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메일 답장과 취재 사이

업무 우선순위 재배열

by 소다

지난 두 달 간 생산성 향상과 노동시간 줄이기에 관해 적어도 10권 이상의 책을 읽었다.
작가에 따라 강조점은 조금씩 달랐지만 큰 줄기는 같았다.
바로 아무런 우선순위도 없이 난삽하게 펼쳐져 있는 일들을 중요도와 긴급성에 맞춰 배열할 것, 그리고 거기에 맞춰 시간을 압축적으로 사용하라는 것이었다.


과감하게 업무를 줄이라고 말하고 싶다. 불필요한 일을 포기하고 남은 일을 선별해야만 건강이나 사생활, 즐거움을 희생시키지 않으면서 지속적으로 유익한 생산성을 유지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중략)
본인과 회사에 정말 중요한 일만 하라. 목표는 책임을 합리적인 수준으로 줄여서, 제시간에 퇴근하고 일 외의 삶을 갖는 것이다. 모든 일을 떠맡으려 하지 마라. 쉬지 않고 하루 16시간씩 일할 정도로 자신을 괴롭히지도 마라. 이는 결국 생산성을 떨어뜨리고 스스로를 지쳐 나가 떨어지게 만들 뿐이다.
리처드 코치, <적게 일하고 잘 사는 기술>


출근을 하면 '시간 좀 내 달라'는 요구를 도처에서 만난다. 이메일 정리, 취재원의 갑작스러운 전화, 친구의 하소연, 아파트 관리사무소 안내 문자, 상사의 기획안 작성 요청...
중요한 것은 '어떤' 일을 우선적으로 처리할지 끊임없이 확인하는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이메일 정리나 취재원 응대 등 덜 중요한 업무에 오전 반나절을 통째로 날리는 불상사가 발생한다. 반대로 내가 지금 해야 할 우선순위가 뭔지 정확히 알면 취재원에게 '나중에 다시 연락하겠다'고 양해를 구하고 핵심 업무시간을 지켜낼 수 있다.

일간지 기자의 평일 업무를 우선순위에 따라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1 중요하고 긴급한 일: 당일 기사 마감
2 중요하지만 긴급하진 않은 일: 장기 기획 준비, 한국사회의 여러 현안을 이해하고 따라가는 일, 타사의 '출입처 외 보도' 업데이트, 취재원 약속 등
3 중요하지 않은데 긴급한 일: 국회 자료요청이나 단체 공동기획 등 조금만 품 들이면 타인에게 '위임'이 가능한 일, 타 부서 업무 토스 등 협업이 맞물려있거나 누군가 기다리고 있는 일정.
4 중요하지도 않고 긴급하지도 않은 일: 메신저 응대, 이메일 답장 등.

나는 그 동안 1~4를 마구 뒤섞어서 했다. 당일 취재 기사를 쓰다가(1) 갑자기 동료들과 메신저로 수다를 떠는 식(4). 혹은 조금만 신경써서 콘텐츠를 여러 군데 파 놓으면 되는데(2~3) 계속 당일 취재기사만 쳐 내다가(1) 어느순간 "몇 달째 장기기획도 못하고 있네"라는 자기연민에 빠짐.

그래서 내게 주어진 일들을 마치 반응하듯이(Responsive way) 그때그때 쳐내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일들을 우선순위별로 잘 매긴 뒤(Planned way) 꼭 필요한 것에만 시간을 안배할 필요가 있었다.

2. 하루를 우선순위에 맞게 재조정한다

9 to 6는 똑같은 가치를 가진 8시간이 아니다. 하루의 생체리듬에 따라 생산성이 오르내리는 시간이다. 업무도 그에 맞춰 배치할 때 가장 만족도가 높다. 업무효율이 가장 좋은 시간에 이메일을 정리하거나 업무효율이 떨어지는 시간대에 자료를 읽고 취재하는 건 비효율적인 일이다.

나는 아래와 같이 시간표를 짰다.

