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세벽 Nov 18. 2024

날개

삶이란 날개가 돋아나는 시간을 향해 한 걸음 내딛는 것이다. 



내가 부끄러움을 모르고 고추를 달랑거리며 돌아다닐 때였다.


새의 정령에 사로잡힌 아버지는 짚검불 날리는 타작 마당에서 양팔을 펼치고 모가지를 쑥 내민 채 뛰어다니곤 했다. 아버지가 이리저리 마구 날뛰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어머니에게 쫒겨 달아나는 장닭이 떠올랐다.


마을 사람들은 아버지에게 장닭 귀신이 붙었다고 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아버지가 새의 정령에 사로잡힌 것이라 주장했다. 아버지의 조상은 새라고도 했다.


장닭은 우리집 닭장 너덧 마리가  있었다. 하지만 하루가 멀다 닭장을 탈출해 마당을 어슬렁거리며 땅바닥이 부서져라 쪼아대는 놈은 따로 있었다.


그 놈은 어머니  말대로 귀신처럼 흔적도 없이 닭장을 빠져나와 마당이 제 집인듯 헤집고 돌아다녔다. 그러다 어머니가 잡으려고 다가가면 용케 알아차리고 아버지처럼 쏜살같이 치달았다.


그래서인지 나는 종종 장닭과 아버지를 헷갈려했다.



삼촌인지 동네 이저씨인지 모르지만 나를 번쩍 들어 올려 고추를 한입에 집어넣고 삼키는 시늉을 했다.


- 어디 함부로 ......

놀란 나는 그 어른의 머리통을 후려치면서 소리쳤다.

- 하하하하

그 광경을 보고 있던 어른들이 한꺼번에 큰소리 웃었다.

- 하하하하하하

나도 덩달아 입을 크게 벌리고 어른들을 내려다보며 웃어젖혔다. 뭔가 장한 일을 한 것처럼 뿌듯했다.


아버지와 장닭을 헷갈려할 무렵엔 어머니 흉내를 내며 어른의  머리통을 후려치고도 야단맞기는 커녕 귀여움을 받을 정도로 나는 어렸던 게 틀림없다.


그러나 당시 내가 정확히 몇 살이었는 지는 알 수 없다. 기억 속으로 들어가서 그 아이를 만날 수 있는 과학기술이 발전하기 전에는 영영 알 수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추측해 볼 수는 있다. 어른 남자가 나를 번쩍 들어 내 고추를 입에 몸땅 집어넣고 삼키는 시늉을 할 정도면 많아야 너덧 살 아니었을까 싶다.    



바로 그 나이의 내가 장닭이 갇혀 있는 닭장 앞에서 아버지를 부르며 울곤 했던 건 장닭이 아버지 같아서 였고 아버지가 무서워서 혼비백산 단 속으로 숨은 것은 아버지가 장닭 같아서 였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닭장 앞에 버티고 서서 귀신처럼 탈출 잘하는 장닭을 보며  아버지를 서럽게 불러댔다. 장닭을 아버지로 생각한 것이었다.


그러나 장닭은 불안한듯 이리저리 다니며 땅바닥을 쪼아기만 할 뿐 나에겐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더욱 큰 소리로 울어젖혔다. 그러자 장닭이 성큼성큼 나한테 가까이 다가왔다.


- 아부지 .....

눈물이 그렁그렁 매달린 눈으로 장닭, 아니 아버지를 바라보고 있는데 그놈 내 고추를 사정없이 쪼아댔다. 아버지가 나에게 다가왔다는 반가움도 잠시 나는 놀라서 지러질듯 울었다.


어디선가 어머니가 뛰어와 나를 덥썩 낙아채서 품에 안았다. 그러나 이미 내 고추는 너덜너덜 해진 뒤였다. 어머니는 피로 범벅된 내 고추를 움켜쥐고 달렸다.


나는 양팔을 벌리고 냅다 치닫는 아버지가 내 시야에서 오르락내리락 하는 걸 어머니 품에 비스듬히 안겨서 보고 있었다. 어쩌면 닭장에서 탈출한 장닭이었을지 모르겠다.


어머니가 아주머니를 부르짖으며 뛰어든 곳은 마을 골목 끝에 있는 집이었다.


텃밭에서 일하다 달려나온 할머니(어머니한테는 아주머니)손에 들고 있던 호미를 내던지고 머리수건을 벗어 앞자락을 탈탈  털면서 급히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 무릎을 꿇고 고추입에 넣더니 사정없이 빨았다.


- 뭐가, 물었다고? 뱀이라고 했지!

뒤늦게 할머니가 어머니를 보고 물었다.


- 아니요, 아주머니. 우리집 닭이 쪼았다니까요.

어머니가 대답했다.


- 어쩐지. 뱀이 어떻게 이렇게 걸레를 만들어 놓았을까 생각했네.


- 어쩌지요?


- 뭘 어째.


- 날개가 남자 구실을 못하게 될까봐....


