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책들
우리보다 앞서 살았던 수많은 위인들이 남긴 수많은 글들이 있지만, 그 모든 글을 접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우리가 그들의 글을 읽을만큼 한문 실력도 없을 뿐더러, 엄청나게 많은 문헌들을 다 읽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 책은 수없이 많은 글들 중에서도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에 도움이 될만한 40편만 엄선하여 소개한다. 수많은 보물과 같은 글들을 잔뜩 수록하고 있는 보물창고와 같은 책이다.
"1장 새날의 마음챙김"도 겨울의 일부라 본다면, 봄, 여름, 가을, 겨울의 계절에 따라 각 10편씩, 총 40편의 글을 소개한다. 이 책을 관통하는 "순리대로 살것"이란 메시지가 목차 구성에도 고스란히 드러나는 듯 하다. 한주에 글 한꼭지씩, 1년간 내내 읽고, 그렇게 매년 읽어도 무척 좋은 책이라 생각한다.
이 책은 단순히 옛 선인들이 남긴 좋은 글들을 소개하고 음미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화두와 질문을 던지고, 그래서 어떻게 실천하고 살아야 할지 결단을 촉구한다.
"만약 입으로만 익을 뿐 마음으로 체득하지 못하고 몸으로 실천하지 못한다면 글은 글일 뿐이고 나는 나일 뿐이니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 이이, 율곡집, 격몽요결, 제4장 독서 중에서
"결단해야 할 거라면 즉시 결단해야지. 어째서 당장 하지 않지?" - 이가환, 금대시문초, 권2 '외조카의 처소 이름을 듣고 쓰다(가이소설)
책 전체 내용중에서 가져온 두 문장이지만, 결국 이 책을 읽고나면 가장 새겨야 할 말이 아닌가 싶다. 작가는 이렇게 덧붙인다.
'조선 유학자들의 독서에서 가장 멋진 부분은 '실천'에 있다고 생각한다. 책을 다 읽고 나서도 책은 책일 뿐이고, 나는 나일 뿐인 상태를 최악의 독서법으로 쳤다. 절대 경계해야 하는 독서가 지식만 얻는 독서인 것이다.'
'무엇이 어떻게 되었으면... 내가 어찌어찌 되었으면... 하는 바람은 결단과 실행 전에는 아무 의미가 없다.'
참으로 맞는 말이다. 독서를 통해 아무리 깨달음을 얻으면 무엇하나. 나의 결단과 실행으로 이어지지 않고, 책을 읽기 이전과 아무런 달라진게 없다면 단지 시간낭비일 뿐이다.
이 책이 특히 좋은 점은, 우리 삶과 일상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만한 조언이 참 많다는 점이다.
"인간 세상이란 하나의 거대한 물결이요, 인심이란 하나의 거대한 바람이라오. 내 조그만 몸이 아득한 그곳에서 표류하는 것이 마치 일렵편주가 만경창파 위에 떠 있는 것과 같다오." - 권근, 동문선, 권98, 늙은 뱃사공 이야기(주옹설)
작가는 해석한다.
'우리는 외부의 풍랑이 잔잔해져야 내 삶이 고요해지고 평안을 찾게 된다고 생각하지만 뱃사공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너의 평안은 온전히 네게 달렸다고, 외부의 풍랑이 너를 흔드는 게 아니라 균형을 잡지 못하는 너 자신이 너 스스로를 흔들고 있는 것이라고 가르쳐준다.... 역경이 닥치면 이겨내기 위해 스스로를 돌아보기 시작한다. 부족한 부분을 찾고 메우고 견디는 법을 배운다. 버티다 보면 강해진다. 단단하게 길러진 맷집은 성공 후에도 자신을 잃지 않고 버틸 수 있는 힘이 되어준다.... 흔들림이 우리를 건강하게 한다. 균형을 잡을 필요가 없는 상황이 평안이라고 생각하지만 균형을 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을 때가 가장 건강한 평안이라고 옛 현인들은 역설한다.'
최근 회사일로 스트레스가 무척 많았다. 크게 흔들리는 내 마음을 어찌하지 못하여 불안하고 힘들었다. 왜 나에게는 좀더 편하고 여유있는 삶이 허락되지 않는걸까, 왜 이렇게 계속해서 발버둥치며 살아야만 하는걸까. 하지만 이 책은 나를 위로한다. 외부의 풍랑이 잔잔해진 상태에 취해 있는 때가 오히려 가장 불안한 때라고. 사실은 너처럼 균형을 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지금이 가장 건강한 평안이라고. 돌이켜보면 지금껏 살아남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다. 지금도 회사에서 많은 스트레스를 받지만, 그때문에 나는 끊임없이 살아남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그 덕분에 아직은 회사에서 쓸모있는 사람으로 인정받고 돈을 벌어 그 돈으로 가족을 부양한다. 내가 그렇게 힘들게 벌어온 돈임을 알기에, 아내도 나의 노고를 인정해주고 따뜻하게 위로해준다. 그렇게 나는, 우리 가족은 힘을 얻고 한발 한발 계속 앞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이황이 남긴 말도 깊은 울림을 준다.
퇴계 이황과 고봉 기대승은 13년간 100통의 편지를 주고 받으며 교분을 이어갔고, 그중 8년간은 서로 성리학 이론에 대한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 둘의 만남이 처음 시작되었을 때 퇴계는 58세, 고봉은 32세였다고 한다. 무려 26살이나 차이나는 나이. 그런데 이 노학자가 약관의 젊은이에게 대하는 자세가 공손하기 그지 없다. 한번은 이 새파랗게 젊은이가 "큰 도에 스스로를 두시고 일상의 법규에 집착하지 마시기 바랍니다"라는 충고하자, 이황은 참으로 장한 말이라면서, 고봉의 말처럼 해야만 비로소 대장부라 할 수 있겠다고 관대하게 받아들인다.
