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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다 Oct 09. 2021

나의중동여행기38_조난 당할 뻔했다 페트라에서

베두인과 들개가 있는 곳에

아침에 일어나니 아빠가 엄마랑 보이스톡을 하고 계셨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가 며칠 뒤에 있으니 그걸 타고 들어가면 되겠다는 얘기를 나누고 계셨다. 에일랏에 있을 때 한국에서 한 헤드헌터가 아빠에게 일자리를 제안해 와서 이력서를 만들어 보낸 적이 있었는데, 그게 잘 진행되어 바로 직장을 구하신 것이다.

우리는 조만간 한국으로 들어가는 걸로 하고 페트라에 하루 더 머물기로 했다. 아빠와의 여행이 생각보다 빨리 끝날 것 같다는 생각에 기분이 이상했다.


하루 만에 지긋지긋해져 버린 사바아 호텔에서 오믈렛과 대추야자, 빵으로 아침을 먹고 우리는 방을 뺐다. 어제 페트라에서 만난 커플이 소개해 준 `테트라트리' 호텔에 가 볼 요량이었다.


그 곳은 전날 사바아와는 비교가 되지 않게 룸 컨디션이 좋았고 아랍 믹스커피부터 커피포트, 드라이기, 비데까지 다 갖춰져 있었다. 안에 난방기가 있어서 내부도 생각보다 따뜻했고 전망도 좋아서 이대로 쭉 쉬고만 싶었다. 물론 아빠의 한국행이 코앞에 다가왔으니 여유 부릴 시간이 별로 없었다.

테트라 호텔 내부. agoda.com 출처

페트라 둘쨋날이 밝았다. 전날 호텔 와이파이로  페트라 정보를 찾아 보니 우리가 전날 있는 줄도 모르고 지나쳤던 유적지가 생각보다 많았다.

어차피 요르단에서 더 할 일도 없겠다, 우리는 그 호객행위의 늪에 또 한 번 들어가기로 결심했다. 아빠는 주스와 파운드케익을, 나는 아랍 팔라펠 큰 것을 2.5디나르 주고 포장해서 페트라로 향했다.


부지런히 걸어서 입구에 도착하자 엊그제 받은 페트라 지도를 펴서 오늘은 어느 트랙을 탈 지 아빠랑 상의했다. 왠 일인지 오늘은 말을 태우는 호객꾼들도 별로 말을 걸지 않고 한산했다. 아마 나랑 아빠가 어제 와서 얼굴을 알아본 모양이다. 한 녀석은 걸어가는 우리 등 뒤에다 "컴 온 차이나~예스터데이 유 새드 투모로(중국인들아 너희 오늘 말 탄다며)" 라며 야유도 보냈다. 응 그래도 안 타. 그들을 돌아보고 한 번 씩 웃고는 입구로 걸어 들어갔다.


오늘은 페트라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큰 길 대신 산 정상에 마련된 희생제사 신전(High places of sacrifice)으로 가기로 했다. 나바테아인들이 신에게 제사를 드리기 위해 만든 신전인데 고도가 높아 아래를 조망할 수 있고 상당히 멋지다는 설명을 봤다.


가던 길에 평평한 바위가 보이자 그 위로 올라가 점심을 먹었다. 아빠는 아랍음식이 싫으시다더니 `이건 안 팍팍하네' 하곤 내 것을 반 쪽 떼어 맛있게 드셨다. 덕분에 나도 아빠 몫으로 산 파운드케익을 많이 먹었다. 페트라 전경을 바라보며 점심을 먹는 건 운치가 있었지만 아무래도 그늘인지라 많이 추웠고 나중에는 손이 얼었다.

팔라펠과 감자튀김
우적우적

나는 또 다시 숙소에 돌아가고 싶어졌으나 여기까지 온 게 아까워 또 다시 언 몸을 이끌고 산을 다. 올라가는 길에 어제 만났던 미국인 요가 강사 커플을 다시 만나 인사를 나누었고 역시나 말 많은 그 남자의 얘기를 잠시 들어준 뒤 바이바이했다. 가는 길에 자기를 쓰다듬어 달라며 야옹거리는 고양이도 만나 머리를 쓰다듬어 준 뒤 계속 걸어 올라갔다.

날 쓰다듬어라 인간

신전으로 가는 길은 멀었고 수많은 당나귀 및 당나귀 똥을 만났으며 마침내 1시간 만에 정상에 도착했다. 정상이 탁 트여 있어서 전체를 360도로 볼 수 있었고 정상에 바위로 된 희생제사 제단들이 있었다. 오후 3시의 누런 햇빛이 신전 전체를 감쌌다.


나바테아인들은 거기서 신을 향한 제사를 드렸다고 한다. 제단엔 동물을 칼로 찔러서 피가 아래로 새도록 만든 구멍이 있었고 물을 끌어오기 위한 수로도 있었다. 가운데에는 제사장을 위한 설교 단상도 있었다. 상당히 중요한 제사가 치러졌을 법한 공간이었다.

신전이 있던 자리. 상당히 넓다
아랍어를 못 읽어서 뭐라는지 모르겠다

그 곳에 앉아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이 곳에서 나바테아인들이 제사를 드리고 마음에 있는 소원을 간절히 빌었을 장면이 상상됐다. 그들도 우리처럼 먹고 사는 고민을 하며 한 시대를 살았겠지. 내가 지금 앉아 있는 바위에 2천년 전 나바테아인들이 앉아 있었을 거라 생각하니 기분이 묘했다.

