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십의 꿈

천천히 가야 끝까지 갈 수 있다.

by 숲속의 고목나무

샤워 후 거울 앞에 선 나는 무심코 내 몸을 응시했다. 오십 넘어서면서부터 늘 신경 쓰이는 것은 뱃살이었다. 그러나 거울에 비친 하복부는 평소 내가 느끼고 있던 팽만감만큼 심하게 부풀어 보이지는 않았다. 다행이다. 옆구리 쪽 살점도 좀 삐져나오기는 했지만 그리 흉측한 몰골까지는 아니었다. 이래저래 몸을 훑어보다가 괜히 기마 자세를 취한 채 양팔 구부리고 가슴팍에 힘을 팽팽하게 줘 본다. 그런다고 없는 근육과 알통이 치솟을 리 없다. 그저 시답잖은 남자들이 자신의 왜소함을 위로하는 의식일 뿐이다. 쓸데없이 용을 쓰고 나니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제야 정신이 퍼뜩 들어 힘줬던 몸을 풀고 돌아서려는 순간, 옆에서 조사(照射)된 내 나신(裸身)이 거울에 비쳤다. 눈을 의심했다.


내 몸의 측면도는 거울 정면에서 바라봤을 때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거울을 곁눈질한 채, 서서히 숨을 뱉어내며 몸속 공기를 다 빼고 나니 아랫배는 축 처졌다. 망측했다. 앞에서는 평지처럼 보였던 아랫배가 옆으로 보니 김정은의 목살을 갖다 붙여 놓은 것처럼 융기되고 늘어졌다. 일 때문에 관리하지 못한 내 아랫배는 지난 일 년여 동안 끊임없이 발효되어 결국 이 지경이 되고 말았다. 이대로 방치해 놓을 수는 없는 일이다.


살면서 단 한 끼도 허기를 감당하지 못한 적 없었건만 언젠가부터 나는 허기를 느끼곤 했다. 삶의 허기였다. 허기진 삶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저 위장이 아니라 마음이 비어 있는 상태라는 정도만 짐작할 뿐이다. 허기진 배야 밥으로 채울 수 있지만 허기진 삶을 채우는 것은 밥이 아니라 꿈과 사랑일 터, 그러나 사랑이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그래서 나는 중년이 되어서도 늘 꿈을 껴안고 살아야만 했다. 언젠가는 내 두 발로 우리 강토의 등줄기를 걷겠다는 백두대간 종주의 꿈도 내 가슴속에 머물러 있던 꿈 중 하나였다.


오늘 나는 아랫배가 흉물스럽게 튀어나온 것을 목도한 이참에 그 꿈을 결행하기로 마음먹었다. 이것이 내 빈 가슴에 무엇을 채워줄지는 모른다. 그러나 최소한 뱃살만큼은 다스려 줄 것이라는 소박한 믿음과, 어쩌면 아직까지 남아 있는 내 인생의 깊은 자상(刺傷)의 흔적을 온전히 치유해 줄지도 모른다는 기대는 있다. 그저 육십 된 남자의 만용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산을 오르기로 마음먹은 것은, 이렇듯 돌출된 아랫배와 허기진 내 삶을 들여다보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이제 나는 등짐 지고 집을 나서 장도에 오른다. 내 중년의 삶에 꿈과 희망을 불어넣는 것은 오직 나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므로. 또한 마음이 허해진 중년의 가슴속에도 여전히 용기의 불씨가 살아 있음을 확인하고 싶으므로. 그리하여 내 아팠던 지난날의 상처를 온전히 아물게 하고 싶으므로.


지리(智異)는 오월의 신부처럼 신록으로 짙게 분칠 했다. 대원사는 내리깐 새색시의 눈꺼풀처럼 고요했고 유평계곡 물줄기는 흥분한 새신랑의 속내처럼 쿵쾅거렸다. 산새들의 지저귐은 옥구슬이 우주의 건반 위를 구르는 천상의 소리인 듯 몽환적으로 들려왔다. 그 청아한 음색에 화답한답시고 나도 모르게 울대를 꿀렁거려 소리를 내뱉었다. 숲 속의 온갖 조화를 다 깨뜨리는 해괴망측한 잡소리가 튀어나왔다. 내가 내질렀지만 재수 없었다.


다섯 시간 남짓 걸려 치밭목 대피소에 도착했다. 2년 전 산행 기록을 들춰보니 그때보다 한 시간쯤 늦었다. 그 사이에 나는 그만큼 늙은 것이다. 이제 겨우 10여 km를 걸었을 뿐인데 나는 벌써부터 막막했다. 고개를 직각으로 세웠지만 천왕봉은 보이지도 않는다. 이대로 가다가는 백두대간은커녕 지리산 벗어나기도 힘들 것 같다. 몸은 땀범벅이고 마음은 뒤범벅이다. 나는 산 중턱이 아니라 용기와 만용의 갈림길에 서 있었다. 앞으로 내달려 끝내 이루어내면 용기 있는 자 될 것이요 뒤돌아서 하산하면 순간적인 감정에 떠밀려 허세 부린 자 될 터, 지금까지 나는 스스로 부끄러운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나는 이제라도 용기 있는 중년이 되고 싶었다.


