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풍행 첫차에 몸을 실었다. 김천 공용버스터미널에서 6시 45분에 출발하는 885-9번 버스였다. 시골 들녘을 거쳐 오십여 분 만에 덕산재에 도착했다. 경북 김천과 전북 무주를 가르는 담벼락의 난간이다.
산은, 잠은 깼지만 세수하지 않은 아이처럼 푸석했다. 산 밑 동네와는 달리 여기에는 아직 봄이 오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예사롭지는 않다. 저 진달래 꽃망울처럼, 곧 봄이 터질 것 같다. 그때가 되면 산에 윤기도 나고 향내도 풍길 것이다. 세수는 물론이고 신록으로 짙게 분칠까지할 것이다.
봄도, 매년 봄만 되면 나처럼 백두대간 종주를 시작한다. 여기까지는 내가 앞섰지만 나는 조만간 봄에게 추월당할 것이다. 나는 두 발로 꾸역꾸역 걷지만 봄은 성큼성큼 발걸음 내디디니. 나는 낮에만 걷지만 봄은 밤잠 안 자고 밤새도록 걸으니. 봄은 아무래도 축지법을 쓰는 것 같다. 같은 길을 걸어도 나는 땀 흘리며 북진하고 봄은 꽃을 흘리며 북상한다. 나는 일생에 단 한 번 이지만 봄은 매년 봄마다 이 짓을 한다. 확실히 봄은 나보다 체력이 더 좋은 것 같다.
부항령까지는, 제법 큰 봉우리 두어 개를 넘었지만 그리 모진 산길은 아니었다. 850 고지를 넘을 때 숨이 조금 가빴을 뿐이다. 그러나 순한 길은 거기까지였다. 백수리산과 박석산 너머 삼도봉으로 향하는 길은 멀고 거칠었다. 모두 천 미터 넘어서는 산이다. 겨우 한 봉우리 올라서면 무지막지한 봉이 버티고 있고, 그 봉을 넘으면 또 다른 봉이 나타나 길을 막는다. 오르고 나면 또 나타나고 넘고 나면 또 튀어나오니, 배낭 메고 산행하는 게 아니라 뿅망치 들고 두더지 잡기 놀이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꼬박 일곱 여 시간을 걸어 삼도봉에 도착했다. 경북 전북 충북을 가르는 분수령이다. 걸어온 길 되돌아보니 주름진 산맥이 굼실굼실 꿈틀댄다. 사실은 근육 풀린 내 눈알이 비틀거리고 있는 것이다.
산행하다 눈앞에 펼쳐진 높은 봉우리를 마주하면 주눅이 든다. 장시간 걸어 몸이 지쳐 있을 때는 한숨이 나오고, 저 고개만 넘으면 된다 싶었는데 또 나타나면 성질이 나기도 한다. 그때가 일몰쯤이면 마음이 조급해져 당황하기도 한다. 그러나 내가 어떤 마음이 든다 해도 산은 자비가 없다. 산이 지친 산객을 위해 스스로 고개 숙여 주겠는가, 아니면 길을 비켜 주겠는가. 그러니 모두 쓸데없는 감정이다. 그저 담대하게 한 발 한 발 걸음을 내딛는 게 최선이다. 지금, 심신이 지쳐 있는 당신의 인생 앞에도 이런 끔찍한 산들이 버티고 있지는 않은가? 망설이지 말고 한걸음씩 발을 내디뎌야 한다.
책은,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보라고 한다. 또한 눈앞이 아니라 멀리 보며 살라고 한다. 그리고 뒤돌아보지 말고 앞만 보며 살아가라고 한다. 그러나 나는 큰 산이나 높은 봉우리 앞에 서면 숲은 안 보고 나무만 본다. 또한 저 멀리가 아니라 그저 발밑만 쳐다볼 뿐이다. 가끔씩 내가 거쳐 왔던 산을 뒤돌아보기도 한다. 지금까지 넘었던 산을 바라보며 이번에도 또 해낼 수 있다고 스스로를 응원하기 위해서다. 이것이 높은 산을 대하는 나의 자세다.
까마득한 정상을 쳐다보면 그 위용에 압도당해 그만 주저앉고 싶어진다. 수천 혹은 수만 보를 걸어 올라야 하는 고통이 두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아무리 힘들어도 한 발 더 내디딜 힘은 있다. 그래서 가파른 산을 오를 때 매 순간 내 목표는 그저 ‘다음 한 발’이다. 보이지도 않는 저 멀리의 정상이 아니라 다음 발자국을 내디딜 바로 앞의 돌부리에 올라서는 것이다. 또한 떨어지지 않는 뒷발을 억지로 끌어올려 앞발보다 한 뼘 더 위로 옮기는 것이 목표인 것이다. 이 하찮은 ‘한 발’ 들이 모여 나를 정상에 오르게 하고 큰 고개를 넘게 해 그날의 등산을 완성시킨다.
