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 세상에서 아비와 자식이라는 특별한 인연으로 만났다
아들아,
취업을 축하한다. 졸업도 하기 전에 기쁜 소식 전해 줘서 고맙다. 요즈음 많은 젊은이들이 대학을 마치고도 일자리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시절이어서 그 고마움은 더하다. 물론 아무리 힘든 세월이라 해도 너에 대한 믿음을 놓아 본 적은 없었다. 중고교 시절 네 학업 성적이 그리 뛰어나지는 못했어도, 그래서 소위 말하는 일류 대학에 진학하지 못했어도, 그래서 문득문득 네 앞날이 걱정되기는 했어도, 그래도 너에 대한 믿음만큼은 늘 철석같았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것이 아무런 근거 없는 맹목적인 믿음은 아니었던 것 같다. 물론 좋은 학벌과 뛰어난 지적 능력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훌륭한 무기가 됨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이 세상살이 무기의 전부가 아닌 것도, 또한 그보다 훨씬 더 소중한 무기가 있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비록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는 않지만 네가 바로 그런 좋은 무기를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 아빠의 믿음은 거기에 근거한 것이다.
너는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한 청년이다. 또한 너는 무엇을 하든 결코 가볍지 않고 진중하게 행동하는 청년이다. 꼭 알았으면 한다. 그것은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너의 자산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요즘처럼 온갖 반칙과 불공정이 판치는 혼탁한 세상에서 이런 것들은 자칫 ‘공허한 염불’로 치부되기 쉽다. 그러나 긴 호흡에서 보면 결코 그렇지 않다. 그것이 올바른 것이기 때문이다. 네가 가진 ‘성실함’이, 이 세상을 한순간에 획기적으로 바꿀 수 있는 대단한 덕목은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세상이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데 밑거름이 되는 덕목임은 분명하다. 이렇듯 성실한 사람은 한순간에 대단한 성취를 이루지는 못해도 서서히 빛을 발하고 지속적으로 발전해 끝내는 적지 않은 성과를 내는 사람이다. 너는 바로 그런 사람인 것이다. 거짓 없이 말하건대 네 나이 때의 아빠는 너만큼 성실하지도 진실하지도 책임감이 강하지도 않은 청년이었다. 그래서 너희들을 훈육할 때마다 늘 마음 한구석에는 당당하지 못한 그 무엇이 있었다. 그러나 너는 아비의 그런 망연함에도 불구하고 올바르게 성장해 이제 세상 밖으로 나가는 길목에 당당하게 섰다. 네가 자랑스럽다. 그리고 감개무량하다.
물론 네가 입사하는 그 회사가 대단한 일류 기업은 아니라는 것은 안다. 지금은 그저 단단해 보이는 중소기업이지만 그 회사 역시 너처럼 무궁무진한 발전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회사일 것이라고 믿는다. 그런 회사가 너를 선택했고 너는 거기에 동의했으니 이제 그곳에서 네 역량을 한껏 펼치기를 바란다. 이제 너의 또 다른 시작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세상살이가 그렇듯 많은 어려움이 따를 것이다. 돈을 받고 하는 일이니 업무에 대한 버거움이 있을 것이고 사람들 모여 일하는 곳이니 인간관계의 갈등도 수반될 것이다. 문득문득 앞날에 대한 고민이 엄습할 것이고 이성 문제로 희비가 교차할 때도 있을 것이다. 이제 너도 어엿한 성인이 되었으니 심지어는 부모형제와도 불편한 일이 있을 수 있고 전혀 예기치 않았던 일이 돌발해 주변 사람과 다툼이 벌어질 수도 있다. 자신도 모르게 삶의 균형이 흐트러질 수도 있고 그로 인해 무너진 것을 회복시키기 위해 굳은 결심을 해야 할 수도 있다. 믿었던 친구의 배신으로 가슴이 아플 수도 있고 사랑의 불협화음에 스스로 마음을 달래야 하는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일들은, 아무리 애를 써도 골을 넣지 못할 수 있고 아무리 수비해도 골을 허용할 수 있는, 네가 좋아하는 축구에서 일어나는 일과 비슷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가 계속 축구를 하는 것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살아내야 하는 것’이 바로 인생이다.
