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훌 털고 일어나 다시 시작하라
성당, 사우나, 그리고 산에 가는 것에는 공통점이 있다. 가기 전에는 망설여져도 갔다 오면 가슴 뿌듯하고 개운해지는 점이다. 가지 않으면 늘 마음 한구석에 찝찝한 앙금으로 남아 있는 것도 그렇다. 그것은 마치 신발 안에 잔돌 하나가 돌아다니는 것 같은 그런 기분이다.
들춰보니 지난 6월 13일로 끝이었다. 올봄부터 홀로 백두대간 종주하다가 곰 만나 줄행랑쳤던 그날 이후로 등산스틱을 잡지 못한 것이다. 물론 그동안 집 근처 뒷동산으로 가끔씩 다니기는 했다. 그러나 그것은 바다에서 전투 수영하던 사람이 동네 수영장에서 물장구치는 것처럼 허전한 것이었다. 물론 나는 전문 산악인도 아니고 수영장에서는 물장구도 제대로 못 치는 위인이다. 말이 그렇다는 말이다.
가만 생각해 보니 곰은 핑계였다. 그때 나는 혼자 산 타는 게 힘들기도 하고 무섭기도 했던 것 같다. 울고 싶은데 곰이 나타나 뺨 때린 것이다. 아니 뺨도 안 때렸다. 곰은 그냥 앞발만 들었는데 나는 마치 곰발바닥에 면상 절단난 것처럼 동네방네 나발 불고 다녔다. 내가 하도 엄살 피우는 바람에 들고 있는 앞발 쳐다보며 곰이 더 황당해했을 것 같다. 그날 갑자기 등산 중단하게 돼서 내가 재수 없는 날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곰이 더 재수 없는 날이었을 수 있겠다.
산 다니던 사람이 몸 성한데 산에 안 다닐 수는 없다. 물론 그간 다른 일도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곰 만났던 트라우마 때문이었다. 그러나 곰이 팔짱 끼고 맨날 산길 지키는 것도 아니고, 더군다나 이제는 녀석들이 겨울잠 빠져 잠꼬대하고 있을 때 아닌가. 올 한 해 끝나기 전에 다시 일어서야 한다. 그래서 신발 안에 돌아다니는 잔돌 치워야 한다. 우리 강토의 등줄기를 걷겠다는 결심을 한낱 곰 울음소리 때문에 접을 수야 없지 않겠는가. 더 이상 우물쭈물하다가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버나드 쇼의 촌철살인 묘비명이 떠오른다.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육 개월 만에 다시 백두대간 능선길에 올라섰다. 배낭 무게 때문에 자꾸 허리가 처져진다. 집 나올 때의 저울 눈금이 21Kg였는데 인월에 도착해 식수 3L를 더 얹었다. 등산하면서 이런 무게 걸머져 보기는 처음이다. 겨울 텐트와 동계 침낭에다 덕지덕지 껴입을 옷가지들이 주범이다. 안 얼어 죽기 위해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꾸린 보따리라 어쩔 수 없다. 처음에는 도저히 감당 못 해낼 것 같아도 이 앙다물고 걷다 보면 이런 비현실적인 배낭 무게도 조금씩 적응된다. 평탄한 인생길 걷다가 발 헛디뎌 나락으로 떨어지면, 처음에는 도저히 못 살 것 같아도 독한 마음먹으면 꾸역꾸역 견뎌내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렇게 해서 산행 시작한 지 약 세 시간여 만에 복성이재까지 왔다. 지금 여기에서 짐 풀면 민가 가까워 마음은 편해도 남은 해가 아깝다. 조금 더 걷자니 자칫 첩첩산중에서 밤을 보낼 수도 있어 겁난다. 인터넷 정보에 의하면 약 4Km 전방 봉화산 근처에 텐트 안 치고도 하룻밤 아늑하게 보낼 수 있는 산불감시초소가 있다. 문제는 시간이다. 어둑해지기 전에 도착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거리상으로는 어쩌면 도달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앉아서 고민만 하느니 차라리 걷자 싶어 벌떡 일어섰다.
