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유산

몸 - 내 영혼이 사는 집

by 숲속의 고목나무

그날도 여느 때처럼 새벽길을 나섰다. 나는 무심코 길을 나섰지만 결과적으로는 공포의 도시를 탈출한 셈이었다. 그날 날이 샐 무렵부터 대구에서 코로나 19 바이러스가 창궐하기 시작했으니. 내가 육십령 고갯길에서 신발 끈 조이며 마음의 갈피 다잡고 있을 때 산 아래쪽 사람들의 마음은 길길이 흔들리고 있었다.


당초보다 일정이 늦어졌다. 이틀 동안 내린 눈 때문에 덕유산의 입산이 통제됐기 때문이다. 길은 열렸지만 여정은 힘들었다. 아이젠과 스패츠를 장착했지만 수도 없이 미끄러지고 나자빠졌다. 첫날은 육십령에서 삿갓재 대피소까지 아홉 시간 걸렸고, 이튿날은 꼬박 열두 시간 걸었다. 산이 높고 능선의 굴곡이 심해 이틀 내내 숨 가빴다.


령嶺은 높고 봉峰은 가팔랐으며 치峙는 패여 있어 오를 때는 숨찼고 내릴 때는 걱정됐다. 봉은 즐비했다. 또한 봉과 봉 사이는 넓고 깊어 밑으로 내딛는 걸음 위험했고 다시 오를 일은 꿈같았다. 몸이 힘든 오르막과 마음이 힘든 내리막이 내내 꿀렁거리며 이어졌다. 내 마음도 덩달아 출렁거렸다. 그나마 견딜 만한 등짐이어서 견뎌냈다. 서봉에 올라 걸어온 길 뒤돌아봐도, 남덕유에 걸터앉아 앞길 내다봐도 능稜의 선線은 켜켜이 이어지고 산山의 맥脈은 첩첩이 겹쳐 있다.


저 멀리 보이는 지리의 능선이 여인네들 봉긋하고 잘록한 몸매처럼 눈부시게 아름답다. 눈길 가까이 옮겨 보니 덕유의 산세는 힘줄 불끈 솟아오른 근육질 남자의 우람한 팔뚝처럼 굳세 보인다. 저 멀리의 다소곳한 지리가 곁눈질할 만하다. 남덕유를 거쳐 삿갓재 대피소에 이르니 밤이 이슥했다. 안으로 들어서자 종일 찬바람 맞은 볼때기가 따끔했다. 젊지 않은 몸으로 청춘 흉내 내느라 몸이 욕봤다.

I-eECu9af5BzqqGjEtVi90PFqZ8.jpg 저 멀리 지리산 천왕봉이 아련하게 보인다
CCMA63O5j5lVLdZOSOz8PUr0g_A.jpg 다음날 새벽 무룡산에서 일출을 보며 능선을 걸었다

이튿날 산행은 가혹했다. 신풍령까지 새벽 여섯 시부터 꼬박 열한 시간을 걸어야 했다. 그곳에서 접속 구간인 수내 마을까지 또 한 시간을 더 걸었으니 내 암만 산길 잘 덤벼도 알고서는 못 덤볐다. 덕유산 주능선의 분기점인 백암봉에서부터 사람 다니지 않는 험로여서 깊은 곳은 허리까지 쌓인 눈밭 헤쳐 나가야 했다. 눈 덮여 지워진 길 찾느라 수도 없이 헛걸음해야 했다. 나는 미치는 줄 알았다. 마치 악몽을 꾸는 듯했지만 어쩌겠는가. 뒤돌아서지 않는 한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것을. 인생 또한 이러하리라.


<산경표(山經表)>는 우리나라의 산맥 체계와 수계(水系)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지리서다. 1769년 여암 신경준이 지었다고 하나 확실치는 않은 모양이다. 우리나라 모든 산들의 족보라고 할 수 있는 이 책은, 백두산을 시조로 하여 그 자손 산들이 한반도 전역으로 퍼져나간 족적을 체계적으로 기록했다. 이에 의하면 산에서 발원된 우리나라의 모든 물줄기는 바다로 흘러가고, 땅에서 시작되는 모든 산줄기는 백두산으로 역류한다.


언뜻 단순한 지리 정보서처럼 보이는 이 책은 저작 원리가 매우 철학적이어서 놀랍다. ‘산은 스스로 물을 가르는 고개(嶺)’라는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의 개념이 그것이다. 물과 대립하는 관점에서 산을 정의했지만 동시에 ‘산은 물을 건너지 않고 물은 산을 넘지 않는다’며 둘의 조화로운 공존을 말하고도 있기 때문이다. 백두대간도 이 원리에 의해 생성된 큰 산길이다. 그래서 이 길 따라 계속 걸으면 발에 물 적시지 않고도 백두산에 닿을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중간에서 길을 가로막는 것은 물이 아니라 철조망과 지뢰밭이다.


