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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밀 Mar 14. 2021

이 시국에 말레이시아행 비행기를 탄 이유.

Covid-19 상황 속 비행기에 오르기까지


코시국에 말레이시아행 비행기를 탔다.

그것도 말레이시아 학교의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기 위해서!

심지어 한국어 교원 자격증도,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쳐 본 경험도 없는 내가!


이러한 무모한 도전을 하기까지 작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부터 얘기를 꺼내 볼까 한다.


작년에 4월부터 올해 1월(말레이시아행이 결정되기 전)까지 인턴 생활을 했다. 인턴으로 일했던 회사는 가고 싶었던 회사 중 하나였고, 그랬기에 인턴 생활에 대한 기대가 컸던 회사였다.


그래서 계약직으로라도 연장 제안을 받고 싶어 정말 열심히 일했었다. 그 결과, 연장 제안까지 받았지만 인턴 생활의 끝이 보일 때쯤, 난 연장을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연장 제안을 받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인턴’

본인이 회사원이라면 저 대목에서 그 이유를 알아차렸을 것이다.


얼마나 일 시키기 좋은 포지션이었겠는가.

그리고 그걸 다 받아서 열심히 하던 나는 속된 말로 ‘현타’가 왔다.


회사 스트레스, 세세히 말하지 않아도 아시죠?


그래서 인턴 생활의 끝이 보일 때쯤 향후 진로에 대한 생각이 깊어졌다.


‘나는 회사 생활이 안 맞아. 그건 확실해.’

‘교육 쪽 회사에서 일한다고 해서 내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게 아니었어. 굳이 그 일을 하겠다면 최소 박사는 따야 하는 데, 그렇다고 박사를 해서까지 하고 싶은 일은 아냐.(참고로 나는 석사였다.)


이런 생각들을 하다 보니, 마음 한 켠에 아직 날아가지 못하고 머물러 있던 ‘교사’라는 꿈이 팔랑거렸다.


‘나는 회사에 있던 10개월을 제외하고는 대학생 때부터 학생들을 가르치고, 지도하는 일만 해 왔는데’

‘그만큼 나는 가르치는 일을 정말 좋아하는데’

‘그래서 취업으로 방향을 돌린 후에도 교육 쪽 회사에 간 거였는데’

‘나는 가르치는 일을 가장 잘하는데’


이런 식으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다시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올해 내 나이는 벌써 한국 나이로 29살이다. 그 말은 친구들은 이미 최소 3년 차 많으면 6년 차 직장 생활 중이라는 뜻이다. 또, 내가 그럴 생각이 없고, 사실이 그렇지 않더라도 회사 입장에서 바라 보기엔 ‘입사 후 몇 년 있다가 결혼과 출산을 이유로 휴직할 가능성이 높은’ 나이기도 하다.


즉, 도전을 하기엔 ‘실패할 여유가 없는’ 나이라는 뜻이다.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이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만큼 중요한 시기기에 더 신중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시기에 내린 결정이 되돌리기 힘든 결정이고, 그만큼 내 향후 진로를 좌지우지 한다면, 급하게 결정을 할 것이 아니라 좀더 신중하게 고민하는 게 맞다고 보았다. 그리고 가르치는 일을 하고 싶다고 방향은 정했으니, 그 방향성은 잃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국립국제교육원의 교원해외파견사업 공문을 보게 되었고, ‘이거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교원해외파견사업은 현직교원들과 예비교원들을 개발도상국의 공립학교의 교사로 파견을 보내는 ODA사업이다. 한국어, 수학 등 다양한 교과목의 교사들을 파견을 보낸다. (관심 있다면 국립국제교육원 ODA 사업을 찾아보시거나 네이버 ‘해외교원진출사업’ 카페를 검색해 보시길)


한국어 교육은 도전해   없는 분야였지만, 평소 관심이 있던 분야였고, 국어교육을 전공하면서 외국어에 대한 관심도 높았던 내게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은  매력으로 다가왔다.


해외에 살아볼  있다는  마음에 들었다. 해외에 한번 살아보는 것이 버킷리스트  하나였지만, 대학원 진학과 고시 준비, 취업 준비로 그럴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29, 20대의 마지막을 외국에서 살아 보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때 아니면 혼자 해외에 살아볼 기회를 잡기 어려울 것이라는 계산도 섰다.


게다가 따뜻하면서도(더위에 가깝지만 난 추운 날씨보다는 더운 날씨를 훨씬 선호한다.) 다양한 문화권의 사람들이 살고, 다양한 언어(말레이어, 영어, 중국어)를 두루 사용하는 말레이시아는 특히 매력적이었다.

녹색 짙은, 따뜻한 말레이시아


무엇보다도 말레이시아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향후 진로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고민해 볼 수 있다는 것도 좋았다. 내가 이렇게 학교에서 학생들과 생활하면서 가르치는 게 좋은 건지, 아니면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데서 오는 보람이 좋은 건지 시험해 볼 기회였다.

 

마음에 걸리는 것이라고는   가지, 지금이 코시국이라는 것이었다. 말레이시아의 코로나 상황이 우리나라보다 훨씬 심각했기 때문이다.


코로나로 인해 한산한 공항


하지만 코시국의 위험성을 각오해서라도 말레이시아에서 나의 성장 가능성을 시험하고 싶었다.


다행히 내가 지닌 중등교원자격증 2급과 교육학 석사로도 공고의 조건을 충족할 수 있었다. 일을 병행하면서 촉박한 기간 동안 서류 심사와 수업 시연, 영어 면접을 준비했고  결과는 합격이었다. ( 과정에서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얘기는 다음 이야기에 풀어 보려 한다.)


말레이시아행 비행기에서 본 아름다운 하늘


현재 말레이시아에 온 지 9일 차이고, 오늘 말레이시아에서 살 집에 예약금을 걸어 둔 상태다. 그리고 곧 다음 주에 학생들을 만나기 위해 열심히 수업 준비 중이다.


앞으로 차근차근 말레이시아 생활에 대한 이야기, 해외 생활 꿀팁, 말레이시아에서 한국어 교사로 일하며 있었던 에피소드들을 여기 브런치에 하나하나 기록할 계획이다.


말레이시아 교단 일지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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