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석 거리에서

육십 즈음에

by 숲속의 고목나무

길은 기껏 350여 미터, 그의 생애처럼 짧았다. 어둠이 내려앉자 거리는 차츰 빛나기 시작했다. 세상을 떠난 뒤 그가 조금씩 더 그리워졌던 것처럼. 그는 가락과 노랫말과 목소리로 사람들의 마음을 뒤흔들다 우리에게 그리움을 잉태시키고 떠난 사람이었다. 그래서 ‘김광석 거리’는 그리움과 추억이 뒤덮인 거리다. 그 길 위로 그의 노래가 흐르고 있었다.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그는 ‘서른 즈음에’를 이렇게 노래했다. 이 곡은 저물어가는 청춘에 대한 아쉬움을 농밀하게 표현해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은 노래다. 나도 내 나이 삼십 대에 발표된 이 노래가 좋아서 가끔씩 흥얼거렸다. 그러나 음치 겨우 면한 노래 실력에 아무리 목청 뽑은들 기껏 일 년에 한두 번 정도였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서른 즈음에’를 서른 즈음부터 대략 서른 번쯤 부르고 나니 노래는 아직도 ‘서른 즈음’인데 내 나이만 '육십 즈음'이 되어버렸다. 육십, 분명 죽기는 하지만 영영 죽지 않을 것처럼 살았듯 분명 오지만 영영 오지 않을 것 같았던 나이다. 짙은 안개가 걷히자 생각지도 못했던 해적선이 갑자기 출몰하는 영화 속 장면처럼 ‘육십’은 그렇게 내 앞에 나타났다.


2003년 가을 나는 양재역 부근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짐짓 태연한 척했지만 사실 나는 길게 늘어진 줄 속에서 적잖이 당황하고 있었다. 내 머리통은 자꾸 줄 옆으로 빼꼼히 삐져나와 버스 운전석 옆에 달린 이상한 물건으로 향했다. 버스에 오르는 사람들이 거기에다 지갑을 툭툭 갖다 대고 태연하게 들어가는 것이다. 어떤 여자는 자세를 낮추더니 어깨에 맨 가방을 슬쩍 대고는 유유히 들어갔다. 운전기사는 돈 받을 생각은 안 하고 승객들이 하고 있는 그 짓을 물끄러미 쳐다보고만 있었다. 내 머리는 헝클어져 갔다.


내가 IMF의 파고에 떠밀려 중국으로 넘어간 것은 2000년이었고 그 전까지 나는 지방에서 살았다. 한국을 떠날 때까지 내가 알고 있던 대중교통의 최첨단 지불수단은 구멍 뚫린 버스 토큰이었다. 그러니 몇 년 만에 출장 차 온 한국의 수도에서 펼쳐지고 있는 이 광경은 내게 기묘했다.


‘저 이상한 통에다가 지갑을 툭 갖다 대면 저게 지갑 안에 돈이 들어 있는지 없는지 다 안다는 말인데......’


하기야 사람 살 속에 있는 뼈도 손바닥 보듯 보는 세상인데 지갑 속에 있는 돈 보는 거야 일도 아니겠다 싶어 혼자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그렇다고 찜찜한 게 완전히 해소되지는 않았다.


‘그러면 저게 지갑 안에 돈이 얼마나 들어 있는지도 안다는 말인데...... 그렇지 않고서야 만약 못된 것들이 저기에다 빈 지갑을 툭 갖다 대고 들어가면......’


X-ray 찍으면 살 속의 뼈가 금 갔는지 부러졌는지 알아내는 거나 지갑 속에 돈이 얼마나 들어 있는지 아는 거나 별로 다를 게 없다 싶어서 또 혼자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그런데 지갑 안에 있는 돈은 어떻게 끄집어내고 잔돈은 또 어떻게 거슬러 주나 싶었다. 아무리 꼼꼼히 봐도 그런 프로세스가 진행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혹시나 싶어 다시 고개를 빼 그 이상한 통 주변을 훑었다. 지갑에서 빠져 나온 돈을 모아두는 돈 통은커녕 물통 같은 것도 없었다. 현기증이 났다. 나는 지금, 돈을 줘야 탈 수 있는 버스를 지갑만 보여 주고 올라타는 믿기 어려운 광경을 목도하고 있었다. 심지어 좀 전 그 여자는 지갑도 아니고 어깨에 멘 가방만 휙 보여주고 올라타지 않았는가. 줄은 빠르게 줄어들고 있었다. 서 있는 줄이 빨리 줄어드는 게 싫은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싶었지만 왠지 웃음거리가 될 것 같아 망설여졌다. 게다가 나는 여기서 입 다물고 있으면 아무도 모르지만 입을 여는 순간 백일하에 드러나는 치명적인 약점까지 안고 있어서 더더욱 용기가 나지 않았다. 바로 경상도 사투리였다.


