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책들
<우리가 돈이 없지, 안목이 없냐?>라는 다소 신박한 제목의 에세이를 읽었다네. 재밌더군. 느낀 바를 리뷰로 써보려 한다네. 그런데 말투가 왜 그러냐고? 이 책의 말투가 그렇다네. 나도 작가님처럼 흉내내서 써보면 왠지 내 감상을 좀 더 잘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으이. 그러니 나더러 너무 오글거린다고 타박하지는 말게나.
나는 예스24에서 책을 살 때 주말에만 산다네. 주말에는 1000원 할인쿠폰을 주기 때문일세. 인터파크는 매일 1000원 할인쿠폰을 주는 것도 모자라, 톡집사 퀴즈를 풀면 1000원, 회원정보 확인하면 또 1000원을 준다네! 하지만 서점도 땅파서 장사하는 것도 아니고, 항상 이렇게 뿌리지는 않지. 더 쓸 쿠폰이 더 없으면 도서11번가를 애용한다네. SKT회원은 15%나 또 할인을 해주기 때문일세. (그래도 내 지인이 책을 내면 그런 할인따위 신경쓰지 않고 교보문고나 예스24에서 책을 사는 멋진 남자라네. 그러니 내 책도 그렇게 좀 사주길 부탁함세.)
무척 가난했던 대학시절부터 내 유일한 사치는 영화관람이었네. 항상 조조할인으로만 봤지. 열심히 포인트를 모아서 생긴 1회관람권으로 제일 좋은 시간에 제일 좋은 자리에 앉아서 영화를 보면 그렇게 세상 다 가진 기분이 없었다네. 아침에 보나 저녁에 보나 영화는 똑같은데 말이지.
난 지금도 차가 없다네. 벌써 수십년째 BMW를 타는게 익숙해서 딱히 불편함도 모르겠어. BMW란 Bus, Metro, Walking을 지칭하는 줄임말일세. 요즘 아이들이 생일선물을 생선이라 하고, 문화상품권을 문상이라 하는, 뭐 그런게지. 암튼 왠만한 거리는 걸어다니고, 환승을 애정한다네. 가끔 그럴 때 있지 않은가? 지하철역을 나왔는데 곧 다시 지하철을 타야 하는. 그럴때면 버스를 타고 한 정거장 이동하거나, 다른 가까운 지하철역에서 내린다네. 그럼 또 환승을 해서 탈 수 있기 때문일세.
왜 이리 궁상맞냐고? 아니, 조금씩 방식은 다를 뿐 당신네들도 다 그렇지 살지 않는가? 이 책의 작가님처럼 말일세. 부푼 기대감으로 휴면계좌잔액을 슬며시 조회했다가 잔액 545원에 실망하고, 회사동료와 점심으로 8500원짜리 냉면을 먹고 한꺼번에 계산한 동료에게 만 원짜리를 줬는데 잔돈 1500원 언제 주나 노심초사하고, 축의금은 딱 받았던 대로 정확히 기억해서 내고, 낙지덮밥을 시키며 추가주문한 공기밥이 계산되지 않은 영수증을 보며 서비스로 주신거구나 지레짐작하며 영수증을 구겨버리고. 뭐, 우리네 사는게 다 그렇게 비슷비슷하지 않으냐 말일세.
이 책의 저자는 아무개 작가일세. 그런데 알고 보니, 이 작가님은 이미 책도 여러 권 내셨고 꽤 큰 블로그도 운영하고 계시는, 세상에 꽤 이름을 알리신 분이더군. 그런데 굳이 필명을 아무개라 지으셨어. 이렇게 때로 찌질하고 궁상맞게 살아가는, 하지만 오늘 하루도 씩씩하게 살아내는 우리와 같은 아무개이기 때문일세. 그렇네. 이 책은 단지 아무개 작가님의 이야기일뿐 아니라, 아이를 위해, 남편 또는 아내를 위해,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살아가는 모든 아무개들의 이야기라네. 나처럼, 당신처럼 말일세.
가난하다고 왜 안목이 없겠는가. 왜 철학이 없겠는가. 왜 가치관이 없겠는가. 나도 학군좋고 교통이 좋은 지역에 위치한 아파트가 더 가치가 높다는 것쯤은 알고 있네. 삼성전자 같은 우량주에 큰 돈을 투자하면 돈이 돈을 벌거라는 것도 안다네. 심각한 기후변화에 대한 걱정이 있고, 미얀마 사태를 안타깝게 바라보는 사람일세. 하지만 나는 그런 아파트를 살 돈도 없고, 몇억씩 주식을 굴릴 돈도 없으이. 기후변화나 미얀마 사태가 안타깝지만, 지금 당장 나 먹고 사는게 더 바쁘고 힘들다네. 결국 돈, 그 놈의 돈이 문제라네.
이 책을 읽다보니, 묻어뒀던 옛 기억 하나가 소환되더군. 난 원래 대학시절 공부를 쭉 하고 싶었으이. 그런데 집이 와장창 망해버렸다네. 돈을 벌어야겠다 생각했지. 겨우겨우 취업에 성공했고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네. 그러던 어느날 어릴때부터 알던 아버지 친구분이 날 찾아오셨네. 무척 반갑게 인사를 드렸지. 그런데 내 앞에 차용증을 내미시며 아버지 빚을 대신 갚아달라 하시더군. 꽤 좋은 급의 쏘나타 한대는 살 수 있는, 내 평생 한번도 만져 본적 없는 그런 돈이었지. 난 그때까지 아버지 빚은 어느정도 정리된 줄 알았었다네. 그런데 지인에게 빌린 돈이 아직 남아있었던게지. 그 사이좋던 관계는 철천지 원수처럼 되어 있었다네.
