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아리랑

홀로 고난을 극복하는 것은 한없는 자기 사랑이다

by 숲속의 고목나무

파묻던 것이 사라지면 파묻힌 것이 드러난다. 살이 없어지면 뼈가 드러나는 것처럼. 겨울은 그런 계절이다. 한 해 동안 자신을 뒤덮었던 모든 껍질 벗기고 스스로 알몸 고스란히 드러내는 민망한 계절인 것이다. 그래서 겨울산은 빼빼하고 헛헛하다. 워낙 앙상해 헐벗고 굶주린 듯 보이지만 사실은 진실한 것이다. 이 황량함이 나에게 예상치 못한 포만감을 선사한다. 왠지 드넓은 이 산하가 모두 내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겨울산이 좋다. 가식 벗은 내 모습 비추는 거울 같아서. 또한 허기진 내 삶 채워주는 뜻밖의 풍성함 느낄 수 있어서.


아무것도 없는 듯해 보이는 겨울산에 오늘은 비바람이 몰아쳤다. 능선 위에서 무시로 놀고 있던 삭풍이 인적 없어 심심한데, 겨울 종적 뜸했던 비에다가 하늘인지 땅 밑인지 주거지 묘연한 운무까지 놀러 와 한패가 되었다. 내가 지나가자 이것들이 볼살 긁으며 시비 건다. 혼자라고 만만했던 모양이다. 갈 길 바쁘고 무섭기도 해 모른 채 지나가니 따라다니며 지랄했다. 못됐기도 하고 끈질기기도 했다. 그래서 오늘 나는 종일 힘들었다.


전날 밤 열두 시까지 짐 꾸리고 새벽 네 시 반에 눈 떴다. 지하철역까지 가는 첫 버스가 늦어 이십 분을 걸어 나왔다. 함양행 첫 버스를 타니 비 뿌리기 시작했다. 거창에는 눈발 날렸고 함양은 벌써 질퍽했다. 예상치 못한 일기여서 마음이 수란 했다. 분명 오후 늦게부터 비 온다고 했다. 비 온다고 해서 등산 포기하고 나니 해 쨍쨍했던 날 숱하여서 또 그럴 줄 알았다. 그런데 늦게 비 온다고 해 놓고 아침부터 비 뿌릴 줄은 예상 못했다. 신종 사기 같다.


마음이 갈팡질팡했다. 기왕 나선 걸음이니 어쨌거나 산 입구까지는 가 보자 마음먹었다. 산길 얼었을 수도 있다 싶어 급히 아이젠을 구했다. 고마운 이 있었다. 그에게 아이젠 파는 가게를 묻자, 내 등짐 아래위 훑어보더니 직접 자신의 차에 태워 가게까지 안내하고 다시 버스정류장까지 데려다줬다. 가게는 거리로 보나 차 시간으로 보나 혼자 다녀올 수 없는 위치에 있었다. 만약 그가 아니었으면 오늘 나는 눈보라 치는 산중에서 절망했을 것이다.


대방 마을에서 중기 마을 거쳐 중치까지는 멀었다. 접속구간인 이 거리가 무려 3.5km여서, 게다가 줄곧 오르막이어서 초장부터 힘 뺐다. 중기까지 가는 버스가 있지만 이방인에게는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새벽녘에 한 대 있고 해거름에 한 대 있고 오밤중에 한 대 있으니. 꾸역꾸역 걷는 수밖에 없다. 중치에 도착하니 벌써 열한 시다. 집 나선 지 여섯 시간 만이다. 도착은 했지만 일기는 여전히 불순했고 마음도 여전히 갈팡질팡했다. 그러나 새해 벽두부터 포기하고 싶지 않아 첫걸음 내디뎠다. 고행의 시작이었다. 날은 점점 더 거칠어졌다.


백운산!