큰일 났다. 봉화산까지 거리 계산만 했지 고도는 생각하지 못했다. 정상까지는 복성이재에서 무려 400미터 가까이 더 올라야 하는 줄도 모르고 덥석 길 나서 버린 것이다. 목적지의 절반도 안 되는 매봉까지 올라오니 벌써 산중에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올라온 길도 가팔라서 안간힘 다했는데 올라가야 할 길은 더 가팔라 보인다. 지형으로 보나 시간으로 보나 이제는 내려가지도 올라가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조금만 더 지체하면 텐트 칠 여유조차 없다 싶어 부랴부랴 짐 풀고 비박 준비에 들어갔다. 가뜩이나 겁 많은 내가 이 깊은 산중에서 동지섣달 기나긴 밤 어떻게 홀로 보내나 싶어 앞이 캄캄했다.
서둘러 식사부터 해결해야 했다. 산중에서 밥하기 힘들어 덥히기만 해서 먹을 요량으로 아예 집에서 밥 볶아 비닐에 싸 왔다. 먼저 볶음밥을 잘 덥혀 놓고 국물을 끓이던 찰나 그만 밥과 국물 다 쏟고 말았다. 가스 불에 의해 달구어진 바람막이에 손이 닿는 바람에 화들짝 놀라 코펠을 통째로 다 엎어버린 것이다. 2박3일 동안 끼니마다 식단을 짜 놓았으니 양식 여유도 없을뿐더러 있다 해도 짙어지는 어둠 때문에 더 어쩔 도리가 없다.
벌써 손끝이 아리다. 엄습해오는 추위와 칠흑 같은 어둠이 주는 공포감 때문에 서둘러 텐트 속으로 들었다. 썰렁한 게 뭔가 허전하다. 가만 살펴보니 바닥에 깔 매트리스가 보이지 않는다. 무게 때문에 배낭을 재정비할 때 밀쳐놓고 챙기지 않은 것 같다. 밤새도록 땅바닥에서 올라올 냉기를 생각하니 끔찍하다. 공포감 덜어 줄 유일한 무기인 라디오도 마찬가지다. 매트리스 대신 바닥에 깔 솔가지라도 꺾자 싶어 나섰지만 벌써 짙게 내린 어둠 때문에 포기했다. 피곤한 데다 밥도 굶고 휴대폰 배터리조차 간당간당하니 눈 부칠 일밖에 없다. 시간은 아직 저녁 일곱 시도 안 되었는데 잠자리에 들었다. 다행히 침낭 안으로 들어오니 온기가 감돌아 나도 모르게 스르르 잠들었다.
'스사삭'
무엇인가가 반복적으로 귓전 울리는 소리에 눈이 떠졌다. 시계를 보니 아직 열 시도 안 됐다. 두어 시간 남짓 잠들었던 모양이다. 잠을 깨운 것은 바람에 쓸려 나뒹구는 낙엽 소리였다. 바닥에서 피어오른 냉기와 내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입김이 뒤섞여 텐트 안에는 벌써부터 습기가 찼다. 허기와 한기가 뒤섞인 내 몸은 조금씩 떨리기 시작했다. 초콜릿 하나를 까서 시끄러운 뱃속부터 달랬다. 준비해 온 내복을 덧입으니 한결 낫다. 다시 잠을 청했다. 그러나 잠은 이미 멀리 달아난 뒤여서 헛일이었다.
'휘잉'
바람소리가 예사롭지 않다. 낙엽이 날려 텐트에 부딪치는 소리가 점점 더 거세진다. 텐트 밖에 누군가가 있는 이상한 느낌이다. 그러나 바람과 낙엽 흩날리는 소리가 뒤섞여 분간이 안 된다. 귀를 세우니 콧김 내뿜는 소리가 미세하게 들려오는 듯했다. 규칙적이어서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혹시 내 숨소리인가 싶어 숨을 멎어 보았지만 소리는 멈추지 않는다. 공포감이 엄습해왔다. 이내 내 호흡도 거칠어진다. 내 심장 뛰는 소리가 들렸다.
"타닥~~타다다닥"
"꽤액~~~꽥"
갑자기 멱따는 소리가 들리더니 땅바닥이 크게 흔들린다. 벌떡 일어나 머리맡에 두었던 대검을 집어 들었다. 지난봄에 곰 만났다는 이야기를 들은 친구가 산행 때 꼭 챙기라며 구해준 호신용이었다. 그 소리의 주인공은 볼 것도 없이 멧돼지들이다. 그제야 음식을 쏟아 놓고 추위와 어둠 때문에 제대로 치우지 않은 초저녁이 떠올랐다.
그때부터 한참 동안 난리굿이 벌어졌다. 그 굿이 벌어지고 있는 현장은,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 멧돼지들은 볶음밥을 놓고 치열한 쟁탈전을 벌이고 있고, 바로 옆 텐트 안에서는 한 만물의 영장이 공포에 질린 채 칼 들고 부들부들 떨고 있는 참혹한 광경이었다. 굿판이 벌어지는 동안 나는 거의 혼비백산 상태였다.