- 지금도 빳빳하게 서 있잖아. 아무렇지도 않으니까 걱정 마. 날개가 남자 열 명 몫은 하겠는 걸.


- 그렇지만 저렇게 다 찢어진 걸....


- 그거야  걱정할 거 없데도. 남자는 군대 가서 다 잘라내.


- 뭐를요? 그걸 왜 잘라요. 짧아서 어디에 쓰라고.


- 껍데기만 잘라내는데 짧아지긴 왜 짧아져. 기왕 이렇게 된 거 지금 잘라버릴까?


- 아니. 안 돼요.


- 잘라야 병도 안 걸리고 시원해지는 거야.


-  날개 아빠한테 물어볼게요.


- 아무튼 뱀한테 물린 거 아니면 걱정할 거 없어. 내가 싹 빨아냈으니까 독이 있어도 다 빠졌을 거야.


할머니는 소임을 마쳤다는 듯 다시 수건을 두르고 으로 갔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그 할머니는 상처를 보면 무조건 빨아대는 버릇이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어머니를 비롯해 동네사람들  대부분은 그 할머니의 빠는 짓을 아무나 할 수 없는 선하고 위대한 행위로 여겼다.


심지어 똥밟고 찟어진 발가락을 빨아서 고치고 막힌 똥구멍도 빨아서 뚫었다는 일화가 전설처럼 떠돌았으니 그럴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무튼 동네사람들은 누가 조금만 다쳐도 무슨 명의라도 되는 양 그 할머니를 찾았다. 물론 할머니는 모든 상처난 자들을 위해 부위를 가리지 않고 빨았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다 효과를 경험했는지 어쩐지는 모르겠다.


- 자지가 부러져라 울었겠구먼. 

뒤늦게 등장한 할아버지가 할머니가 내 고추를 빨아댄 게 못마땅한 듯 뒷짐을 지고 투덜거렸다.

그런데 그 할아버지는 유식해서 모르는 게 없는 분으로 알려져 있는만큼 그 말 한마디가 동네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 컸다.


우리동네 어른들이 아이들이 자지러지게 울면 자지러지게 운다하지 하지 않고 자지가 부러지게 운다, 라고 하게 된 것도 다 그 할아버지의 질투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내가 이런 말을 하면 혹 사람들은 할아버지가 어린애를 두고 무슨 질투씩이나 했겠냐고 눈을 흘길지 모른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목소리엔 질투심으로 가득 차 있었고 나는 그걸 영혼으로 느꼈다. 게다가 할아버지의 질투심은 그날로 끝난 게 아니었다.



훗날 내가 외지에 나갔다 돌아와서 할아버지에게 인사를 갔을 때였다. 장닭과 아버지를 헷갈려했던 그 시절  내가 영혼으로 느꼈던 할아버지의 질투심이 아직까지 그 영감님을 괴롭히고 있다는 걸 알았다.


나는 마지막 버스를 놓치는 바람에 좀 늦은 시간에 마을에 당도했다. 어머니는 마치 내가 금의환향이라도 한 것처럼 뿌듯해 하며 끝집에 가서 인사를 드리고 오라며 등을 떠밀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괴나리봇짐만 마루에 내려놓고 곧장 끝집으로 달려갔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잠시 앉았다가라고 붙들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안방으로 들어갔다. 할머니는 나에게 이것저것 묻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할아버지도 침묵을 틈타 밖으로 나갔다가 잠시 후에 다시 들어왔다.


할아버지와  몇마디 나누던 나는 오줌을 싸야겠다는 핑계로 일어나서 밖으로 나왔다.

내가 나오는 소릴 들었는지 할머니가 부엌에서 나왔다. 그리고 나를 보며 기가막힌 표정을 했다.


어쨌거나 나는 할머니에게 혈육 이상의 애정을 품고 있었던터라 분노를 느꼈다. 무엇이든 혹은 누구든 할머니를 속상하게 한 것이 있으면 분풀이를 해 주고싶은 마음이었다.


- 날개야, 저 영감탱이가 노망이 들어도 단단히 들었다. 세상에 조금 전에 부엌으로 들어와서는 다짜고짜 내 뺨을 후려치고는 ......

 잡녀러가시내야. 니년이 날개하고 붙어 먹은 걸 내가 모를 줄 알았냐. 이러고는 나갔다.


할머니 편을 들겠다는 생각이었지만 아까와 달리 나는 뭐라 위로할 줄 모르겠어서 조심스럽게 걸음쳐 도망나왔다. 행여 할아버지가 엿듣고 있거나 문틈으로 내다보고 있으면 할머니에게 어떤 위해가 미칠지 몰라 걱정되었던 것이다. 할머니도 내 마음을 알았는지 어서 가라고 손짓을 했다.


그날 이후 끝집엔 다시 발길을 하지 않았던 갈 보면 나는 적지않은 충격을 받았던 모양다.  다행히 이후 두 분은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잘 지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야기가 너무 앞서 가버렸다. 다시 아버지와 장닭을 헷갈려하던 시절로 돌아가보자.

