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저널리즘의 힘
문재인 대통령과 손석희 전 앵커의 대담을 봤다.
퇴임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현직 대통령은 민감한 질문에도 거침이 없었다. 답변에 대한 판단은 각자의 몫이다. 나는 문대통령의 직진을 보며 6년 전 그때가 생각났다.
“000 기자야, 그게 그렇게 대답을 하기 어려운 질문이냐?”
인터뷰를 마친 손석희 앵커는 스튜디오 뒤편에 서있던 내게 물었다.
“그..러..게..말입니다.”
약간 소심한 동의.
사실 나는 다음 코너 출연 순서라 내 원고 숙지하는데 정신없었다. 눈앞에서 인터뷰가 진행됐건만 내용을 제대로 듣질 못했다.
다만 같은 질문이 반복되며 공회전하고 있다는 느낌은 받았다. 평소와 다른 이질적인 실내 분위기. 여러 스태프와 수행원들의 당황스러운 표정들. 숨죽인, 그래서 더 뚜렸한 숨소리와 침 삼키는 소리가 스튜디오 안의 끈적한 공기와 섞여 피부에 달라붙던 기억. ‘아, 인터뷰이가 제대로 대답을 못하고 앵커는 답답해하는구나, 뭔가 사고가 나겠군’이란 생각과 같이.
뉴스가 끝나자마자 인터뷰를 다시 돌려봤다. 이미 온라인에선 화제가 되고 있었다.
그날은 바로 2016년 11월말.
민주당 전대표 문재인 대통령이 뉴스룸에 출연했던 날이다. 이른바 ‘문재인 고구마 인터뷰 사건’ ‘손석희 압박면접’ 등으로 알려진 그 인터뷰다. JTBC 국정농단 사태 보도로 하루하루가 블랙홀이었고, 많은 사람이 저녁마다 뉴스룸 채널을 맞추던 때다. 유력 대선주자의 말한마디에 나라가 출렁일 수 있던 때다.
사실 인터뷰는 평범하게 끝날뻔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권력의 정당성과 통치 동력을 급속도로 잃었다. 조기 하야나 탄핵 요구가 본격적으로 분출했다.
현직 대통령이 임기를 못채우고 물러나면? 답은 간단하다. 헌법엔 60일 이내 보궐선거를 치르라고 적혀있다. 헌법 절차에 따르면 된다고 하면 그만이다.
그런데 문 대통령이 조건을 붙였다. “헌법 절차를 따라야겠지만 국민의 뜻이 표출될 수 있다”고. 여기서부터 손앵커의 집요한 되묻기가 시작됐다.
“똑같은 질문을 계속 드리게 되는데요. 왜냐하면 명확하게 말씀하지 않으신 부분이 있기 때문에…솔직히 말씀드려서 이해가 잘 안 갑니다.”
“그런데 제가 이제 대선주자분들의 말씀에 대해서 자꾸 이렇게 가끔씩 따져묻는 이유는 말씀이 바뀌시면 나중에 혹시 또 다른 경우에 바뀌시지 않을까 하는 그런 우려들을 많은 분들이 하잖아요. ”
“제가 마지막으로 이 질문 다시 드리겠습니다. 제가 구체적으로 들은 바가 없어서….”
어려울것도 없는 헌법 해석인데 조건이 붙으면서 인터뷰는 익히 알려진대로, 그러나 당시엔 전혀 새로운 차원으로 진입했다.
헌법은 대통령 선거일을 엄격하게 정해놨는데, 다른 고려를 한다는건 60일 이내 조기 대선을 치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의미다. 정치적 상황에 따라 헌법 해석이 달라진다는건 위헌 가능성을 내포하는 거다. 유력한 차기 대선주자가 직접 밝힌 만큼 상당한 파장이 예상되는건 당연하다.
손앵커는 여러차례 되물었다. 국민의 뜻이 무엇인가, 헌법 절차대로 하지 않을 위중한 조건이 무엇인가, 헌법에 단서를 붙이는게 타당한가…질문은 조금씩 바뀌었지만 핵심은 같았다. 헌법 해석을 맞게 하고 있는건가…
결국 문대통령은 끝에 가서야 다른 조건은 없다고 인정했다.
“지금으로서는 헌법 절차를 지키는 것 이상으로는 저희가 말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손앵커는 여전히 답변이 미진하다는 걸 짚고 넘어갔다.
“그러나 제가 100% 이해하고 넘어가는 것은 솔직히 말씀드려서 아닙니다.”
20여분의 혼돈의 시간이 지나고 두 사람은 카메라 밖으로 내려왔다.
스튜디오의 두꺼운 방음문을 반쯤 연채 간단히 배웅 인사를 나눴다.
그런데, 손앵커는 끝내, 결국, 다시한번, 질문을 던졌다.
“대표님, 아니 왜 대답을 못하시는 겁니까?”
손앵커는 답답하단 느낌이 계속된 모습이었다. 문대통령은 특유의 사람좋은, 그러나 멋쩍은 느낌이 짙은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허허허 네…”
여전히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는 표정의 손앵커는 옆에 서있던 나를 쳐다봤다. 내게도 질문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야, 그게 그렇게 대답을 하기 어려운 질문이냐?”
“그..러..게..말입니다.”
당시 문대통령의 인터뷰는 ‘고구마 답변’으로 크게 화제가 됐다.
지지층서도 왜 대답을 못하느냔 답답함이 많았다. 문대통령은 그날 밤 인터뷰를 끝내고 자택으로 돌아가자마자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한숨을 쉬며 후회했다고 한다. 가족한테 “왜 그렇게 말을 못하느냐”는 핀잔도 들었다고 한다.
며칠후 김어준 뉴스공장 진행자도 왜 버벅댔냐고 따졌다. 문대통령은 “원칙대로 답하면 되는데, 혹시 대선에서 유리하니 즉각 퇴진과 60일 이내 대선을 주장하는 게 아니냐는 공격을 받을까 걱정돼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6년후 그는 변했다.
스스로 “버벅거렸다”고 자책했던 이가 탁현민 의전비서관 말대로 이제 “직진으로 다가온 질문 앞으로 망설이지 않고 달려가는” 사람이 됐다. ‘고구마 답변’은 사라졌다. 하지만 ‘답변이 고구마’란 지적도 존재한다. 판단은 각자의 몫이다.
아, 변한 게 또 있다. 이번 대선에선 그때와 같은 심층인터뷰(라고 쓰고 압박면접이라고도 하는)를 보기 힘들었다는 거다. 진실 추구 과정으로서 집요한 되묻기(라고 쓰고 압박 면접이라고도 하는)도 찾기 어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