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다

『위대한 착각, 올바른 미래』중에서... 01

by 박대성

단골 식당에 못 보던 서빙로봇이 생겼다. 뜨거운 국물이나 음료를 흘리지 않고 안전하게 나른다. 사람이 지나가면 센서가 있어서 그런지 멈췄다가 다시 이동한다. 테이블 위의 호출벨을 누르면 바로 달려온다. 심지어 생일 축하 노래까지 잘한다. 그렇게 한참을 신기하게 바라보다가 문득 생각에 빠져들었다.


우리는 기술이 사람에 맞추는 세상에 살고 있을까?

아니면, 사람이 기술에 맞추는 세상에 살고 있을까.


확실히 요즘 가장 핫하다는 챗GPT(ChatGPT)를 사용하다 보면 그런 물음이 떠오를 때가 있다. 인간처럼 질문에 바로바로 답도 해주고, 시키는 대로 그림도 그리고, 심지어 작곡도 하는 생성형 인공지능(AI). 이런 최신 테크놀로지를 접할 땐 과학기술이 컴퓨터와 인간의 경계를 조금씩 무너뜨리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그러나 ‘기술 쇼크’의 역사는 이보다 훨씬 전부터 시작됐다. 최근 10년만 보더라도 다양한 신드롬이 있었다. 발음하기도 어려운 유비쿼터스를 전 국민에게 유행시킨 사물인터넷(IoT). 이세돌 9단을 꺾으며 인간이 기계의 지배를 받을 수 있다는 공포를 전 국민에게 심어준 알파고(AlphaGo). 제4차 산업혁명이 유행시킨 모바일, 빅데이터, 클라우드 컴퓨팅. 최근까지 투자자들을 희망 고문한 메타버스, 블록체인, 대체불가능토큰(NFT) 등 자고 일어나면 새로 나오는 게 첨단기술이다.


우리는 기술이 사람에 맞추는 세상에 살고 있을까?
아니면, 사람이 기술에 맞추는 세상에 살고 있을까.

덕분에 사람들은 최신 기술을 허둥지둥 따라가기 바쁘다. 신기술에 대한 희망과 부푼 기대는 경제를 견인하고 주식 시장을 지탱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반대편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진다. 기술이 인간을 대체할수록 고용이 악화되고, 빈부의 격차만 커진다는 경고가 끊이질 않는다. 일부에서는 미래의 불평등을 해소하자며 기본소득 문제까지 꺼내 들었다.


기술에 적응하지 못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일상의 흔한 장면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무인 계산대만 있는 마트, 애플리케이션(앱) 없이는 부를 수 없는 택시, QR코드 메뉴밖에 없는 식당 등. 누구도 막을 수 없는 흐름인지, 무관심 때문에 아무도 막지 않는 흐름인지는 확실 치 않다. 그래도 우리 곁의 비대면화, 자동화는 착착 진행 중이다. 인공지능은 무서워도 스마트폰 없이는 못 사는 모순적인 세상이다.


얼마나 지났을까. 테이블 옆을 가로질러 가는 로봇의 소리가 나를 현실로 돌려놓았다. 번쩍 정신이 들어 시계를 보니 음식을 주문한 지 25분이 넘어가고 있었다. 오른손을 힘껏 들어 큰소리로 “사장님”을 외쳤다. 이를 본 식당 주인은 내가 무슨 말을 할지 안다는 표정으로 한걸음에 달려왔다.


“정말 죄송합니다. 저희가 주방 일손이 부족해서 주문이 밀렸어요. 요즘 사람 구하는 게 힘들어서요. 양해 부탁드립니다.”


미안함이 가득 담긴 그의 표정에 난 더할 말이 없어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깨달았다. AI 시대에도 인간 주방장은 필요하다는 것을. 어쩌면 노동의 자동화를 견인하는 건 인공지능의 등장이 아니라 구인난이란 걸. 순간 내가 했던 공상이 너무 허무맹랑해 피식 웃음이 나왔다.


