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풍전리
성 감독은 모리를 차에 태우고 곧바로 풍전리 촬영장으로 향했다.
-모리, 혹시 글 읽을 줄 알아. 아니, 어제 내 명함 보고 전화까지 했잖아. 모리, 글 읽을 줄 아는 거지?
- 으으으예.
모리가 대답했다.
- 어디 아픈 데는 없어? 괜찮아?
- 으으으예.
모리는 졸린 듯 눈을 반쯤 감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러나 적어도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있었고, 성 감독이 자신에게 호의적이라는 것도 느끼고 있었다.
그래 좋아.
- 다다른 그그그글도 이이읽을 줄 아아압니……어……다.
모리는 성 감독에게 칭찬받고 싶어서 애써 고개를 들고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7세기 중반, 신라는 하루가 멀다고 공격해 오는 백제와 고구려를 막아낼 힘이 없었다. 그 때문에 신라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굴욕을 무릅쓰고 당과의 외교를 강화했다. 수차례 고구려 침략에 실패한 당은 고구려를 정복할 새로운 전기로 여기고 신라의 뜻을 받아들였다.
이렇게 신라와 당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서 체결된 정치적, 군사적 동맹은 660년 3월 당이 군사적 행동을 개시하면서 비로소 구체적으로 실현되었다.
당의 장수 소정방은 13만 군대를 이끌고 산둥반도를 출발하여 백제로 향했고, 같은 해 5월 신라 무열왕은 김유신 장군 등이 지휘하는 군대를 이끌고 경주에서 출발하여 6월 18일 남천정에 진을 쳤다.
신라 태자 법민은 병선 100척을 거느리고 먹물도로 가서 소장병을 만나 백제의 수도 사비성을 함께 공격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태자가 남천정으로 돌아와 이 소식을 전하자 무열왕은 대장군 김유신에게 정예군 5만 명을 이끌고 사비성을 공격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백제 의자왕은 장흥으로 귀양을 간 좌평 흥수에게 대비책을 묻도록 시켰다. 좌평 흥수는 당나라 군대가 백강에 상륙하지 못하도록 총력을 기울이는 한편 신라 군대가 탄현을 넘지 못하게 적극 방어하고, 적국의 군사력이 해이해지는 틈을 노려 역공으로 물리쳐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그러나 백제 조정은 그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덕분에 신라는 탄현을 어렵지 않게 넘었다. 전장에 나가기에 앞서 자신의 가족을 스스로 처형한 백제의 계백 장군은 5천 명의 결사대와 함께 황산벌에 세 곳의 진영을 구축하고 신라군을 기다렸다. 신라는 5만 대군을 셋으로 나누어 백제 진영을 공격하였으나 4번씩이나 전투에 패하였다. 이로 인해 신라 군사들의 사기가 크게 떨어졌다.
그러자 신라의 장수 흠친은 자기 아들 반굴을 백제 진영으로 보내서 싸우게 했다. 반굴이 죽자 신라 장수 품일 역시 자기 아들 관창을 단신으로 적진에 보내 싸우게 했다. 나이 어린 관창의 용기에 감탄한 계백 장군은 그를 죽이지 않고 사로잡아서 돌려보냈다. 하지만 관창은 죽기를 각오하고 다시 되돌아와 백제를 모욕하고자 했다.
계백은 어쩔 수 없이 관창의 목을 베어 말 안장 위에 실어 신라 진영으로 되돌려보냈다.
관창의 죽음은 도리어 신라군에게 힘과 용기를 북돋웠다. 두 젊은 병사의 죽음으로 인해 사기충천한 신라군은 다시 군사력을 모아 백제 진영을 총공격하였다. 그 결과 계백은 장렬하게 전사하고 결사대는 끝내 무너졌다.
이즈음 당나라 군대는 웅진강 어귀에서 백제의 저항에 부딪쳤다. 그러나 백제군을 쉽게 물리치고 신라가 황산벌에서 전투를 벌이는 사이 단독으로 사비성을 공격했다. 위기를 느낀 의자왕은 태자 융과 대신들을 데리고 웅진으로 달아났다.
7월 13일 당나라 군대는 큰 희생 없이 사비성을 점령하였다. 이어 7월 18일 웅진으로 달아났던 의자왕마저 소정방에게 항복하였다. 당의 군대는 의자왕을 비롯하여 백제인 수만 명을 포로로 삼아 본국으로 데려갔으며, 웅진도독부를 두어 백제 영토를 통치하였다.
여기까지가 이번 달에 풍전리 세트장에서 촬영할 시나리오의 주요 내용이었다.
야외 촬영 세트가 세워진 풍전리 들판에는 이미 김유신이 이끄는 5만 대군과 계백이 이끄는 결사대 5천 명의 맞대결을 재현한 장면이 전운을 자아내고 있었다.
스태프들의 분주한 움직임과 조명, 카메라 등 촬영 장비가 없다면 7세기로 빨려 들어가는 착각을 일으킬 만했다. 성 감독은 7세기의 정세를 머릿속에 그려 넣기 위해 드라마 촬영에 들어가기 전부터 사료들을 탐독해왔다.
비록 이번 특집 드라마는 조기 종영하기로 결정되었지만 성 감독은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할 생각이었다. 영화인의 생명은 시청률이나 관객수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었다. 촬영장에서 내뿜는 열정과 그로 인한 성취감으로 살아가는 게 영화인이라고 성 감독은 믿고 싶었다.
누구나 그렇듯이 모리를 처음 본 스태프들은 섬뜩함과 오싹함에 몸서리쳤다. 그들은 이미 조연출과 종필에게 사무실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해 전해 들었지만 차에서 내린 모리가 사건의 당사자라는 것은 모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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