 

할머니가  열심히 내 고추를 빨아준 덕에 독기는 빠졌을지 모른다. 하지만 밤새 내 고추가 퉁퉁 부어올라 성난 두꺼비 볼타구니처럼 커졌다. 그래서 오줌을 싸면 마치 새는 것처럼 고추를 타고 여기저기로 흘러다니다 뚝뚝 떨어졌다. 그리고 사나흘 뒤에는 고름까지 들어차서 나는 제대로 걸을 수가 없었다. 커다란 혹이 아니 돌덩이가 달린 기분이었다. 


 아버지와 장닭을 헷갈려하는 나는 감당하기 어려운 혹을 달고도 마당 옆 탱자나무 울타리를 타고 흐르는 시궁창에서 지렁이를 잡아 닭장에 던져주며 놀고 있었다.


- 날개야, 엄마 손잡고 할머니집에 가자. 할머니가 우리 날개주려고 감자 구워놓으셨다고 하네.


어머니가 어찌나 다정스럽게 말씀을 하는지 나는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고 어기적어기적 따라나섰다. 어머니가 나를 안으려고 몇 번 시도했지만 나는 어머니를 밀쳐냈다. 하지만 어머니는 뒤에서 불시에 나를 껴안았다.


- 이렇게 뒤에서 안으니까 고추도 안 아프고 좋지?


- 응.


그렇게 나는 어머니 꾐에 빠져 어머니한테는 아주머니이고 나한테는 할머니인 끝집까지 거의 날아서 갔다.


- 아주머니, 우리 날개 왔어요.


어머니는 나를 툇마루에 걸터 앉혀놓고 할머니를 다정하게 불렀다. 감자가 아니라 꿀이라도 얻어 먹일 것처럼 달달한 목소였다.


나는 감자  먹을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곧 할머니가 한손에 뭔가를 들고 머리에 슥슥 문지르며 방에서 나왔다. 나는 할머니가 또다시 내 고추를 어떻게 할 거라고는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기분좋게 웃었다. 할머니가 내 고추를 연거퍼 빨아대던 일을 떠올리면서 말이다.


그때였다. 갑자기 동네 어른들이 대문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나를 포위해 오고 있었다. 그제야 나는 어머니의 계략에 넘어갔음을 깨달았다.


- 어디 감히.....

나는 소리치며 울음을 터트렸다. 그러나 이미 늦은 뒤였다. 어른들이 달려들어 내 다리를 붙잡아서 꼼짝달싹 할 수가 없었다. 나는 어디 감히..... 라고 되뇌이고는 있었지만 이미 체념한 목소리였다.


그 틈에 그 마귀할멈은 내 고추에 바늘을 마구 찌르고 입으로 고름을 빨아냈다. 금방 내 고추가 홀쭉해졌다. 하지만 나는 다시 어디 감히......를 외치며 죽을 듯이 발악을 했다.


돌이켜생각하면 할머니가 보통 사람은 아니었던 듯 싶다. 어머니가 나를 씻기려 하면 손도 못대게 울고 떼를 썼기 때문에 지린내가 날 수도 있는데다 더럽기 짝이 앖는 고름을 아무나 입으로 빨아낼 수는 없지 싶다.


어쨌든 그날 이후 어머니와 내가 다시 등잔불 밑에서 어디 감히 놀이를 한 걸보면 효과가 있었던 같다.


어머니가 치마를  풀석이며 방바닥에 주저 앉는 시늉을 하면 치맛바람에 등잔불이 꺼졌다. 그러면 나는 겁을 집어 먹은 것처럼 소리를 지르며 어머니 치마속으로 기어들어갔다.

 어디,... 감히...

어머니가 나를 간지럽히며 몇 번이고 그렇게 말했다. 그러면 나는 자지러져라  웃어젖혔다.

어디 감히  놀이를  수 차례 반복하다 나는 어머니 품에서 잠들곤 했다.



수문을 막 지나 집으로 가고 있는데 맞은편에서 어머니가  절뚝거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어머니는 활짝 웃고 있었지만 나는어머니가 절뚝거리는 걸  처음보는 것처럼 충격을 받았다. 절름발이 어머니가 당혹스럽고 수치스러웠다.


어머니는 본래 소아마비로 한쪽 발을 절뚝거렸다. 하지만 나는 그날 수문 앞에서 어머니가 절름발이라는 것을 처음 발견했거나 깨달았다.


 나는 아버지와 장닭을 헷갈려 하지 않을 만큼 철이 들었다. 하지만 철이 든 대가로 절름발이 어머니에게 심한 분노를 느꼈다. 어쩌면 어머니가 아니라 어머니가 타고난 불구의 운명이었을지 모른다.


갑자기 눈이 밝아진 나에게 운명이란 벗어날 수도 내던질 수도 없는 낙인 같은 것이었다.


절뚝거리는 어머니 보다 차라리 새의 정령에 사로잡혀 시도 때도 없이 치닫는 아버지가 나았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아버지는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나는 마당이 딸린 조그만 초가에서 살았다. 하지만 아버지는 항상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내 기억에 남아 있지 않은 건지도 모른다.


