순간부터, 놀이터에서 정글짐이 사라지기 시작했고 그네나 회전 무대를 보기도 힘들다"며 "어른들이 보기에 ‘위험하다’는 게 이유인데, 과연 이런 환경이 아이들을 위한 걸까?”라고 되물었다.


전문가들은 적당한 수준의 ‘위험’이 아이들의 신체 및 정신 발달에 필요하다고 말한다. 김 소장은 “조금 다치더라도 모험을 해봐야 자신의 신체적 한계를 알고 스스로 통제력을 가지는데, 대다수 국내 놀이터에선 그게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사실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관리상 편의가 앞선 탓도 적지 않다. 아이들의 신체 활동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놀이기구일수록 고장이 잦고 보수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우리나라 아이들은 ‘지나치게 안전한’ 놀이기구를 위험한 방식으로 타고 논다. 지붕 위로 기어올라가 뛰어내리거나, 미끄럼틀을 역방향으로 오르는 등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자신만의 모험을 벌인다. 신체 활동이 극도로 위축되다 보니 설계자가 의도하지 않은 방식으로 놀이기구를 이용하는 것이다. 김 소장은 “아이들은 기본적으로 ‘짜릿한 경험’을 원한다. 트램폴린이나 짚라인, 암벽타기, 이런 것들에 유독 아이들이 몰리는 것도 어른들에게 ‘위험해 보이는 것’과 아이들이 ‘위험하다’고 느끼는 게 다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https://m.hankookilbo.com/News/Read/A20201026220300014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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