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청약통장을 만들고 나오며 했던 이런저런 생각
'3년 뒤라..'
은행을 나오며 복잡미묘한 마음이 들었다. 다만 지그시 웃었다. 웃음 밖에는 이 기분을 표현할 길이 없어서.
가끔씩 ‘독립된 공간’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물론 지금도 '내 방'이 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내 집’ 하나 갖고픈 소원이 있다. 눈을 들어 사회를 본다. 억, 억 하는 집값(단위도 그렇고 체감상으로도)이 된지는 이미 오래. 몇 년 사이, 몇 천에서 많게는 몇 억까지 집값이 오른다.
반면 내 봉급은 연 단위로 조정되며, 동결이거나 소폭 오르면 감사할 따름이다. 부모님의 도움이나, 하늘에서 뭔가 뚝 떨어진다든지, 땅에서 뭔가 솟지 않으면, 도저히 가망성이 없어보인다(물론, ‘내 집 마련’이 사회초년생이 짜잔, 하고 이룰 수 있는 꿈은 아니다.). 어쩌면 생각보다 꽤 오랜 시간, 부모님과 함께 살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타인에게 월세를 주느니 부모님께 드리는 게 낫지. 용돈 겸.
그렇다고 해서 작은 시도조차 하지 않는 건 무책임하다. 티끌 모아 태산이렷다, 낙숫물이 바위를 뚫는다 했다. 은행을 찾아가 [청년 우대형 청약 통장]에 가입했다. 3년 내 세대주가 된다는 조건으로. 창구에서 신청서를 하나 하나 쓰고, ‘3년 내 세대주임을 입증할 수 있는 서류를 제출’한다는 확약서를 썼다. 정말 그렇게 될지 어떨지 모르면서.
이런저런 묘수를 쓰면 세대주(*3개월 이상 유지)가 되는 건 어렵지 않을 듯하다. 하지만 내 마음 속에 있는 ‘세대주’의 이미지는 ‘독립’을 의미했다. 혼자 살든,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든.. 월세, 전세, 자가. 어느 쪽이든..
생각이 많아졌다.
공원 벤치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봤다.
‘3년 뒤라..’
‘정말 3년 안에 가능할까?’
답은 ‘모르겠다.’
그래서 지금으로부터 3년을 쭈욱 돌아봤다. 지나올 때는 참으로 길었는데, 지나고 보니 언제 흘러갔나 싶은 시간이 펼쳐졌다. 2016년의 나. 2017년의 나. 2018년의 나. 그리고 현재. 그 시기마다 처한 상황이 너무나도 달랐고.. 혹은 상황이 그대로여도 마음이 180도 변했으며.. 이렇게 될 줄 몰랐던 일들. 우연처럼 찾아온 필연. 필연처럼 다가왔으나 그저 헤프닝에 그친 사건들. 만남들.
‘2016년의 나는, 2019년의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있을지 꿈에도 몰랐다.'
...
‘그렇다면, 2022년의 나 또한 2019년의 내가
예측할 수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을 거다.’
숙고 끝에 내린 결론이다. 지금 나이대가 생애주기 내의 변화가 많을 법한 시기라 그렇기도 하지만, 그걸 떠나 인생 전체를 살펴보니- 삶은 너무나도 큰 신비와 불가항력으로 가득 차 있음을 새삼 느꼈다. 연속적인 경험이 그랬다. 3년을 넘어 더 먼 과거로 되돌려보았다(기억 속에 남아 있는, 미래에 대한 골똘한 고민은 12살이 최초였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4년 주기로 큰 사건이 찾아왔다.)
12살, 욕조에 몸을 담근 채 막연한 미래를 생각하다 : ‘20대 후반의 나는 뭘 하고 있을까? 40대엔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까?’
16살, 작가의 꿈을 꾼 원년 : '20대 후반쯤엔 걸출한 작가가 되어 있겠지!'
20살, '작가는 무슨..' 청년기의 길고 긴 방황과 고통을 알리는 서막일 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24살. 브런치를 시작하며 ‘잊고 있던 꿈’에 다시금 불을 댕겼다.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엄청 벌어졌다.
...
"나참."
실소에 가까운 혼잣말이 터져나왔다. 어른이 되면 잘 할 줄 알았던 '앞가림', 여전히 못하고 있다. 더 정확히는, 할 수가 없다. 철저한 계획과 불굴의 의지를 통해 자기 힘으로 삶을 이끌어가는 전능한 사람들도 있는 모양이지만, 적어도 나는 그런 인물이 아니다. 그러려 애쓰고 싶지도 않고. 막연하고 추상적인, 어찌 보면 무책임한 삶의 태도가 아닌가 싶다가도, 살아온 시간을 돌이켜보면 이내 픽 웃고 만다.
단지, 지금 내게 주어진 상황과 환경에서, 할 수 있는 것을 하나씩 할 뿐이다. 마치 청약통장에 매월 얼마씩을 붓는 것처럼..
생각을 환기하려 기-인 심호흡을 했다. 시원한 공기가 가슴 깊이 스며들어와 온몸을 휘돌고 나갔다.
머릿속에서 생각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자, 문득 성경 말씀 하나가 떠올랐다. 고등학교 3학년, 수능을 치른 후 선명하게 마음에 각인됐던. 그리고 지금도 종종 되뇌는 말씀.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잠언 16:9
나는 다만, 미소지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걸었다.
이메일 - Seryuah@naver.com
*모든 독자님께 열려 있습니다 ^^
사진 출처(이하 작가명): http://pixabay.com
표지 및 마지막: "StockSnap"
1번: "ElisaRiva"
개인 사진
2번: 이지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