한번은 기대승이 지나치게 강한 자기주장을 펼치자, 이황은 언짢아 하기보다 따뜻한 충고를 건넨다.
"진짜 강함과 진짜 용기는 드센 기세와 강한 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잘못을 고치는데 인색하지 않고 옳은 것을 들으면 즉시 따르는 데 있다는 것을 알겠습니다." - 이황, 퇴계집, 권16 서, 기명언에게 답함(답기명언)
두 사람의 학문적 생각은 결국 합치되지 않았지만 그들은 토론의 정수를 보여주었다. 이러한 진정한 토론은 수직적 관계에서는 나올 수 없는 것이다. 비록 26살이나 어리지만 자신의 위치를 기꺼이 낮춘 이황의 겸손함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내가 다니는 회사는 수평적 조직문화를 지향한다. 대리, 과장 같은 어떠한 직위도 없고, 모두가 ~님으로 불린다. 나보다 나이 많은 분도 나를 동욱님이라 부르고, 15살 어린 신입사원도 동욱님이라 부른다. 호칭이야 그렇다쳐도, 가끔 자기 주장이 지나치게 강한 젊은 꼰대 직원을 만나면 난감할 때가 있다. 나보다 나이가 훨씬 어린 직원이 그러면 속으로 부글부글 끓기도 한다. 그런데 이황 선생이 말한다. 그래서 뭐. 나이가 뭐. 난 26살이나 어린 기대승과도 격의없는 토론을 하고, 논쟁도 하고, 공격도 당했는데. 중요한 건 너의 마음이고, 너의 성품이야. 이렇게 말씀하시는 듯 하다. 맞다. 중요한건 내 마음이다. 그 직원이 옳은 말을 하면, 받아들이면 될 일이고, 틀린 말을 하면 잘 알려주면 될 일이다. 끝까지 자기가 옳다 우기면 어쩔 수 없는거고. 상대의 반응이나 태도 하나하나에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건 그를 대하는 나의 마음이다.
이외에도 좋은 문장들이 참 많다. 그중 몇 가지만 간추려서 옮겨본다.
- 내가 받는 평가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가' 내리는 평가인지가 더 중요하다.
- 영원히 봄을 간직하는 것은 별것 아니다. 생명을 피어나게 하는 마음을 지니면 되는 것이다. 어려움을 겪는 생명에 기꺼이 손을 내미는 마음 하나만 잘 간직하면 내 봄은 영원히 내 안에 간직된다.
- 모두가 안 될거라고 말하는 상황에서도 꿈꾸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의 욕심이 아니라 모두를 위해 기꺼이 자기 전부를 내던지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들의 꿈과 희망으로 우리가 오늘을 누린다.
- 알아주지 않다고 사회를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에 매진하는 지식인의 모습이 멋지다.
- 사악해서 죽인다면서 오히려 작은 사악함에 대해서만 용기와 과단성을 발휘한다. 작은 사악함은 여지없이 처단하면서 큰 사악함은 무서워서 그냥 놔둔다.
- 늘 흐린 하늘만 보아온 사람은 하늘이 원래 흐린 것이라고 말하겠지만 견문이 넓은 사람은 눈앞의 하늘이 흐려도 하늘은 원래 푸른 것임을 안다. 즉, 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 세상이 온통 악으로 가득할지라도 그것이 정상이 아니란 것을 아는 것이다.
- 꿈은 현실의 직시에서부터 시작된다. 망상이 아니다. 꿈을 꾸려면 땅에 발을 듣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 바꿀 수 없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바꿀 수 있는데 바꾸지 않고 있는 것을 부끄러워하라는 두 사람의 충고가 날카롭다.
- 자연은 쌀 한 톨 그냥 만들어내는 법이 없다. 정직하게 노력하고 견뎌야 할 시간을 다 견뎌내면 그 모든 세월의 이력을 새긴 쌀 한 톨을 내어주는 것이다.
- '내가 배우고 깨달은 옮음'을 배신하지 않은 자들이 시대를 만들어 냈기 때문에 오늘 나는 이만큼 밝은 세상에서 살아간다는 걸 또한 잘 알고 있다.
- 이익은 말한다. '이로움'이라는 것은 애당초 나만을 위한 것은 아니고, 그래서 지금 그것이 나에게만 있고 다른 이들에게는 없다면 이로움은 기어이 해로운 것이 된다고.
- 점점 빠르게 무언가를 해결할 수 있게 될수록 우리의 삶은 더 여유가 없어진다.
- 정직하게 일하려면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그 일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 말이다. 나와 내 삶을 생각하기 이전에 일과 세상과 타인과의 관계도 생각해야 한다.
- 풀은 봄에 대해 무성하게 해주었다 감사하지 않고, 나무는 가을에 대해 잎을 떨구게 한다 원망하지 않는다. 내 생을 잘 사는 것이 내 죽음을 훌륭하게 하는 길이다.
책값 17,000원이 아깝지 않은 책이다. 이 17,000원으로 인해 내 마음이, 내 삶의 태도가 이 책을 읽기 이전보다 조금 더 나아질 것이 확실하기에. 마지막으로 여기에 옮기지 못했지만, 책에서 작가가 표현한 것처럼 내 마음도 무척 먹먹하게 만든, 특히 많은 생각을 하게 한 한편의 시가 있었다. 이 책의 246p에 수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