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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벽 May 23. 2023

요셉의 꿈

별이 머무는 언덕 3-2


달아나던 요셉은 로마병사의 눈을 피해 어느 집으로 무작정 뛰어들었다. 


“누구세요?


집안에서 길쌈을 고 있던 부인과 딸이 화들짝 놀라서 외쳤다.


로마군에게 쫓기고 있습니다. 숨겨......


유대 사람들 대부분이 로마에 대한 증오심을 품고 살아가고 있다 하더라도 자칫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무모한 짓을 하려 들지는 않을 터였다. 


'두 모녀가 목숨 걸고 생면부지의 나를 숨겨 줄 리 없어.'


요셉은 겁먹은 두 여인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깨달았다. 누구든 로마군에 대한 증오심 때문에 자신을 숨겨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잘못 들어왔어요. 어서 나가세요. 여긴 숨을 데가 없어요."


중년여인이 요셉의 몸을 빠르게 훑어보더니  겁에 질린 낯빛으로, 그러나 냉정하게 소리쳤다.

요셉을 두려워하는 게 아니었다. 금방이라도 들이닥칠지 모르는 로마군이 여인을 공포로 질리게 만드는 거였다.


"이리 오세요."


그러나 스무 살 남짓한 여인이 결심한 듯 다가와 요셉의 손을 잡아끌었다. 빠른 움직임이었다.


"얘야, 그러다 우리 모두 죽어."


부인이 소리쳤다. 


"어머니, 이 분을 내쫓고 나면 평생 괴로움 속에 살아가게 될 거예요. 그러느니 죽음을 택하겠어요."


젊은 여인이 담요를 펼치면서 요셉과 어머니를 번갈아봤다.


"여기에 엎드리세요. 담요로 당신을 덥고 제가 걸터앉아서 길쌈을 할 거예요. 의자처럼요. 하실 수 있죠! 우리를 죽이고 살리시는 분은 야훼  하나님이세요."


젊은 여인은 자신이 앉아 있던 곳을 가리키며 요셉을 바라봤다.


요셉이 엎드리자 여인은 급히 담요로 감쌌다. 그리고 그 위에 앉아 치마폭을 벌려서 덮었다.


어머니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딸을 마주 보고 앉았다.


여인이 태연하게 길쌈을 하기 시작하는데 로마병사가 뛰어들어왔다.


그러나 로마병사는 집안을 한번 휘둘러보고는 서둘러 나가 버렸다.




사방으로 날뛰로마병사들은 요셉 대신 다른 남자들 세 명을 잡아서 돌아왔다. 


그들이 혁명군인지 아니면 도둑인지, 평범한 백성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다만 놓쳐버린 요셉을 대신해서 분풀이하고 처형하려는 것뿐이었다.


로마군이 추격을 포기했다고 판단되었다. 요셉은 여인이 내어준 옷으로 갈아입고 그 집을 나왔다.


그 옷은 젊은 여인의 아버지가 입던 것이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몇 달 전 로마병사의 횡포에 저항하다 창에 찔려 죽었다. 


아버지의 체취가 밴 그 옷은 그녀가 소중히 여기는 유품이었다. 하지만 요셉을 눈에 띄는 장사꾼 차림으로 내보낼 수는 없었다. 그것은 요셉을 다시 사지로 내모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낡고 오래된 그 옷은 장사꾼 요셉을 마을 사람으로 감쪽같이 바꿔놓았다. 하지만 요셉은 긴장을 놓을 수 없었다. 그는 로마병사와 맞닥트리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자신이 갇혀 있었던 마을 창고 가까이 갔다.


위험을 무릅쓰고 다시 그곳으로 간 것은 암몬과 일행이 궁금하기도 했지만 자신을 부자로 만들어 줄지도 모를 암몬의 장부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요셉은 마을 사람들 틈에 섞여 암몬 일행과 수십 명의 남자들이 마을 창고에서 끌려 나오는 것을 지켜봤다.


갈 길이 바쁜 로마 병사들은 처형을 서두르고 있었다.


로마 병사들은 붙잡혀 온 남자들이 달아날 수 없도록 창고에서부터 십자가 가로대를 어깨에 짊어지게 하고 묶었다.


십자가 가로대를 짊어진 남자들 중 하나가 자신이 혁명군이 아니라며 울부짖기도 하고 애원하기도 하였지만 도리어 채찍만 맞을 뿐이었다.


한 노인이 로마 병사에게 달려들어 자신의 아들을 살려달라고 애원하다가 그들이 휘두르는 칼에 무참히 찔려 죽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마을 주민들은 겁에 질린 채 숨죽여 흐느껴 울었다.




암몬 일행을 비롯한 남자들이 십자가 가로대를 짊어지고 행렬을 이루어 언덕으로 끌려갔다.


요셉이 세어보니 무려 쉰일곱 명이나 되었다. 요셉은 마을 사람들 틈바구니에 끼어 처형장까지 죄수 행렬을 따라갔다.


창을 든 로마병사들이 양쪽으로 열을 지어 십자가 가로대를 진 남자들이 달아나지 못하게 감시하고 있다가 수상쩍은 기미가 보이거나 뒤처지면 가차 없이 채찍을 휘둘렀다.


처형장이 가까워  왔다. 하지만 암몬에게 다가갈 기회는 오지 않았다. 암몬이 양팔에 묶인 가로대를 풀고 달아나것은 더더욱 불가능해 보였다.