아버지가 언제부터 집을 나가 떠돌았는지 언제부터 산에서 살고 있었는지 나는 모른다. 내 기억 속에 아버지는 등장하지 않는 가상의 존재일뿐이었다.


아버지에 대한 두세가지 기억 중 강력하게 떠오르는 것은 목을 뺀 채 양팔을 벌리고 치닫는 장면이다.


그래서인지 본래부터 아버지가 없었던 것처럼 어머니와 나는아버지로 인해 결핍이나 부재를 느끼지 않고 서로 의지하며 지냈. 


초가집이라는 생각도 하지 않았고 가난하다는 생각도 없었다. 그냥 행복했고 평화로웠고 다정했다.


하지만 어머니가 절름발이라는 것을  발견했거나 깨달았던 그날 이후 평화와 행복과 다정함은 산산조각이 났다.


초가집의 가난과 불구의 어머니가  창피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나에게 주어진 모든 것들이 저주로 느껴졌다.


나는 내 안 깊숙한 곳에서부터 올라온 수치심과 분노를 견딜 수 없어 괴물처럼 소리를 지르며  어머니를 버리고 신작로쪽으로 달아났다.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 날개야. 왜그러니? 어디 가?


놀란 어머니가 내 뒤에서 안타깝게 소리쳤다. 하지만 나는 뒤안 돌아보달렸다.



비좁은 우리집 마당에서는 어머니가 절름발이라는 것조차 느낄 수 없었다. 그런데 고샅이나 읍내 장바닥에서 어머니와 마주치면 절뚝거리는 다리만 보였다. 어머니는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밖에서 어머니와 마주치면 나는 어머니를 피해 숨거나 다른 골목으로 도망쳐 가능한 멀리 숨어버렸다.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나는 나도 모르게 아버지를 흉내내고 있었다. 달릴 때면 고개를 앞으로 내밀고 양팔을 벌렸다. 나에게도 새의 정령이 깃들고 있는 것 같아 겁이났지만 멈출 수 없었다.


양동이에 물을 길어 나를 때조차도 양손을 놓고 새의 정령이 깃든 아버지처럼 내달리곤 했다.



읍내 장바닥에서 어머니가 낯선 아이들에게 놀림 당하고 있었다. 나얼른 자리를 벗어나 숨어버렸다.


죄책감 때문에 나는 어머니를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마을로 돌아왔지만 나는 집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나는 마을 뒷 산에 올라가서 그늘진 바위에 누워 있다가 잠이 들었다.


깨어났을 땐 이미 사방이 어둠으로 뒤덮여 있었다.

무섭지는 않았다. 하지만 너무 슬프고 고통스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내 다리를 부러트리려고 높은 데서 뛰어내려보기도 하고  소나무에 다리를 냅다 부딪히기도 했다.


정강이를 심하게 부딪히는 바람에 너무 파서 데굴데굴 구르다 발목을 다쳤다. 다리가 부러지진 않았지만 절뚝절뚝 걸을 수 밖에 없었다.


어머니가 삽짝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화들짝 놀라서 달려왔다.


- 날개야, 어떻게 된 일이니?


어머니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내 다리를 내려다봤다.  하지만 깜깜해서 제대로 보일리 없었다.


- 아이고, 어떡해. 다리가 부러졌나봐.


어머니는 주저앉아 내 발을 움켜쥐고 거의 울부짖었다.


- 놔라. 안 부러졌다.


나는 어머니 손에서 다리를 빼냈다.


- 제대로 딛지도 못하면서.....


- 확 부러트리려고 했는데 안 부러지더라.


- 왜! 멀쩡한 다리를 부러뜨려.


어머니는 비뚫어 진 내 심정을 알고 있었던 듯 울먹였다.


- 병신되면 엄마가 안 부끄러울 거 아냐.


- 이놈 자식이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어.


어머니는 내 등짝을 아프지도 않게 후려치고 부엌으로 뛰어들어갔다.


어머니가 흐느껴 우는 소리가 삽짝까지 들려왔다.


- 엄마, 울지마라.


나는 문도 없는 부엌으로 들어가 어머니 등을 쓰다듬었다.


- 날개야, 엄마가 미안하다. 우리 날개, 창파하게 해서 미안하다. 하필 나같은 엄마를 만나서 ....


- 그런 말 하지 마라. 이제부터는 내가 엄마를 지켜줄게.


- 날개야.

어머니는 나를 껴안고 어린 아이처럼 펑펑 울었다.



초가집은 다시 따뜻하고 행복하고 평화롭고 다정스러워졌다. 내 인생은 그 어느 누구보다 축복을 받은 것처럼 여겨졌다. 나는 내 운명이 떳떳하고 자랑스러웠다.


나는 절뚝거리는 발을 이끌며 어머니 손을 잡고 읍내 장마당까지 함께 갔다. 절뚝거리는 내 발이 행복했다.


