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님, 덜 바쁘셔야 합니다
스타트업 대표는 매우 바쁘다. 하루 종일 일정표에는 각종 회의와 외부 손님 만남 약속이 빼곡하다. 업무 진행 현황을 빠짐없이 체크해야 하고, 제때 빠른 의사결정을 내려주어야 한다. 대표는 한 명이지만, 수십 명의 직원들 각자의 고충사항도 틈틈이 들어주어야 한다. 접대가 없는 날에는 직원들과 소주잔을 기울이면서. 스타트업은 인력 리소스가 부족하기에 웬만한 실무도 직접 한다. 타운홀 미팅 때 전체 직원들 앞에서 발표할 PPT 자료도 만든다. 본인이 쳐내야 할 실무가 최소한 3시간이 필요하면 공식 출근시간 3시간 전에 출근하고, 6시간이 필요하면 6시간 전에 출근한다. 한번 더 말하는 게 무색하지 않을 만큼, '스타트업 대표는 매우 바쁘다'.
며칠 전 대표님과 함께 저녁식사 자리를 가졌다.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냐고 물으시길래 이 말씀을 드렸다.
"조금 여유를 가지셨으면 좋겠습니다."
'여유(餘裕)'라는 단어에서 핵심은 '餘'(남을 여)라는 한자에 있다. '食'(밥 식)과 '余'(나 여)가 결합한 모습인데, 余에는 '나'라는 뜻도 있고 '남다'는 뜻도 있다. 余를 '나'라고 해석하면, 餘는 '내가 먹는 밥'이라 볼 수 있겠고, '남다'로 해석하면 餘는 '남긴 밥'이라 볼 수 있겠다.
밥을 먹는다는 것은 살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스타트업 대표가 열심히 일하는 것도 회사가 성장하고, 돈을 벌고, 직원들 월급을 주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그렇기에 여유를 갖는다는 말은 그 밥을 남기는 것, 즉 반드시 해야 할 일을 남김을 의미한다. 해야 할 일을 그냥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그 일을 아래 직원들에게 조금씩 나누고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그래야 직원들도 함께 성장한다. 그렇게 남긴 밥을 직원들도 함께 먹어야 함께 성장하고 대표의 어깨도 덜 무겁게 만든다.
나 나름대로 리더에게 매우 중요한 덕목 3가지가 있다고 보는데, '위임'과 '책임', 그리고 '의사결정'이다. 리더는 실무하는 자리가 아니다. 의사결정을 내리는 자리다. 그 과정에서 적절한 업무 위임과 그에 따른 책임은 매우 중요할 뿐만 아니라, 직원과의 상호 신뢰 과정에 큰 영향을 미친다.
안 그래도 바쁜 대표가 세세한 실무까지 다 챙기면 절대 여유가 생길 수 없다.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은 의사결정에 집중하고, '여유 부릴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 대표에게 있어 여유는 노닥거리는 시간이 아니라, 회사 전체를 위해 부스터샷을 날리는 시간이다. 그건 그냥 저절로 생기는 게 아니다. 밥을 남기는 것처럼, 의지를 갖고 쪼개고 쪼개어서 시간을 만들어야 한다.
여유의 반대를 한자로 표현하면 '忙'(바쁠 망)이다. '忄'(마음 심)이 '亡'(망할 망)한 게 바쁘다는 뜻이다. '마음이 망했다.' 뜻을 풀어보니 정말 적나라하지 않은가? 마음이 망하고 싶지 않다면, 여유를 가져야 한다. 어떻게 해서든. 무슨 수를 써서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