위에서 내려다 본 모습. 고도가 꽤 높았다

나바테아인의 흔적은 곳곳에 남아 있었다. 띄엄띄엄 만들어진 계단을 따라 내려가니 이번엔 나바테인들이 만든 분수대가 있었다. '사자의 분수'라고 해서 사자모양의 부조가 입을 벌리고 있으면 그 아래로 물을 흐르게 하는 방식이었다.

그 아래 야트막한 평야에도 신전들과 무덤, 신전과 정원이 가득했다. 기둥들이 여기 저기 널부러져 있어서 잘 피해서 걸어야 했다. 지역 전체가 커다란 유적지 같았다.

가도가도 계속 나오는 유적지

내려가는 길에 만난 베두인 꼬마는 우리가 꽤 신기한 모양이었다. 그들은 나바테인들이 살던 무덤의 입구에 철문을 달아서 그 안에 살고 있었다. 우리더러 안을 보여주며 들어가라는 시늉을 하는데 작고 꼬잘꼬잘한 그 녀석들이 귀엽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했다.


꼬마는 대뜸 바나나나 초콜렛 있으면 달라고 했다. 미안하지만 없다며 아쉬운 얼굴을 하니 이 녀석 갑자기 우는 시늉을 한다. 으엉엉엉 소리를 내며 팔을 눈가에 대고 우는 시늉을 하는데 과자 한 개라도 들고 올 걸 싶어 아쉬웠다. 정말 미안하다고 어깨를 툭툭 치고는 아래로 내려왔다. 녀석은 계속 우는 시늉을 하면서 따라오다가 나중에는 관두고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이런 계단을 한참 걸어내려갔다


문제는 거기서 길을 잃었다는 것이다. 산에서 내려올 때는 비교적 화살표들이 많더니 막상 내려오니까 어디로 가라는 사인이 하나도 없었다. 우리는 사람이 다닌 것 같은 흔적이 있는 길들을 따라가다가 아예 바윗길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멀리 보이는 언덕을 향해 걸으면서 저기만 넘어가면 큰 길이 나오겠지, 했는데 그걸 넘고 또 넘어도 계속 다음 언덕만 나오는 것이었다.


걸을수록 어째 점점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기만 하는 것 같아 우리는 더럭 겁이 났다. 해는 어느 새 반 이상 넘어가 있었고 우리 주변도 점점 어둑어둑해져 갔다. 페트라 안에는 베두인들이 천막을 짓고 거주하며 떠돌이 개와 말들도 산다. 밤에 이런 곳에 있다가는 재산이 털리든 정신이 털리든 온전하지 못할 것 같았다.

(페트라에 밤산책 여행상품이 있긴 하지만 그건 신전인 알카즈네까지고 내부는 개방하지 않는다. 인터넷 찾아보니 우리처럼 조난당할 뻔한 사람들이 왕왕 있었다)


마지막 희망을 가지고 언덕을 또 하나 넘었더니 그제야 밖으로 나가는 길이 나오기 시작했다. 마침 우리를 지나치는 커다란 트럭이 있어 그 뒤를 좇아 열심히 뛰었다. 트럭이 빠져나간 길 너머로 어제 구경했던 왕들의 무덤이 나타났고 입구로 이어지는 큰 길이 나타났다. 휴! 주변은 해가 이미 넘어가서 푸른빛이 돼 가고 있었다.


덩치 큰 개들이 큰 길 주변을 서성거려서 잘 피해 걸어야 했다. 큰 길가에 화장실이 보여 급히 뛰어들어갔으나 5시가 한참 넘은 시간이라 공중 화장실을 다 걸어잠근 상태였다. 이런! 사람이 안에 있는지나 확인할 일이지 이렇게 공공시설만 먼저 잠근담.


화장실에 가고 싶었지만 참고서 입구까지 걸었고, 30분을 더 걸어서야 협곡 근처까지 도착했다. 물론 협곡 밖으로 빠져나오는 데도 또 30분이 더 걸렸다. 도착해서는 아빠도 나도 너무 지쳐서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유적지를 빠져나오자마자 화장실에 뛰어가 볼일을 봤다.


 나중에 들으니 아빠는 그 순간에 엄청 겁이 나셨다고 한다. 날은 어두워지지 길은 못 찾겠지, 이러다가 여기서 노숙하는 거 아냐 생각하셨다고. 나 역시도 그런 불길한 생각이 들어 걱정이 되었고 여차 하면 말 타기 호객꾼에게 웃돈을 얹어 나갈 생각까지 했다. 온갖 불길한 시나리오를 쓸 즈음 기적 같이 길을 찾아 정말 다행이었다.


호텔은 페트라 입구에서도 한참 걸렸다. 계속 추위에 떨다 왔기 때문에 방에 들어오자마자 뜨끈하게 씻고 싶었으나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샤워기 물이 안 나오고 수도꼭지 물만 졸졸 나왔다.


사람을 부르기는 너무 귀찮고 피로했으므로 나는 그 낮은 수도꼭지 밑에 몸을 움츠려서 샤워를 했다. 약간 청승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샤워를 하고 나와 라면을 끓여서 후후 불어먹고 밥도 말아먹으니 몸이 풀리는 것 같았다.

테트라트리 호텔은 시설이 좋았으나 난방이 잘 되진 않았다. 방 안이 약간 서늘했으나 사바아호텔보단 훨씬 낫단 생각에 금방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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