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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성란 Sep 08. 2019

도착하지 않은 사람과 남은 이야기

숨어 있는 방


                                  숨어 있는 방


우리 가족은 내가 열네 살 되던 해에 볕이 들지 않는 집으로 이사했다. 이삿짐 트럭에 실어 온 장롱이며 이불 보따리며 가재도구를 주인집 마당에 내려놓고 우리는 서두르지 않고 짐을 나르기 시작했다. 두 칸의 방과 부엌이 딸린 집은 좁고 어두웠다. 해마다 이사를 하는 동안 시나브로 살림살이가 줄었지만 아홉 명의 가족은 늘지도 줄지도 않고 그대로였다. 가장 먼저 장롱이 옮겨졌다. 아버지와 오빠는 서로 한 마디 말도 나누지 않고 땀을 흘리면서 큰방으로 장롱을 가져다 놓았다. 나는 크고 무겁고 낡은 장롱이 우리 집의 주인 같다고 생각했다. 몇 년 후 방 한 칸짜리 집으로 이사할 때도 우리는 장롱을 처분하지 않았다.

할머니는 수의(壽衣)와 두루마기, 한복 등속이 담긴 고리짝을 챙겼고 나는 붉은 색 노끈으로 묶은 책과 습작노트, 옷 보따리를 작은 방으로 날랐다. 내 물건은 그것이 전부였다. 책꽂이가 딸린 책상은 진즉 버려졌지만 아무리 작은 집으로 이사를 하더라도 나는 책과 습작노트만은 포기할 수 없었다.

우리 가족은 사당동에 있는 마당이 넓은 이층집에서 서울 생활을 시작했다. 방이 다섯 칸이고 부엌과 욕실, 거실이 널찍한 집이었다. 나는 대추나무와 감나무가 심긴 마당에서 놀다가 심심하면 지하실로 이어진 계단을 내려갔다. 망가진 가재도구와 용도를 알 수 없는 물건이 놓인 서늘하고 습한 지하실에서 유독 눈에 띄는 것은 커다란 항아리였다.

항아리에는 포도주가 가득 담겨 있었다. 그 집에서 사는 동안 우리 가족은 한여름이 되면 질리도록 포도를 먹었다. 할머니는 내가 갓난아기였을 때부터 내내 아팠던 엄마를 대신해서 포도주를 담갔다. 아버지는 가족들이 둘러앉아 저녁밥을 먹을 때 반주로 포도주를 마셨다. 주전자를 들고 지하실로 가서 포도주를 담아 오는 일을 나는 기꺼이 도맡았다. 나는 달고 향기로운 포도주 냄새가 좋았다. 아버지는 내가 잔에 남은 포도주를 마셔도 마무라지 않았다.

그 집을 떠난 뒤 할머니는 포도주를 담지 않았다. 저녁상에는 포도주 대신 소주가 올라왔다. 아버지는 언제나 소주를 반 병 남짓 마시고 의미 모를 웃음을 짓는 아픈 엄마 옆에 누워서 잠들었다. 상점마다 포도가 진열되는 한여름이 돌아와도 우리는 포도를 먹지 않았다.

포도는 먹을 수 없었지만 달고 향기로운 냄새를 떠올릴 때마다 입에 침이 고였다. 포도주 냄새가 밴 커다란 항아리는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었다. 우리는 해마다 조금 더 작은 집으로 이사했고 6개월이 지나지 않아 다시 짐을 꾸리기도 했다.

우리 가족이 이사한 반지하 집은 한낮에도 볕이 들지 않았다. 폭우가 쏟아지거나 장마철이면 집 안으로 물이 들이쳤다. 비가 그치면 할머니와 큰언니는 물에 젖은 가재도구를 주인집 마당에 내놓고 햇볕에 말렸다. 우리 집을 비추지 않는 해가 떠 있는 동안은 안심이었다. 나는 뜨겁고 환한 해가 조금 더 오랫동안 주인집 마당에 떠 있기를 기도했다.

나는 밤이 되면 골목으로 난 쪽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서 책을 읽었다. 가로등불이 환한 골목에서 나는 가족들을 방해하지 않고 책을 읽을 수 있었다. 골목을 오가는 사람들이 가로등 아래 서서 책을 읽는 나를 힐긋거리며 지나갔지만 아무렇지도 않았다. 책을 읽을 수 있다면 어디든 상관없었다. 나는 덜컹거리는 버스에서 편하게 책을 읽었다. 헌책방에 산더미처럼 쌓인 책을 고르면서 몇 시간이나 서서 읽을 수 있었다.

어느 날 큰 비가 내렸다. 학교가 파한 뒤 나는 집까지 달려갔다. 우산을 썼지만 신발과 교복치마가 흠뻑 젖어버렸다. 할머니와 큰언니는 양동이와 바가지를 들고 물을 퍼내고 있었다. 어서 바가지를 들고 물을 퍼내라고 할머니가 소리쳤지만 나는 대꾸하지 않고 발목까지 차오른 물속을 걸어서 방으로 들어갔다.

방 안은 낮은 문지방을 타고 넘어온 물로 흥건했다. 할머니가 애지중지하는 고리짝은 흠뻑 젖어 있었고 벽에 걸린 옷가지들은 축축했다. 나는 다급한 손길로 방 구석진 자리에 쌓아놓은 책과 습작노트를 집어 큰언니가 화장대로 사용하는 3단 서랍장 위에 올려놓았다. 방 안으로 빗물이 들이칠 줄 모르고 방심했던 내 탓이었다. 아무리 많은 비가 내려도 시멘트가 발라진 부엌 하수구로 물이 빠져나갈 줄 알았던 내가 어리석었다.

나는 플라스틱 대야를 집어 들고 할머니와 큰언니를 따라 집 밖으로 물을 퍼냈다. 거침없이 퍼붓는 폭우가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세다고 생각하면서 기계적으로 손을 놀렸다. 나는 할머니가 평생 끼고 살아온 고리짝 안의 옷들이 걱정스러웠고 빗물에 흥건히 젖은 책과 습작노트가 가슴 아팠다.

비가 그치고 해가 났을 때 우리는 젖은 살림살이를 주인집 마당에 널어 말렸다. 해가 들지 않는 집으로 이사했던 날처럼 주인집 마당은 우리 집 살림살이로 가득했다. 해가 떠 있는 동안 할머니와 큰언니는 부지런히 빨래를 했다. 햇빛이 눈부신 여름날, 장대에 매단 빨랫줄에는 할머니의 수의가 말라가고 있었다.

나는 빗물에 젖어 쭈글쭈글해진 책과 습작노트를 볕에 널었다. 습기로 눅눅해진 내 몸을 주인집 마당에서 말리고 싶었다. 나는 향기로운 냄새를 풍기면서 포도주가 익어가던 항아리를 되찾는 불가능한 상상을 하면서 저물녘까지 마당에 서 있었다.


햇볕에 말라 울퉁불퉁해진 책과 습작노트를 노끈으로 묶었다. 나는 비가 내려도 젖지 않을 자리를 찾아 두리번거리다가 볕이 들지 않는 우리 집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그것을 올려놓았다.

크고 무겁고 낡은 장롱 위.

다시 큰 비가 쏟아져도 안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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