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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밀 Feb 25. 2020

“지금 등록하셔야 서른 살까지 결혼하시죠!”

결혼 정보 회사가 내게 말했다.



  작년에 친구가 톡으로 링크를 보냈다. 나의 남편을 예측해 주겠다는 심리 테스트였다. 안 그래도 심리 테스트라면 환장하는 나인데, 미래 남편을 예측해 준다니! 내 기준에서는 흥미진진한 심리테스트였다. 거침없이 링크를 누르고 항목에 체크를 했다.


  그런데 결과를 알려면 핸드폰 번호를 입력해야 한단다. 이게 무슨 속내가 빤히 보이는 수법인가. 아마 밖에서 물어봤다면 테스트 자체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했더라도 번호를 알려 달라는 대목에서 ‘뭐야? 사이비네.’ 하고 지나갔을 것이다.


  하지만 꽤 이름 있는 회사인 데다 결과가 궁금했기 때문에 ‘설마 내 번호를 중국에 팔아먹지는 않겠지.’ , ‘사이비 종교는 아니잖아?’ 싶어서 쿨하게 번호를 적어 줬다. 친절히 이름과 나이까지 적어 줬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온라인이 사람의 경계심을 허무나 보다.


  그 후로 까맣게 잊고 지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으니, 결혼정보회사 직원이라고 했다. 내 이름을 말하며 본인이 맞는지 확인하고, 대놓고 직업이 무엇인지, 남자친구가 있는지 물었다. 순간 ‘여기서 내 번호를 어떻게 알았지? 엄마가 나 몰래 등록했나?’와 같은 생각을 하다가 그 테스트를 했던 게 떠올랐다.


  그때 학원 강사 일을 하고 있긴 했지만, 왠지 무직이라고 하면 더 이상 영업을 안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무직이라고 했더니 직원이 이렇게 말을 했다.



“아 저희 회사는 남자분들은 직업이 없으신 분은 가입이 불가능하지만, 여자분들은 무직이셔도 가입 가능하세요.”



 기분이 나빴다. 이건 남녀 할 것 없이 기분 나쁠 이야기다. 하지만 장담컨대, 기분이 더 나쁜 쪽은 여자 쪽이다. 여자인 내 입장에서는 여자는 능력이 중요하지 않다는 소리로 들렸다.


   실제로 결혼 정보 회사는 여성의 조건이 좋을수록 가격을 비싸게 책정한다고 한다. 반대로 남성의 경우 학력이나 소득이 높을수록 무료 만남 횟수가 증가한다고 한다. 그 이유는 고학력 고소득 여성은 매칭이 쉽지 않기 때문이란다. 결혼 정보 회사의 관점에서는 남성은 자기 자신보다 약간이라도 조건이 낮은 여자를 선호한단다.


  그런데 이게 과연 결혼 정보 회사만의 관점일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고객의 니즈를 분석하고, 그에 맞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회사의 방침일 텐데 말이다. 이는 우리 사회의 여성에 대한 시각을 보여주는 한 사례이지 않을까?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여자가 남자보다 잘나면 안 되는 걸까? 그러면 남자는 항상 여자보다 잘나야 할까?




  그다음에 직원이 내게 하는 말도 내 머릿속에 물음표를 만들었다.


 27살에 등록하시는 게 제일 적령기예요.
한창 예쁠 때 등록하시고 만남 가지셔야
서른 전에 결혼하시죠!


   당장 “30살 전에 결혼해야 한다는 법은 누가 만든 거죠?”라고 묻고 싶었지만 참았다. 이 분의 생각이라기보다는 회사의 생각일 텐데, 굳이 이 분과 입씨름을 해서 좋을 게 무엇인가. 분노의 방향은 회사나 사회로 돌리는 게 맞지. 정중하게 바빠서 끊겠다 말하고, 전화를 내려놓았다. 그 뒤로도 문자와 전화가 몇 번 더 왔지만 받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서비스겠지만, 나와는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나는 결혼은 축하받아 마땅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결혼은 인생을 함께 할 동반자를 만나 가정을 이루고, 미래를 설계하는 멋진 일이다.


  그만큼 결혼은 신중하고, 또 신중해야 할 일이다. 모든 사람이 거쳐야 할 통과의례도 아니고, 서른 전에 꼭 마쳐야 할 숙제도 아니다.


  행복도, 안정감도, 유대감도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다. 각자의 기준에 비추어 봤을 때 결혼이 해답이라면 그 사람은 결혼하면 된다. 단, 흔히들 말하는 결혼 적령기 때 만난 사람 말고, ‘이 사람과 살면 너무 행복하겠다.’ 하는 확신이 드는 사람과 말이다.


  만일 결혼이 해답이 아니라면 결혼을 하지 않아도 된다. 혼자 살거나, 친구와 살거나, 부모님과 살거나, 혹은 반려동물과 사는 것이 내게 행복과, 안정감, 유대감을 준다면 말이다. 어디까지나 결혼은 선택의 문제이다.


  확신을 주었던 사람과 결혼을 하더라도 생활 패턴의 차이나 고부 갈등 등 다양한 변수에 의해 언제든 갈라설 수 있다. 가족이었던 사람이 한순간 남남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런데 사회적 시선이 신경 쓰여서, 남들 다 결혼할 때쯤에 만난 누군가와 결혼하는 게 과연 현명한 선택일까? 내 옆에 확신을 주는 사람이 없다면 좀 더 기다리거나, 다른 선택지를 고려해 보는 것이 훨씬 현명하지 않을까?  


  연애의 참견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최화정 씨가 결혼을 앞두고 자꾸 변해 가는 남자 친구 때문에 고민하는 사연에 이렇게 조언을 했다.

연애의 참견에서 명언을 쏟아낸 최화정씨
이 남자를 잡은들 그가 평생 곁에 있을 진
아무도 모르는 거다.
인생은 누구 때문에 살 수 있는 게 아니다.
자기가 의자라고 앉은 건데,
그 의자가 다리가 세 개밖에 없다면
그 의자를 의자라고 뒤뚱거리면서
앉는 게 나을까?
저는 차라리 제 두 다리로 서 있겠다.



  이 말을 듣고, 더더욱 행복의 주체는 나라는 생각을 굳혔다. 더불어 결혼은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으면 하고, 아니면 마는 것’이라는 생각도. 혹여나 사회적 시선에 중심을 잃게 되더라도 잊지 않을 것이다. 나에게는 똑바로 설 두 다리가 있다는 것을.



 





* 참조: (기사) 표주연, “[결혼정보회사에 대한 오해와 진실2] 여성 가입이 남성보다 비쌀까?”, 뉴시스, 2019.06.16, https://www.msn.com/ko-kr/money/topstories/결혼정보회사에-대한-오해와-진실여성가입이-남성보다-비쌀까/ar-AACW2N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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