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행 열차의 마지막 기착지
어제는 <에어비앤비>를 통해 예약해 놓은 숙소에서 여독을 풀었다. 할슈타트에서 그리 멀지 않은 전원주택이었다. 마을을 휘감았던 새벽안개가 걷히자 초록으로 물든 전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하늘을 쳐다보니 비행기 두 대가 소리 없이 교차하며 지나갔다. 저 멀리 동양에서 찾아온 여행객을 위한 조촐한 퍼레이드다.
길을 나섰다. 샤프베르크Schafberg는 숙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꿈을 꾸고, 그 꿈을 잊지 않기만 하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오기 전까지는 여기가 바로 거기인 줄 몰랐다. 내가 늘 가보기를 꿈꾸었던, 화보 속에서만 존재하고, 그래서 내 꿈속에서만 머물렀던 그곳인 줄은. 내 삶이 힘겨울 때마다 불쑥불쑥 나타나던 사진 속의 그들, 시푸른 하늘 아래 산비탈 따라 끝없이 펼쳐진 초목 사이로 가위질한 듯 만들어진 산길 오르던 그 등산객들, 나는 그들이 한없이 부러웠다. 나는 몰랐다. 오늘 내가 그 화보 속의 주인공이 될 줄은. 산악열차를 타고 샤프베르크로 오른다. 마리아와 일곱 아이들도 이렇게 올랐으리라.
산정에 도착하자 딸이 귀뜸했다. 샤프베르크는 독일어로 날카롭다는 뜻의 schaf와 산을 의미하는 berg가 합쳐진 단어라고. 하늘과 땅 사이에 구름이 머물고 그 구름밭에 매달린 듯한 샤프베르크가 위용을 드러냈다. 웅장한데다 성스럽기까지 한 풍광에 압도 당했다. 고개 들어 다시 한 번 사방을 훑었다. 천상의 세상이 궁금한지 알프스의 고봉준령들이 구름을 비집고 솟으려 한다. 수면 위로 얼굴 내민 잠수함의 잠망경처럼.
비탈 아래 산등성이에는 초원이 펼쳐져 있다. 그 위에 그림 같은 집들이 얹혀 있다. 초원 한 켠에 사람 몇이 모여 있다. 노랫 소리도 어슴프레 들린다. 자세히 내려다보면서 양쪽 귀를 치세웠다. 그제서야 그들이 누구인지, 부르는 노래의 제목이 무엇인지 알아차렸다. 예비 수녀 신분의 가정교사 마리아가 기타를 치고 있고 트랩 대령의 일곱 자녀가 알프스의 대자연을 바라보며 '도레미 송'을 부르고 있었다. 그들을 좀 더 가까이에서 느끼기 위해 한참을 내려갔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그곳에 없었다. 그들은 이미 오래 전에 그곳을 떠나 세상 사람들의 마음속으로 가버렸기 때문이다. 이곳에 올라와서도 딸이 귀뜸해 주기 전까지 나는 여기가 거기인 줄 까맣게 몰랐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촬영지였다는 사실을. 딸의 설명을 듣자 갑자기 영화 속의 장면이 떠오르고 '도레미 송'이 환청으로 들려왔다. 산 아래 쪽에는 어릴 적의 모짜르트에게 음악적 감수성을 한껏 일깨워 주었을 아름다운 볼프강 호수가 아련하게 펼쳐져 있었다.
샤프베르크!
이곳은 마치 땅에서 천국으로 가는 은하철도의 마지막 기착지인 것 같다. 그래서 앞으로 펼쳐질 천상에서의 세계가 얼마나 황홀한지를 미리 계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말없이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내 안의 모든 것이 정화되고 있는 듯한 지금 이 순간, 나는 지난 날의 지난至難했던 내 삶의 아픔을 모두 보상받았다. 이 황홀한 자연으로부터.
불현듯 파우스트가 했다는 말이 뇌리를 스쳐간다.
'순간이여 멈추어라. 너는 정말 아름답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