사람의 육체가 살과 피로 이루어져 있듯 세상의 몸통도 산과 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세상의 모든 산줄기를 빼고 나면 물줄기만 남을 것이요 산하의 모든 물줄기를 지우면 오직 산줄기만 남을 것이다. 사람이 피와 살 어느 하나라도 없으면 살 수 없듯이 이 세상 또한 그러하다. 산은 사람을 가르고 물은 사람을 모으지만 산山과 수水가 서로를 넘보거나 해하지 않고 조화롭게 존재하듯이 우리의 몸과 마음도 그래야 한다. 그러나 원래부터 조화롭게 만들어져 있던 것을 깨뜨리고 파괴하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이다.


삼십 대 초반부터 몸에 이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수시로 관절 마디가 붓고 열이 나면서 며칠 동안 극심한 통증에 시달려야 했다. 손가락과 발가락뿐만 아니라 무릎과 어깨를 비롯해 모든 관절 부위에 무차별적으로 찾아오는 통증은 공포 그 자체였다. 증상이 시작되면 이불자락이 조금만 부위를 스쳐도, 잠결에 조금만 몸을 뒤척여도 고통스러웠다. 밤새도록 통증에 시달리다 아침이면 쾡한 눈으로 출근해야 하는 일상이 이어졌다. 시간이 갈수록 증상이 발현되는 간격은 점점 더 짧아지고 통증이 지속되는 기간은 더 길어졌다.


병원에서도 발병 원인을 쉽게 찾지 못했다. 증상은 류마티스 관절염이지만 혈청 검사 결과는 음성이고, 통풍을 의심해 봤지만 요산 수치는 정상이었다. 직장에 매인 몸이니 병원 갈 때마다 눈치 봐야 하는 것은 아픈 것만큼이나 큰 고역이었다. 결국 진통제를 찾게 되었다. 통증이 엄습하면 약 먹고, 약기운 떨어져서 아프면 또 약을 찾는 악순환의 시작이었다. 병든 몸 진통제 먹고 견디는 것은 썩은 이빨 치료 않고 금을 덧씌우는 것과 같다. 근본을 해결하지 않은 미봉의 후과는 크고 깊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복용하는 진통제의 양은 많아지고 횟수는 잦아졌다. 얼굴은 타들어가고 입술 또한 새까맣게 변색되어 갔다. 늘 더부룩한 내장인들 멀쩡 했겠는가.


세상도 점점 내 몰골을 닮아 갔다. IMF가 덮치자 다니던 은행이 부도났다. 설상가상으로 교통사고를 당해 몸이 부서졌다. 갈비뼈와 양다리가 골절되고 살점이 터져 대략 60여 바늘 꿰매는 몸 바느질을 했다. 얼굴에 박혔던 유리 파편이 수개월 지나 새살 돋으면서 비적비적 솟을 지경이었다. 몸 건사해 겨우 새 직장 구하고 나니 그 직장이 또 자빠졌고 이번에는 대표이사를 맡은 죄로 파산 책임까지 져야 했다. 그로 인해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재산까지 압류돼 몽땅 경매로 날아갔다. 경매당한 것도 억울한데 양도소득세까지 내라며 수천만 원짜리 고지서가 날아왔다. 양도한 적 없는데 무슨 양도세냐고 펄쩍 뛰니, 법은 경매도 양도로 본다며 어쩔 수 없다고 했다. 돈 한 푼 빌린 적 없는데 백억 원의 빚이 생겼고 그 돈 안 갚는다고 신용불량자가 되었다. 돈 갚으라고 고지서 날아오고 돈 안 갚는다고 또 날아왔다. 세금 내라고 고지서 날아오고 가산세 붙었다고 또 날아왔다. 국세청에서도 날아오고 지자체에서도 날아왔다. 세월 지나니 그 채권이 어디론가 이전되었다고 또 날아왔다. 그때부터는 이전받은 곳에서 또 고지서 폭탄 날려대기 시작했다. 기분으로는 받은 고지서의 종이 값이 백억 원어치 될 것 같았다. 아무리 그 짓 한들 갚을 돈 없으니 덤덤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고지서 한 장 날아올 때마다 수중에 없는 돈 대신에 몸속에 있는 세포 수천 개가 사멸되는 것 같은 따끔한 느낌이었다. 그렇게 내 몸속의 세포가 죽어갔다.


사람들은 믿음 부족하고 행동거지 불량한 사람을 ‘건달’이라 하고 눈 흘긴다. 그 맥락으로 보면 신용 사회에서 신용 불량한 사람은 ‘신용 건달’이다. 세상 사람들이 곁눈질하는 것도 똑같다. 나는 누명 썼다고 생각하지만 어쨌거나 대한민국의 공식 서류상으로는 나도 신용 건달이었다. 내가 그 누명을 벗기 위해서는 백억 원의 돈이 필요했다. 그만한 돈은 내 백 대 후손들까지 갚아도 다 못 갚을 돈이고 그 돈 있으면 차라리 누명 쓰고 살겠다 싶었다. 그래서 나는 이 땅에서는 건달로 살 수밖에 없었다. 건달이 건달 짓 말고 별로 할 게 없듯이 신용 건달도 신용 세상에서 할 게 별로 없었다. 그래서 나는 중국으로 건너갔다. 거기에서 어찌어찌해 먹고살만한가 싶더니 이제는 또 내가 세운 회사가 없어졌다. 중국인들에게 뺏겼으니 회사가 없어진 게 아니라 주인이 바뀐 셈이다. 내가 몸 담았던 회사는 내가 몸 담을 때마다 족족 나자빠지니 회사 때문에 내가 재수 없는 건지 나 때문에 회사가 재수 없는 건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내 몸속의 세포도 한 움큼씩 죽어간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때 내 몸은 죽기 일보 직전이었다. 나는 그렇게 오십을 맞이했다.


