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으로부터 배우는 지혜

한국의 10년뒤를 보여주는 거울

by 내향적 자유인

보통 사람들은 경제, 사회, 문화등 다방면에서 일본과 한국이 비슷한 길을 걷고 있음을 말한다. 나 역시 개인적으로 일본을 좋아하며 자주 여행하는 사람으로서, 실제 현지인들과 대화하고 현지 사람들이 어떤 마음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지에 대해 관찰하다보면 이런 유사점에 대해 더 크게 공감하게 된다. 인생을 살다보면 어떤 문제를 겪고 있는 당시에는 어떻게 문제를 해결해야 할 지, 또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그 문제를 바라봐야할 지 명확하게 알기 어렵다. 특정 문제가 더 이상 문제로 느껴지지 않는 일정한 시간이 지나고 난 뒤에서야, 비로소 보이는 길과 지혜가 있다. 이런 관점으로, 나는 일본 문화와 사람으로부터 내가 앞으로 인생을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야할 지에 대해 배울 점을 찾으려 한다. 한국보다 앞서 비슷한 문제를 겪고 살아낸 사람들로부터, 지금 내가 겪고 있는 또는 가까운 미래에 겪게 될 문제를 어떻게 바라봐야할 지에 대해 배울 점이 많다고 느낀다.


그런 이유에서, 난 일본에서 베스트 셀러에 기록된 책들을 즐겨 읽는다. 아래 내용은 최근에 읽은 한 책의 내용중 크게 와닿은 부분에 내 관점을 살짝 가미해 기록한 것이다.




적당히 되는대로 하자


더 나은 인간관계를 위해서 노력하면 문제가 해결될까? 그렇지 않다. 사회 전반에서 노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요즘에는 특히 열심히가 아니라 적당히, 되는대로 대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세상에는 열심히 노력해야 되는 문제들이 있는 반면, 때론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라는 믿음으로 적당히 한 발 뒤에서 지켜보며 기다려야 하는 문제들이 있다. 인생에는 전자보다 후자에 해당하는 문제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르치는 "노력"을 추앙하는 많은 사람들은 지켜봐야할 문제들을 당장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문제는 더 악화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집단에서 멀어지자 마음의 병이 나았다 (친구가 없어도 괜찮다)


수많은 시선으로 둘러싸인 고등학교 교실속 나는 지독한 마음의 병을 얻었다. 남의 눈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병이다. 그 병은 대학에 가니 조금은 나아졌다. 대학의 인간관계는 유동적이어서 가까운 사람이 거의 없어도 괜찮았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도 만나지 않는 기간이 길어지면 그 또한 힘들었다. 그럼에도 대학 생활동안 나는 거의 사람과 교류를 하지 않았다. 입학 후 쏟아지는 술자리 부름에도 일절 응하지 않았다. 모여서 주고받는 말이라곤 누군가를 도마 위에 올리고 흉보거나 놀리는 얘기뿐이었다. 때론 내가 그 대상이 될 때도 있었다. 그러면 나도 그에 대응하기 위해 상대를 똑같이 놀리며 갚아주곤 했고, 집에 돌아오면 내가 들은 말, 뱉은 말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아 스트레스가 되었다. 그간 나의 인간관계는 학교, 직장등에서 '나만 혼자 있게 될까봐' 또는 '내 뒷담화를 할까봐'와 같은 두려움으로 쌓아올린 관계였다. 이제 나는 그런 관계들로부터 자유롭게 살기로 선택했다.


아이가 없어도 괜찮다 - 자식이 최고의 행복이라는 협박


나는 64년생으로 이미 20년 넘게 같이 살아온 동반자가 있다. 사람들을 만나서 얘기를 듣다보면 '나중에 늙어 간병호를 해줄 자식이 없으면 어떻게 할래?'와 같은 협박성 말들을 많이 듣는다. 이미 충분히 나이를 먹은 지금도 나는 자식을 원하지 않는다. 물론 아이가 생겼다면 그것도 그 나름대로 괜찮았겠지만, 그럼에도 아직까지 없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자식이 있다면 그만의 행복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식이 없었던 덕분에 부모로서 해야만 하는 많은 일과 책임 대신에, 나는 내 인생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청춘은 돌아오지 않는다는 협박


나는 고등학생 때 공부를 잘해서 도쿄대에 들어갔다. 어렸을 때 공부에 모든 것을 쏟아부어야한다는 말을 세뇌당하듯 들었기 때문이다. 지금 하지 않으면 평생 후회한다고 말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공부를 그렇게 열심히 했던 것을 평생 후회하게 되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사회가 강요하는 무책임한 조언을 지나치게 믿은 것을 후회한다. '젊은 시절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와 같은 협박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할 지 불안해하는 젊은 사람들에게 꽤 잘 먹힌다. 하지만 지금을 포함한 모든 시간은 돌아오지 않는다. 이런 당연한 말에 과연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개인주의는 '제멋대로'가 아니다


개인주의란 자신과 타인을 명확하게 분리하는 태도를 말한다. 결코 이기적이거나 제멋대로만 사는 게 아니다. 진정한 개인주의는, 남을 배려하고 동시에 자신을 존중하는 마음이 굳건한 상태로 서로의 온기를 느끼지만 필요 이상의 거리로는 다가가지 않는 삶의 지혜와 같다.


걱정이 넘치는 도시


매일 뉴스를 보면 온갖 걱정과 불안을 광고하는 기사들이 넘쳐난다. 건강 관련 검색을 하면 걱정을 부추기는 질병 정보와 광고 역시 쏟아진다. 도시내 어디를 가던 안전을 강조하는 메시지가 보인다. 나는 동남아시아 국가들을 여행다니는 것을 좋아한다. 그 나라들은 제대로된 신호체계나 질서가 부족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한국처럼 안전이라는 이유로 걱정과 불안을 가중시키는 경고 메시지들은 잘 보이지 않는다. 나는 실제로 동남아에서 몇년간 살다온 적이 있는데, 자잘한 사건 사고들은 있어도 오히려 큰 사고는 한국보다 적다는 느낌을 받았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항상 안전과 확실함을 추구한다. 하지만 나는 사람들에게 도시가 주는 안전과 확실함의 단점에 대해서도 말하고 싶다. 이런 안전과 확실함은 하나의 허상과 같다. 인생은 본질적으로 안전과 확실함과는 거리가 멀고, 실제 과거 인류 역사의 대부분은 자연의 불확실함과 더불어 살아왔다고 표현해도 되지 않을까. 나는 선진국들이, 특히 일본과 한국에서, 겪고 있는 저출산 현상을 잘 설명하는 원인들중 하나가 이와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아이는 불확실함으로 똘똘 뭉친 자연 그 자체이다. 어디로 튈지 모르며, 몇년 뒤에 어떤 모습으로 성장하게 될 지 가늠하기 어렵다. 도시의 안전과 확실함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아이와 같이 불확실한 존재를 받아들이기 어려워 하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현상일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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