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차 트렁크에 있던 1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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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 앞에 앉아서 업무 일지를 정리하던 수연은 화들짝 고개를 쳐들었다. 레커 기사든 고객이든 대개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런데 갑자기 사무실 문이 왈칵 열려 놀랐다.
- 경리 아가씨! 저거, 허리 아래는 내한테 파이소.
성큼 사무실로 들어선 사람은 낡은 트레이닝복 차림의 떴다방 김 사장이었다.
떴다방 김 사장은 언제나 기름때와 페인트 얼룩이 묻은 트레이닝복을 입고 다녔는데 바지가 금방이라도 흘러내릴 듯 엉덩이에 위태롭게 걸려 있어 어딘지 모르게 지능이 떨어져 보였다.
하지만 사고 차를 신차로 바꿔놓는 손재주만큼은 어느 누구도 따라올 수 없다는 자칭 특급 정비사였다. 자기 집 앞마당에서 무허가로 자동차 수리를 한다는 것이 아무래도 마음에 걸릴 법도 할 텐데 그는 거리낌 없이 자랑을 늘어놓았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값이 싸다는 이유로 혹은 정비공장보다 훨씬 출고가 빠르다는 이유로 떴다방을 찾았다.
‘내가 눈교, 특급 정비사 아인교. 내 손에 들어왔다 카믄 어떤 사고 차도 새 차가 됩니더.’
수연에겐 떴다방 김 사장의 경상도 억양과 말투는 그의 생김새만큼이나 정신없고 소란스러울 뿐이었다. 하지만 떴다방을 찾는 사람이 생기면 기꺼이 김 사장을 연결해주었다. 물론 공짜는 아니었다. 수리비의 20퍼센트를 소개비로 받았다. 올리브 07이나 수연이 달라고 한 적이 없었는데도 떴다방 김 사장이 알아서 챙겨줬다.
- 아따라 놀래기는, 내가 아가씨를 잡아묵는교.
떴다방 김 사장이 수연을 바라보며 능글맞은 웃음을 흘렸다.
- 놀라긴 누가 놀랐다고 그래요. 괜한 소리 마시고, 용건이나 말하세요.
수연은 얼른 앞가슴을 여몄다. 니글거리는 눈빛. 음흉한 눈길. 그것이 떴다방 김 사장의 시선이었다.
- 어떻게 오셨어요?
수연은 아무렇지 않은 척 목소리를 높였다. 겁을 먹으면 떴다방 김 사장이 자신을 더 얕잡아 볼 것 같았다.
- 저거, 허리 아래를 낼로 달라니까요?
- .......
- 설마 경리 아가씨 허리 아래를 내한테 팔지는 안 할 끼고. 내사 오늘은 저 포텐샤를 사로 왔심더. 허허허…….
떴다방 김 사장은 솥뚜껑만 한 손을 들어 우두둑 꺾었다.
- .......
수연으로서는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었다. 어쩐지 희롱을 당하는 느낌이 들어 불쾌했다.
- 그케도 몬 알아 듣겠는교. 저, 포텐샤 딱 보이까네 폐차 감이고만. 내가 폐차장보다 잘 쳐 줄테이끼네 반쪽만 잘라서 내 달라는 말이오.
- 그거 폐차장에서 가져가기로 했어요.
수연은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차고지에 갖다 놓은 지 한 달이 다 되어 가지만 아직 차주에게서 연락조차 없었다. 하지만 차주가 와서 결정하면 연락해 주겠다고 했으니 틀린 말도 아니었다.
- 아따라, 그라니까 반쪽만 띠간다는 거 아이요. 허리 아래만 싹둑 잘라서. 그케도 폐차하는 데는 아무 지장 없소. 내 말이 거짓말이믄 내 목을 치소.
떴다방 김 사장은 딴에 재롱을 떠느라 자기 목을 손칼로 치는 시늉을 했는데 그 목이 두꺼워서 역겹고 징그러웠다.
- 반쪽 가지고 뭐하게요?
수연은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떴다방 김 사장이 놀리는 것 같아서 짜증스럽고 화가 났다. 하지만 자신이 말을 못 알아듣는 것 같아 답답한 마음도 있었다.
올리브 07이 경리를 구할 때까지만 도와달라고 해서 갑작스레 출근했다가 그대로 눌러앉았다. 벌써 1년 전 일이었다. 사장실에 농 한 짝과 침대를 들여놓고 얼떨결에 올리브 07의 마누라로, 경리로 지내면서 온몸으로 낯선 세계와 부딪혀 왔다. 도망가고 싶을 정도로 무섭고 놀라운 일들을 많이 겪으면서 이 세계의 말과 생리를 조금씩 배웠다. 하지만 여전히 이해 안 되는 것들이 많았고 모르는 것 천지였다.
- 하, 아직도 이해가 안 가는 갑네.
떴다방 김 사장은 재밌다는 듯 웃음을 흘렸다. 그 웃음 속에는 수연을 얕잡아보는 기색과 은근한 비꼼이 섞여 있었다.
- .......
