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다 Oct 16. 2021

나의중동여행기52_거북이에게 모래 세례를

하지만 귀여워

 오후8시가 될 때까진 밖에서 별을 구경하며 놀았다. 거의 사막 한가운데나 다름없어 밤하늘 별이 쏟아질 듯이 많았다. 그것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시간이 하염없이 흘렀다.

완전히 어두워진 라살진즈

투어가 시작될 때쯤 로비로 돌아갔는데 그새 거북이투어를 하러 온 외국인 관광객들이 가득했다. 이상하게도 거의 100명 넘는 사람들이 와 있었는데 동양인은 한 명도 없고 거의 다 백인들이었다. 이스라엘 교환학생의 데자뷰인가. 그들 무리 속에 혼자 있으려니 어쩐지 어색하고 불편한 기분이 들었다.


새까만 밤바다를 걸을 땐 가이드 목소리에 의지해 그를 잘 따라다녀야 했다. 걸으면 모래 사이로 발이 푹푹 빠지기 때문에 조금만 천천히 걸으면 일행을 놓칠 위험이 있었다. 가이드가 자기 앞으로 비추는 손전등만 보고 쉴새없이 걸었다.


가이드 가까이 붙어 있으면 설명도 더 자세히 들을 수 있고 진귀한 것을 구경할 가능성도 더 크기 때문에 나는 그의 옆을 사수하려 애썼다. 옆에 있던 작은 여자아이도 나와 같은 생각인지 그를 부지런히 쫓아다녔다. 졸지에 우리는 가이드 옆을 두고 눈치싸움을 벌이는 사이가 되었다.


가이드는 도중에 걷는 데 방해된다며 슬리퍼를 모래사장에 홱 던져놓고 마저 걸었는데, 이 광활한 데서 신발을 어찌 찾으려고 저러나 싶었는데 신기하게도 되돌아갈 때 잘 찾아서 신었다. 혹시 별자리를 보는걸까 하는 낭만적 추측을 해 봤지만 나중에 얘길 들으니 그는 현실적이게도  위치추적기를 이용하고 있었다.

어두운 해안가를 슥슥

거북이가 알을 낳고 있을거라 추정되는 구덩이를 몇 군데 들렀지만 다 허탕이었다. 가이드는 마음이 조급해졌는지 갑자기 바다를 보여주겠다며 우리를 데리고 바다 근처로 나갔다.


그 곳에서 본 밤바다는 잊을 수 없다. 바다 위로 작은 흰색 점같은 것들이 가득 덮여 반짝반짝 야광빛으로 빛났는데, 가이드 설명에 따르면 낮에 햇빛을 먹은 플랑크톤이라고 했다. 구슬처럼 조그만 빛들이 바닷가 전체를 뒤덮고 있었다. 해안가로 쓸려내려온 그것들을 손으로 슥슥 밀어보니 모래 위로 야광빛이 번졌다.

(인터넷에 Bioluminescent Plankton을 검색하면 어마어마한 사진들이 나온다)

내 카메라로는 잘 담기지 않았으므로 bbc credit 사진 참조
bbc credit 참조

한참 바다를 구경하는데 가이드가 다시 우리를 불렀다. 이번엔 정말 찾은 모양이다.

가이드는 우리를 거북이에게로 데려가기 전에 두 가지를 약속 받았다. 자신이 비춰주는 손전등 외에 카메라 플래쉬를 따로 터트리지 말 것, 거북이를 만지지 말 것. 산란을 하던 거북이가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고, 위협을 느끼면 바다로 돌아가버릴 수도 있다는 이유에서다.


물론 스무 명 가까이 되는 인원이 이것을 다 지키진 않았고 대놓고 플래시를 터트리는 일행도 있었다. 그들은 가이드가 '노 플래시 노 플래시'하고 짜증을 내면 잠시 멈추었지만 그가 한눈을 팔면 또 다시 플래시를 터트리곤 했다.

알 낳는 바다거북.
사진 찍는 사람들. 가이드가 손전등으로 알을 비춰주고 있다

정작 바다거북은 알을 낳는 데 무척 열심이어서 우리가 알짱거리든 소리를 내든 미동도 하지 않았다. 거슬리긴 하지만 일단 알 낳는 데 집중하려는 것인지도 몰랐다. 작은 알들이 구덩이 안에 쌓여있는 모습이 살짝 보였다.

작게 보이는 알들

람들이 거북이 가까이 가려고 소리없이 자리싸움을 해 대기 시작했다. 나는 거북이 뒤에 자리를 잡고 서 있었는데 뒤이어 온 일행들이 거북이를 둘러싼 사람들을 옆으로 밀치기 시작해  뒤로 밀려났다.

그런데 아까 가이드 옆자리를 두고 나와 경쟁하던 그 여자아이가 내 팔을 잡더니 동그라미 안으로 도로 집어넣어 주었다. "이 사람은 괜찮아." 그 여자아이가 내 팔을 잡고는 옆에 있던 부모에게 힘 주어 말했다. 우리, 벌써 친구가 됐나봐!


는 작은 목소리로 그 아이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동그라미 안에 도로 자리를 잡자 아이가 팔 소매를 쥐었던 손을 풀어주었다.


알을 다 낳은 바다거북이 다리를 움직여 모래를 구덩이 안으로 슥슥 집어넣기 시작했다. 포식자가 알을 발견하지 못하도록 숨기는 것이라고 했다. 그 바람에 바다거북 주위에 서 있던 우리에게도 모래가 튀었고 바다거북 바로 뒤에 있던 내 다리도 완전 모래세례를 맞았다.


돌아오는 길도 푹푹 꺼지는 모래를 헤치고 걸어왔다. 1시간 남짓 되는 여정이었는데도 굉장히 길게 느껴졌다. 어두운 밤바다를, 가이드에게만 의지해 걸어야 했기 때문일 것이다.


로비로 돌아와 귀여운 여자아이와 바이바이하고 빈 의자에 앉았다. 이대로 숙소에 들어가서 씻고 잠들면 참 좋으련만, 아흐메드의 친구가 일을 다 끝낼 때까지는 숙소로 돌아갈 수 없었다. 밖으로 나가 별을 구경하거나 일기를 쓰거나 하면서 시간을 느리게 흘려보냈다.


안내데스크에 있던 아흐메드의 친구(이자 라살진즈 직원)가 표 계산까지 다 마치고 일어난 시각은 오후 11시40분. 그는 손을 휘휘 흔들며 가자고 나를 손짓했다. 냉큼 그의 차를 타고 호텔이 있는 수르로 함께 갔다. 그의 집은 수르에서 조금 더 들어가야 했지만 호텔 앞까지 친절하게 나를 태워주었다. 택시요금이라도 챙겨주려 했지만 그는 한사코 사양했다. 그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플라자 호텔에 투숙했다.

플라자호텔 수르.

연달아 바닷물과 계곡물에 담근 탓인지 머리가 빗자루처럼 뻣뻣했다. 계속 샴푸만 쓰다가 사흘 만에 트리트먼트를 썼는데 기분이 상쾌했다. 벌서 새벽 1시였다. 안전하게 숙소에 도착했다는 생각에 피로가 몰려들면서 잠이 쏟아졌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의중동여행기51_가자 거북이 보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