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소 바깥을 나오니 새벽 안개가 서서히 걷히고 있었다. 햇살은 돋았지만 아직 아침 이슬 머금고 있는 들판이 시푸르다. 오색찬란하지 않고도 황홀한 것이 바로 저런 것이다. 알프스 산 밑 마실이라고 유세 떠는 것 같다. 저 놈의 하늘은 또 어쩌자고 저렇게나 맑고 푸른가. 같은 하늘 밑인데 알프스 아래쪽이라고 특혜라도 받은 건가. 아침 산책을 위해 숙소 뒤편 오솔길로 들어서자 눈앞에 펼쳐진 광경이다. 더 머물고 싶다. 그러나 여기서 더 이상 어정거릴 시간 없다. 이제 서둘러 독일로 떠나야 한다.
체코와 오스트리아의 국경이 그랬듯이 오스트리아와 독일의 그것 역시 점선이었다. 이번에는 아예 도로 표지판 글꼴조차 같아 언제 독일로 넘어왔는지도 몰랐다. 독일과 오스트리아 모두 게르만족 후손들이라 하니 이들 두 나라는 뿌리가 같은 모양이다. 같은 꼴을 하고 같은 말을 사용하며 같은 글을 쓰는데 이들은 왜 두 개의 나라로 갈라져 사는가. 중세까지만 하더라도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신성로마제국'이라는 이름의 통일 국가였다고 한다. 천년 동안 이어져 온 이 제국은 1806년 나폴레옹에 의해 해체되면서 처음 분리되었다. 그 이후로도 역사의 거친 물결에 의해 몇 차례 이합집산한 모양이다. 그러다가 2차 세계대전의 패전으로 연합국에 의해 분할 점령되면서 또 다시 갈라져 지금에 이르렀다.
근대사만 본다면 비슷한 시기에 같은 방식으로 쪼개진 우리네 처지와 다를 바 없다. 등을 맞대고 살아 가니 앙금이 있을 것이고, 코를 맞대었으니 미운정도 들었을 것이다. 베토벤은 서로 자기네 나라 사람이라 뻐기고 히틀러는 서로 자기 동네 출신이 아니라고 우기는 모양이다. 그러나 런던올림픽 펜싱 결승전에서 독일 선수와 맞붙은 신아람 선수가 흘린 눈물은 오스트리아 심판의 '안으로 굽은 팔'에 의해 늘어진 '영원한 1초' 때문이었다. 이렇듯 이들 또한 우리처럼 쉽게 정리되지 않는 복잡한 감정을 가진 채 살아가고 있는 듯하다. 다만 한눈에 봐도 우리와는 다른 게 있다. 서로 곱지는 않아도 길은 뚫혀 있고 밉기는 해도 서로 총질은 해대지 않는 것이다. 지중해 물고기 죽을까봐 미사일 안 쏘는 게 아닐 테고 알프스산 담벼락에 탄피 박힐까봐 대포 안 쏘는 건 아닐 것이다. 그러고 보면 북쪽의 목살 두껍고 눈동자 희꾸무레한 젊은 것이 참 모질게 느껴진다.
뮌헨에 도착했다. 유럽은 유럽이었다. 여기까지 오는 길 양옆은 땋아 내린 새색시 댕기머리처럼 단정하고 깐총했다. 오는 내내 차창 밖 풍광은 한결 같이 정연했다. 덩치 커서 어설퍼 보이지만 야들은 청소도 잘하고 정돈도 잘하는 모양이다. 뮌헨의 첫 방문지는 <레지덴츠(Residenz) 박물관>이었다. 이곳은 원래 바이에른 왕국 비텔스바흐(Wittelsbach) 왕가의 궁전으로 지어진 건축물이었다고 한다. 1944년 연합군의 폭격에 의해 파괴되었다가 이듬해부터 복구를 시작해 20여년 만인1966년에 박물관으로 오픈했다니 그 정성이 놀랍다. 겉으로는 별다른 특색 없이 보여도 내부는 베르사이유 궁전에 비견될 만큼 아름답고 기품 있다 하더니 과연 그랬다. 16세기에 만들어진 <안티쿠아리움(Antiquarium)>은 정교하면서도 웅장했고 알프레히트 5세(Duke Albrecht V)에 의해 만들어진 <보물관(Treasury)>은 단촐하면서도 화려했다. 7세기부터 수집된 휘황찬란한 보물들로 가득했다. 알고 싶은 게 많았지만 글귀 모르는 까막눈이니 그저 눈으로만 구경하고 말 일이었다. 하기사 우리 역사도 어설픈데 남의 나라 지난 과거 알아봤자 돌아서면 금방 지워질 게 뻔하기는 했다. 어쨌거나 볼거리는 많았다.