사회에 첫발 내딛는 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야 아비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만큼이나 많겠지만 자칫 두서없는 잡설이 되기 쉽다. 하여 이 두 가지 이외의 나머지 말은 모두 기도를 통해 마음으로 전하도록 하마.
우선 살아가면서 어려움이 닥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스러울 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무엇보다 자신을 믿고 행동해라.’
남을 통해 얻어지는 용기보다 자신의 믿음을 통해 발현되는 용기가 훨씬 더 값진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너의 생각과 판단과 결심을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에 앞서 많은 고민을 하고 값진 조언을 듣는 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다. 그렇지 않으면 혼자만의 아집에 사로잡히기 쉽다.
또 한 가지가 더 있다.
‘학교생활의 대부분은 공부하는데 소비되고 사회생활의 대부분은 돈 버는 일에 소비된다. 세상 모든 부모가 그렇듯이 나 또한 네가 많은 돈을 벌기를 바란다. 그러나 네 땀이 스며들지 않은 네 수중의 돈은 자신을 해치는 흉기가 될 뿐이다. 세상 어느 부모가 날 시퍼런 흉기로 자해하는 자식 보기를 원하겠느냐. 그러니 어떤 경우에도 그런 돈을 탐하지 마라. 또한 어떤 경우에도 그런 돈의 유혹에 흔들리지 마라. 설령 네가 가난한 자가 될지라도.’
삶을 반추하면 네게 이런 충고하는 아비 마음 또다시 당당하지 못하다. 자신에 대한 믿음 부족한 삶을 살았기에, 또한 헛된 돈의 유혹에 흔들리는 삶을 살았기에 그렇다. 이 또한 네가 부족했던 아비를 뛰어넘는 자식이 되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하는 말이다.
그동안 부족한 부모 아래서 크느라 고생 많이 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중학생이던 누나와 함께 북경으로 온 너희들과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 불면의 밤을 지새운 적 많았다. 점심시간 아빠가 싸 준 도시락 꺼내기가 부끄러워 친구들 눈치 보는 자식들 마음 알면서도 어쩔 수 없었다. 귀국해서 마땅히 거처할 곳 마련치 못해 시골학교 기숙사에 너를 보내고 뒤돌아서던 그날 밤의 마음은 세차게 내리던 빗줄기가 대변했다. 방학 때마다 스스로 용돈 벌기 위해 공사 현장으로 떠나는 너의 뒷모습 바라보는 맘 많이 아팠다. 아비 마음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네 마음은 어땠겠느냐.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늘 입으로가 아니라 눈빛과 마음으로 말했던 너를 한없이 사랑한다. 이 세상에는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인연들이 있고 그중에서 우리는 아비와 자식이라는 특별하고 소중한 인연으로 만났다. 무엇이든 최선을 다해야 하는 인연이다. 그래야 함에도 불구하고 내가 너에게 최선을 다한 아비였을 리 없다. 행동으로는 그저 아비 흉내만 낸 시답잖은 아비였다. 그 대가로 너는 늘 결핍에 시달려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마음으로는 예수님 흉내를 내려고 애쓴 아비였음을 이해해 다오. 그러나 이제는 너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이 세상에 너의 진가를 알릴 수 있는 시간이 온 것이다. 힘찬 날갯짓 시작해라. 분명 좋은 날이 도래할 것이다.
자, 이게 너에게 주는 마지막 용돈이다. 또 하나의 봉투가 더 있다. 아빠의 소중한 친구도 네 앞날을 응원하기 위해 금일봉을 전했다. 그동안 부족한 아비 아래서 크느라 고생 많이 했다.
2019년 10월 25일
아버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