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든셋, 무슨 말을 하든 유언이 되고 사진을 찍으면 영정이 되는 나이입니다. 이 나이가 되면 좋은 점이 하나 있습니다. 모든 말과 행동을 진심으로 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며,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 거짓된 말과 행동을 할 마음이 들지 않습니다.
강남에 간다고 칩시다. 빼곡하게 늘어선 빌딩에서 다들 일을 하잖아요. 근데 실제로 뭘 하는 걸까요. 다시 말해, 왜 그렇게 열심히 일하냐는 겁니다. 물론 표면적인 이유들은 여럿 생각나겠지요. 그런데 가만히 앉아 생각해보면, 그게 전부 인간의 착각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요즘에는 “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라는 말을 무책임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게 정말 무책임한 걸까요 아니면 사람들이 솔직하지 못한 걸까요.
사람은 혼자 있을 때는 자신이 나이들었다거나, 못생겼다는 등의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타인이나 옛날 사진을 통해 비교하기 때문에 그런 개념을 자각하는 거죠. 저는 사진찍는 걸 좋아하지 않습니다. 옛날 사진들을 꺼내보는 순간에는 머릿속 희미해진 과거를 선명하게 볼 수 있다는 점은 좋습니다. 하지만 그런 기분은 잠깐뿐이고, 이내 과거에 존재했던 것들의 부재때문에 더 큰 좌절감 또는 우울감이 느껴집니다. 그리고 옛날의 “나”가 지금의 “나”와 정말 같은 사람인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혹시 일기를 꾸준히 적는 분이라면, 더 잘 알겠지요. 과거의 자신이 쓴 글을 읽다보면, 내 자신이 썼다고 믿겨지지 않는 글들이 많습니다. 추억을 기록한다는 이유로 과거에 집착하는 분들이 생각보다 많은 것 같습니다. 저는 과거 기록을 더듬으며 추억을 곱씹기보다는, 지금 현재 순간에 만족하며 사는 것이 더 좋은 사람인가 봅니다.
세상이 뒤집어지는 큰 변화를 몸소 체험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스스로 생각하게 됩니다. 요즘 사람들은 그런 큰 변화를 체감하기 어려우니 무엇을 믿어야 할지 헷갈리는 거겠지요. 제 경우에는 아버지를 믿었더니 일찍 돌아가셔 버렸고, 나라를 믿었더니 ‘국민 모두가 온 몸을 바쳐 싸워라’ 라며 전국민을 전쟁터로 몰아넣던 시기가 지나 전쟁이 끝난 뒤에는 폭력은 모든 악의 근원처럼 치부해버리는 현대 사회가 되어버린 요즘. 그런 큰 변화를 몸소 겪으며 살다보면 세상이 강요하는 믿음을 비판적으로 보게 되고, 내 자신이 추구하고 싶은 믿음을 자연스럽게 따르게 됩니다.
사람의 뇌는 생각보다 환경에 민감합니다. 처음으로 파리로 여행을 간 적이 있습니다. 한참을 걷다 목이 말라, 카페에 들러 콜라를 주문해 마셨습니다. 한국에 있을 때는 전혀 마시지 않았던 콜라인데도 말이죠. 환경이 바뀌면 자신도 모르게 나 역시 바뀌게 됩니다. 같은 환경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것이 다른 환경에서는 아주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경험은 일반적입니다. 인생을 살면서 정체되어있는 느낌이 든다면, 환경을 바꿔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