이윽고 잠잠해졌다. 그때까지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도 몰랐다. 바깥 상황이 어떤지 나가 보고 싶었지만 그럴 용기가 나지 않았다. 문제는 요의(尿意)였다. 가만있어도 전립선에 시달릴 나이인데 추위와 공포감 때문에 내 방광은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주변을 살펴보니 코펠 뚜껑이 있기는 했다. 그러나 전쟁통도 아닌데 밥솥 뚜껑에 오줌을 내지를 수는 없는 일이다. 텐트에 구멍을 내 볼까도 싶었지만 소변 때문에 초가삼간 태우는 기분이 들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재수 없으면 구멍 뚫린 텐트 바로 앞에 멧돼지가 도사리고 있을 수도 있다. 그때는 갑자기 돌출되어 나오는 부위가 녀석 입장에선 야밤에 왠 떡인가 싶어 뜨끈한 오뎅 씹어먹듯이 한 입에 해치워버릴 수도 있다. 생각만 해도 온몸이 갈기갈기 찢겨나가는 더러운 기분이었다. 아무리 궁리를 짜내도 별 뾰족한 수가 없어 결국 바깥 정찰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가라앉았던 심장이 또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텐트를 빼꼼히 열었다. 칠흑 같은 어둠과 함께 한기가 훅 밀려왔다. 전방을 향해 플래시를 비추자마자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텐트 정면 방향에 푸른빛 네 개가 선명하게 비춰지는 것이다. 심장이 거의 멎을 것 같았지만 나는 플래시를 끄지 않고 계속 비추었다. 녀석들도 꼼짝 않고 빛에 맞서고 있었다. 다행히 빛을 향해 돌진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방향을 틀어 주변을 더 살폈지만 다른 빛은 감지되지 않고 네 개의 빛은 계속 그 자리에 있었다. 멧돼지 두 마리가 틀림없어 보인다. 볶음밥 쟁탈전의 최종 우승자와 그 애인 멧돼지일 가능성이 높다.
불현듯 요롱 생각이 떠올랐다. 지난봄 곰 때문에 종복원기술원 직원과 통화하는 과정에서 날짐승들이 금속음을 싫어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이번 산행 때 처음으로 요롱을 준비한 것이다. 벌벌 떨리는 손으로 배낭에서 겨우 찾아냈다. 그러나 요롱 흔들기 전에 내 마음이 먼저 흔들렸다. 이 소리가 정말 퇴치 효과를 내는 금속음인지 아니면 도리어 잠잠하게 있는 녀석들을 날뛰게 하는 흥분제가 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그렇다면 이 요롱을 흔드는 순간 멧돼지들에게 내 좌표를 알려주는 조명탄을 쏘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다. 그러나 더 이상 고민하고 말고 할 일이 아니었다. 이제는 방광이 아니라 내 몸 전체가 폭발할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나는 텐트 안에서 죽어라고 요롱을 흔들기 시작했다. 그 소리가 울려 퍼지며 겨울산의 깊은 정적을 깨고 있었다.
아마 오 분 이상 흔들었던 것 같다. 흔들면서도 혹시 멧돼지들이 소리 나는 방향으로 돌진하지 않을까 싶어 나는 부들부들 떨었다. 흔들기를 중단하고 일어섰다. 만약 멧돼지가 흥분되어 공격했다면 벌써 덮쳤을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처음 정찰 때와 같이 텐트를 열고 그 방향으로 플래시를 비추었다. 네 개의 푸른빛은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서둘러 헤드랜턴을 찾았다. 그러나 고장인지 아니면 전지가 다 닳았는지 불이 켜지지 않았다. 다행히 여분의 손전등이 있어 집어 들었다. 텐트 바깥 상황을 알 수 없어 대검과 함께 요롱도 챙겼다. 소변 때문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었다.