지리와 덕유를 경계 짓는 담벼락 같은 산이다. 담장이니 높은 게 당연하다. 흰 구름이 머물 만했다. 중치만 해도 해발고도 650인데 다시 그만큼 더 올라야 했다. 등짐은 늘 나를 괴롭힌다. 그냥도 무거운데 오늘은 물까지 먹었다. 방수 커버 덮었지만 점점 거세지는 비바람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그 위에 중력까지 올라타고 있어서 오늘 나는 식겁했다. 그러나 이것 없이는 아무 데도 갈 수 없다. 산길 걸을 때는 숨넘어갈 듯 힘들지만 다 걷고 나서는 편안한 안식처가 되기 때문이다. 등짐 때문에 힘들지만 나중에는 결국 그 등짐에 의지하게 된다. 부모와 자식이 그렇다. 나는 내 부모 위에 올라탄 등짐이었고 내 자식은 내 위에 걸터앉은 등짐이다. 다만 나는 까불었고 내 자식들은 안 까불어서 나는 덜 고생하고 내 부모는 더 고생했다. 이렇듯 살아 숨 쉬는 자에게 등짐은 숙명이다. 중력 없는 달나라는 뭐든 풍선처럼 가벼운 모양이다. 등산해도 재미없고 사는 것도 재미없을 것 같다. 그래서 거기에 사람은 안 살고 토끼만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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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적 없는 산길 홀로 걷노라면 겁 많은 나는 늘 무섭다. 하늘 맑고 바람 잔 날은 그나마 덜하지만 오늘 같은 날은 공포감이 극에 달한다. 어두침침한 날의 산은 음산하다. 산중에 비 내리면 새소리도 멈춰 적막감이 감돈다. 영화로 치면 클라이맥스로 치닫기 직전의 긴장감 팽팽한 상태 같은 것이다. 그래서 낙엽 위에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조차도 공포극의 전조음으로 변환된다. 가끔 가다 걸음 멈추고 찬찬히 사방을 둘러본다. 그제야 방금 들린 그 섬뜩한 소리가 배낭 삐걱거리거나 옷깃 서로 스친 소리임을 알고 가슴 쓸어내린다.


계곡의 골바람 휘몰아치는 소리는 늑대 무리가 단체로 우는 소리 같고, 거센 바람결에 산죽끼리 부딪치는 소리는 손톱으로 칠판 긁는 소리처럼 사각거린다. 거기에다 오늘은 짙은 운무까지 겹쳐 시계마저 절단이다. 덩치 큰 바위나 몸집 커다란 나무가 나를 덮칠 듯한 기세로 갑자기 나타나곤 한다. 심지어 바람결에 운무 휘감기면 온 산의 나무가 춤추는 유령처럼 흔들려 보여 사람 식겁시킨다.


개도 만나고 곰도 만나고 멧돼지도 만났던지라 나는 갑자기 뭐가 튀어나올 것 같아 앞가슴에 대검 차고 걸었다. 만에 하나라도 나를 공격하는 짐승이 나타나면 죽기 살기로 대응하는 수밖에 없다. 비 내리는 이 적막한 산중에서 누가 나를 지켜주겠는가. 내가 나를 지킬 수밖에 없다. 오늘 무엇보다 괴로운 것은 시계가 막혀 방향 감각 무뎌지고 고도 감각도 무력화되는 것이다. 조금만 방심하면 엉뚱한 길로 접어들고, 도대체 얼마나 더 올라야 하는지 가늠 안 돼 마음 단단히 먹지 않으면 스스로 무너지기 쉬운 상태다. 비 때문에 배낭 벗고 앉아 쉴 수도 없으니 체력은 급격하게 고갈됐다.


천신만고 끝에 백운산 정상에 도착했다. 한겨울에 상상하기 힘든 날씨였다. 거의 폭우 수준의 비바람 뚫고 올라오니 꼭대기에는 눈보라가 휘몰아쳤다. 배낭뿐만 아니라 몸 전체가 물 먹었다. 등산화는 물 채워진 장화처럼 질척거렸고 장갑 꼈지만 구멍 뚫린 고무장갑과 다를 바 없었다. 모자에서 흘러내려 등줄기로 파고든 빗물이 한쪽으로는 허벅지에서 종아리 길 따라 신발 속으로 들어가고, 다른 한쪽은 팔 줄기와 겨드랑이 고랑 타고 장갑 속으로 스며든 것이다.


