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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다 Oct 13. 2021

나의중동여행기46_오만이요?

바다거북의 나라요?

아라비아해

중동에서 고작 5개월 남짓 시간을 보냈다고 나는 한국에 와 오래도록 그곳을 그리워했다. 다만 운전도 못하는데다 아랍국가의 불안한 치안 상태도 걱정됐던지라 새로운 여행을 계획할 용기를 못 내고 계속 미뤄두고만 있었다.


교회 친구 J가 오만이라는 중동국가의 한국 대사관에서 일한다는 건 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땐 그저 부럽기만 했는데, 어느 날 J의 부모님이 교회에서 나를 만나 오만 다녀오신 얘기를 했다. 지난주에 딸이 있는 오만에 갔다왔는데 참 좋더라, 사막이 멋졌다 뭐 그런 이야기였는데 갑자기 호기심이 활활 타올랐다. 오만 거기 뭐하는 나라더라?


마침 나는 다니던 회사를 정리하고 새로운 회사로 이직할 예정이었는데 출근 전까지 1주일 정도 시간이 남아 있었다. 여행을 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인터넷에 오만을 검색하니 몇 가지 키워드가 검색됐다. 술탄이 있는 나라. 바다거북. 바위산. 사막. 아라비아해.

그리웠던 중동감성이 거기 있었다. 마침 친구도 거기 있으니 덜 무서울 것 같았다. 다른 아랍국가에 비해 치안이 아주 양호하다는 J의 설명도 솔깃했다.


J에게 카톡했다.

"나 오만 가려구. 가면 놀아줄래?"

"?"

"호텔 도착해서 연락할게."


2019년 4월 오만여행이 시작되었다.



슝 비행기 간다

오만 가는 길은 멀고도 멀었다.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로 11시간을 이동해 카타르 도하에서 환승한 뒤 오만 수도인 무스카트로 가는 비행기를 타야 했다.

가져온 책을 읽다가, 기내식으로 나온 고기파이와 마른 빵을 우적우적 먹고 졸다가, 일어나서 책을 다시 읽다가 하며 어찌저찌 시간을 보내니 '도하에 도착한다'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기내식 우적우적

곧 착륙할 것 같아 짐을 챙기는데 갑자기 비행기 천장에서 물이 뚝뚝 흘렀다. 옆에 앉은 독일인이 헉 하더니 수건을 승무원에게 빌려다 받쳐주었다. 고마운 마음에 그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행선지가 어디냐는 그의 질문에 오만이라고 답했다. 그는 잠시 고개를 갸웃하더니 "오만? 거길 왜 가?"라고 말했다.


'거기가 어디야, 너무 신기해'가 아니라 '딱히 궁금하지도 않은 그 나라는 대체 왜 가' 같은 뉘앙스였다. 나는 그만 당황해서 "바다거북의 고향이래"라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독일인은 "오우" 한 마디 하더니 어깨만 으쓱했다. 이봐 그거 무슨 반응이야!

간다 오만으로
왔다 오만에

도하에서 무스카트까지는 3시간 만에 도착했다. 짐을 찾고 밖으로 나오니 아직 날이 환했다. 18세기 영국과 통상조약을 맺고 사실상 보호국으로 지냈던 오만은 영어 간판도 많고 사람들이 영어도 꽤 잘해서 아랍어를 못해도 오가는 데 불편함이 크지 않았다.


30달러를 오만 리얄로 환전하러 공항 환전소에 들렀는데 데스크에 앉은 직원이 나를 보더니 빙글빙글 웃으며 어디서 왔냐고 묻는다.

한국이라고 답하니 "오우! 굿!"하고 소리치더니 "한국에 돌아갈 때 나도 데리고 가라"며 농담을 했다. 나는 낄낄거리며 생각해보겠다고 답하고 환전소를 나왔다.


맞은편에 휴대폰 판매 대리점이 있어 유심도 냉큼 샀다. 이스라엘 여행에서 배운 것이 있다면 전화통화는 몰라도 데이터는 최소한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도를 보거나 만나기로 한 가이드와 연락할 때 데이터가 없으면  계속 카페나 호텔 로비를 찾아다녀야 해 불안할 수밖에 없다.


휴대폰 대리점 직원이 버스 타는 법을 안내해 주어 버스 정류장을 쉽게 찾았다. 일단 공항을 빠져나가 도심으로 가면 호텔로 가는 택시를 탈 수 있을 것 같았다. 낯선 나라에 오면 첫날 꼭 좌충우돌하는데 오늘은 일이 순조롭게 흘러가는구나 싶어 기분이 좋았다.

