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체적인 콘셉트 짜기+분석적 읽기
업무효율 끌어올리기 프로젝트 중,
사전 계획의 중요성을 다시 확인한 계기.
(기사는 쓰는 것보다 계획하는 게 훨씬 중요한 생산품이다...)
어제 짧은 인터뷰 순번을 맡아서 하나를 쳐내야 했다.
나는 한동안 취재하지 못한 A 사업장을 골랐다.
예전부터 간간히 기사를 써서 내부 사정은 소상히 아는 편.
다만 최근 농성이 커지는 걸 따라가지 못한지라 부채감이 좀 있었다.
그래서 마침 순번이 돌아온 김에 사안도 업데이트하고 독자들께 농성도 소개할 겸 방문취재를 잡았다.
그래서인지 좀 마음을 놓고 얼레벌레 다녀왔던 측면이 있다.
시간도 좀 방만하게 쓰고...
(짧은 인터뷰인데 대화를 거의 1시간 넘게 나누고 밥도 먹고 한참 있다가 옴)
질문지도 자세하게 준비하지 않고 큰 줄기만 잡아가고...
대화를 나눌 때는 충분히 좋다고 생각함.
그런데 막상 인터뷰 마치고 기사를 정리하려니 다소 당황했다.
내가 그 사업장 히스토리를 폭넓게 아는 건 맞다.
하지만 이번에 맡은 지면은 매우 작고.
방대한 스토리를 거기다 다 담을수는 없다.
그럴 때는 여러 주제 중에서 선택과 집중을 해서, 컨셉을 확실히 잡고 콤팩트하게 썼어야 하는데.
(예를 들어 경영감시/사내 민주주의/노동처우/투쟁의 목표 등 뽑아낼 수 있는 여러 주제 중 하나만 골랐어야 함)
내가 너무 '안다'는 생각에 빠져서
독자한테 뭘 보여줄지 구체적으로 정하지 않고
이것저것 주제를 펼쳐서 대화한 것이다.
사실 이렇게 취재원과 친하고 배경지식도 많은 취재처일수록 오히려 난감한 게, 독자들한테 설명하는 내용의 절반을 내가 이미 알기 때문에
그걸 질문으로 다시 하기가 상당히 민망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보통은 내가 몰랐던 거나 평소에 궁금한 걸 묻게 되는데,
그러면 나중에 정리하려고 할 때 여러 주제가 일관성 없이 펼쳐져 있어 하나의 줄로 선명하게 꿰기가 매우 난감해진다는 단점이 있다.
그런 이유로 이번 인터뷰도 정리하는 데 시간이 엄청 오래 걸렸다 ㅠ
반나절을 붙잡고 낑낑대도 기사 흐름 정리가 안 되고 분량도 줄지 않아서 결국 퇴근시간 넘김.
넘 열받아서 프린트해갖고 처음부터 샅샅이 들여다 봤더니
그제야 기사 일관성이 없었던 이유가 보였다.
내가 말하고 싶은 주제가 너무 광범위하고 두서없이 펼쳐져 있었던 것이다.
글은 일종의 벽돌쌓기와 같다.
여러 벽돌을 쭉 꺼내놓은 다음에 비슷한 주제끼리 묶어야 독자가 이전 단락에서 다음 단락으로 넘어가는데 위화감이 없고 자연스럽게 쭉쭉 따라갈 수 있다.
반대로 말하면 잘 안 읽히는 글은 단락끼리, 또 단락 안에서도 따로노는 글이다.
두괄식으로 시작한 주제 문장과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 문장이 잘 호응되지 않거나 다른 주제를 가리키는 식이다.
이번 인터뷰 초고도 그런 측면이 강했다.
서로 되는대로 질문하고 답하다보니 인터뷰 초점이 흐려지고 예시도 딱 맞게 나오질 않았다.
결국 주제를 뒤늦게 하나로 좁히고 나머지 잔가지는 전부 쳐내거나 대폭 축약해야 했다.
만약 처음부터
1)한 가지 주제로 좁혀서 준비해 가고
2)그 흐름에 맞춰 질문을 주고받고
( 사실 통화로 해도 되는 인터뷰였다)
3) 각 단락이 함의하는 소주제가 뭔지 적어보며
4)어울리는 주제끼리 분류했다면
거의 반나절도 안 돼 글을 완성했을 것이다...
실제로 이런 흐름으로 잘 준비한 인터뷰는 분량이 두 배가 넘어도 1시간 만에 끝낼 수 있었다.
인터뷰는 특히나 사전 준비가 90% 먹고 들어가는데.
안타까웠다 나 자신!
이렇게 또 배웁니다.
덧) 이런 업무스타일이 하루아침에 생긴 건 아닐거다.
어느 날은 기사가 잘 써지고 어느 날은 안 써지니까 그냥 컨디션 차이인 줄 알았지 뭐.
잘 될 때는 잘 되는 이유를, 잘 안 될 때는 안 되는 이유를 깊이 탐색해서 전자를 강화하는 업무스타일을 구축했다면 나는 훨씬 빠르게 성장했을 것이다.
그 동안 너무 되는대로 일하며 살아온 게 아닌가 싶다.
나는 그 동안 셀프 피드백이라는 걸 운동선수나 예술가들이나 하는 줄 알았다.
기사는 주제와 형식마다 다 천차만별 쓰는 방식이 달라서 정형화할 수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런 피드백 안 해도 퍼포먼스 괜찮게 나오니까...
딱히 필요성을 못 느꼈던 것 같다.
그 퍼포먼스를 내기 위해 불필요하게 과로하고 있었던 건 모르고 말이다.
업무시간 줄이기가 삶에서 매우 중요한 과제가 된 뒤로는 작심하고 내 업무스타일을 도마에 올려보고 요리조리 관찰하고 있다.
그렇게 살펴보면 분명 더 나아질 수 있는 지점이 있다.
그게 퍽 마음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