‘이기 뭔교?’


그 괴기스러운 의문문을 서울사람들 앞에 구사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차라리 입 다물고 있는 게 낫겠다 싶어 그냥 입 다물고 버스에 올라탔다. 나도 지갑은 있다. 게다가 이 통이 오작동만 일으키지 않으면 쉽게 알아챌 수 있을 만큼 돈도 두둑하게 들어 있다. 조마조마한 마음을 감추기 위해 최대한 점잖게 지갑을 대고 들어갔다.


“손님, 한 번 더 대 주시겠습니까? 찍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안 찍혀?’ 내가 생각해도 긴장 때문에 지갑을 너무 약하게 댄 것 같았다. 그래서 손바닥에 힘을 바짝 줘 꾹 눌렀는데 운전기사는 똑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혹시나 싶어서 이번에는 지갑의 방향을 반대로 바꿔 갖다 댔다. 등과 겨드랑이에는 식은땀이 흥건하게 흘렀다.


“이번에도 안 찍혔습니다.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카드 한 번 확인해 보시죠.”


‘카드?’ 다행히 지갑에는 온갖 잡스러운 카드가 여러 장 꽂혀 있어서 이번에는 자신 있게 응수했다.


“지갑 속에 카드는 많습니다.”


차안의 분위기가 이상해져 가고 있음을 느꼈다. 운전기사의 언성도 조금 높아졌다.


“손님, 교통카드 말입니다. 거기에 교통카드가 있습니까? 바빠 죽겠는데.”


“예?”


난생 처음 들어보는 카드 이름이었다. 이 엄중한 사태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어 나는 이실직고하기로 마음먹었다. 정신이 혼미한 상태가 되어서 뭐라고 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물론 사투리로 더듬거렸을 것이다. 어쨌든 해석하면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사실 제가 중국에 있다가 와서 잘 모르는데요. 다른 사람들이 다 지갑을 대고 타길래 나도 댔습니다.”


최대한 음성을 낮게 깔았는데도 버스 안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운전기사는 웃느라 차를 출발시키지 못했고 내 주변의 승객들은 뒤집어졌다. 뒤에서 내 말을 못 알아들은 사람들이 진상을 파악하자 웃음소리는 뒷자리로 북상하면서 연쇄 폭발했다. 나 혼자만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멀뚱멀뚱하게 있었다. 이윽고 차는 출발했지만 사람들의 연민 가득한 눈길과 숨죽인 웃음소리를 견딜 수 없어 나는 다음 정거장에서 투신하듯 뛰어내렸다. 그리고는 털썩 주저앉아 머리를 쥐어뜯었다. 그때 버스 안에 가득했던 웃음소리는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가끔 환청으로 들리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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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십 너머의 삶은 이런 일들이 생각보다 자주 일어날지도 모른다. 세상이 변하는 속도와 ‘육십’들의 의식이 변하는 속도가 맞지 않아 초래되는 결과일 것이다. 이 부조화의 격차는 점점 더 커지고 간극은 점점 더 넓어질 것이다. 이는 세상의 중심에서 서서히 벗어나고 또 배제되는 과정이기도 하여 조금은 슬픈 일이다. 지구가 자전을 멈추면 세상이 끝나 버리듯, 우리의 의식도 세상의 변화에 맞게 자전하지 않으면 우리 또한 세상으로부터 격리되어질 것이다. 언젠가는 그렇게 되지 않겠지만 가만히 앉아서 당할 수야 없지 않은가. 생명체의 태동과 사멸 과정에 맞설 수는 없다. 그러나 조금씩 엇박자가 나더라도 세상의 걸음걸이에 발맞추기 위해 애는 써야 한다. 옛날과 달리 요즘 ‘육십’들은 남들이 보살펴 주기에는 애매한 나이다. 그러니 ‘육십’들은 스스로 ‘육십’을 보호하는 수밖에 없다. 사실 보릿고개도 심하게 겪지 않아 아직까지 피부도 탱탱한 축이고 험한 꼴 많이 보지 않아서 안질도 그럭저럭 괜찮은 편이다.


그러니 ‘육십 즈음’들이여! 그저 마음 넓게 먹고 몸 적당히 움직여 ‘육십’을 소중히 가꾸면 좋겠다. 어쩌면 세상은 '육십'들의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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