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을 잊은 그대에게

그대! 걱정 너무 많이 하지 마시라.

by 숲속의 고목나무

어제와 오늘과 내일이 그렇듯, 걸어온 길과 걸어가야 할 길이 무심하게 이어져 있다. 나는 이제 이곳 성삼재를 떠나 지리의 서북(西北) 능선 길로 들어선다. 발걸음의 기수를 북쪽으로 돌리는 것이다. 가기로 했으니 가야 하나 가보지 않은 길이어서 떨린다. 다리가 후들거리면 쉬어야 하지만 마음이 후들거릴 때는 쉬면 안 된다. 망설임 없이 담대하게 진군해야 한다. 대원사에 첫발 내딛던 그날도 그랬지 않았던가. 그때처럼 또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 길을 걸을 수 있는 것은 행운이고 축복이다. 오직 생명체만이 현재의 길을 떠나 미래의 길로 향할 수 있으니.

작은고리봉을 지나 묘봉치 거쳐 만복대로 뻗친 길은, 거기서부터 내리막길 한참 내달려 정령치에서 잠시 쉬었다가 다시 고리봉으로 치솟으며 이어진다. 여기서 지리산과는 작별해야 한다. 지리산 서북능선은 세걸산과 바래봉 덕두산으로 계속 이어지지만, 백두대간은 고리봉에서 하산해 본격적으로 북진하기 때문이다.


산은 길을 품고 길은 사람을 품는다. 지금 나는 그 길 위를 걷고 있다. 산과 나를 잇는 이 길은 어머니와 나를 이었던 탯줄과 같다. 어머니의 탯줄이 말없이 내게 생명을 주었듯이 이 산길도 묵묵히 내게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나는 두 번 태어났다. 한 번은 어머니에 의해, 또 한 번은 산에 의해. 어머니는 세상에 태어난 나를 품었지만 산은 세상에서 버려진 나를 품었다. 어머니는 나를 금지옥엽 보듬으며 키웠지만 산은 무심하게 나를 키웠다.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어머니는 내가 강보에 싸였을 때부터 키웠고 산은 내가 마흔 넘어서부터 키웠으니. 어머니는 나를 길러 세상으로 내보냈고 산은 세상을 떠돌다 지쳐서 돌아온 나를 껴안았다. 세상으로 길을 나설 때 나를 배웅했던 어머니는, 날카로운 세상의 칼날에 베인 상처를 움켜쥐고 내가 돌아왔을 때는 없었다. 나는 고아가 된 것이다. 그래서 산이 없었으면 나는 큰일 날 뻔했다.


어머니는 늘 걱정이 많았다. 걱정의 8할은 아마 나였을 것이다. 나도 어머니를 닮아 걱정이 많았다. 어머니도 걱정하고 나도 걱정했지만 어머니는 나를 걱정했고 나는 나만 걱정했다. 그래서 지금 내 등짐에는 온통 걱정이 담겨 있다. 입하가 지났어도 혹여 산에서 얼어 죽을 까 봐 튼실한 텐트가, 산속 야영 중 찬이슬 맞고 입 돌아갈까 봐 두터운 침낭이, 혹시라도 등에 깔린 잔돌 때문에 잠자리 불편할까 봐 푹푹한 매트리스가, 산속 떠돌다가 행여 굶을까 봐 여러 끼니와 조리 장비가, 목 타는 갈증 때문에 죽을까 봐 4L의 물이, 땀범벅이 된 몸 때문에 옆 사람에게 민폐 끼칠까 봐 하산 후 갈아입을 내의와 옷까지. 나는 20Kg의 걱정을 짊어지고 산길을 걷고 있다. 걱정이 많아 힘겨웠다. 인생 또한 그러하리라.


저 멀리 오른쪽으로 내가 걸어온 능선길이 아득하게 보인다. 서서히 치솟다가 급격하게 가라앉고 한숨 돌려 다시 오르는가 싶더니 또 내려앉기를 반복하는 지루한 굴곡. 자세히 뜯어보니 거칠게 표시한 내 인생의 곡선 그래프다. 나는 지금까지 이 인생 그래프를 그리기 위해 지리산의 끝과 끝을 지겹도록 오갔던가 보다. 이제는 벗어나야 할 때가 됐다.

Screenshot_20190627-1152571.jpg 지리산과 작별해야 하는 마지막 봉우리다. 이제는 본격적으로 북진해야 한다

노치마을에 도착했다. 마을 앞 넓은 들녘에는 저녁 햇살이 따사롭게 내려앉고 있었다. 마을에 들어서자 나는 헛웃음 지었다. 해발 오백여 미터에 자리 잡은 이 평화로운 마을은 거의 대부분이 민박집이었다. 게다가 이 마을에는 예부터 근동 사람들이 신성시한 약수터가 있었다. 오늘 하루 동안 나는 물 두 병만 들고 는실난실 산행한 후 이 마을 민박집에서 편하게 하룻밤을 보내도 될 터였다. 그것도 모르고 20Kg 가까운 등짐 지고 산길 16Km를 오르내리며 걸었다. 온몸이 욱신거리고 어깨는 따가웠다.