내일이면 뮌헨은 터질 것이다. <옥토버페스트(Octoberfest)>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이는 세계 3대 축제 중의 하나로써 매년 이맘때쯤 뮌헨에서 열리는 맥주 페스티발이다. 이 기간 동안 600~700만 명 정도가 축제 현장을 찾는다고 하니 그 규모가 쉽게 상상이 되지 않는다. 이 도시 전체가 맥주로 뒤범벅이 될 것 같다. 그 기분을 조금이라도 느껴 보고 싶어 축제 중심지 인근의 호프집으로 향했다. 이곳도 축제 준비로 분주해 보였다. 나이 지긋한 노년들이 서빙해 준 맥주는 술맛 모르는 내 입에도 고소했다. 그러나 안주는 느끼하고 짰다. 어제부터 자꾸 뜨끈뜨끈한 닭도리탕이 생각났다. 뜬금없이 우리도 '소주 축제'를 만들면 어떨까 싶었지만 이내 생각을 접었다. 600만 명이 즐겁게 소주를 마시고 나면 도시 전체가 '개판'이 되어 버릴 게 뻔하기 때문이다.
다시 길을 나섰다. 트램을 이용하려다 한참을 걸어서 칼스 광장 입구에 도착했다. 광장의 시작을 알리는 분수대가 시원하게 물줄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여기서부터 뮌헨의 대표적인 쇼핑 중심지인 <노이하우저 거리(Neuhauser Street)>가 시작된다. 백화점, 의류 매장, 기념품 가게, 카페가 줄지어 있어 가히 쇼핑 천국이라 할 만했다. 이 넓고 긴 보행자 전용길이 겨울에는 스케이트장으로 운영된다고 한다. 명동 거리나 로데오 거리가 겨울에 스케이트장으로 변한다고 생각해 보라. 상식을 뛰어넘는 그네들의 발상이 이채롭다. 이 길 끝에는 뮌헨의 대표적인 관광 명소인 신시청사와 마리엔 광장이 있었다. 시청사는 과연 볼만했다. 광장 너머에는 세계적인 노천 시장 중의 하나인 <빅투알렌 시장(Viktuallen Markt)>이 있어 둘러봤다. 힘이 빠져 다리가 후들거렸다.
뮌헨에서의 여정이 예정 시간 보다 더 지체되어 저녁 해거름이 되어서야 다음 행선지로 출발했다. 뮌헨에서 약300km를 달려 저녁 8시 훌쩍 지나서야 <뷔르츠부르크>에 도착해 저녁 식사를 했다. 식사 후에는 낭만 가득한 알테마인교를 걸었다. 이 다리는 1133년에 지은 석조 다리다. 건너편에는 <마리엔베르크> 요새의 야경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여기는 기원전 1,000년 경 켈트족의 성채가 있던 곳이라고 하니 무려 3,0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유적지다. 시간이 허락되면 꼭 한 번 방문하고 싶은 곳이었는데 다음 일정 때문에 발길을 돌려야 했다. 다리 중간에서는 젊은이들의 흥겨운 라틴 음악 버스킹이 한창이었다. 함께 하는 그들의 손에는 하나 같이 와인 잔이 들려져 있었다. 뷔르츠부르크는 독일의 대표 와인인 프랑켄와인 산지로 유명하다. 아마 밝은 날에 이곳을 방문하면 온통 포도밭으로 둘러싸여 있는 도시 모습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독일 작가 헤르만 헤세는 만약 다시 태어난다면 이곳 <뷔르츠부르크>에서 살고 싶다고 했고 나폴레옹 역시 이 도시를 극찬했다니 궁금증은 더해진다. 제대로 된 도시 사진 한 컷 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그러나 행복한 하루였다.
뮌헨은 내일부터 축제지만 나는 벌써부터 축제다.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이렇게 여행하고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