그간 수차례 더듬었던 지리산 종주길, 나는 무엇 때문에 그리 숨 가쁘게 내달음질 하기만 했던가. 덕분에 다리통 굵어지고 폐활량은 늘었을지언정 산길 들어선 목적이 그것만은 아닐 터, 나는 그저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빨리 해치우려고만 했었다. 오르막길 두려워 내리막길 즐기지 못했고, 저 고개 오르는 게 걱정돼 이 고개 올라선 기쁨 못 누렸다. 이 봉우리 올라서면 저 봉우리 두려웠고 오를 때는 죽겠다 엄살떨고 하산길은 막막하다고 툴툴댔다. 혼자 나서면 외롭다 푸념하고 함께 하면 거추장스럽다며 곁눈 흘겼다. 집에 있으면 좀 쑤시고 산길 접어들면 이 모양이니 나는 도대체 어쩌잔 말인가.


굽이굽이 늘어진 능선길이 우여곡절 갈라지고 찢어졌던 내 인생길과 다를 바 없다. 그래서 나는 산길 헤집듯이 그렇게 허겁지겁 살아온 모양이다. 그러니 사는 게 왜 힘들지 않았겠는가. 산길 걷는 거나 인생길 가는 거나 짊어진 등짐 무거운 건 매한가지, 설치면 설칠수록 힘만 더 빠지는 것을 왜 이제야 깨닫는가. 빨리 하산해 무슨 큰 업적 쌓을 일 있어 밤잠 설치고 새벽 운무 헤쳐 가며 그토록 숨 가쁘게 내달렸던가.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천천히, 그리고 쉬엄쉬엄 가야 한다. 나는 오늘 밤 예약했던 세석대피소를 취소하고 이보다 10리가량 더 가까운 장터목대피소로 변경했다. 또한 내일 화엄사로 하산하려던 계획을 철회하고 마지막 기착지인 노고단 대피소에서 하루 더 머물기로 했다. 이것만으로도 마음이 여유롭다. 나는 배낭을 걸머지고 천천히 일어섰다. 천왕봉을 향해 다시 걸음을 내디뎠다.

SE-46d59e10-b07d-483b-83e2-ad005f7351b1.jpg 땅에서 사라진 봄이 이곳에 와 있었다. 뒤로 운무에 휩싸인 천왕봉이 보인다

밑에서는 자취 감춘 철쭉이 천왕봉 가는 길에 만발했다. 오월 중순, 땅에서 사라졌던 봄이 여기에 와 있었다. 봄은 두 갈래로 갈라져 입체적으로 가고 있었다. 남도에서 시작해 북상한 봄은 지금쯤 백두산 근처 어딘가에 머물 것이고, 땅에서 피어나 위로 치솟은 봄은 지리산 꼭대기에 와 있었다. 운무에 휩싸인 천왕봉이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라는 주목(朱木)과 지리(智異)의 정원에 핀 철쭉을 만났다. 나는 그것을 그저 ‘장관’이라고 중얼거릴 뿐이다. 우거진 수풀 속을 걷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 본다. 연녹색 나뭇가지 사이로 비친 하늘색이 짙푸르다. 또 한참을 걷다가 고갯길 멈춰 서서 저 멀리 남녘을 응시해 본다. 켜켜이 쌓인 산맥의 주름이 마치 떼 지어 날고 있는 익룡들의 거대한 날갯짓처럼 펄럭이는 듯하다.

gexJG5YJRZELtoti6X1zvgojuQ8.jpg 태곳적 하늘을 나는 익룡들의 날갯짓 같다

숱하게 다녔던 길이건만 처음 보는 광경이요 처음 느낀 감정이다. 그렇게 천왕봉에 오르고 장터목으로 내려와 하룻밤을 보냈다. 나는 이튿날도 또 그렇게 걸어 세석평전과 벽소령을 지나고 칠선봉과 영신봉을 넘었다. 연하천을 건너고 토끼봉과 삼도봉 거쳐 해질 무렵 되어서야 노고단에 도착해 한 술 떴다. 나는 가쁜 숨 몰아쉬며 맹렬하게 걷지 않았다. 뒤돌아볼 겨를 없이 그저 앞만 쳐다보며 걸었던 지난날, 앞에 놓인 길은 늘 아득했고 걸어온 뒷길은 그저 허무했다. 천천히 걸으니 몰랐던 것을 알게 되고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기도 했다. 그간 나는 얼마나 많이 소중한 것들을 놓치고 지나치며 살아왔겠는가. 어쩌면 '육십'은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고, 그것을 소중하지 않은 것과 구분해야 하는 나이인지도 모른다.


지리산에서 시작해 덕유산 소백산을 거쳐 태백과 설악에 이르는 백두대간 길, 먼 걸음이니 설쳐서는 안 된다. 천천히 가야 끝까지 갈 수 있다. 등짐 무거울수록, 또한 가야 할 길 멀수록. 고작 천여 킬로미터 남짓한 백두대간 가는 길이 이럴진대 인생길 가는 거야 더 말할 것도 없다. 내 인생에서 제일 먼 길은 지리산 종주 길도 백두대간 길도 아닌 바로 내 인생길 아니겠는가. 그러니 천천히 가야 한다, 천천히.


나는 2019년 5월 15일 아침 대원사에서 출발해 그날 밤은 장터목대피소에서, 이튿날은 노고단 대피소에서 밤을 보내며 백두대간 종주를 시작했다. 장터목의 밤은 시끄러웠고 노고단은 고즈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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