텐트 지퍼를 열고 바깥으로 조심스럽게 발을 내디뎠다. 손전등으로 사방을 비추어 봐도 특별한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그게 요롱 소리 때문인지 아닌지 따질 계제가 아니다. 앞뒤 생각할 것 없이 바지부터 먼저 내려야 했다. 소변보는 중에 혹시라도 멧돼지가 뒤에서 공격할지도 몰라 텐트를 등지고 섰다. 바지를 내리고 나니 이번에는 앞에서 공격해 오는 녀석을 못 볼 수도 있다 싶어 손전등을 입에 물었다. 헤드랜턴이 작동되었다면 이 짓거리 안 해도 될 터였다. 그런데 아무리 좋은 위치를 잡았더라도 오줌 누는 동안 앞에서든 옆에서든 멧돼지가 공격해 온다면 그때는 맞설 수밖에 없다. 그래서 챙겨 온 대검을 오른손에 힘주어 들었다. 그러나 이런 일 벌어지기 전에 멧돼지가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최선이니 왼손에는 요롱을 들었다. 양손이 자유롭지 못하니 볼 일의 방향 조절이나 지지 기능이 무력화되어 오물 안 묻도록 하려면 바지를 무릎까지 내려야 했다. 나는 바지가 더 이상 내려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 무릎을 꺾어 엉거주춤한 자세로 소변을 보기 시작했다. 오줌 줄기가 크레모아 폭탄 터지듯이 분출되었다.
모두 내가 한 짓이지만 가관도 이런 가관이 없다. 입에 손전등 물고 오른손으로는 칼 든 채 왼손은 요롱 흔들며 배치기 자세로 오줌 누고 있으니 말해 무엇하겠는가. 게다가 시원하다고 고개 뒤로 젖히고 황홀경에 빠져 있는 꼴은 내가 생각해도 우습다. 만약 근처 어디에서 멧돼지들이 숨어서 이 광경을 보고 있었다면 이렇게 말했을 것 같다.
'우리 산에 웬 남자 무당 하나가 출몰했는데, 그거 변태 같아.'
나는 그날 다시 텐트에 들어와서도 요롱 흔들다가 지쳐서 잠들었다.
이튿날 아침 아홉 시가 다 돼서야 일어났다. 봉화산 오르고 광대치와 월경산 거쳐 중치까지 오니 벌써 해거름이 다 되었다. 밤새 습기 찬 침낭 때문에 배낭 무게가 더 무거워져 힘들었다. 그 무게 때문인지 아니면 등산화가 잘못되었는지 오른쪽 발가락에 계속 통증이 생겨 고통은 가중되었다. 당초 일정으로는 백운산과 영취산을 넘어 무녕고개까지 가야 하는데 이런 몸 상태로는 도저히 1,300여 고지를 오를 수 없어 결국 하산하기로 결정했다. 거기에서 중기마을을 거쳐 대방마을까지 약 3.5Km 걸어 나와 함양행 마을버스를 탔다. 집에 도착하니 밤 열 시가 다 되었다. 나는 12월 18일 오후부터 19일까지 약 25Km 정도 걸었다. 힘들었지만 멈추었던 백두대간 종주 산행을 다시 재개했다는데 의의가 있는 산행이었다. 비긴어게인 한 것이다.
비긴어게인(Begin again)!
어느 종편 방송에서 방영된 예능 프로그램 제목이다. 지금은 중단되었지만 매주 금요일 밤에 방송되던 이 프로그램을 즐겨 시청했다. 처음에는 우리나라 유명 가수들의 현지 버스킹에 유럽 사람들이 감동, 환호하는 장면 때문에 이끌렸지만, 나중에는 이 프로그램의 제목을 통해 전달되는 삶의 의미 때문에 더 좋아하게 됐다.
명령문이라면 초심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하라!'는 뜻일 테고, 일인칭 주어가 생략된 평서문이라면 다시 시작하겠다는 스스로의 다짐일 것이다. 우리네 삶이 물리와 같다면, 임계점에 도달한 우리 의식이 한 차원 더 높은 의미 있는 형질로 변화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의식의 비등점'이 필요하다. 마치 밍밍한 물이 비등점에 이르러 끓기 시작하는 것처럼. '비긴 어게인'은, 용두사미든 작심삼일이든 삶의 여정에서 주저앉아 있는 자신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의식의 비등점이다. 그래서 어느 쪽이든 다 좋다. 그것이 명령문이든 평서문이든.
그대, 지금 무엇인가를 잃거나 포기한 채 방황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훌훌 털고 일어나 다시 시작해 보라. 그것이 재물이든 사랑이든, 금연이든 다이어트든. 또한 당신이 새파란 청춘이든 희끗한 중년이든. 결코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그러나 다시 마음을 다잡고 어금니 깨물면 당신의 영혼은 끓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주저앉아 있는 당신을 다시 일으켜 세울 것이다. 우리 인생은 끊임없는 '비긴어게인'의 연속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