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마음>에 대하여
어릴 적부터 욕하는 것도, 듣는 것도 질색이던 나는 입에 담아봤던 가장 심한 말이 '야 인마' 정도였다. 내 성향이 그러니 주변에도 그다지 거친 말 하는 친구들이 없었고, 대학교 때도 많은 시간을 보낸 곳이 기독교 동아리였으니 그런 친구는 더더욱 주위에 없었다. 그렇게 온실 속에서 20년을 넘게 살다가 군대를 가니 그 거친 환경이 내겐 적응이 쉽지 않았다. 다행히 구타 같은 일은 전혀 없었지만, 태어나서 처음 듣는 온갖 욕이란 욕은 다 듣다 보니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였다. 그중에서도 이 욕은 지금도 선명히 기억에 남는다.
"대가리에 똥만 든 새끼가 서울대는 돈 쳐주고 들어갔지?"
이 말이 특히 모욕적으로 느껴졌던 이유는 내가 살아온 인생 일부가 나를 잘 알지도 못하는 타인에 의해 함부로 폄훼당했다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날 알게 된 건 부대 배치받은 뒤 함께 복무한 고작 얼마 되지도 않는 시간인데, 갓 들어온 이병이 어리버리하다고 해서 본 적도 없는 내 일생 일부를 그렇게 함부로 말한다는 게 매우 불쾌하게 느껴졌다. 누구나 그에게 맞는 잘하는 일이 있고, 반대로 못하는 일이 있다. 숫자에 밝은 사람이 숫자 다루는 일을 하면 더 잘할 수 있고, 어휘력이 있고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보고서를 좀 더 잘 쓸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걸 학교나 출신 지역처럼 아무 상관도 없는 것과 엮어서 함부로 폄훼하는 것은 결코 해서는 안될 일이다.
상대를 함부로 깎아내리고 헐뜯는 것을 '폄훼'(貶毁)라고 일컫는다. '貶'(낮출 폄)은 '貝'(조개 패)와 '乏'(모자랄 핍)이 합해진 한자다. 한자를 보다 보면 가끔 세상의 현실을 너무 잘 표현한 듯해서 놀랄 때가 있는데, 이 한자도 그런 한자다. 고대에는 조개가 화폐로 쓰였으므로 貝는 돈을 뜻한다. 乏은 '正'(바를 정)을 거꾸로 쓴 모양으로 바르지 않음을 뜻하고, 여기서 모자라다는 뜻을 갖게 되었다. 貶, 즉 남을 낮춰서 말하는 이유가 '돈이 모자라기 때문에'라고 연결되는 것이 참 씁쓸하게 느껴진다. 돈이 최고이고, 돈 없으면 함부로 사람을 낮추어보려는 못된 행태는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은 듯싶어서다.
'毁'(헐 훼)는 臼(절구 구)와 工(장인 공), 殳(몽둥이 수)가 결합된 한자다. 받침대인 工위에 올려진 절구통 臼를 몽둥이 殳로 마구 부수고 있는 모습의 한자다. 그 절구통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갔을까. 누군가가 살아온 인생의 일부를 몽둥이로 부수고 있는 것이 바로 毁의 의미다.
이렇게 폄훼라는 단어를 해석해 보자. 돈이나 또 다른 무언가가 부족하다고 해서 그 사람의 살아온 지난 인생을 함부로 부수고 헐어버리는 행위가 바로 폄훼다. 그의 인격을 부수고 무너뜨리는 행위가 폄훼다. 최소한 그도, 나도 누구나 동일한 인격체를 가진 동등한 사람임을 천명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지금이라면, 누군가를 함부로 폄훼하는 말과 행동은 결코 해서는 안될 일이다. 그 군대 선임이 내게 했던 말을 최대한 선의로 해석하여, 내가 자극받아 더 일을 잘하도록 의도한 것이었다 할지라도 그런 류의 말은 결코 함부로 해서는 안될 말이다.
'꽃으로도 때리지 마라.'는 말은 어린 소녀들이 아무리 좋아하는 꽃이라도 그것을 이용해 폭력으로 사용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어찌 어린 아이들에게만 대한 말이고, 물리적인 폭력에 대해서만 말일까. 다 큰 어른들에게도 마찬가지다. 돈 받고 일한다고 해서 돈으로도 때리지 말아야 할 것이며, 가르쳐주는 입장이라 해서 가르침으로도 때리지 말아야 할 것이다. 내가 우월한 위치에 있다고 해서 누군가의 인격을 함부로 낮추고 부수고 무너뜨리는 폄훼는 절대 해서는 안 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