장마당의 거렁뱅이 아이들이 어머니와 나를 놀렸다.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양팔을 펼치고 고개를 쑥 내밀었다. 그리고 새처럼 내달려서 혼비백산 달아나는 아이들을 하나씩 잡아서 깨물고 꼬집었다.


어머니가 말리지 않았으면 나는 그 가운데 좀 큰 아이의 발목을 부러뜨렸을 것이다.


- 엄마 가자.


나는 다시 절뚝거리는 걸음으로 어머니 손을 잡았다.


- 날개야. 발목이 다 나았는데 그러고 다니는 거니!


- 나은 게 아니고 화가 나니까 이픈 것도 잊어버리고 내달린 거야. 아버지처럼 달리면 정말 새처럼 빨라져.


- 엄마 때문에 그러는 거 다 알아. 앞으론 그러지마. 다 나았으면 똑바로 걸어야지. 엄만 날개가 절뚝거리며 걷는 걸 보면 슬퍼.


나는 어머니  손을 꼭 잡고 반드시 걸었다.


- 우리 날개 걸음 걸이가 씩씩하고 멋지다.

 

어머니가 소리내어 웃었다


하지만 나는 어머니가 보지 않는 데서는 절뚝절뚝 걸었다. 어머니 혼자 절뚝거리며 살게 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리고 누구든 놀리거나 비웃으면 양팔을 벌리고 고개를 쑥 내밀고 날아가서 사정없이 꼬집고 물어뜯었다.


나는 절뚝거리는 사람을 보고 놀리는 아이들이 없어질 때까지 그럴 작정이었다.


내가 하도 꼬집고 물어뜯어서인지 모르지만 언제부턴가 아이들이 어머니와 나를 보면 눈치를 보고 피하기 시작했다.


나는 승리감에 도취되어 내 장터에서부터 신작로를 지나 마을 고샅까지 양팔을 활짝 펼치고 고개를 쑥 내민  채 냅다 치달았다.


사람들은 나에게 닭귀신이 붙었다고 했지만 나는 새의 정령이 나와 함께 한다고 우겼다. 사람들이 아버지에게 닭귀신이 붙었다고 하면 어머니가 새의 정령이 함께 하시는 거라고 했던 것처럼 말이다.



내가 새의 정령과 함께 내달리는 사이 계절이 바뀌어서 눈이 왔다.


눈 속에 아버지가 서서 웃고 있었다.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아버지 모습이다, 어머니는 마루에 서서 수줍게 웃었다.


나는 등잔불이 꺼진 뒤에도 잠이 오질 않아 뒤척였다. 아버지가 너무 일찍  등잔불을 끈 탓이었다.  


그런데 어느새 아버지가 나를 밀쳐내고 어머니 옆에 누워서 있었다. 내가 그새 잠이 들었던 모양이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팔을 베고 행복하게 웃고 있었다. 어머니 얼굴이 어찌나 환하게 빛나던 지 어툼 속에서 광채가 났다.


아버지는 조심스러게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천천히 어머니 가랑이 사이로  가서 양팔을 펼치고 날아갈 듯 퍼덕였다.


어머니가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어머니는 입술을 깨물었지만 신음소리가 새어나왔다. 곧 아버지가 날아갈 듯 힘차게  날개짓을 했다. 날개가 방바닥부딪히는 소리가 빨라졌다. 마침내 아버지가 새의 목청으로 흉내낼 수 없는 단말마 울음을 울었다. 그리고 어느새 하늘로 날아올랐다.


아버지는 하늘 높이 치솟앗다가 한바퀴 맴돌았다. 그리고  높은 곳으로 날아올라갔다. 아버지가 점점 작아지다가 사라졌다.


잠에세 깬 나는 아무도 없는 빈 방이 쓸쓸해서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불냄새를 따라 부엌으로 갔다. 어머니가 짚단을 깔고 앉아 불을 때고 있었다. 불기운으로 발그랗게 달아오른 어머니의 얼굴은 막 피어난 수국 같았다.


- 왜 벌써 일어났어. 더 자지 않고.


 어머니가 뒤늦게 나를 돌아보고 환하게 웃었다. 어머니의 얼굴은 행복해보였다. 내가 줄 수 없는 것을 아버지가 주고 갔다는 걸 나는 깨달았다. 어머니에게 아버지는 기다려지는 사람이었다.


- 엄마.


-  응, 왜그러니. 날개야. 배고파서! 추우니까 방에 들어가 있어. 엄마가 금방 밥 퍼서 들어갈게.


- 싫어.


- 춥잖니? 그럼 엄마 옆에서 불쬘래. 이리 가까이 와.


어머니의 목소리에는 지난 밤의 여운이 어 있었다.


나는 어머니 옆에 붙어앉아 불이 이글거리는 아궁이 속을 들여다봤다. 불속에서 아버지가 날개를 펼치고 날아올라갔다.


- 엄마.

나는 불 속에 대고 말했다.


- 왜!

어머니는 내 얼굴을 손바닥으로 쓰다듬었다.


- 아버지가 좋아 내가 좋아?


- 당연히 날개가 좋지.