2007년, L 일당에게 회사를 통째로 뺏겼던 그때, 나날이 이어졌던 숱한 불면의 밤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저민다. 이역만리 타국에서 아직 여물지 않은 자식들을 껴안고 당장의 생계와 앞날을 걱정해야 했던 심정은 세상의 어떤 언어로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이자 슬픔이었다. 그로부터 십수 년이 지난 지금 아이들은 고맙게도 다 잘 컸다. 그것은 백 번 천 번을 생각해도 정말 고마운 일이다. 큰딸은 시집가서 잘 살고 둘째 딸은 직장 다니면서 잘 살고 막내 녀석은 학교 다니면서 잘 산다. 나도 배낭 걸머메고 백두대간 길 걸을 정도로 건강하게 잘 산다.


돌이켜보면 그 이후로도 돈은 쭉 없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돈 없다고 밥 한 끼 굶은 적 없고 돈 때문에 자식들 공부 못한 것도 없다. 그렇다고 엄동에 몸 뉘일 곳 없어 다리 밑에 가마니 깔고 잔 적 없고 마실 물 없어 억지로 갈증 참고 살지도 않았다. 물론 자식들이나 나나 먹고 싶은 거 다 못 먹고, 입고 싶은 거 다 못 입고, 하고 싶은 거 다 못하고 살기는 했다. 널찍한 집에서 등 따시고 배부르게 살지도 못했다. 공사판에 들락거리기도 했고 사는 게 서러워 눈물 훔친 적도 있기는 했다. 자식들은 자식들대로 힘든 적 많았을 테고 울기도 하면서 자랐을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우리는 삶의 대열에서 이탈하지 않고 꾸역꾸역 살아냈다. 저절로 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비장하게 목숨 건 적도 없으니 그저 견딜만한 일 견디며 산 게 전부다.


물론 현재의 내 삶에 대해 누군가가 성적을 매긴다면 보나 마나 내 학교 다닐 적 저 밑자락에서 놀던 석차와 비슷할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의 삶이 남아 있지 않은가. 그렇다고 언감생심 일등을 바라지도 또한 꼴찌라고 부끄러워하지도 않을 자신은 있으니 그까짓 석차야 올라도 내려도 상관없다. 그저 한 인간으로서의 자존감만 지키고 살 수 있으면 그걸로 족하다. 지난 세월 돌이켜보니 걱정 너무 많이 하고 살았다.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크고 작은 삶의 해일이 몰아친다는 것을 알았다. 그 판국에 살 뒤룩뒤룩 쪄서 코 골고 배 긁으며 늦잠 잘 수야 있겠냐만 그렇다고 밤잠 못 자고 걱정한다고 달라질 것은 없다.


내려놓은 배낭을 보며 잠시 상념에 잠겼다. 70리터 공간을 가득 채우고도 부족해 위로는 텐트가 얹혀 있고 뒤로는 매트리스가 두툼하게 매달렸다. 덕지덕지 붙어 있는 걱정일 뿐이다. 이것들이 없어도 나는 틀림없이 여기까지 왔을 것이다. 훨씬 더 가볍고 홀가분하게. 그날 저녁 나는 노치마을 뒷산에 텐트 치고 밤을 보냈다. 이것저것 너절하게 준비했지만 라면 하나 끓여 먹은 게 전부다. 이튿날 아침, 전날 갈증 참아가며 하루 종일 짊어지고 다녔던 물 버리고 약수 새로 퍼 담아 다시 산길 나섰다. 걱정 너무 많이 했던 게 확실하다.


어쩌다 세상이 휘두른 난도질에 상처 입은 그대, 혹시 그대도 지난날의 나처럼 걱정 너무 많이 하며 살고 있지는 않은가? 눈뜨자마자 걱정으로 하루를 시작해서 하루 종일 걱정만 하다가 밤 되면 또다시 걱정의 이불을 덮고 잠들지 않는가? 당신이 한 걱정 덕분에 지금 자신과 가족들이 살아있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다. 걱정의 힘으로 살아남은 게 아니라 걱정 때문에 하루하루 사는 게 더 힘들었을 뿐이다. 걱정 너무 하지 마시라.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 최선 다해 살다 보면 그다음은 누군가가, 또한 그 무엇인가가 당신을 위해 다 알아서 해 줄 것이니.


2019년 5월 28일 지리산 서북능선 길 따라 고리봉까지 걸었다. 거기에서 하산해 노치마을 뒷산에서 하루를 보낸 뒤, 29일에는 수정봉, 입망치, 여원재를 거쳐 고남산에 올랐다가 통안재로 내려왔다. 마을로 내려와 물으니 남원시 운봉읍 권포리라고 했다. 집에 오니 밤이 늦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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