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도운의 시네마틱 레버리 [그린북(1)]

프롤로그. 당신의 차별은 어떻습니까?

by 서도운


※ 이 글은 영화를 본 분들,

혹은 영화는 보지 않더라도 그 감정의 결을 느껴보고 싶은 분들을 위한 글입니다.

줄거리와 장면에 대한 해석이 포함되어 있으니, 감상 전엔 살짝 주의해 주세요.


프롤로그.

당신의 차별은 어떻습니까?


당신의 차별은 어떠한 모양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는 일이 드물다.


차별이라는 말은 언제나 거창하고, 거기엔 나보다는 '타인'이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눈빛 하나, 무심한 말투 하나, 혹은 단 한 번의 외면 속에도
차별은 생각보다 조용하고 교묘하게 스며들어 있다.


요즘 사회를 보면,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이름 아래
차별을 해소하려는 여러 시도들이 쏟아지고 있다.


‘PC주의’라는 말은 이제 너무 익숙해져
그 본래의 의도: 서로를 존중하고 다름을 이해하자는 취지. 는 때때로 피로감과 혼란 속에 가려지기도 한다.


진심은 가끔 조롱이 되고, 권리는 때로 특권으로 비치며,

포용이라는 단어가 새로운 배제를 낳기도 한다.

어떤 기업은 다양성을 이유로 사람을 뽑고,
어떤 커뮤니티는 상처를 말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더 상처받는 이들을 다시 배제한다.


선한 의도가 오히려 또 다른 선을 긋고,
그 선은 점점 더 날카로워져
우리 모두를 조심스럽게 만들고 있다.


그럴 때일수록,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존중은 권위가 아니며, 이해는 가르침이 아니다.
누군가를 바꾸려는 마음이 아니라,
그 사람의 풍경에 잠시 머무르려는 마음 그곳에서 시작되는 것이

진짜 변화이고, 건강한 올바름일지도 모른다.


『그린북』은 그런 이야기다.


1962년, 인종분리법이 여전히 일상에 남아있던 미국 남부.
피아노를 연주하는 흑인 남자와, 그를 운전하는 백인 남자가
각자의 세계에서 나온 채, 같은 차 안에서 며칠을 함께 보낸다.
처음엔 서로를 몰랐고, 이해하려 들지 않았으며,
가끔은 불쾌했고, 때론 서글펐으며, 그럼에도 결국 가까워졌다.


그 가까움은 누군가가 더 뛰어나거나, 누군가가 더 배려해서 생긴 것이 아니라,
그저 서로를 ‘사람’으로 보려 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들은 특별한 사람이 아니었다.

단지 자신의 경험을 말했고, 상대의 경험을 조금은 들어주었다.


『그린북』은 그렇게 흘러가는 영화다.
거창한 구호보다 한마디 대화가,
웅장한 연설보다 조용한 음악이,
더 많은 것을 바꿀 수 있음을 보여주는 이야기.

그리고 아마, 지금 우리가 잊고 있던 방식이기도 하다.


그린북을 만든 사람: 피터 패럴리


피터 존 패럴리는 1956년 미국 매사추세츠에서 태어났다.
그는 오랫동안 동생 바비 패럴리와 함께 ‘패럴리 형제’라는 이름으로 할리우드 코미디의 대표 주자로 활동해 왔다. 『덤 앤 더머』, 『메리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내겐 너무 가벼운 그녀』 같은 작품들은 때론 유치하고 과장된 설정으로 웃음을 유도했지만, 그 속엔 항상 인간적인 따뜻함이 흐르고 있었다.


그는 웃기는 사람이었고, 사람을 웃기되 결국 사람을 그리는 연출가였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그가 추구하는 이야기의 무게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60대에 접어든 그는 이제 삶의 가벼움보다는 그 이면에 깃든 정서를 들여다보고 싶어졌다.
더 이상 단순한 농담이나 기괴한 설정이 아닌, 사람의 변화와 그 변화의 진심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 무렵, 피터의 손에 들어온 이야기가 있었다.


1960년대 인종분리의 법이 여전히 공고하던 미국 남부를 배경으로,
한 백인 운전사와 흑인 피아니스트가 함께 여행을 떠나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
그는 이 이야기를 ‘정치적’ 혹은 ‘역사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훨씬 더 개인적이고, 조용했다.


그는 그것이 “두 사람 사이에 일어난 진짜 우정”에 관한 이야기라고 느꼈고,
그 우정이야말로 자신이 수십 년간 코미디를 통해 말하고자 했던 사람과 사람 사이의 교류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피터는 이 실화를 바탕으로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한 닉 발레롱가, 즉 실제 주인공 토니 발레롱가의 아들과 협업했다.


이야기를 그릴 때 그는 전기가 아닌 사람 대 사람의 이야기, 특정 집단을 대표하는 캐릭터가 아니라 고유한 결핍과 품위를 가진 개인의 이야기로 만들기를 원했다.


그래서 『그린북』은 도덕적 설교도, 구조적 비판도 되지 않았다.
그것은 어느 한편이 다른 편을 ‘구원’하거나 ‘이해’하는 영화가 아니라,
두 사람이 서로의 세계를 조금씩 이해하게 되는 과정, 그 교차점의 섬세한 흔들림을 그려낸 작품이 되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건 정치 영화도, 인종 영화도 아니에요. 이건 사람에 대한 이야기예요. 웃고, 싸우고, 닮아가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죠.”


그 말처럼, 그는 이 작품 속에서도 유머의 리듬을 잃지 않으면서도
그 중심에는 항상 존중, 경청, 그리고 감정의 교류를 놓지 않았다.

『그린북』은 그가 오랜 시간 구축해 온 대중성과 감각 위에,
한층 더 깊어진 인간적 성찰을 더해 완성된 결과였다.


결국 피터 패럴리는 이 영화로 제9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각본상을 수상하고,
자신의 경력에서 처음으로 감독상 후보에 오르게 된다.
이 수상은 단지 트로피 하나로 기억될 일이 아니었다.


그가 오랫동안 웃음으로 쌓아온 사람 중심의 서사가
사회적 울림을 지닌 주제와 맞닿았을 때 얼마나 강력한 힘을 가질 수 있는지를 입증한 순간이었다.

그래서 『그린북』은 단지 이야기의 힘으로만 감동을 주는 영화가 아니다.


이 영화를 만든 사람의 변화를 함께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자체가 한 감독의 진심에 대한 증명이 된다.
피터 패럴리는 이 영화를 통해 세상에 큰 목소리로 고함치지 않는다.
그는 대신 조용히, 두 사람이 함께 만들어낸 작은 화음을 들려준다.
그리고 그 화음은, 우리가 만들어내는 많은 소음보다 훨씬 더 깊고 오래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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