- 거짓말.


- 엄마가 왜 거짓말 해. 엄만 아버지 없인 살아도 날개 없인 못 살아.

어머니가 나를 끌어안고 볼을 비볐다.


- 치힛

나는 괜히 기분이 좋아서 어색하게 웃었다.


어머니가 가마솥 뚜껑을 열자 고소한 밥냄새가 달려들었다.


- 맛있겠다. 아버지가 날개 해먹이라고 쌀을 사오셨어.

어머니는 밥을 퍼담으며 나를 보고 웃었다.


어머니와 나는 부엌 짚단 위에 주저앉아 밥을 먹었다.  소풍이라도 나온 것처럼 즐거웠다.


어머니가 뒤안 장독대에 금방 꺼낸 김치를 쭉 찢어 내 밥수저 위에 올려놓았다. 나는 밥수저를 어머니에게 내밀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나부터 먹으라 손을 내저었다. 나는 기어코 어머니 입에 내 밥수저를 넣어주었다.




마을 사람들은 어머니가 임신한 걸 두고 말이 많았다. 아버지가 다녀간 걸 모르는 탓이었다.


- 날개 아버지가 다녀갔지?

어머니와 가장 친한 끝집 할머니가 물어도 어머니는 못들은 척 하던 일에 열중했다. 나도 슬그머니 자리를 피했다.  


여자 아기가 태어났다. 새처럼 목이 길어서 새목이라 이름을 지어주었다.

새목이가 울면 다리가 불편한 엄마 대신 내가 업어주었다. 엄마는 괜찮다고 했지만 나는 새목이가 예뻐서 업고다니며 자랑하고 싶다고 억지를 부렸다.


내가 새목이를 업고 뛰어디니면 등 뒤에서 날이갈 듯 까르르 웃었다. 나는 새목이 웃음소리가 내 귓가에 들려오는 게 너무 듣기 좋아서 동네를 몇바퀴씩 돌았다.


포대기를 질끈 묶고 고개를 쑥 내밀고 양팔을 벌리면 새목이가 캬하고 반쯤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내가 내달리기 시작하면 까르륵 까르륵 웃어젖혔다.


내가 너무 업어줘서 그랬는지 새목이는 두 돌이 지나서도 걷지를 못했다. 어머니는 지금은 새목이 다리에 힘이 없어서 그런 거지만 좀 더 크면 걷게될 거라 장담했다.


하지만 내 탓같아서 나는 슬픔을 가눌길 없었다.


또 한 돌이 지났다. 하지만 새목이는 크지 않았고  여전히 걷지도 못했다. 어머니는 새목이의 다리가 가는 건 새를 닮아서라고 둘러댔다.


- 언젠가 새목이의 어깨에 날개가 돋아나서 훨훨 날아다닐 걸.

어머니는 말을 하면서 두고보란 듯 내 눈을 들여다 봤다.


- 오빠. 새목이가 날아다니면 오빠 먼저 태워줄게.

새목이는 걷지 못하는 게 슬프지 않은 거지 아니면 자신이 정말 날 수 있다고 믿는 건지 명랑한 목소리로 내 귀에 대고 소리쳤다.



나는 어머니가 아버지를 만나고 왔을 거라 짐작했다. 어머니가 그렇게 확신에 차서 말할 땐 아버지를 만나고 왔을 때 뿐이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하는 말은 뭐든지 옳다고 여겼다.


사나흘 전어었다. 어머니는  아침 일찍 치마저고리를 차려 입고 집을 나섰다. 새목이를 데려가지 못해 미안해 했지만 나는 오히려 새목이가 있어 좋았다. 새목이를 업고 달리다 보면 시간이 금방 가기 때문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새목이를 업고 산으로 들로 날아다니다 보니까 금방 저녘이 되었다.


나는 어머니가 가마솥에 쌀을 앉혀놓은 대로 불을 때서 밥을 했다.

- 날개가 다 커서 엄마가 걱정할 것도 없겠구나. 어머니의 당부가 있었는지 끝집 할머니가 들여다보고 갔다.


새목이와 부엌 바닥에 앉아 밥을 먹었다. 그리고  동구밖까지 날아가 어머니를 기다렸다. 하지만 날이 어두워지고 한참이 지나도 어머니는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학교에서 배운 노래를 새목이에게 불러주며 어둠 속을 서성댔다.


뜸북 뜸북 뜸북새......


노래를 열번쯤 불렀을 때였다. 신작로 저 멀리서 누군가 바삐 걸어왔다.


너무 멀고 어두워서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아래위로 오르락내리락 바삐 다가오는 사람이 어머니라는 걸 모를 수 없었다. 흔들림은 빠르게 걸을 수록 심해졌다.  멀리서 보면 새가 땅바닥에 내려 앉아 날개를 펴고 날아오르려고 안간힘을 다해 내달리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날은 어둠속에서 보아서 그런지 영락없는 새였다. 한마리의 커다란 새가 날아오르기 위해 있는 힘껏 치닫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고개를 쑥 내밀고 양팔을 벌렸다. 자고 있는 줄 알았던 새목이가 캭하고 외치더니 몸을 반쯤 일으켰다. 내가 어둠 속으로 치닫자 새목이가 까르륵 까르륵 웃어젖혔다.


