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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갈릭 Jan 14. 2023

갈비찜이 뭐라고

몇 년 전 남편이 불현듯 ‘감바스 알아히요’가 먹고 싶다며 마트에서 냉동 새우를 사 왔다. 귀찮아 죽겠는데 하도 졸라대서 뚝딱뚝딱 만들어낸 날, 남편은 SNS에 이렇게 올렸다.


갈릭이랑 결혼해서 좋은 점 : 요리천재
갈릭이랑 결혼해서 나쁜 점 : 1년에 단 한 번


물론 나는 요리천재가 아니다. 정확히는, 요리를 잘한다기보다는 간을 잘 맞추는 편이라 처음 하는 요리여도 레시피만 숙지하면 어느 정도 그럴싸하게 만들어낸다. 문제는 남편이 과장한 ‘1년에 단 한 번’까지는 아니어도, 요리라는 행위 자체가 내게는 매우 드물고 귀찮은 일이라는 점. 굳이 핑계를 대자면 장거리 출퇴근하느라 시간이 없다. 새벽달을 보고 나갔다가 밤달을 보며 기어들어오는 요즘 같은 겨울날에는 에너지도 더더욱 없다.


그런데 몇 주 전 남편이 갑작스레 ‘갈비찜’ 이야기를 꺼냈다. ‘** 갈비찜’이라고 유튜브에서 검색해 보라고, 거기 나오는 대로 재료 준비하러 마트에 가자고 성화였다. 속으로 ‘이걸 죽여 살려’ 하다가 “알았어, 해줄게!”라고 답했다. 하지만 걱정도 밀려왔다. 나름 요리에 자신은 있지만, 어쨌든 갈비찜은 안 해본 요리였으니까. 신혼 시절 한 번쯤 도전해 볼 법한 메뉴인데, 그때도 나는 다른 요리를 택했다. 내 손에 훨씬 익은, 그래서 간단한 요리로...


어떻게 하나 고민하는 와중에도 남편은 계속 ‘** 갈비찜’ 타령을 했다. 이럴 때 사람은 참 이상한 동물이 된다. 괜히 얄미웠다. “됐어, 그런 거 필요 없어!” 그리고선 호기롭게 “정육점 가서 갈비찜용 돼지고기 7인분 사와”라고 주문했다. 10여분 뒤, 남편이 주섬주섬 싸들고 온 고기는 약 5.4kg. 들어갈만한 솥이 있나부터 걱정이었다.


무턱대고 주문한 ‘7인분’은 아니었다. 나이 먹고 엄마아빠 품을 떠났다가 나이 먹고 엄마아빠 근처로 기어들어온 딸과 그의 식솔들은 거의 매일 친정 문지방을 넘는다. 엄마는 늘 “그냥 우리 집에 와서 먹어~”라고 하고, 큰딸이라는 나는 절대 마다하지 않는다. 그런데 지난해 말 엄마는 코로나에, 둘째 아이는 독감에 걸렸다. 전복 10마리를 박박 닦고 다져서 전복죽을 쑤며 새삼 엄마 끼니 한 번 챙겨드린 지 오래됐구나 싶었다. 아빠도 마찬가지고. 그래서 이왕 귀찮은 일 하는 거, 객기를 좀 부려봤다.



집에 있는 가장 큰 ‘스댕다라’에 돼지고기를 쑤셔 넣다시피 해 핏물 뺄 준비를 마친 다음 레시피를 검색했다. 역시나 인터넷에 올라온 각종 레시피는 복잡하다. 평소에 거의 불을 지피지 않고, 도마를 쓰지 않는 우리 집에는 생강, 맛술 등등 온갖 양념과 채소가 없다(없는 줄 알았던 무와 배가 냉장고 한 구석에 처박혀있다는 걸 뒤늦게 발견하긴 했음). ‘Simple is the best’ 아니더냐. 나는 그냥 시판 양념을 이용하되 양파와 마늘을 갈아 넣고 간장과 ‘갈아 만든 ○’음료, 청양고추 약간을 추가하기로 결정했다.


내 사전에 계량은 없다. 모든 양은 ‘느낌’이다. 하여 양념을 만들고 본격적으로 끓이기 시작했는데 웬걸? 짜다. 한 입 맛보자마자 ‘짜다’ 연타를 날릴 아빠의 얼굴이 눈에 선했다. 열심히 물을 더 부어가며 간을 맞췄고 한참을 푹 끓였다. 역시 양이 많은 요리를 하는 건 번거롭다. 때마침 가스레인지 화구 하나도 고장 났다. 거의 1년 전부터 속 썩이던 녀석인데... 인덕션으로 바꾸라는 하늘의 계시인가 싶으면서도 일단 발등의 불을 꺼야 하니 휴대용 버너를 꺼냈다. 청양고추가 들어가지 않은 아이들용 갈비찜은 여기에 안쳤다.


김치찌개도 2번은 끓여야 맛있다. 갈비찜도 고기에 양념이 제대로 배려면 제법 오래 끓여야 한다. 이날은 1시간 반 가까이 불 위에 뒀던 것 같다. 그런데 역시나, 다음날 데워 먹은 버전이 더 맛있었다. 아무튼 그렇게 완성한 갈비찜을 식구들 앞에 내놨다. 반응은 뜨거웠다.


부모님과 함께 온 동생은 연신 “이거 언니가 만든 거야?”라고 물었고, ‘요리에 완성은 없다’며 어딜 가나 지청구 놓는 아빠는 몇 번 ‘짜지만 않으면 된다’는 단골대사로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지만, 잘 잡수셨다. 엄마는 늘 그렇듯 복스럽게 식사를 마치셨고 남편과 아이들도 만족스러워했다. 그 모습에 마음이 뿌듯했다...면 동화 같은 엔딩이겠지만, 나는 ‘에너지가 없다’는 말을 달고 사는 사람답게 이미 기진맥진한 상태로 식탁에 앉았다. 하지만 내가 먹어봐도 맛있었다.


그렇게 단백질을 보충한 뒤에서야 가족들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정확히는 엄마아빠가. 나는 앞으로 몇 번이나 직접 만든 음식들을 대접할 수 있을까. ‘짜지만 않으면 된다’는 아빠의 말을, 맛깔나게 먹느라 분주한 엄마의 모습을 얼마나 더 볼 수 있을까. 갈비찜이 뭐라고. 1년에 많아야 두세 번 생색 아닌 생색내며 대접하는 한 끼에 말은 안 해도 흐뭇해하는 엄마아빠의 마음을 이제야 좀 알 것 같다. 역시 사람은 세월이 필요한 걸까. 갈비찜이 뭐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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