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너를 위해 기도하네
다시 삼도봉에 올랐다. 오르는 내내 고민했지만 정상에 올라서도 마음을 쉬 정하지 못했다. 북쪽과 서쪽을 번갈아 쳐다본다. 내가 걷고 있는 백두대간길 주행 방향은 북쪽이다. 그러나 자꾸 서쪽으로 눈길이 간다. 석기봉과 민주지산 각호산 등 1,200미터 급 고산들이 줄지어 있다. 결국 대간길 벗어나 두 시간을 걸어 민주지산(岷周之山)에 도착했다. 고도 1,242미터인 이곳은 소백산맥의 줄기이자 전북 무주와 충북 영동의 경계다.
1998년 4월 1일 오후, 칠갑산을 출발해 9박10일 간의 대대종합전술 훈련에 나선 제5공수여단 흑룡부대원들이 이곳을 향하고 있었다. 그날은 특전사의 지옥훈련으로 불리는 천리행군 5일차에 접어든 날이었다. 이미 3월 28일부터 30Kg의 군장으로 매일 50여 Km를 행군해 계룡산 대둔산 덕유산을 넘어온 그들의 체력은 많이 소진된 상태였다. 설상가상으로 사흘째 계속 비가 내려 훈련의 고통을 가중시키고 있었다. 새벽 3시에 도착한 산속 숙영지에서 밤새 비 맞으며 쪽잠으로 버틴 대원들의 몸은 천근만근이었을 것이다. 그날 오후 1시 특전대원들이 하두 마을을 출발할 때만 해도 내리는 비의 양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러나 오후 3시경 부대원들이 민주지산 6부 능선에 이르자 비가 눈으로 바뀌기 시작했고 8부 능선부터는 강풍과 폭설이 몰아쳤다. 9부 능선에서는 지형 식별이 안 될 정도로 시계가 막히고 경사면이 빙판으로 바뀌어 행군 대열이 분산되기 시작했다. 16시 50분부터 탈진하는 대원들이 발생했다. 기온이 급강하하자 통신 장애까지 발생해 무전이 불능상태가 되었다. 부대 전체가 산에서 고립된 것이다. 18시 20분 결국 9부 능선에서 최초 사망자가 발생했다. 산에는 이미 30cm의 눈이 쌓였고 체감 온도는 영하 30도까지 떨어졌다. 게다가 그들의 옷은 사흘 동안이나 비에 젖어 있었다.
빨리 하산하지 않으면 전 대원들의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렀다. 사방이 어둠으로 휩싸이자 산은 아비규환의 현장으로 변했다. 쓰러진 전우들을 살리기 위해 젖은 나무를 꺾어 미친 듯이 불을 피워 보지만 몰아치는 눈보라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병사들은 탈진한 대원들을 붙들고 이대로 죽을 거냐고, 제발 죽지 말라고 절규했다. 울어도 보고 때려도 보지만 생사고락을 함께 했던 전우들은 한 명씩 죽어갔다.
18시20분 이광암 하사(당시 23세)사망
21시30분 전해경 하사(당시 22세)사망
21시35분 오수남 하사(당시 19세)사망
21시45분 김광석 대위(당시 28세)사망
22시30분 한오환 하사(당시 22세)사망
23시30분 이수봉 중사(당시 24세)사망
산속에서 탈진하는 게 어떤 것인지 나는 안다. 자신의 명령을 듣지 않는 자기 몸을, 그저 눈만 껌뻑거리며 쳐다보다 결국 눈 뜰 힘조차 없게 되는 것이다. 그 두려움과 고통은, 마치 절벽에 뿌리내린 나뭇가지 한 자락에 매달려 있는 심정일 것이다. 그날 밤 그들도 그랬을 것이다. 살기 위해 죽을힘을 다했을 것이다. 그들은 ‘안 되면 되게 하는’ 세계 최강의 검은 베레모들이지만 죽어가는 전우들을 살리지는 못했다.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라는 제목의 성가가 있다. 삶에 지쳐 마음이 무너질 때 누구나가 다 아는 그 ‘누군가’가 그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위로의 노래다. 신앙을 떠나서도, 우리의 삶 역시 우리가 알지 못하는 누군가의 도움과 헌신의 바탕 위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들이 하는 훈련은 국가와 민족을 위해 온몸 바쳐 행하는 기도다. 그들은 국가를 수호하고 국민을 지키는 임무 수행을 위해 눈보라치는 이 산길로 접어들었다. 그들이 수호하려는 국가는 내 조국이요 나는 그들이 지켜내려는 국민들 중의 한 사람이다. 그러니 그들은 나를 위한 기도를 하다가 죽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모두 이십대의 꽃 같은 나이였다. 나는 지금 이광암 하사가 죽은 그 자리에 서 있다. 아직 스무 살도 되지 않은 어린 병사도 그날 밤에 얼어 죽었다. 오수남 하사다. 김광석 대위는 전역을 앞두고 마지막 훈련에 나선 가장이었다. 나는 잠시 고개 숙인 후 왔던 길로 뒤돌아섰다.
백두대간길 찾기 위해 검색하던 중 삼도봉에서 약 5Km 떨어져 있는 민주지산의 비극을 알게 되었다. 그들이 죽어간 자리에 무인대피소가 설치되어 있다는 사실도 알았다. 그들을 추모하고 싶었지만 대간길에서 너덧 시간 벗어나는 걸음을 해야 해서 나는 망설였다. 그날 그들이 겪었을 고통을 생각하면 주춤거린 내가 미안하다. 그들은 속리산을 넘고 백화산을 거쳐 월악산 너머까지 갔어야 했다. 그러나 나라와 국민을 위해 봉사하다 고통 속에서 죽어간 병사들의 행군은 민주지산에서 멈췄다.
그대, 삶이 외롭고 힘든가? 그러나 힘내시기를. 지금도 누군가는 그대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