-  날개야, 조심해. 넘어지겠다.

어머니가 새처럼 날아서 내 앞으로 다가왔을 때 나는 느꼈다. 아버지를 만나고 왔다는 걸. 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어머니의 얼굴이 그걸 말해주고 있었다.


어머니는 새목이의 볼에 뽀뽀를 열번 쯤 하고 나서야 내 손을 잡았다. 하지만 나는 어머니가 너무 좋아서 늦게 온 것도 새목이에게 뽀뽀를 쉴새 없이 해대는 것도 다 용서했다.


- 약속한 거지!

나는 어머니의 말을 믿기로 하고 환하게 웃었다.


- 새목이 어깨에 날개가 빨리 돋아나면 좋겠다.

어머니와 나는 동시에 같은 말을 했다.


새목이가 까르륵 웃어젖혔다.


또 한 돌이 지났다.  새목이가  조금 자랐는지 무거워졌다. 하지만 새목이 어깨에날개가 돋지 않았다. 


- 큰일났네. 날개가 언제까지 새목이를 업고 다닐 수도 없을 텐데.


마을사람들과 장마당에서 만난 어른들은 물론 학교 선생님도 걱정이 된다는 듯 말하곤 했다.


- 새목이는 날아다닐 거예요. 곧 새목이 어깨에 날개가 돋을 거니까요.


나는 늘 한결같은 목소리로 대꾸했다.


하지만 어른들이 없는 데서는 금방이라도 울음보가 터질 것처럼 슬펐다. 나는 새목이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새목이를 들쳐업고 내달렸다.  새목이가 좋아하는 대로 고개를 쑥 내밀고 양팔을 벌린 채로 동네와 장마당은 물론 학교 운동장에도 달렸다.


눈을 감고 마음을 모으면 어깨에 커다란 날개가 돋아나고 몸이 바람처럼 가벼워졌다.


새목이와 나는 한몸이나 마찬가지였다.


어느 날이었다. 학교 운동장에서 새목이를 업고 날아다니는데 육상부 선생님이 나를 불렀다.


- 날개야. 선생님이 새목이를 봐 줄 테니 잠깐 포대기를 풀어봐.


- 왜 그러시는데요? 새목인 저와 한몸이나 마찬가지예요.


- 그거야 선생님도 알지.


- 그런데 왜 새목이를 내려놓으라고 하신대요? 저는 새목이를 절대 내려놓지 않을 겁니다. 새목이가 날 수 있을 때까지는요.


- 음, 그럼. 새목이를 업고 해 볼까?


- 뭘요?


- 달리기 시합?


- 그런 거라면 새목이를 업고도 얼마든지 할 수 있어요.


그렇게 해서 육상부 선수와 내가 나란히 출발 점에 섰다. 물론 나는 새목이를 업고 있었다.


내가 양팔을 쫙 펼치고 고개를 쑥 내밀자 새목이가 캬하고 몸을 반쯤 일으켰다. 선생님의 호각 소리와 함께 출발하자 새목이가 까르륵 까르륵 까르륵 웃어젖혔다.


나는 새처럼 날아오르려고 안간힘을 다 썼다. 하지만 새목이가 조금 무거웠다. 힘을 더 키워야 할 것 같았다.


육상 선수가 길고 빠른 다리로 나를 앞질렀다. 나는 더욱더 세차게 날개를 퍼득이며 다시 따라잡았다.


그렇게 엎치락뒤치락 하면서 골인 지점을 통과했다.


선생님은 무승부로 판정을 내렸지만 나는 인정할 수 없었다.


나는 새목이를 느티나무 아래 내려놓고 다시 출발선에 섰다.


-  오빠. 새처럼 날아 봐.

새목이가 큰 목소리로 응원을 보냈다. 운동장에 있던 아이들이 전부 구경하고 있었다.


나는 양팔을 쫙 펼치고 고개를 쭉 내밀었다. 새목이가 꺅 소리를 내며 박수를 쳤다. 내가 새목이를 향해 웃음을 날리는 사이 선생님이 호르라기를 불었다.


옆에 서 있던 6학년 형이고 키가 큰 육상선수가 먼저 박차고 나갔다. 나는 앞서 달리기 시작한 그 선수를 순식간에 따라잡았다. 그리고 가볍게 날아서 결승점을 통과해서 다시 한바퀴를 돌아버렸다.


선생님은 손에 들고 있던 시계를 들여다보더니 입이 찢어져라 웃으며 나를 따라왔다.


- 세계 신기록이다. 여태껏 이렇게 빠른 선수는 세계 어디에도 없었다.


선생님은 나를 껴안고 울었다.


- 선생님 슬프게 해드려서 죄송해요.


- 이 녀석아. 기뻐서 우는 거야. 넌 우리나라의 보배야, 보배.