암몬은 십자가에 못 박히는 그 순간까지 로마 병사에게 자신이 장사꾼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알리려고 안간힘을 썼다. 엄청난 돈을 숨겨뒀으니 그것을 전부 줄 수 있다고도 했다.


암몬은 죽음 앞에서도 포기를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부패한 로마군인들은 암몬의 말에 그저 코웃음 쳤다.


안타깝게도 살고 싶어 발버둥 치는 암몬에게 날아온 것은 발길질과 채찍질뿐이었다. 


십자가에 달린 암몬은 마지막 순간에 사람들을 내려다보며 외쳤다.


"내가 도대체 무슨 죽을죄를 지었다고, 나보다 더 많은 죄를 자들이 얼마나 많은데...."




사람들을 십자가에 못 박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로마 병사들은 처형된 들의 다리를 꺾어 죽음을 앞당기거나 창으로 옆구리를 찔러  죽었는지 확인했다.


로마병사들은 귀찮은 일을 빨리 끝내버리려는 듯 서두르는 기색이 역력했다.




로마병사들이 마을을 떠나자 가족들이 달려들어 시체를 부둥켜안고 울부짖었다.


요셉은 암몬과 일행의 시신을 수습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애곡 하는 사람들 가운데 망연자실 서 있었다.


처형과 약탈, 강간은 로마군이 휩쓸고 지나가는 곳마다 벌어지는 흔한 광경이었다. 그러나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없다 여겨왔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곡소리가 메말라 있던 요셉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요셉은 암몬과 일행의 시신을 올려다보며 소리 없이 눈물을 쏟았다.


아무리 무지막지한 로마군일지라도 이렇게  닥치는 대로 처형을 일삼을 줄 몰랐다.

그러나 그들은 어떤 광기에 사로잡혀 무차별 살인을 자행하고 있었다.


이제 전대 속에 꼭꼭 감춰두었던 모든 꿈이 사라져 버렸다. 떳떳하게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일도 베들레헴으로 달려가 라헬을 만나는 일도 모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사람들은 하나둘씩 가족들의 시신을 가지고 떠났다.


요셉은 사람들이 죽음의 언덕을 모두 떠나고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하자 암몬과 일행의 시신을 수습하기 시작했다.


'암몬, 당신의 장부를 어디에다 뒀습니까!'

요셉은 중얼거렸다. 더 이상 눈물은 나지 않았다.


'암몬이 장부를 어디에 숨겼을까?'

요셉은 이미 어둠에 묻혀버린 마을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저 마을 어딘가에 있을 게 분명했다. 암몬의 장부를 찾기만 하면 암몬의 실크로드와 그 길에 있는 거래처에 맡겨놓은 값진 물건들을 찾아서 다시 장사를 시작할 수 있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암몬이 지방의 생산자에게 미리 돈을 주고 주문해 놓은 것들을 수확 시기가 되면  가져다가 도매상에 넘기면 큰돈을 챙길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암몬 장부의 행방을 알 수가 없었다.

마을 창고에서 끌려 나와 십자가 가로대묶일 때 암몬은 이미 알몸이었다.


로마 병사들은 값이 나갈만한 것은 가리지 않고 가져갔다. 암몬의 옷과 샌들도 가져갔을 것이다.


그러나 낙서처럼 빼곡하게 그려진 암몬의 낡은 장부를 그들이 가져갔을 리는 없었다.




요셉은 자신과 암몬 일행이 갇혀 있마을 창고 앞에서 악몽을 꾼 듯 잠시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하지만 그는 이내 문을 박차고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먼저 암몬이 앉아 있던 곳에서부터 가까운 곳을 샅샅이 뒤졌다. 그리고 장부를 숨길만한 곳을 다 뒤졌다. 하지만 장부는 나오지 않았다.


암몬의 성격을 알고 있는 요셉은 그가 처형장으로 끌려가기 전에 장부를 창고 어딘가에 숨겨 놓았을 게 분명하다고 확신했다.


잡혀 올 때까지는 분명히 옷 속에 장부를 감추어 두었을 것이다. 그리고 창고에 갇혀 있는 동안에도 자신이 그렇게 쉽게 죽으리라고 생각지는 못했을 게 분명했다.


암몬은 대상으로 온 세상을 떠돌아다니면서 죽을 고비를 숱하게 넘겨왔다. 때문에 이번에도 자신이 살아날 거라고 믿고 창고 어딘가에 장부를 숨겼을 게 분명했다.


요셉은 굶다시피 하며 며칠씩 창고에서 살았다.  지치면 아무렇게나 누워 쉬고 기운이 나면 다시 창고 안을 뒤졌다. 요셉은 날마다 미친 듯이 창고 안을 온통 헤집었다. 장부가 들어갈 만한 곳은 죄다 부수고 바닥을 파헤쳤다.


억울하게 처형당한 가족 때문에 미쳐버린 남자가 창고에 산다는 소문이 마을에 퍼졌다.


마을 주민들은 창고에 살고 있는 정체 모를 그 사람을 그대로 내버려 둘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마을 공동 창고를 유령의 거처로 만들 수 없기도 했지만 하루라도 빨리 슬픔을 딛고 일어서기 위해 창고를 정비하려는 것이었다.


      다음에 계속됩니다.



부족한 제 글을 읽고 계신 작가님들께 감사드립니다.


늘 건강조심하시고요.

언제나 행복하시길 바랄게요.

또 뵐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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