기술이 인간을 지배하는 미래는 이미 도래했다.
아니, 더 정확히는 그런 시대가 온 것처럼 우리는 호들갑을 떨고 있다.

기술이 인간을 지배하는 미래는 이미 도래했다. 아니, 더 정확히는 그런 시대가 온 것처럼 우리는 호들갑을 떨고 있다. 내일은 AI 때문에 일자리를 잃을 것 같아 불안하고, 모레는 내가 기계를 섬기고 있을까 봐 섬뜩하다. 하지만 이런 걱정이 과연 실현 가능한 얘기인가?


기술에 대한 공포는 누구에게나 있다. 수많은 SF소설과 영화가 그려낸 인류의 내일은 암울한 디스토피아다. 기술의 발전이 가져올 인간의 미래가 비극으로 끝날 거라 믿는 이들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는 왜곡된 기억의 습작이자 막연한 불안감이다.


인류가 원하는 AI는 엉뚱한 답을 하는 챗봇(ChatBot)이나 벽에 계속 부딪히는 로봇 청소기가 아니다. 인간을 닮은, 어쩌면 인간보다 뛰어난 ‘지능’을 가진 존재다. 그러나 이는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꿈같은 얘기다. 백번 양보해도 인간 수준의 인공지능은 아직 과학기술이 아닌 소설의 영역이다.


물론 테크노포비아(Technophobia)같이 기술에 대한 병적인 공포를 느끼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신규 기술을 잘 몰라서 느끼는 어려움이거나, 진입장벽에 따른 거부감 등을 하소연하는 정도다. 모르는 걸 꺼리는 건 자연스러운 인간 심리이다. 현실에는 스마트폰만 바꿔도 적응하느라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많다. 스마트폰을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2030 세대도 과연 스마트폰의 기능 중 몇 퍼센트나 활용하고 있을지 의문이다. 하지만 스마트폰이 거기에 집약된 모든 기술을 꼭 이해해야만 쓸 수 있다는 법이 어디 있던가? 몰라도 잘만 쓰지 않는가?


사실 원래부터 그랬다. 자동차의 작동원리를 모르고 운전하는 사람이 대다수다. 디스플레이 테크놀로지를 몰라도 올레드 TV를 즐기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 그러니 AI 또한 자동차나 텔레비전을 대하 듯하면 된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인간은 생각보다 위대한 결정체라는 것을. 인간은 인간보다 뛰어난 것을 만든 적이 없다. 이것도 그나마 자식 농사가 잘되었을 때 할 수 있는 얘기다. 결국, 문제도 답도 인간이다. 기술을 악용하는 것도 부작용을 바로 잡는 것도 모두 사람이 하는 거다. 그러니 아무리 부족하고 못나도 기술의 주인은 결국 인간이며, 기술에 대한 책임도 인간이 져야 한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인간은 인간보다 뛰어난 것을 만든 적이 없다.
이것도 그나마 자식 농사가 잘되었을 때 할 수 있는 얘기다.
결국, 문제도 답도 인간이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기술에 대한 현대 사회의 공포는 과장됐다고 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생각보다 많은 전문가가, 서점에 널린 책들이 이점에 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대신 디지털 시대에 대한 흑과 백의 이분법적 사고가 난립한다. 신기술에 대한 막연한 찬양과 과대망상적 경고가 넘쳐난다. 규제를 위한 토론만이 계속된다. 그 사이 정작 우리가 걱정해야 하는 대상, 인간은 무관심 속에 살아간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썼다. 사람들이 기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았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물론 기술에 대한 사회적 우려가 상당하다는 걸 알고 있다. 전 세계적인 추세다. 이들 중에는 지금 당장 AI를 법으로 금지해야 하는 건 아닌지 고민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술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다. 도구일 뿐이다. 그게 이 책의 핵심이다. 나는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다양한 신기술을 살펴보고 이들을 관통하는 법칙을 습득하길 바란다. 디지털 시대의 본질을 파악해 중심을 잡기를 원한다. 걱정할 필요는 없다. 모르면 배우면 되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