그렇게 해서 나는 육상부에 가입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연습 같은 건 하지 않아도 되었다. 나는 평소처럼 새목이를 업고 운동장에서 마구 뛰어놀면 되었다.



- 엿장수가 엿은 안 팔고 뭐하는 건가?

저쪽에서 나이 지긋한 영감님이 모시저고리를 갖춰입고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이야기를 하다 말고 일어나서영감님에게 꾸벅 인사를 올렸다.


이 산에 있는 수 많은 골짜기를 돌며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마을을 수소문하고 다녔지만 아버지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없었다.


영감님만이 유일하게 아버지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 그냥 하던 이야기 계속 해.

- 아저씨, 이야기 계속 해줘요.

나를 에워싸고 있던 사람들이 아쉬움 가득한 목소리로 애원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아쉬운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 이야기는 춤 구경 한 후에 계속 들으면 되잖아.

영감님이 다가오자 사람들은 길을 내주었다.


- 에이

사람들 사이에서 탄식이 새어나왔다.


- 내가 오늘 술한 턱 낼테니까 엿장수 춤판 한 번 놀아보소.

영감님은 사람들이 비켜 준 맨 앞자리에 점잖게 자리를 잡고 앉았다.


- 그럽시다.

나도 긴 이야기에 몸이 좀 근질근질 하던 차였다.


- 춤을 보여드리기 전에 한 말씀 먼저 올리겠습니다.

나는 가위로 몇 번 장단을 맞추다 멈췄다.


인생이 마음대로 되지 않듯이 엿장수 춤도 그렇습니다. 오늘 제가 춤으로 여러분을 신나게 해드릴 수 있을 지 어쩔지...


사람들은 엿장수 마음대로다 하는데 상 엿장수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어요. 엿가락 하나도 내 마음대로 못합니다.


하다못해 방구도 내 마음대로 조절이 안 되는데.... 뿡

방구를 나보다 더 잘 뀌는 사람있으면 나와... 뿡


방귀 잘못 뀌어 인생 망치는 사람도 있어요. 저기 저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첫날밤 치른 며느리가 시아버지 밥상을 차리려고 쟁반을 받쳐들고 안방으로 들어갔습니다. 며느리는 자꾸 방귀가 샐 것 같아서 똥구멍에 힘을 주고 조심조심 손발을 움직였습니다.


그런데 시아버지 앞에 생선자반을 내려놓고 돌아서는 순간이었습니다. 며느리 똥구멍에 힘이 풀리면서 폭탄터지는 소리가 났습니다. 여지껏 잘 참았던 방귀가 하필 시아버지 얼굴에 정통으로 발사된 것입니다.


- 아니, 어디 버르장머리 없이 시아버지 얼굴에 방귀를 뀌어.


시아버지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습니다. 그래도 한 번은 어찌 넘어갔는데 .....


시아버지의 친구들이 모인 자리에서 술상을 차리다 공교롭게도 또 시아버지 얼굴에 방귀를 발사하고 말았습니다.


결국 며느리는 그 양반집에서 쫓겨났습니다. 창피해서 친정집으로도 돌아가지 못하고 구걸하며 떠돈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혹시 이 마을에 그 방귀 며느리가 오거든 따뜻하게 맞아주시길 바랍니다.


내가 가위를 집어 들자 한바탕 배꼽을 잡고 웃던 사람들의 시선이 금방 호기심과 기대로 바뀌었다.



 나는 사람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으면서 북과 장고의 위치를 점검했다. 그리고 마음 속으로는 날개를 접었다 폈다 하면서 가라앉아 있던 흥을 끌어올렸다.      


- 여러분 이 절름발이 엿장수의 춤 한 번 보시겠습니까?

나는 흥을 돋우려고 힘차게 외쳤다.


- 네.

사람들은 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는 가위로 장단을 맞추며 날개를 펼치고 고저장단에 따라 겅중겅중 날아다녔다. 그리고 이윽고 장고와 북을 넘나들며 새 춤을, 새가 허공에서 바람을 타고 비상하고 급하게 떨어져 내리다 다시 비상하듯 춤을 췄다.


어떤 사람들은 소리없이 울고 어떤 사람들은 울음을 참느라 입술을 깨물고 나를 바라봤다. 영감님은 그저 넋이 나간 듯 입을 벌리고 있었다.     

 

                                 계속.......


작가님들 거칠고 긴 글 읽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지금 읽으신 이 글도 제가 삽화를 그리고 번역해서 아마존에 출간할 생각입니다. ㅎ


츨간 준비 중인 소설 천 년의 선물 The Gift of a Thousand Years(제목은 또 바뀔 수 있습니다.) 번역을 마치고 교정을 하고 있는데요. 번역하는 시간보다 더 걸릴 듯합니다.


작가님들 모두 늘 건강조심하시고 언제나 행복하시기만을 바랄게요.


감사합니다. 또 뵐게요.


인디자인으로 작업한 것 중 몇 페이지 구경하시라고 올려봅니다.



작가의 이전글 꽃이 피는 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