‘하찮은 것들이 모여 완벽함을 만들지만, 완벽함은 결코 하찮은 게 아니다.’
미켈란젤로가 한 말이다. 그렇다. 아무리 애를 써도 단번에 정상에 오를 수 없다. 또한 떨어졌다가 한순간에 제자리로 되돌아올 수는 없다.
실패란, 쌓아 올린 것이 무너져 내리는 것이다. 또한 올랐다가 떨어지는 것이고 걷다가 추락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것이 재물이든 명예든 사랑이든. 모든 실패 후에는 삶이 끝나는 것 같은 통증이 엄습해온다. 그것만이 아니다. 뒤에서는 후폭풍이 몰아치고 앞에는 큰 산이 가로막고 있다. 살기 위해서는 아픈 몸을 이끌고 험산준령을 넘어야 하는데 엄두를 내기 어렵다. 그래서 주저앉고 싶은 것이다. 나도 큰 실패를 했고 그때 내 마음도 그랬다.
나는 멀리 보지 않기로 했다. 눈앞에 보이는 나무만 보기로 한 것이다.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당장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아이들 밥 먹여야 하고 나도 밥은 먹어야 하니까. 나는 안 하더라도 아이들은 공부시켜야 하니까. 돌이켜보니 고단한 삶이었다. 일 시작한 지 30분 만에 해고되는 기염을 토하며 나는 생존 대열의 후미에 합류했다. 이삿짐을 제대로 나르지 못해서였다. 모멸감을 느낄 겨를도 없이 다른 일을 찾아야 했다. 부품 조립 공장을 기웃거렸고 밤새도록 택배물을 상차하는 극한직업의 고통도 맛봤다. 어설픈 대가도 치러야 했다. 빵을 구워 팔 때는 펄펄 끓는 기름에 손을 데기도 했고, 우유 배달할 때는 눈구덩이에 빠져 하염없이 눈물 흘리기도 했다. 정확하게 언제인지도 기억나지 않지만 한여름 뙤약볕 아래서 몇 달 동안 막노동을 해 아이 등록금을 벌기도 했다.
힘겹게 살고 있는 형이 안쓰러웠던지 하루는 동생이 찾아왔다. 그는 공무원이다.
“형님, 은행에서 제 신용으로 이천만 원 정도는 대출할 수 있다고 하니 그거라도 도움됐으면 합니다.”
눈이 뒤집어질 정도로 탐나는 돈이었지만 며칠 고민 끝에 ‘됐다’고 했다. 제수씨 몰래 저지르려는 짓일뿐더러, 내가 그 돈으로 무슨 일 할지 아무런 계획이 없으니 갚을 재간도 없었기 때문이다. 두 집구석 망하는 시작일 수도 있다 싶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는, 그 돈 다 쓰고 난 후 삶에 대한 면역력이 다 소진된 내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 눈앞의 나무나 발밑의 땅바닥만 쳐다보며 산길 걷듯이 꾸역꾸역 인생길을 걸었다. 실패 전에 잠시 누렸던 작은 부귀영화가 보이지도 않는 산정山頂이고 숲이라면 나는 영원히 그것을 못 볼 수도 있다. 또한 그것만이 ‘재기’라면 나는 영원히 ‘재기’라는 것을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고난에 직면해 좌절하지 않고 맞서는 것, 어려운 이들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헤아릴 수 있고 ‘밥벌이’의 고단함이 어떤 것인가를 깨닫는 것, 무엇보다 사랑하는 가족들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것, 이를 통해 삶의 가치를 조금이라도 느끼는 것이 ‘재기’의 기준이라면 나는 이미 ‘재기’했는지도 모른다.
2년 동안 해오던 주차장 운영을 그만두게 됐다. 열 손가락 다 곱아도 모자라는 내 경력에 또 하나의 경력이 추가된 셈이다. 앞으로도 얼마나 더 많은 손가락이 필요할지 모르지만 걱정하거나 뒷걸음질 치지는 않을 것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한 발 더 앞으로 내디딜 수 있는 힘은 있으니까.
2020년 4월 2일 덕산재에서 시작해 백수리산 박석산 거쳐 삼도봉에 이르렀다. 산삼 약수터에서 라면 한 개 끓여 먹고 김천 해인리를 거쳐 하산했다. 그날 내가 디딘 ‘한 발’들이 모여 산길 25km를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