어서와 무스카트에
버스를 탔다
무스카트 시내

좋았던 기분은 오래가지 않았다.


우선 버스로 도심에 잘 도착해 놓고도 택시기사에게 어처구니없이 돈을 뜯겼다.

버스 안에서 라마다 호텔 가까운 곳이 어딘지 물어보고 확인해서 내렸는데 지도를 찍어보니 한참 가야 하는 길이었다.

다른 아랍국가와 마찬가지로 오만도 인도보단 차도 중심으로 길이 만들어져 차로는 5분 거리여도 걸으면 1시간씩 빙빙 도는 길이 많다.


가까이 있던 택시기사가 호객을 하면서 5리얄(1만5천원)을 주면 호텔까지 데려다 주겠다고 했다. 수중에 3리얄밖에 없다고 말했지만 그는 '일단 타라'고 여러 번 권했다. 

"3리얄 괜찮은 거 맞아요? 5리얄 노. 3리얄 오케이?" 

"(못 들은 척)컴컴. (문 열어주며) 앉아 앉아."

이런 식이었다.

하지만 주변에 택시가 없었고 걸어서 가기엔 너무 멀었기 때문에 나는 찝찝한 마음으로 차에 올랐다.


역시 차는 라마다호텔까지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호텔 로비에 내린 나는 주머니에서 3리얄(9천원)을 꺼냈지만 역시나 기사는 되물었다. "2리얄은? 우리 5리얄에 오기로 했잖아." 

예이~이렇게 뒤통수치기!


사는 내가 호텔로 들어가 인적사항을 적고 가방을 건네고 체크인을 다 마칠 때까지 나를 눈으로 계속 좇으면서 언제 돈을 주냐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어물쩍 3리얄 쥐어주고 끝내려던 나도 그의 끈기에 당황하고 말았다.


보다못한 호텔 직원이 그에게 택시요금을 듣더니 한숨을 푹 쉰다.

"너무 비싸게 주고 왔네요. 일단 기사가 갈 생각이 없어 보이니 돈을 내는 게 좋겠어요. 제가 돈 빌려드릴 테니 나중에 체크아웃할 때 갚으세요."


나는 그에게 결국 돈을 빌려 기사에게 주었다. 괜히 그냥 보냈다가 나중에 호텔로 찾아와 해코지할까 걱정됐기 때문이다. 기사는 쌩큐! 하고 외치고는 로비 밖으로 나갔다.

나중에 친구 J에게 물어보니 그 기사는 10분 거리 요금의 5배를 부른 것이었다. 아, 오만이여.


게다가 체크인 과정에서 호텔 직원이 세금 포함 가격이라며 12만원에 예약했던 방 가격을 20만원으로 대폭 올렸다이제 와 취소할 수도 없고 울며 겨자먹기로 돈을 냈다.

예상치 못한 지출이 쭉쭉 늘어났다.

방에 대강 짐을 부리고 밖으로 나와보니 거리가 한산했다. 다들 차로 움직여서 그런지 사람 한 명 마주치기도 어려웠다. 기분 전환겸 근처 해변에 가 봤지만 아무도 들어가 놀지 않았다.

몇 명의 가족 무리가 모래사장 근처에 앉아있을 뿐이었다.

아무래도 흔하지 않은 동양인이다보니 지나가는 사람마다 한 번씩 쳐다봤는데 갑자기 요르단, 이집트 여행 생각이 나 마음이 무거웠다.

그 때처럼 여러 사람들이 에워싸고 말을 걸거나 좁다란 골목에 들어갔다가 신변의 위협을 느끼거나 하진 않았지만 여전히 겁이 났다.

바다는 멋졌다


먹을 것으로 기분을 풀려고 식당 `Love to bite'에 들어가 2.99리얄(9천원)짜리 치킨볶음밥(비르야니)을 시켰는데 인도에서 먹었던 그 맛난 볶음밥이 아니었다. 소금으로 간한 쌀만 수북이 나왔고 그것을 걷어내자 말라비틀어진 치킨 한 조각이 나왔다. 왠만한 건 다 잘 먹는데도  너무 부실한 식사였다.

치킨 비르야니

게다가 8리얄(2만5천원)이나 주고 구매한 유심은 구글 창도 제대로 띄우지 못했다. 지도를 손에 들고 다니며 이리저리 구경할 생각이었는데 아예 작동조차 되질 않으니 마음이 팍 꺾이고 말았다. 밖으로 나와 맥도날드를 향해 걷다가 도저히 기분이 나지 않아 숙소로 돌아와 버렸다.