점심이라고 꺼냈지만 손 시려 바나나 한 개와 빵 반쪽만 겨우 먹었다. 시간은 벌써 오후 세 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오늘 야영지인 벽계 쉼터에 도착하려면 서둘러야 한다. 우중에 텐트 치는 것도 큰 걱정이지만 우선은 그곳까지 무사히 도착해야 한다. 가파른 내리막길은 이미 얼어서 함양에서 구입한 아이젠 아니었으면 절단날 뻔했다. 나는 마치 자동 세차장 속으로 들어간 자동차처럼 사방에서 뿌려대는 물 폭탄 세례 맞으며 긴 산죽 능선길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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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결국 길 잃고 말았다. 아무리 찾아봐도 선바위 고개에서 무녕고개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이정표가 보이지 않는다. 그 길 따라 내려가야 식수가 있는 벽계쉼터 야영장에 도착하는데 인터넷에서 검색한 그 이정표를 찾을 수 없었다. 빗줄기는 잦아들 기미가 없고 체력은 고갈되어 더 이상 찾아다닐 기력도 없다. 이 상태로 산중에서 버티기 힘들다 판단하고 무조건 하산길로 접어들었다.


어디로 내려가는지도 모르고 한참을 내려가니 주차장 이정표가 나타났다. <무룡고개 주차장>이었다. 인터넷 정보로는 분명 <무녕고개 주차장>이었는데 이건 뭔가 싶었다. 그나저나 고갯길 중턱에 위치한 이곳은 얼핏 봐도 조성된 지 얼마 안 돼 보이는 새 주차장이다. 그러나 주차장에 차는커녕 사람 그림자조차 얼씬거리지 않는 사실상 허허벌판이었다. 비 피할 곳이라고는 화장실밖에 없어 앞뒤 가릴 것 없이 들어가 몸을 녹였다.


정신 차리고 나서 주변 지형도를 살펴보니 전북 장수군의 장안산 자락에 위치한 첩첩산중 주차장이었다. 주차장뿐만 아니라 도로에도 아예 다니는 차가 없다. 비 뿌리는 바깥에 텐트 치느니 차라리 화장실에서 자는 게 낫겠다 싶어 자리 잡았다. 어차피 사람 흔적이라고는 없으니 나 때문에 누가 놀랄 일도 없고 남 때문에 내가 체면 차릴 일도 없다. 게다가 바닥까지 깨끗해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하루 종일 비 맞으며 들개처럼 돌아다녔으니 여기에 매트리스 깔고 침낭만 펴면 지금 이 판국에 천국이 따로 없다. 뜨신 물 안 나오지만 갈아입을 옷은 있으니 홀딱 벗고 찬물 한 바가지 덮어쓸 요량으로 주섬주섬 벗다가, 불현듯 주변에 숙박업소가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주변 검색 통해 장계면의 개인택시와 연결됐다. 이십여 분이면 올 수 있단다. 게다가 그곳에서 저녁 여섯 시 사십 분에 대구로 가는 버스까지 있다니 마치 지옥살이 하다가 구원받은 기분이었다. 부랴부랴 짐을 꾸렸다.

20200106_172637[1].jpg 하마터면 그날 숙소가 될 뻔했다

‘십자가’가 삶의 고난을 상징하듯 ‘아리랑고개’는 우리 민족의 수난을 집약한 말이다. 그래서 십자가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향하는 예수의 고난과, 지게 걸머메고 아리랑 고개 넘어가는 우리 민족의 애환은 닮아 있다. 누구에게도 짊어져야 할 십자가와 넘어야 할 아리랑고개는 있다. 삶은 십자가 짊어지고 아리랑고개 넘어가는 것과 같다. ‘가다가 못 가면 쉬어 가더라도’ 결국에는 넘어 내야 하는 것이다. 둘이서 손잡고 넘으면 보기에도 좋고 힘도 덜 들 것이다. 그러나 혼자라면 홀로서라도 끝내는 넘어야 한다. 둘이서 고난 극복하는 것은 서로를 더없이 사랑하는 것이고, 홀로 고난을 극복하는 것은 한없는 자기 사랑이다. 나는 오늘도 홀로 아리랑고개를 넘었다.


그대, 날카로운 세상의 칼날에 베여 홀로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가. 만약 그렇다면, 모든 것에 앞서 당신이 해야 할 일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당신 스스로를 한없이 사랑하는 일이다.


2020년 1월 6일, 나는 경남 함양군 대방마을에서 출발해 그날 저녁 해거름에 전북 장수군 장계면의 무룡고개 주차장으로 빠져나왔다. 중치에서 시작해 1278미터의 백운산을 넘어 영취산 자락에서 하산길로 접어들었다. 하루 종일 비 내리는 바람에 힘들었다. 무리한 산행이었지만 그래도 끝까지 잘 버텨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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