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치 위의 노인

올바름의 역설

by 내향적 자유인

가을 공원이 한가로운 오후. 순호는 이어폰을 빼고 천천히 산책하고 있었다. 요즘 들어 자꾸만 ‘내가 제대로 살고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공원 한쪽 벤치에 노인이 앉아 있었다. 흰 머리가 햇살에 반짝이고, 손에는 낡은 책 한 권이 들려 있었다. 순호는 이유 없이 그 벤치 옆에 앉았다. 잠시 말없이 앉아 있으니 노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노인: “날씨 좋지? 이런 날은 그냥 앉아 있는 게 제일인 것 같아.”


순호: “네, 좋네요. 저도 오랜만에 산책을 나왔다가 날이 좋아서 여기까지 오게 됐네요.”


노인: “요즘 젊은이들은 쉬는 걸 잘 못 하던데. 항상 무언가를 들고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것 같더군.”


순호: (작게 웃으며) “맞아요. 저도 그래요. 실제로 할 일이 많기도 하지만, 때론 스스로 바삐 살아야한다는 강박적인 생각이 많은 거 같아요.”


노인: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제일 무거운 짐이지. 그게 어디서 온 건지 알아?”


순호: “부모님이나 학교, 사회에서 다들 그렇게 살라고 하니까… 그런 거겠죠.”


노인: (고개 끄덕이며) “맞아. 하지만 그런 생각들의 대부분은 누군가 편하려고 만든 규칙이야. 예를 들면… ‘착한 아이는 빨리 자야 한다’는 말 기억나나?”


순호: “네, 부모님에게 어렸을 때 자주 들었어요.”


노인: “그건 정말 아이를 위한 말이었을까? 아니면 부모가 조용히 쉬고 싶어서 만든 말이었을까?”


순호: (잠시 생각하다) “…그럴 수도 있겠네요. 처음 생각해보는데요.”


노인: “대부분의 ‘올바름’이 그래. 대부분 그 '올바름'의 개념을 만든 이들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만들어진 거지. 그런데 우리는 그걸 성인이 되어서도 인생의 법칙처럼 여기며 살지.”


순호: “그럼… 그 올바름 때문에 제가 하고 싶은 걸 못 하는 경우도 많았던 거군요.”


노인: “그래. 예를 들어, ‘일하지 않고 쉽게 부자 되는 건 옳지 않아’, ‘일을 하지 않는자는 먹지도 말라’, ‘다들 이렇게 사니까 나도 그래야 해’와 같은 생각들이 네 앞에 가능성이라는 문을 하나씩 닫아버리지.”


순호: (한숨을 내쉬며) “맞아요. 지금은 다 큰 성인이지만, 되려 할 수 없는 게 너무 많아졌어요. 그래서 요즘은 좀 지치네요.”


노인: “올바름이 많아질수록 금기가 늘어나는 법이야. 반대로 말하면, 올바름을 조금 내려놓을 때마다 할 수 있는 게 하나씩 늘어나지.”


순호: “그럼… 제가 지금까지 너무 올바르게 살려고만 했던 걸까요?”


노인: (부드럽게 웃으며) “올바른 게 무조건 나쁜 건 아니야. 다만 네가 진짜 원하는 게 뭔지 잊지 말라는 거지. 이제부터라도 올바른 삶이 아니라, 즐거운 삶을 살려고 노력해봐.”


순호: (한참 침묵하다가) “정말.. 이제 좀 내려놓아도 될까요?”


노인: “그래. 내려놓는 게 네 인생의 첫 번째 자유가 될 거야. 그 자유가 어떤 가능성을 열어줄지는 스스로 문을 열어보기 전까지는 알 수가 없다네.”


노인이 천천히 일어났다. 순호는 벤치에 조금 더 앉아 있었다. 바람이 불어오는데, 오랜만에 가슴이 조금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순호: (작게 중얼거리며) “그래… 이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조금씩 해볼까.”


그는 천천히 일어나 공원을 나섰다. 발걸음이 전보다 한 결 가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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