침대에 누워 천장을 보는데 스멀스멀 걱정이 밀려왔다. 오만에 오는 데 왕복 비행기표만 150만원 가까이 썼다. 오만의 물가는 유럽보다 더 비싸기 때문에(1리얄=3천원) 일주일 여행비로도 100만원 이상 챙겨왔다. 이렇게 돈을 썼는데 운전도 못하고 사람들을 무서워하기만 하다가 집으로 돌아가면 그게 무슨 낭비람.

여행이 기대와 달리 아무런 기쁨도 주지 못하면 어쩌나 나는 벌써부터 속상해졌다.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 있는데 J에게서 카톡 메시지가 왔다. 곧 퇴근하고 호텔에 오겠다는 것이다. J야, 넌 나의 구세주야. J에게 오늘 하루 겪은 것을 말하고 조언을 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 괜찮아? 얼굴이 너무 안좋아보여. 나 안 반가워?"

호텔 주차장에서 만난 J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아차, 그래도 J를 만나러 온 건데 내 표정이 너무 안좋았구나. J에게 미안했다.


"어어, 여기 오는데 택시비도 바가지 쓰고 이래저래 익숙지 않아서 좀 고생했거든. 미안미안."

"그래, 낯선 나라 오는 거 쉽지 않지. 난 오만에 오겠다고 하는 애는 니가 처음이라니까?"


우리는 J의 차를 타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시내로 나갔다. J를 만나니 불안했던 마음이 싹 걷혔다.

시내의 레스토랑으로 나가 빵과 후무스, 익힌 생선과 양고기를 먹으면서 J의 오만 생활을 들었다. 중동생활을 처음 해 봤다는 J는 그래도 식사며 직장 일이며 잘 적응하고 있다고 했다. 낯선 땅에서 벌이를 하고 거주지와 차도 마련한 J가 어른처럼 보였다.

식사를 마치고 J의 차를 타고 나가 시내를 돌아봤다. 멋없는 황토빛 사각형 건물이 많은 다른 중동국가와 달리 오만엔 잘 꾸며진 건물이 많았다. 정통 이슬람 양식에 포르투갈, 영국 등 교역이 활발했던 국가의 건축양식이 혼합된 것이라고 한다. 낮보다 가로등 켜진 밤에 더 운치가 있었다.

우리는 차를 타고 J가 일하는 직장과 주변 건물들을 구경했다.

이런 거리

오만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2019년 기준 1만5천달러로, 3만달러를 넘긴 한국엔 못 미치지만 헝가리나 폴란드(각각 1만5천달러)쯤은 된다. 1960년대 중반까지는 아랍국가 가운데서도 최빈국이었으나 1967년 석유가 발견되면서 급속한 근대화를 이루었고 때마침 즉위한 카부스 현 술탄의 적극적인 서방 교역 정책도 맞물리면서 크게 성장했다고 한다.


확실히 아랍국가 중에서도 부유한 나라라 그런지 마구잡이로 사람을 붙잡는다든가 처음 만난 사람에게 인종차별 농담을 한다든가 하는 일은 확실히 적었다. 치안이 꽤 좋은 편이라던 J의 말이 이해됐다.

아랍간식 크나파

마트에 들러 저녁식사 거리로 크래커와 브리치즈, 디저트 크나파, 산딸기를 샀다. J가 매일 출퇴근해야 해 내일부턴 나머지 시간을 혼자 보내야 했다. 장 본 것을 J의 차에 싣고 호텔로 돌아왔다.


내일 아라비아해 스킨스쿠버를 할 수 있는지 몇 군데 연락해 물어봤는데 대부분 전화를 안 받거나 왓츠앱 메시지에 답하지 않았다. 스쿠버 말곤 일정을 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러다 내일도 호텔에서 손가락 빠는 거 아냐, 걱정이 될 즈음 한 업체가 5시간 만에 왓츠앱 메시지로 답장했다.


"내일 10시 오케이? 장비 수수료 20리얄(6만원) 추가해야 함."

이미 40리얄(12만원)을 체험료로 내는데 장비 수수료는 뭔 또 장비 수수료야.

짜증이 잠깐 났지만 다른 수가 없었다. 다른 업체는 아예 연락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오케이. 내일 10시."


일정이 생겼다는 것에 안도감이 들었다.

간단히 일기를 쓰고 잠들었다.


"던전형 여행지를 너무 오랜만에 만나 마음이 힘들었는데 J 덕분에 용기를 다시 얻을 수 있었다. 퇴근하고 시간을 내 준 J에게 고마웠다.


내일 아침엔 J와 함께 장본 것들로 아침을 해 먹어야지. 누군가 빼앗아간 한두 푼을 또 다른 누군가가 풍성하게 채워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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