떴다방을 노려보고 있던 수연은 슬그머니 눈길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문득 자신이 그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있다는 자책감이 들었다. 비록 저능아처럼 구는 음흉하고 능글맞은 떴다방일지라도 수연이 모르는 뭔가를 깨우쳐줄 수 있었다. 그는 이 바닥에서 굴러먹었으니까. 배울 땐 어쩔 수 없이 자존심이 상하지만 배우고 나면 이 세계에 대한 자신감이 조금 더 생길 터였다.
사흘 전, 폐차장 사장이 다녀갔을 때도 포텐샤를 탐냈었다. 오십 대 중반의 폐차장 사장은 늘 하던 대로 차고지 마당에 세워놓은 사고 차들을 살펴보고 나서야 사무실로 들어왔다. 유독 포텐샤를 관심 있게 들여다보는 걸 책상 옆 창문으로 내다보고 있던 수연이었다. 그녀는 얼른 의자에 앉아 업무 일지를 들여다보는 척하다가 그를 맞았다.
폐차장 사장은 당장 오디오를 떼어가겠다고 했다. 하지만 수연은 거절했다. 오디오 가격만 백만 원 넘게 준다는 말에 마음이 흔들렸지만 아직은 그럴 권한이 없었다. 그는 아쉬워하면서도 미련을 떨치지 못하고 언제든지 포텐샤를 폐차장으로 보내 달라고 몇 번이나 사정했다. 다 부서져서 못 쓰게 된 포텐샤를 몇백만 원씩이나 쳐준다고 해서 수연은 놀랐다.
폐차장 사장이 돌아가고 나서 수연은 일부러 나가서 포텐샤를 살펴봤다. 하지만 망가진 차가 그렇게까지 값이 나가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차고지에 세워놓은 사고 차에서 오디오 따위만을 떼어가는 도둑놈 때문에 연식이 괜찮은 사고 차가 들어오면 경계심을 늦출 수 없었는데 그 말을 듣고 나니 더욱 신경이 쓰일 뿐이었다.
수연으로서는 폐차장 사장이나 떴다방이 포텐샤를 욕심내는 이유가 전혀 짐작되지 않았다. 게다가 떴다방은 뒤쪽 절반만 떼어간다고 하니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되었다.
- 아가씨도 차암, 내가 뭐 하는 사람이오! 차를 만드는 사람 아니오. 내한테 앞은 멀쩡하고 뒷부분만 아주 작살 난 포텐샤가 있는데, 그걸 펴고 어쩌고 하느니 멀쩡한 저 포텐샤 뒷부분을 딱 띠가 붙여뿌면 감쪽같이 신차가 되는 거요. 누이 좋고 매부 좋고 꿩 묵고 알 묵고. 또랑 치고 가재 잡고. 알겠는교.
- 알아보고 연락드릴게요.
떴다방 말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수연은 업무 일지를 덮고 창문으로 고개를 돌렸다. 올리브 07이 차고지로 들어와 레커차를 주차 중이었다.
- 알아보나 마나 폐차구만…….
떴다방은 헛웃음까지 웃어가며 수연을 대놓고 비아냥거렸다. 악의적이기보다는 습성인 듯 보였다.
- 사장님 오셨으니까 사장님하고 이야기해 보세요.
수연은 떴다방을 무시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포텐샤 운전자는 그 자리서 즉사했다. 차 상태도 그렇지만 사망 사고인 경우 대부분 차주들은 폐차를 원했다. 차를 쳐다보는 것조차도 끔찍하게 여겨서 반토막을 팔든 폐차장에 팔든 상관이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차주와는 아직 연락이 닿지 않았다. 만약 폐차가 결정되었다 해도 올리브 07이 결정할 문제였다.
*
- 황 사장, 저런 아가씨를 어디서 델꼬 왔는교.
떴다방 김 사장이 올리브 07 옆으로 바짝 들러붙으며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는 수연의 뒷모습을 힐끔거렸다.
- ........
올리브 07은 수연이 나가고 문이 닫히는 걸 확인했다.
- 저 가스나 몇 살인교, 와따라 한 번 박았뿟으믄 좋것다. 내가 딱 보믄 아는데 저 가스나가 진짜로 맛있을 끼다.
떴다방 김 사장은 크고 둥근 얼굴 가득 모자란 듯 헤벌쩍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그의 눈에서는 욕망과 광기의 회오리가 몰아치고 있었다. 약에 취한 사람 같기도 했다.
- 이 사람이 미쳤나.
올리브 07이 눈을 치뜨고 떴다방 김 사장을 노려봤다.
떴다방 김 사장이 원래 엉뚱한 말을 잘하는 데다 사악하다기보다는 분별력이 없는 사람이라는 걸 그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정도가 지나쳤고 게다가 수연은 자신의 아내나 다름없었다.
그렇다고 아주 내칠 수도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일이라면 앞뒤 안 가리고 대드는 사람이라 이용하기 좋았다. 그러니까 사고 차를 밀어준다고 하면 이윤을 절반씩 나누자 해도 들어줄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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