9 to 10: 타사 체크
*9시가 시작되자마자 불꽃취재를 돌려서 빨리 마감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겠지만 세상 돌아가는 흐름을 아는 건 데일리 발제에서 생각보다 큰 비중을 차지한다. A를 발제하려고 했는데 그날 터진 사건이나 국정 방향을 보면 B가 나은 경우가 있다. 그런 걸 파악하기에 타사 체크는 매우 중요한 지표다.
10:00 ~12:00 오전 코어타임. 이 때는 동료와의 사담도 최소화하고 일에만 집중한다. 바짝 달려서 업무에 몰입한다.
13:00~14:00 점심 이후 약간 나른해지는 타이밍. 커피타임과 간단한 행정업무를 한다. 미뤄둔 취재원 연락이나 자료 요청 등을 이때 몰아서 한다.
14:00~16:00 오후 코어타임.
16:00~17:30 장기 기획 등 '중요하지만 긴급하지 않은 일'로 전환한다. 데일리 뉴스만 하루종일 생산하면 장기 기획할 시간이 없다. 짧게라도 매일 시간을 들여 기획을 찜쪄보고 발전시켜야 이게 될 아이템인지 손절쳐야 할 아이템인지 구분할 수 있다.
17:30~18:00 쿨링 타임. 가전제품으로 따지면 과열된 열을 내리는 시간이다. 생각보다 취재업무는 꼬리에 꼬리를 물어서 좀처럼 끊기가 어렵다. 이걸 알아보다 보면 저걸 알아봐야 될 것 같다. 그러므로 정시 퇴근을 위해서는 조금씩 그 속도를 줄이는 것이 좋다. 근무시간표 조정하기, 이메일 확인하기, 내일 일정 미리 파악하기 등 덜 중요한 업무로 전환한다.

한 달 정도 실험해 본 결과 대체로 마지막 쿨링 타임을 제외하고는 잘 자리를 잡았다. 특히 상사와의 개인 채팅을 제외하고 전체 메신저 알림을 꺼 놓은 것이 매우 주효했다.
마지막 쿨링 타임은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여전히 익숙지 않다. 경주마처럼 미친듯이 달리다가 갑자기 속도를 줄이는 게 영 어색하다. 조금 더 연구가 필요한 단계임.

3. 2에 익숙해졌으면 '의미' 매트릭스를 추가한다.

기독교인인 <시간을 두 배로 사는 법> 저자는 위의 긴급성-중요성 매트릭스에서 한 가지 축이 더 필요하다고 봤다. 바로 '의미'를 추가하는 것이다.

1~4 분류는 일종의 1차 관문이다. 이 일이 네게 중요하니? 긴급하니? 를 물을 수 있다. 그러나 세상만사가 다 중요도와 긴급도로만 이뤄지진 않는다. 개중엔 중요하지도, 긴급하지도 않지만 개인의 삶에 충분히 의미 있는 일도 있다.

예컨대 나는 기사를 쓰고 나면 취재원에게 꼭 다시 보내주고 감사인사를 하는 편이다. 번거로운 작업이지만 취재를 도와준 취재원에게 가장 적기에 감사를 표현할 수 있고 장기적으로 관계도 유지하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타이밍은 배포 후 1주일 이내가 좋다. 경험상 그 이상 지나서 보내주면 큰 의미가 없는 것 같다.
즉, 다 쓴 기사 보내주기 업무는 4(중요하지도 긴급하지도 않은 업무)처럼 보이지만 실은 2(중요하진 않지만 긴급한 업무)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래서 겉으로는 비슷해 보이는 사무를 깊이 분석해서 카테고리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중요'를 '정신적 에너지가 많이 필요한 일'로 의미를 바꿔서 이해했다. 취재원에게 감사표현하는 게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 일에 고도의 정신적 에너지와 취재력이 필요하냐를 기준으로 나눈 것이다. 취재원에게 보내는 감사문자와 링크 첨부는 가볍게 보낼 수 있기에 2번으로 분류한 것.

이외에 어려움을 겪는 동료 돕기, 친구들과 오랜만에 우정을 나누기 등도 다 '의미' 카테고리에 있는 것이므로 이 역시 얼마나 긴밀하고 소중한 관계이며 내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냐에 따라 우선순위를 매길 수 있다.

기자 직무라 돌발업무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크긴 하지만 대체로 다른 직군도 외피만 다를 뿐 비슷한 환경에 놓여있다. 미국 직장인들도 거래처의 시도때도 없는 이메일 폭탄과 전화 응대에 애로사항이 크다고 한다. 업무를 위한 나만의 시공간을 따로 떼어놓지 않으면 정말 많은 사람들이 수시로 문을 벌컥 열고 "안녕? 시간 되지?"라고 물을 것이다. ^^;

리처드 코치는 매일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을 '히트리스트'로 적으면서 사실상 우선순위에 맞게 재배열하고 덜 중요한 것은 버렸다고 한다. 다음은 리처드 코치의 히트리스트 방법론.


히트리스트에는 하루에 실제 끝마칠 있는 적절한 수의 항목만 적어야 한다. (중략) 하루에 세 시간짜리 회의가 있을 수도 있고, 확인해야 할 수많은 이메일이 쌓여있고, 동료나 고객, 상사가 계속 당신을 찾고 있고, 생리현상을 해결할 시간도 필요하므로, 17시간이 소요되는 업무 계획은 세운다 해도 다 할 수가 없다. 일간 히트리스트에 10개 이상의 항목이 포함되어 있다면, 항목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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