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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대역배우 이야기

7. 죽음 대역

by 이세벽

의자왕이 웅진성으로 피신한 뒤였다. 백제 군사들은 사비성으로 쳐들어온 당나라 군사들과 맞서 싸웠다. 하지만 비 오듯 쏟아지는 화살은 마지막까지 성을 지키려던 백제 군사들을 허망하게 쓰려뜨렸다. 사비의 성문이 어이없게 열렸다. 당나라 군사들이 급한 물살처럼 사비성내로 쳐들어왔고 백제 군사들은 맥없이 죽어갔다. 당나라 군사들이 던진 창은 백제 군사들의 가슴을 뚫었고, 당나라 군사들이 휘두르는 칼은 백제 군사들의 목을 떨어뜨렸다. 피를 쏟으며 죽은 백제 군사들의 시신이 사비성 곳곳에 널려 있었다.


드라마 송출실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방송관계자들은 섬뜩함과 애통함으로 혼란스러워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왜 죽는 장면들이 저토록 끔찍하거나 비통하게 느껴지는지 깨닫지 못했다. 그때였다. 드라마 촬영 중에 병사들이 진짜로 죽은 것 아니냐는 문의 전화가 걸려오기 시작했다. 처음엔 한두 통 걸려오다 말겠거니 여겼다.

그러나 드라마가 끝나기 무섭게 시청자들로부터 병사들의 죽음을 확인하는 전화가 빗발쳤다. 그뿐이 아니었다. 방송국 홈페이지에는 병사들이 진짜로 죽은 것 아니냐는 확인 글에서부터 전투 장면 촬영 중에 실수로 엑스트라들이 죽었는데 감독이 그냥 촬영을 밀어붙였더라, 라는 추측성 글까지 순시간에 수백 건이 올라왔다.

급기야 본래는 트릭이나 장치를 써서 창이 몸을 뚫고 나오는 것처럼 보이게 하고, 화살이 몸에 박힌 것처럼 보이도록 해야 하는데 뭔가 잘못 돼서 진짜 무기가 지급 되었고, 스태프들은 이를 모른 채 촬영을 계속했다는 좀더 구체적인 주장이 나왔다.

‘진짜 감독’이라는 네티즌은 낮은 시청률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온 성 감독이 마지막 승부수로 엑스트라를 진짜로 죽이면서까지 리얼리티를 만들었을 거라며 도덕성이 결여 된 인간이라는 비방 글을 올렸다. 그러자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성 감독에 대한 갖가지 루머가 끊이지 않고 올라왔다.

‘성 감독’이라는 네티즌은 평소에도 성 감독이 리얼리티에 지나치게 집착해 있었다며 성 감독이 제작한 영화 제목과 장면을 일일이 열거하면서 리얼리티를 위해서라면 엑스트라들을 희생시키고 남을 만큼 지독하고 독선적인 인간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써머필드’라는 네티즌은 성 감독이 십여 년 전에 제작한 영화에서 소위 말하는 공사를 하지 않고 베드신을 찍게 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 흥분한 두 배우가 정말로 관계를 가졌고 그로 인해 여배우가 이혼을 당했다는 뜬금없는 주장을 내놓았다.

‘장의사’ 라는 네티즌은 성 감독이 예전에도 장의업자가 빠뚤린 시체를 사서 죽음 신을 찍곤 했다는 주장과 함께 가족의 시신을 도둑맞지 않으려거든 화장이든 매장이든 마지막 순간까지 정신 차려서 지켜봐야 한다는 충고도 잊지 않았다.

다수의 네티즌들은 홈페이지가 다운 될 지경에 이를 때까지 성 감독을 비난하는 악플을 쉬지 않고 쏟아냈다. 그들은 광신도처럼 열광할 뿐 논리나 증거, 근거 따위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도 없어 보였다.

편집국장은 방송국 홈페이지가 다운 되는 지경에 이르러서야 한시도 미룰 수 없는 급박한 상황임을 깨닫고 성 감독을 찾아 나섰다. 그러나 성 감독의 전화는 처음부터 전원이 꺼져 있었다. 연락이 닿은 스태프들 가운데 그의 행방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난리 난 거 알죠. 드라마 촬영하다가 사람이 죽었다고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편집국장은 스태프와 연결이 될 때마다 확인에 들어갔다. 그도 뭔가 감추고 있다는 의심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스태프들은 하나 같이 보조출연자들의 희생을 부인했다. 하지만 편집국장은 그걸로 만족할 수 없었다. 성 감독을 찾아 직접 확인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는 과연 이번 일이 좋은 조짐인지 아니면 더 일찍 드라마를 종방해야할 만큼 나쁜 사안인지 판단을 내리지 못해 조바심을 쳤다.

사비성 전투 신과 그 전에 방영되었던 전투 신이 삽시간에 인터넷 포털 사이트로 퍼져나갔다. 네티즌들은 두 개의 영상을 비교하면서 확실히 뭔가 달라졌다고 한결같이 주장했다. 그들은 적게는 서너 명 많게는 수십 명이 죽은 것 같다며 드라마 제작에 대한 의혹을 강하게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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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과 단편 소설을 씁니다. 종종 시도 씁니다. 때로는 노래도 만들고(작사,작곡, 편곡) 있습니다. 필요하면 그림도 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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