마음이 아팠네. 너무 마음이 아팠어. 이 양반은 왜 아버지 빚을 나한테 와서 갚으라 하냐, 그런 것때문에 마음이 아픈게 아니라, 그 놈의 돈이 뭐라고 이토록 관계를 망가뜨리고, 사람을 힘들게 만들고, 서로 죽이니 마니 하게 만들었을까 그런 현실때문에 마음이 아팠네. 그 놈의 돈이 뭐라고, 그 빌어먹을 돈이 뭐라고!
난 내가 돈을 대신 갚겠다고 말씀드렸네. 통장에 있던 900만원을 바로 송금하고 나머지는 2년간 분할해서 갚겠다고 약속드렸네. 나중에 집에 전화해서 자초지종을 얘기하니, 부모님은 그걸 왜 네가 갚냐고 처음엔 길길이 화를 내시더니, 무척 미안해하셨네. 그때 통화하던걸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날 것 같다네.
그때를 생각하면, 돈을 갚고 싶어도 못 갚는 처지의, 그렇다고 자식한테 더 이상 폐는 끼치기 싫었던 아버지의 마음이 이해되어 마음이 아프다네. 본인에게도 무척 큰 돈을 계속 못 받는 답답한 상황에 오죽하면 나를 찾아왔을까, 아버지 친구분의 마음이 이해되어 마음이 아프다네. 돈 한푼 더 아끼겠다고 겨울에도 보일러를 틀지 않고, 월세 5만원 더 아끼겠다고 빛도 거의 안 들어오는 북향집을 굳이 자취방으로 선택했던 내 모습이 궁상스러워 마음이 아프다네. 아버지도, 아버지 친구도, 나도. 참 안됐다네. 그놈의 돈이 뭐라고.
그래도 이때의 경험이 준 한가지 선물은 있는 것 같으이. 아주 조금은, 아아주 조금은 내가 돈으로부터 자유로워진 것 같으니 말일세. 만약 내가 감당할수도 없는 수억, 수십억이었으면 어쩔 뻔했는가. 그나마 내가 감당할만한 수준의 돈으로, 돈에 집착하지 않을 수 있는 연습을 해보았으니, 얼마나 큰 선물인가 말일세.
이 책의 아무개 작가는 무척 중고를 좋아한다고 말하더군. 중고장터에 4만원에 올라온 가구도 상태가 안좋다고 트집을 잡으며 3만원에 사고, 누가 버린 베란다 수납장을 주워와서 요긴하게 쓰고 있다 말하지. 그런데 천원, 만원 악착같이 모으는 이 아무개 작가도 돈을 쓸때는 쓰는 사람이라네. 남편 퇴직금 중간정산으로 받은 1000만원을 시부모님께 드리고, 가까운 가족이 대학 입학같은 중요한 이벤트가 있으면 100만원씩 척척 주었다고 하네. 가족과 친척, 친구, 지인들에게 밥사는걸 아끼지 않고 한번 얻어먹으면 두번은 사려 애쓴다고 하네. 그러면서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네.
“’나’라는 사람, 아낄땐 아끼고 쓸땐 쓰는 사람이라네. 불필요한 것에 아낀 돈을 소중한 일에 쓰지. 나에겐 엄격히 아끼고 소중한 이들에게 흔쾌히 쓰려고 해. 나에겐 가난이란, 약간의 불편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야. 그대에게 부탁 하나 함세. 이제부터 내게 ‘가난’이라는 서글픈 단어 말고, ‘청빈’이라는 고상하고 우아한 단어를 써주면 안될까?” (77p)
참으로 맞는 말이네. 돈은 얼마나 많냐 보다는, 어떻게 쓰느냐가 더 중요한 법이라네. 수십억이 있는 사람이 그 수십억을 술집에 가서 흥청망청 쓰는 것과, 수백만원이 있는 사람이 그 돈을 내 가족을 위해, 내 소중한 사람을 위해 쓰는 것 중에 누가 더 진짜 부자같은가? 내 기준에는 후자가 더 부자라네.
돈이 좀 없다는건 약간의 불편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네. 택시대신 버스를 타야하는, 딱 그 정도 불편함이란 말일세. 꼭 내 차를 가지고 가야만 목적지에 이를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내 그렌져를 타고 가든, 택시를 타고 가든, 버스를 타고 가든. 내가 가고 싶은 방향으로 간다는 게 중요한 걸세. 그러니 우리 너무 우울해하지도, 서글퍼하지도 말기로 함세. 우리는 택시탈 돈을 아껴서 버스를 타는 대신 내 진짜 소중한 것을 위해, 내 진짜 소중한 사람을 위해 돈을 쓰는 그런 ‘청빈’한 사람들이니 말일세.
우리 스스로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함세. 난 ‘가난’한 것이 아니라, ‘청빈’한 것이라고. 돈보다 중요한 것은 내 인생, 내 사람들이라고. 돈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일뿐이라고. 누가 정신승리라고 비아냥거려도 좋네. 그러든지 말든지, 개의치 않는다네. 그게 정답이니 말일세.
ps. 오늘이 주말이니 예스24에서 책사기 좋은 날이네, 그려. 교보문고 바로드림 서비스를 이용하면 할인된 가격으로 오프라인 서점에서 책사는 기분을 느낄 수도 있다네. 그러니 일단 신아무개의 신간 <그래서 역사가 필요해> 책을 한 권 사시고, <우리가 돈이 없지, 안목이 없냐?> 한 권도 같이 사시게. 방금 말하지 않았던가? 돈은 진짜 소중한데 쓰는 것이라고. 허허 내 입으로 이렇게 말하니 좀 쑥쓰럽긴 하네만, 그냥 그런 셈치고 넘어가 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