그즈음 베이징에 용한 중의사(中醫師)가 있다고 해 찾아갔다. 그는 내 눈 까뒤집고 혓바닥 내밀게 한 후 얼굴 뚫어져라 쳐다봤다. 이윽고 입을 열더니, 내가 병 때문이 아니라 진통제 때문에 죽을 것이라고 했다. 안 아프려고 약 먹었는데 그 약 때문에 죽는다는 말이었다. 진통제 먹고 있다는 말 하지도 않았는데 그가 어떻게 알았는지는 모른다. 그러면서 몸속에 쌓인 독소를 빼내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다.


그의 처방전은 글이 아니라 말이었다. 마음을 평안히 하고 땀을 흘리라고 했다. 속세 생활 접고 절에 가서 부지런히 산에나 다녀라, 는 말처럼 들렸지만 살기 위해서는 시늉이라도 내야 했다. 마음속의 고통을 없애기 위해서는 그것을 밀어낼 또 다른 마음이 필요했다. 마음을 일으키려면 먼저 몸부터 되살려야 하고 몸이 되살면 온당한 마음이 생기리라 믿었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못할 일도 아니었다. 약간의 비장한 결심과 자신에 대한 믿음 정도가 필요할 뿐이었다. 믿음이란, 모든 생각에 드리워진 의심의 그림자를 제거하는 것이다. 나는 세상의 이치와 내 생각을 믿기로 하고 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내 몸에서는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그의 주문은 누구에게나 다 적용되는 마법의 처방전이었다. 마음의 번뇌를 없애고 몸을 보살피는 일, 그것은 병들지 않은 자가 접종해야 할 예방 주사이자 병든 자가 복용해야 하는 치료약이다. 나는 내 몸을 폐허로 만드는 파괴자가 될 수도 있고 아름다운 정원으로 가꾸는 정원사가 될 수도 있다. 나는 내 몸의 주인이기 때문이다.


뒤돌아보니 모두 내가 만든 일이었다. 건강하지 못한 생각과 가당찮은 욕심으로 세상 바라본 적 많았다. 거친 태도와 올바르지 않은 생활 습관으로 소중한 일상을 스스로 얼룩지게 한 적도 많았다. 용량 넘는 생각과 역량 벗어나는 행동으로 늘 적정하게 유지되어야 할 마음의 온도와 심박수를 혼란케 했다. 마음의 칼로 안에서 공격하니 바깥의 몸이 어찌 배겨내겠는가.


사람은 몸과 마음의 합체다. 어느 것 하나라도 방치하면 결국에는 다 아프게 된다. 어느 것이 더 중요한지를 논하는 것은 닭과 달걀의 선후 논쟁과 같다. 세상의 산줄기와 물줄기가, 또한 우리 몸속의 피와 살이 조화롭게 순환할 때 모든 게 온전하듯이, 우리의 몸과 마음도 마땅히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세월 한참 지나서야 그때 내가 앓았던 병이 <재발성 류마티즘>이란 사실을 알았다. 면역체계와의 연관성만 짐작할 뿐 발병 원인은 아직도 오리무중이란다. 산에 다니는 것 말고는 아무런 치료도 받은 적 없지만 놀랍게도 이제 나는 옛날처럼 아프지 않다. 파산 선고받은 후 세월 많이 지나 신용 건달 신세 면한 덕택도 물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큰 이유는, 그때부터 몸은 정성 다해 가꾸고 마음에 붙어 있던 욕심의 찌꺼기는 하나둘씩 떼어냈기 때문일 것이다.


작년 지리산 대원사에서 홀로 시작한 백두대간 종주길, 뒤돌아보니 먼길 걸어왔다. 경남 산청과 전남 구례를 지나고 전북 남원시와 장수군, 그리고 경남 함양군 거쳐 이제는 거창으로 진입했다. 누가 돈 준다고 한들 그게 탐나서 이 짓 하겠는가. 험한 산길 다닌다고 다리통 자랑할 요량으로 이 짓 하겠는가. 오직 내 몸과 마음을 가꾸기 위한 여정일 뿐이다. 내 몸은 내 마음을 담는 그릇이자 내 영혼이 사는 집이니까.


무거운 짐 지고 먼 길 가고 있는 그대, 지금 많이 아픈가. 그대로 방치해선 안 된다. 몸이 아프다면 마음이 먼저 일어서야 하고, 마음이 아프면 몸부터 일으켜 세워야 한다. 몸으로 오는 고통은 마음으로 이겨야 하고, 마음의 고통은 몸으로 이겨내야 하기 때문이다. 먼저 몸을 바꿔라, 그러면 마음도 바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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